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49)화 (49/194)

테러

푸른 꽃이 자라나는 청와대.

이글거리는 열기가 바람을 타고 훅 밀려오는 도로. 땀을 뻘뻘 흘리며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요란한 목소리들.

소란 속에서 오직 회사원 사이만 고요하다.

“….”

“….”

김감동과 이서연은 대화를 엿듣다가 안색이 창백해졌고, 과장과 남자는 허공 어딘가를 보며 생각에 잠겨있다가, 천천히 눈을 돌려 이연우를 보았다.

실린더를 느슨하게 고쳐 쥔 남자가 말했다.

“그래서 뭐? 무슨 말을 하려고?”

“동맹이든, 협력관계든 맺을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말해, 시계수리공만으로는 가능성이 낮습니다. 함께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성공할 확률이 올라갑니다.”

이연우는 솔직하게 말했다.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힘을 더해달라고.

목소리가 진솔했다. 사실 시계수리공이라고 해봐야, 사람 몇이 모인 동아리 수준이었으니까. 눈동자로 감정을 그대로 내비친다.

과장은 주머니를 뒤져 명함 하나를 꺼내, 이연우의 에코백에 밀어 넣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돕지. 파벌 안에도 말해보겠는데, 아마 도우려고 할 거야.”

파벌이 어떻든, 시계수리공을 비웃고 무시할 사람은 없다.

“감사합니다.”

이연우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에코백을 벌려 안에 놓인 명함을 보았다. 정보부 1차대응과 과장이란 문자.

‘정보부 과장. 큰 도움이 될 거야.’

전화번호를 뇌리에 새기듯 뚫어져라 보는 때, 휘리릭, 새로운 명함 하나가 날아들었다.

대응과 과장의 명함 위에 놓인 또 다른 명함. 한국지사 특전본부 작전과장.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를 방해하지만 않으면, 돕지. 그리고 그쪽 활동 범위는 되도록 피하겠어.”

이연우가 그를 보니, 그는 불씨가 사그라든 눈으로 푸른 꽃을 보고 있었다.

“그쪽이 성공만 하면, 좋은 일이지. 좋은 일이야.”

몸을 비스듬히 돌린 자세. 표정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연우는 말없이 고개만 꾸벅 숙였다.

싸울 듯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작게 한숨을 내쉰 과장이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뒤처리가 바쁘겠어. …저 친구들도 귀찮겠고.”

회사원들이 고개를 돌렸다. 정문 방향에서, 이상관리청 직원 둘이 허겁지겁 뛰어왔다. 이상관리청 신분증을 든 손이 벌벌 떨린다.

“어떻게 된 겁니까! 결국 못 막았-”

근처까지 다가온 직원이 작전과장의 손을 보았다. 푸른 씨앗이 밀봉되어 있는 실린더.

그 순간, 회사원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

‘국가기관 놈들한테 약점 잡힐 수는 없지.’

갈 길이 멀다. 명색이 정부기관인 이상관리청이 하나하나 발을 걸면 귀찮다.

이연우가 먼저 말했다.

“모두 회사원입니다. 안타깝게도 테러는 막지 못했지만, 추가적인 테러는 막았습니다. 여기 특전대원께서 테러리스트의 이상개체를 강탈하였습니다.”

동시에 과장이 핸드폰을 그들을 향해 들이밀었다. 연하고 짙은 분홍빛이 명멸하며, 그들의 눈동자가 흐려졌다.

과장이 이연우의 말을 받아, 말했다.

“이게 현 상황이다. 멸망주의자가 회사의 푸른 꽃을 훔쳤다. 회사는 수습하기 위해 노력하여, 추가적인 테러를 막았다. 또한 회사는 이미 일어난 테러를 수습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아…. 그렇습니까….”

“아….”

멍하니 서서 흐린 목소리.

과장이 핸드폰을 거두자, 그들의 눈에 초점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들은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활짝 피어난 푸른 꽃을 노려보았다.

분노가 차오른 눈과 목소리.

“멸망주의자…! 우리나라에서 이런 짓을!”

멸망주의자라면 충분히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다. 세상이 망하길 바라니까.

띵딩딩딩-

그때 둘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상관리청의 전화다. 화면을 본 이상관리청 직원들의 얼굴에서 붉은 기운이 단번에 빠졌다.

