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48)화 (48/194)

테러

1차대응과 과장이 직접 왔을 줄은 몰랐다. 기껏해야 현장직 한둘일 줄 알았는데. 김갑동은 찢어진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당황할 때가 아니다. 눈을 질끈 감으며 김갑동이 버럭 외쳤다.

“눈 감아! 저거 보면 안 돼!”

눈만 감으면 최면 어플을 피할 수 있다.

이연우는 이미 눈을 감은 뒤고, 이서연이 다급하게 한 손으로 눈가를 덮었다. 어두운 시야 속에서 과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감사과 친구들이군. 그쪽은 처음 보는 사람이고. 그런데 눈 감고 있으면 나는 어떻게 막으려고-”

한창 말하던 목소리가 멈추었다. 과장의 시선은 이서연의 허벅지로 향했다. 과장이 눈매를 살짝 찡그렸다. 의족에 폭탄을 박은 신입요원의 이야기는 유명했으니까.

“폭탄?”

폭발은 두렵지 않다. 안전거리다. 하지만 폭발로 인한 결과는 성가시다. 국무회의가 연기될 테고, 정부 주요인사는 피신할 테니까.

이서연이 허벅지를 두드리며 친근하게 말했다. 여전히 손으로 눈가를 덮은 상태로.

“과장님, 이유는 묻지 않을게요. 저희랑 같이 돌아가요.”

과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단호한 목소리로 거절했다.

“그럴 수는 없지. 해야 하는 일이야.”

“과장님. 저는 견습요원이지만, 이건 배웠어요. 이상異常이 정부와 엮이면 안 되잖아요. 세계대전의 참상을 과장님도 아시잖아요.”

국가와 이상異常이 엮이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들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었다.

그렇기에 정치나 정부에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것, 나아가 국가가 위험한 이상개체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회사의 방침이다.

과장도 잘 알고 있었으나 그 결과 또한 알았다. 이상기후. 자멸의 길로 달려가는 인류.

‘아무것도 모르나. 설득은 필요 없겠지.’

과장이 소리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같은 식구끼리 싸울 필요는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상황 안에서 최선을 다할 뿐.

세 걸음쯤 움직였을까.

과장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두 정보부 요원이 어긋난 방향을 향하고 있을 때, 누군지 모를 남자가 눈을 뜨고 과장을 보고 있었으니까.

분홍빛을 내뿜는 핸드폰부터 앞으로 내미는 순간, 남자가 먼저 말했다.

“조사원 이연우입니다.”

“…그 조사원이군.”

주사위를 가진 조사원.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상한 조사원.

핸드폰을 다시 내린다. 저항이 가능한 상대, 그것도 무슨 일을 일으킬지 모르는 상대를 자극할 필요는 없다.

이연우는 에코백에서 권총을 꺼내 들고는, 총구를 바닥으로 내렸다.

“싸울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과장님의 행동을 이해합니다.”

“글쎄.”

“저도 압니다.”

그 말에 과장의 반응이 달라졌다. 반쯤은 시큰둥하고, 반쯤은 긴장한 얼굴이 살짝 풀어졌다. 과장은 떠보듯이 말했다.

“뭘?”

“시나리오와 계획. 500만 명.”

의미심장한 세 단어. 정보부 요원 둘이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고, 과장은 흥미를 보였다.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그렇다면 알 텐데. 이건 해야 하는 일인걸. 그런데 날 막으러 왔나?”

“아닙니다. 당신을 만나러 왔습니다.”

대화를 이어가기 전에 이연우는 잠깐 말을 골랐다. 정보부 요원이 듣고 있는 자리. 신중해야 한다.

다행히 말을 꾸미기는 어렵지 않았다.

“저도 파벌의 하나에 속해있습니다. 그들을 대표하여 협력관계를 맺으러 왔습니다.”

그를 위해서 이 일에 지원을 나온 것이다. 테러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무슨 소리를…!”

“연우 씨!”

두 요원의 얼굴이 일그러지나, 그들은 이 대화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 과장과 이연우는 서로를 바라보며 그들만의 대화를 이어갔다.

“무슨 파벌이지?”

“시계수리공입니다.”

“처음 듣는데.”

이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는 그 하나뿐이다. 아는 게 이상하다.

“국내외 기관 여럿이 모인 파벌입니다.”

