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47)화 (47/194)

테러

돌담길을 걷는다.

이른 새벽이 완연한 아침이 되고, 길가를 거니는 사람과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출근이 바쁜 회사원, 일찍부터 놀러 온 관광객, 산책을 나온 주민….

이연우는 경복궁 외곽을 빙빙 돌다가, 편의점에 들러 커피를 사 마시기도 하고, 간단한 삼각김밥 따위를 입에 넣기도 했다.

협력문서를 본 검문소의 경찰이 이연우를 이상한 눈으로 보기도 했다.

그렇게 걷기를 한참. 이연우가 잠깐 멈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다리가 아픈데….”

지금이 9시니까, 거의 3시간을 걸은 셈이다.

종아리부터 허벅지는 물론이고, 에코백을 걸친 어깨와 목까지 안 아픈 곳이 없다. 발바닥에는 물집이 잡혔는지, 걸을 때마다 이물감이 든다.

이어폰에서 축 처진 목소리가 돌아왔다.

- 저도 아파요. 의족이 허벅지를 짓눌러서….

불평이 쏙 들어간다. 이연우보다는 이서연이 더 고통스러울 테니까. 괜히 헛기침을 반복한 이연우가 다시 혼잣말을 흘렸다.

“화장실이 어딨을까.”

잠깐 화장실에 들리겠다는 말인데, 이서연의 대답이 냉큼 돌아왔다.

- 거기 왼쪽 건물 보이죠? 아까 지나가면서 봤는데, 안에 있더라고요.

“….”

어정쩡한 표정을 지은 이연우가 화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세면대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이연우는 잠깐 거울을 보았다.

아침인데 얼굴이 피로에 찌들었다. 늦여름이라 선선한 아침인데도, 끈적한 땀으로 얼굴이며 목이며 팔뚝까지 젖었다.

쏴아아-

시원한 물로 세수를 몇 차례하고, 팔뚝의 찌든 땀까지 씻어내던 이연우가 순간 멈칫했다.

“아침부터 뭐냐, 이게.”

“진짜 이런 일에 왜 우릴-”

떠들면서 막 화장실로 들어오는 두 남자. 흐릿한 거울을 통해 눈이 마주쳤다. 두 남자도, 이연우도 멈췄다. 그저 눈동자만 빠르게 움직이며 서로를 살핀다.

‘일반인이 아니야.’

이쪽에서 일하는 사람의 분위기가 있다. 그 분위기가 두 남자에게서 느껴진다. 두 남자도 이연우에게서 그 분위기를 느꼈다.

쏴아, 물이 쏟아지는 소리만 들려오는 가운데, 긴장이 흐른다.

먼저 행동한 건 이연우였다. 입을 벌리고, 크게 외쳤다.

“지원, 빨리!”

“제압해!”

두 남자가 거칠게 달려들고, 이연우는 총을 꺼낼 생각도 못 하고 젖은 손으로 에코백을 휘둘렀다.

쐐액-

이런저런 공구가 잔뜩 들어있는 에코백이 한 남자의 얼굴을 때린다. 그 무게와 철제 공구의 단단함. 묵직한 소리와 함께 휘청인 남자가 얼굴을 감싸는 순간.

다른 남자가 지척까지 다가와 두 손을 뻗었다.

“너!”

어깨와 손목을 동시에 노리는 손과 이연우의 발목을 후려 차는 발. 유도 기술인 듯하다.

‘잡히면 죽는다!’

매트도 없는 바닥에 내리꽂히면 중상이다.

이연우는 세면대에 엉덩이를 올리며, 두 다리를 들어 남자의 명치를 밀어 찼다. 하지만 계속 걸었던 탓일까.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았다.

남자는 밀려나지 않고, 그대로 이연우의 발목을 붙잡았다. 발목이 으스러져라 쥐는 손.

“화장실! 여기요!”

“이 새끼들!”

동시에, 허겁지겁 뛰어온 두 요원이 합류했다. 이연우와 마찬가지로 잔뜩 지친 김갑동과 이서연이 두 남자에게 몸을 들이받는다.