다급히 전화를 받은 그들은 고개를 숙여가며, 말하기 시작했다. 이연우와 과장이 말해준 내용이 고스란히 옮겨진다.

“예, 예. 회사에서 추가 테러는 막았습니다. 지금 수습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고 합니다.”

“생존자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예, 우선 회사를 도와 뒷수습을 하겠습니다.”

진땀을 빼며 통화를 끝낸 두 사람이 멍하니 과장과 푸른 꽃을 번갈아 보았다.

“이제 뭐 합니까? 저건 어떻게 막습니까?”

“푸른 꽃을 죽이기 위한 약물을 적재한 특수헬기가.”

한창 말하던 과장의 목소리가 끊긴다. 과장은 푸른 꽃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활짝 만개한 푸른 꽃.

푸른 불꽃으로 이루어진 이상異常이 만개했다. 이제 불꽃이 산소를 먹어 치우는 굉음은 들리지 않았다. 푸른 꽃잎이 조용히 하늘거리며, 먼지나 잎사귀, 건축자재 따위를 태운다.

꽃가루처럼 흩날리는 검은 연기 사이로, 언뜻 푸른 알갱이가 별무리가 되어 날아올랐다.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흩날리는 씨앗.

“이렇게 빨리?”

과장이 눈을 크게 떴다. 분명 푸른 꽃이 번식하고 있었다. 예상 시간보다 빠르게 자라서.

작전과장은 당연하다는 듯, 과장을 힐끔 보았다.

“열심히 개량했지. 테이저 건에 쓰는 전기 뱀처럼, 무기로 쓸 수 있게. 멸망주의자 놈들, 어떻게 알고 훔쳤나 몰라.”

푸른 꽃의 씨앗이 사방으로 퍼졌다. 조금쯤은 몽환적인 광경이었지만, 그 결과는 끔찍했다. 청와대 곳곳에 내려앉은 씨앗.

그들이 서 있는 도로 주변으로도 떨어져 내린 씨앗이 산소를 먹고, 새싹이 되어 움트고, 푸른 줄기가 자라고, 꽃봉오리가 맺힌다.

***

“불, 맞지?”

“일단 꺼!”

사람들은 재빠르게 반응했다. 뛰다 멈춰서, 구두로 짓밟기도 하고, 윗도리를 벗어 푸른 씨앗을 내리치기도 했다. 누군가는 소화기를 들고나와 하얀 분말을 흩뿌렸다.

채 자라지 못한 작은 꽃봉오리가 스러졌다.

하지만 사람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여전히 푸른 꽃이 성장하고 있었다.

그 꽃이 전부 만개하면 다시 씨앗을 흩뿌릴 것이다. 그 씨앗은 다시 꽃이 되어 피어날 테고.

“이러면 서울 도심이….”

푸르게 물든 과장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1차대응과 과장이기에 예상이 간다.

회사에서 출동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푸른 꽃이 번식하는 속도, 그사이에 일어날 피해규모와 죽어갈 사람들.

과장이 제자리에서 서성이기 시작했다.

“회사만으로는 늦어. 지금 할 일이. …거기 이상관리청.”

“예, 예!”

주변에 내려앉은 씨앗을 짓밟고 있던 이상관리청 직원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과장은 그들과 청와대를 번갈아 가리켰다.

“일대를 대피시키고, 소방서에 연락해서 씨앗의 전파를 막도록 해.”

회사 또한 정부기관을 움직일 수 있으나, 국가기관인 이상관리청의 요청이 더 잘 통한다.

직원이 전화번호를 누르다 말고, 과장을 보았다.

“대피명령과 비상경계령은 이미 내려졌을 겁니다. 저 꽃,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지침을 알려주십시오.”

“화재. 결국은 불이야.”

봉우리나 씨앗 정도는 물을 뿌리고 산소를 차단해도 죽는다.

하지만 이 또한 시간이 걸렸다. 그들이 대응을 시작할 때까지 얼마나 번식할지가 문제다.

“지금 당장 씨앗을 처리해야 해.”

과장은 사방에서 움트는 푸른 꽃을 보았다.

기하급수적으로 증식하는 꽃. 현장에서 대응해야 한다. 지금 죽이는 씨앗 하나가 피해를 크게 줄일 테니까.