과장의 눈이 조금 커졌다. 인류관리회사 역시 해외지사의 동지와 말을 주고받지만, 모였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확실한가? 대략적인 목표만 공유하는 수준이 아니고?”

“제가 한국지부장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힘을 모았습니다.”

물론 실속은 없지만, 포장하기 나름이다. 당당한 표정과 자신감 있는 자세.

과장은 시계수리공이라는 단어를 몇 번 중얼거리다가, 문득 손목시계를 보았다.

9시 45분.

잠깐 대화할 시간은 있다.

“흥미롭군. 너희는 어떤 방식으로-”

그 순간이었다. 돌연 굉음이 터진다.

콰아아앙-!

과장과 이연우, 눈을 뜬 두 정보부 요원의 머리가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여민관. 국무회의가 열릴 건물에 푸른 불꽃이 피었다. 테러였다.

***

콰아아아-!

푸른 꽃이 열기와 굉음을 내뿜으며 피어오른다. 열기와 화염으로 이루어진 꽃은 산소를 먹어 치우며 조금씩 몸집을 부풀렸다.

동시에 청와대가 난리가 났다. 공격받은 벌집처럼 곳곳에서 사람이 쏟아져 나왔다.

민간인과 병력의 발걸음이 일제히 땅바닥을 울리고, 고함 소리가 허공을 채웠다.

“테러다! 빨리 움직여!”

“저게 뭐야.”

“그, 어디야! 이상? 관리청? 불러!”

총기를 든 경찰과 군인이 다급하게 달린다. 다들 경황이 없는 표정.

무리 지어 달리는 병력은 회사원을 잠깐 보았지만, 시선은 스쳐 지나갔다. 형광 조끼를 입은 그들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무시하고 여민관으로 움직였다.

“머저리들이…!”

과장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빠득, 이 갈리는 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리고, 나직한 읊조림이 소란에 더해졌다.

김갑동이 손을 떨며, 푸른 꽃을 가리켰다.

“뭡니까! 저거 회사가 소유한 이상개체 아닙니까! 저게 왜…!”

“머저리 같은 강경파 놈이 손을 쓴 거지. 머리부터 날리겠다고.”

김갑동과 이서연과 이연우의 시선이 과장을 보았다. 과장은 순식간에 냉정을 되찾았다. 1차 대응과 과장으로서 차분하게 명령한다.

“김갑동 요원. 이서연 견습요원. 회사에 보고부터 해. 저거 수습 늦으면 일대가 파괴된다.”

산소를 먹고 자라는 푸른 화염 꽃.

충분히 자라면 사방으로 씨앗을 흩뿌리고, 그 씨앗은 산소를 먹고 자란다. 막지 않는다면, 지구의 산소를 고갈시킬 때까지 자랄 것이다.

김갑동과 이서연이 눈을 번쩍 뜨고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하기 시작했다.

“김갑동 요원입니다! 지금 청와대에 테러가-. 뭐요? 당신 어디 파벌이야? 지금 푸른 꽃으로 테러가 일어났다니까! 그래!”

“긴급보고, 긴급보고. 정보부 감사과 견습요원 이서연. 위치는 청와대. 이상테러입니다.”

몸을 돌려, 목청을 높이고, 빠르게 속삭이는 두 사람.

그동안 과장과 이연우, 두 사람은 침묵했다.

과장은 이 상황에서 세뇌하기는 힘들어서, 이연우는 슬슬 도망갈까 고민하느라.

짧은 시간 동안 더 자라난 푸른 꽃이 시야 한구석을 차지한다.

‘인류관리회사 파벌에 말은 했으니까, 이만 돌아가도 돼.’

목적은 이뤘다. 테러는 관심사가 아니다. 15년 후면 인류가 멸망할 텐데.

“그럼 저는 이만-”

이연우는 과장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가, 사람 하나를 보았다.

수많은 사람이 내달리는 도로. 그 사이로 저벅저벅 걸어오는 사람이 있다. 그들처럼 형광 조끼를 입고, 푸른 알갱이가 든 실린더를 쥔 남자. 그가 과장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대응과 1과장? 안타깝지만 한발 늦었어.”

과장이 몸을 돌려 상대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가 냉정하게 말했다.

“특전대 작전과장. 선을 넘었군.”