우당탕쿵탕-

두 남자가 넘어지고, 이연우의 발목을 잡은 손이 미끄러졌다.

이연우는 다급하게 화장실 안쪽으로 달려간 후, 상황을 살폈다.

“이만 포기해!”

“세 명이다! 지원, 지원 요청해!”

“악!”

난리가 났다. 네 명이 이리저리 얽히면서 난투를 이어갔다.

코피를 줄줄 흘리는 남자는 김갑동과 치고, 막고, 때리고, 붙잡기를 반복하고, 유도를 익힌 남자는 쓰러진 자세에서 이서연의 발목을 붙잡았다가, 그대로 뽑힌 의족을 보고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이서연의 몸이 기우뚱 기운다.

‘못 이기겠어.’

이연우는 에코백 안에 손을 넣어 빠르게 뒤지다가, 총을 꺼냈다.

“멈추세요.”

듣지 않는다. 싸움에 온 정신이 집중되었다.

이연우는 권총을 겨눴다.

“여기 총 있습니다.”

그 말에 거짓말처럼 움직임이 멈췄다. 뒤엉킨 자세에서 그들은 머리만 돌려 이연우를 보았다. 거무튀튀한 사제 권총에 집중된 시선.

“…골드버그 클럽?”

출시된 어떤 총기와도 다른 모델. 골드버그 클럽의 사제 권총.

두 남자의 표정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테러리스트요? 저희가요? 당신들이 테러리스트 아니고요?”

이연우의 표정 역시 이상하게 변한다. 뭔가가 잘못됐다. 잡히라는 물고기 대신 다른 물고기가 걸렸다.

남자가 작게 말했다.

“우린 이상관리청 직원인데….”

어색하게 눈치를 살피다가, 김갑동과 남자가 주먹을 내리고, 다른 남자는 이서연에게 의족을 돌려줬다.

김갑동이 얻어맞은 얼굴을 문지르며 말했다.

“우리 대화가 필요해 보이는데. 거기, 이연우 씨도.”

총기에서 떨어지지 않는 눈동자. 이연우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총을 에코백에 넣었다.

“장소부터 옮기죠. 여기는 좀.”

***

그들은 가까운 카페로 들어갔다.

이연우가 커피를 받아 탁자 중앙에 올려두자, 사람들은 저마다 커피를 들고 갔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는다.

김갑동과 이상관리청 직원은 멍들고 부어오른 얼굴이나 코피를 막은 코를 꾹꾹 누르면서, 서로를 노려봤다.

한국 내에서 경쟁하는 기관 간의 은근한 기싸움이다. 네가 먼저 말하지 않으면 나도 말하지 않겠다는 태도.

‘이럴 때가 아닐 텐데.’

툭, 탁자를 친 이연우가 입을 열었다. 먼저 김갑동을 향해서였다.

“골드버그 클럽 안 들어갔습니다.”

“…그럼 그 총은 어떻게 구했어?”

“훔쳤어요.”

“뭐?”

김갑동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며, 퉁퉁 부어오른 눈으로 이연우를 보았다. 이연우는 태연했다.

“그럴 일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건 비밀인데, 상부에는 다 보고했고요.”

그 대화를 듣던 남자가 한쪽 눈만 찡그렸다. 듣자 하니 골드버그 클럽이 아니다.

“당신들, 누구야?”

“회사요.”

“인류보호회사?”

이연우가 협력문서를 꺼내 보여줬다. 물에 젖고 구겨졌지만, 위조가 아니라 진짜다.

“아, 헛짓했네….”

두 남자가 동시에 긴장을 풀었다. 머리를 감싸 쥐고, 의자에 등을 기대며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는 갑자기 등을 꼿꼿하게 세웠다.

“여러분도 첩보 들었나 봅니다. 이렇게 된 거 협력 어떻습니까?”

“…무슨 첩보 들었습니까?”

“당신들도 알 텐데. 오늘 국무회의.”