과장이 최면 어플을 들고, 주변 사람에게 다가갔다. 한창 바쁘게 움직이던 정장 차림의 여자가 과장을 보기 무섭게, 얼굴에 최면 어플이 들이밀어졌다.

“소화기를 찾아 들고, 주변을 돌아다니며 푸른 불을 처리해라.”

“네….”

그런 식으로 주변 사람 몇을 세뇌한 과장은 회사원을 돌아보았다.

“나는 여기 남아서 최대한 저지한다. 너희는 이만 복귀해.”

“목표는 이뤘으니까. 막지는 않겠어.”

실린더를 든 작전과장이다. 과장은 눈살을 한 번 찌푸렸으나, 더 실랑이하지는 않았다. 작전과장이 설렁설렁 걸어, 멀어진다.

이연우도 에코백을 어깨에 걸쳤다. 그는 정보부 요원 둘을 툭툭 쳤다.

“그만 갑시다.”

“아. 가야, 가야지.”

김갑동과 이서연은 영혼이 빠져나간 얼굴로 비척비척 걸었다. 대화를 엿들으며 이상기후와 보존계획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없이 청와대 정문을 향해 걸었다.

청와대 정문을 나서, 도시의 거리로 진입한다. 거리는 사람으로 북적였다. 핸드폰을 들고 청와대를 찍는 사람, 도망치는 사람, 대피하라며 고함치는 경찰 등등….

거기에 바람을 타고 거리에 내려앉은 푸른 씨앗까지.

“이게 뭐야? 예쁜데?”

“꺼야 하는 거 아니야?”

“일단 찍어.”

산소를 먹고 자라는 씨앗에 핸드폰을 들이댄 사람들이 뭉쳐 있다. 경찰이 와서 그들을 대피시키려 해도, 사람들은 떠나지 않았다.

“….”

“….”

이연우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넋을 놓고 이연우만 따라 걷던 김갑동과 이서연이 몇 걸음 걷다가, 따라서 멈췄다.

이연우는 전봇대를 올려 보고 있었다.

“김갑동 씨. 테이저 건 가져왔습니까?”

“아, 아. 가져는 왔는데.”

“전기 뱀으로 푸른 꽃 처리할 수 있습니까?”

“그건….”

정신이 나간 김갑동의 얼굴에 서서히 표정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가능은 할 텐데. 전기를 잔뜩 먹으면 통제를 벗어날 확률이 높아. 사고만 더 키우는 꼴-.”

김갑동이 말을 멈췄다.

엉망이 된 청와대와 난리가 난 도로. 사고는 이미 크게 났다. 거기에 지구가 멸망한다지 않나. 그에 비하면 전부 사소한 문제다.

김갑동이 힘 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그래, 뭐. 해보지. 이제 와서 뭐가 더 나빠지겠어.”

“선배님, 제가 할게요!”

이서연이 김갑동의 가방을 냅다 열고, 그녀의 테이저 건을 꺼냈다. 김갑동이 어어, 하는 사이 그녀는 테이저 건으로 하늘에 걸린 전선을 겨눴다.

“우리 애가 착해요. 말도 잘 듣고, 저랑 친하기도 하고요.”

찰칵-

방아쇠가 당겨지고, 푸른 번개가 번쩍 날아들었다. 전선을 휘감은 푸른 뱀.

뱀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머리로 추정되는 부분을 들어 이서연을 내려 봤다. 눈망울로 보이는 공백이 동그랗게 떠졌다. 꼭 진짜 이거 먹어도 되냐는 듯.

이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먹어! 그리고 커져서 이 꽃 처리해줘!”

뱀이 고개를 돌려, 사방에 피어오른 푸른 꽃을 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전봇대에 처박고 전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번쩍이는 섬광. 푸른 번개가 지상에 맺혔다.

푸른 빛이 점점 강렬해졌다. 이연우는 한 손으로 눈가를 가린 후,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나는 도망치는 길이 푸른 꽃으로 막히면 처리할 수 있나 물어본 건데.’

하지만 여기서 꽃을 처리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나쁘지는 않다. 이연우는 섬광에 찌푸린 눈으로 푸른 번개 뱀을 보았다.

전기를 먹어 치우며 순식간에 성장해, 거리의 전봇대를 전부 휘감은 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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