“에헤이. 그쪽도 똑같은 짓을 하려고 왔으면서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천연덕스럽게 한쪽 입가를 비틀어 올린다. 남자는 실린더로 과장의 핸드폰을 가리켰다.

“사람을 세뇌하는 거나, 죽이는 거나. 똑같잖아. 이왕 행동하기로 한 사람끼리 이러지 말자고. 모로가 서울로만 가면 되잖아?”

“다르지. 이건 회사가 용납하지 않을-”

“용납하지 않으면 어쩔 건데? 여력이 없는데. 그리고 회사가 무슨 자격으로?”

과장이 침착을 유지하는 반면, 남자의 눈동자에는 돌연 불꽃이 확 튀는 듯했다. 목소리가 분노와 열기를 품었다.

“회사는 지구를 포기했어.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데도.”

실린더를 식칼처럼 내리치며 외친다.

“70억 명만 죽이면 이상기후는 해결돼. 어렵지도 않지. 회사가 억제하고 있는 이상개체 몇 개만 풀어놓아도 핵무기는 우스우니까!”

“반박할 가치도 없는 말이군.”

이연우는 한 걸음 물러나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상황을 파악하고, 남자가 속한 파벌의 이념을 알아낸다.

‘인류학살회사? 이상기후의 원인은 인간이니 인간을 죽이겠다?’

이해는 가지만, 선뜻 공감하기 힘든 목표. 애초에 이상기후의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했는데.

‘저 파벌과 손을 잡아도 괜찮을까?’

남자가 갑자기 차분해졌다. 감정이 극단을 오간다.

“보존계획이 진행된다면 500만 명만 살겠지. 다른 집단도 다 합친다면 그쯤 살릴 테고. 하지만 70억을 죽이면 10억이 살아남아. 이게 더 많이 살리는 길이야.”

“그걸 몰라서 안 하나?”

70억의 생명을 직접 거둔다. 회사는 더 이상 인류보호회사가 아니게 될 것이다.

“그딴 짓을 하면 회사는 다시는 과거로 못 돌아가.”

“피는 우리가 보고, 책임도 우리가 질 거야. 너희, 인류관리회사는 얼마 안 남은 인류를 잘 관리하면 돼. 우리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올리면 된다고.”

과장은 단단한 얼굴로 짧게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우리가 알아서 해. 너희 도움은 필요 없어.”

“그래? 하하. 그러면 끝까지 우리를 방해하겠다고?”

“네가, 지금. 날 방해했지.”

남자가 실린더를 던질 듯한 자세를 취하고, 과장이 슬며시 핸드폰을 들어 올린다. 분홍빛이 일렁이는 핸드폰.

불길이 이글거리는 남자와 냉정한 과장이 눈도 깜빡이지 않고 서로를 노려봤다. 틈이 보이는 순간 공격에 나설 태세.

그쯤에서 이연우가 끼어들었다. 목을 몇 번 가다듬고, 성큼 걸어 과장의 옆에 선다.

긴장이 분산된다. 과장과 남자는 제삼자인 이연우를 보았다.

“조사원 이연우입니다.”

“그 조사원?”

남자가 흠칫 놀라며, 푸른 씨앗이 들어있는 실린더를 꽉 붙잡았다. 이연우를 노리는 실린더. 과장이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이쪽도 알아. 시계수리공이라는 파벌에 속했다던데.”

“못 들어봤는데. 무슨 파벌이지?”

“이상기후를 해결하기 위한 파벌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방법으로?”

슬슬 눈동자에 불티가 튀는 듯하다.

이연우가 말했다.

“회사, 적대집단, 우호집단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이상개체와 기술을 모아 이상기후를 물리칠 방법을 찾기로 했습니다.”

과장과 남자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조금의 부끄러움, 후회인지 회상인지 모를 낯빛. 그들은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가, 작게 말했다.

“정직하고, 이상적이군.”

“…좋네.”

이상異常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하라.

과장과 남자는 그를 위해 쉬운 길을 선택했다. 이상기후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이상異常으로 인류를 조작하는 길. 본말전도. 적대집단으로 정의되는 행동.

반면 시계수리공은 인류보호회사의 초심을 잃지 않았다. 올곧게, 정면으로 이상기후에 맞서고자 한다.

비록 그 길이 좁고 희미하여 보이지 않는다 해도, 그들은 무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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