김갑동과 이서연이 잠깐 눈을 마주했다.

‘얘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회사 내부에서 일어난 일인데?’

‘몰라요.’

눈으로 나누는 대화는 이상관리청 직원의 말에 빠르게 끝났다. 남자가 말했다.

“우리도 정확한 내용은 모릅니다. 이상위험보안국에서 단편적인 위험을 예지했는데, 이상異常으로 인한 테러가 일어난다고만 압니다. 그쪽은 뭐 더 아는 거 없습니까?”

김갑동은 능숙하게 말을 받았다.

“우리도 비슷합니다. 국무회의에 테러가 일어난다고 예측해서, 그거 막으러 왔습니다.”

다 말할 필요 없다. 회사의 파벌 하나가 정부 인사를 세뇌하러 왔다고, 정부기관에 알려서 좋을 게 없다.

이상관리청 직원은 의심하지 않고, 손목시계를 힐끔 보았다.

싸우는 중에 깨졌는지 잔뜩 금이 간 손목시계. 직원은 쓰린 마음을 애써 달래며, 시간을 확인했다.

“9시 20분…. 청와대로 갑시다. 상대가 누구든 결국 청와대로 들어올 테니까.”

대충 커피를 벌컥벌컥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들은 카페를 나섰다. 목적지는 청와대다.

***

“안 됩니다. 못 들어갑니다.”

말없이 걷는 다섯 사람은 청와대 정문에서 막혔다. 이상관리청의 직원이 정문 경비에게 뭐라뭐라 목소리 높여 말했지만, 정문 경비는 모른 척했다.

직원이 쾅쾅 발을 굴렀다. 한 손에 무슨 사원증 같은 것을 들고 내밀어 흔든다.

“당신들은 막을 권한이 없습니다!”

“계속 난동 부리면 저희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무뚝뚝한 얼굴로 그리 말하는 경비의 눈동자에는 언뜻 분홍빛이 스친 듯하다.

여차하면 망설이지 않고 대통령 경호처, 서울경찰청 경비단과 수도방위사령부 경비단에 신호를 보낼 태세.

이상관리청 직원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때 인류보호회사의 세 명이 이상관리청 직원을 제치고, 정문으로 자연스럽게 다가갔다.

“잠깐 지나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지나가시죠.”

철컹-

굳게 닫힌 정문이 열렸다. 이상관리청의 두 명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회사원들을 보았다.

형광 조끼를 걸친 그들은 자연스럽게 청와대에 진입했다. 김갑동이 슬쩍 웃으며, 직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청와대 안쪽은 우리가 담당하겠습니다. 바깥일 좀 부탁합니다.”

민간대응반의 장비인 자연스러운 형광 조끼. 잠입에 특화된 이상장비를 입은 그들이 닫히는 철문 너머로 멀어진다.

이상관리청의 직원은 차마 따라붙지 못하고, 당혹한 눈으로 회사원을 바라보기만 했다.

정문에서 조금 멀어졌을 즈음, 김갑동은 히죽 웃었다.

“저놈들 표정 봤어? 닭 쫓던 개 같은 얼굴 해서. 어딜 감히 일개 기관이 회사에 비비려고.”

얻어맞아서 푸르게 멍들고 퉁퉁 부은 얼굴로 미소를 감추지 못한다. 이서연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선배님. 이렇게 좋아할 때는 아닌데요.”

김갑동의 미소가 턱 굳었다. 어쨌든 회사의 파벌이 정부요인을 세뇌하러 왔고, 그걸 막으러 온 몸이니까.

김갑동은 입을 우물거리다가, 문득 그들 앞에서 걷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어….”

그들처럼 형광 조끼를 입은 남자가 느긋하게 걷고 있다. 왼손에 쥔 분홍빛을 내뿜는 핸드폰을 흔들면서.

그가 문득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봤다. 중년의 남자였다. 고생이 많았는지 잔주름이 많은 얼굴.

김갑동이 입술을 떨며 말했다.

“1차대응과 과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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