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번개 뱀은 순식간에 덩치를 키웠다.
전봇대를 따라 구역 하나를 빙글 돌아 똬리를 틀었고, 쉴 새 없이 번쩍이는 전광이 온 세상을 푸르게 물들였다.
뱀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는 입을 쩍 벌렸다. 포효 소리는 없었으나, 마치 번개가 거꾸로 치솟은 느낌. 번개가 용의 형상을 취했다.
푸른 빛 아래, 사람들은 입을 벌리고 머리 위를 올려보았다. 몰아치는 번개의 섬광 때문에 눈이 아픈데도,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했다.
“와….”
나직한 감탄사만 흘러나온다. 경찰은 본분을 잊었고, 도망치던 사람은 걸음을 멈췄으며, 카메라 어플을 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처음 보는 거대한 이상개체에 모두가 정신이 반쯤 나갔다.
회사원조차 그랬다.
“번개 뱀이 이 정도였다고…?”
김갑동이 손을 떨며 슬며시 가방을 어깨에서 놓고, 손으로 들었다. 가방에는 그의 테이저 건과 그가 관리하는 번개 뱀이 있었으니까.
물론 읽고 들어서 위험성은 알고는 있었다. 발전소를 점령한 번개 뱀의 사례도 있었으니까. 이건 그것만 못해도, 온몸으로 직접 체감하니 새삼 두려움이 몰려왔다.
번쩍이는 번개와 거대한 몸체가 건물 사이로 좁고 네모난 하늘을 덮고 있다.
이연우도 폭발물 대하듯 가방으로부터 물러났다.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이서연을 보았다.
‘저게 통제가 될까?’
이서연은 번갯불이 비치는 눈을 반짝이며, 주먹을 치켜들었다.
“충분해! 이제 꽃을 처리해!”
이연우와 김갑동이 바짝 굳어서 긴장한 시선을 보내자, 괴수가 된 번개 뱀은 번개처럼 갈라진 혀를 몇 번 낼름거렸다.
어지간한 건물보다 커진 뱀이 머리를 까딱이며 거리를 쭉 내려본다.
넋을 놓고 올려보는 사람들. 밥 주고, 집 주고, 장난치고 노는 인간 친구.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파란 꽃. 맛없어 보인다.
“어…. 말 못 들었나? 친구야!”
“이거 통제 안 되면….”
그 사이 회사원의 안색은 번갯불보다 파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저게 날뛰기 시작하면, 전깃줄을 타고 송전탑이나 발전소까지 나아가면.
잔뜩 좁아진 동공으로 뱀을 본다. 머뭇거리기를 잠시, 다행히 뱀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직-
전기를 얼마나 먹었는지, 번개 다발보다는 플라즈마에 가까워진 몸통이 꿈틀댄다.
그리고는 번개가 되어 도심을 누비기 시작했다. 푸른 번개가 하늘을 달렸다.
콰릉-!
몸통에서 잔가지처럼 뻗어 나온 번개가 자그마한 씨앗이나 꽃봉오리를 내리쳐 죽였다. 활짝 만개한 꽃은 똬리를 틀어 조르고, 켁켁대며 입으로 크게 베어 물어 뜯어냈다.
찰나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섬광이 번쩍이고 지나간 자리에는 탄 냄새와, 정전이 일어난 건물, 번개가 흘러 까맣게 탄 가로수, 멈춰 선 사람들만 따위만 남는다.
콰르르릉-!
청와대 주변을 크게 몇 바퀴 돈 뱀이 마침내 청와대로 날아들 때까지, 거리는 조용했다. 누군가가 얼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뭐지…?”
현실에서 동떨어진 이상異常.
무슨 꽃처럼 생긴 불꽃이 날아다니지를 않나, 번개로 이루어진 용이 하늘을 누비지를 않나. 꿈인가 의심이 들기도 하고, 이벤트인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현실임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흥분하며, 카메라에 찍힌 번개 뱀을 보고,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하기도 하고, SNS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서연도 그들만큼이나 흥분해서,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외쳤다.
“봐요! 우리 애 엄청 착하다니까요!”
반면 깁갑동의 얼굴은 새까맣게 죽었다. 그는 정신이 번쩍 든 표정으로 거리를 둘러봤다.
“이거 어떻게 수습하냐.”
푸른 꽃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번개 뱀의 목격자가 한둘이 아니다. 거기다 서울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 곳곳으로 흩어질 텐데. 숫자가 많아 하나하나 추적하기도 힘들다.
이연우는 잠깐 하늘을 보았다.
“수습을 할까요?”
“…그렇지. 안 할지도 모르겠네.”
15년 안에 지구는 멸망할 것이고, 회사는 지구를 탈출할 것이다. 굳이 이런 일에 힘을 쓸까.
“비밀유지가 깨질지도….”
“난장판이 나겠네요.”
그들은 미래를 보았다. 경험으로, 직관으로, 역사로 추측 가능한 미래.
회사는 인류보존계획에 집중했다. 반대하는 사람은 파벌이 갈려 내전 중이다. 적대집단은 살길을 찾아 바쁘고, 뭘 모르는 잔챙이들은 자유롭게 설친다. 현재만 해도 이렇다.
이상異常이 공개되면 어떨까.
일반인들은 지금만큼이나 다양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이상종교, 이상권리보호협회, 이상국가, 이상팬클럽, 이상정치. 회사가 제거한 놈들만 해도 이런데. 망했네. 다시 돌아가겠네. 아니, 어차피 망할 지구인가.”
깁갑동이 축 늘어진다. 이연우는 몸을 돌렸다. 그가 말했다.
“우리가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할 일을 해야죠.”
“맞다! 연우 씨! 수리공이랑 이상기후? 그거 다 뭐예요? 짐작은 가는데, 설명 좀 해주세요.”
“아, 그거.”
북적이는 인파.
형광 조끼를 입은 그들은 번개 뱀을 쫓아 청와대로 올라가며 대화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분명히 번개 뱀을 쏜 그들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푸른 꽃을 막아냈으나 멸망에 한 걸음 가까워진 세계. 회사원이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
푸른 꽃은 푸른 번개 뱀이 처리했다. 푸른 번개 뱀은 한참 동안 다이어트하여 다시 작아졌다. 테이저 건에 들어올 정도로.
이서연은 크립티드연구동호회로 스카우트 제안을 받기도 했다. 푸른 뱀을 정말 잘 교육했다면서, 그 능력을 살려보라고.
당연히 이서연은 거절했다. 그건 멋이 안 난다는 이유였다.
대신 이서연은 시계수리공 한국지부에 가입했다. 김갑동도 마찬가지였다.
“여기 생맥주 나왔습니다.”
한 술집.
이연우와 이서연과 김갑동이 한 테이블에 앉아, 뻥튀기 과자를 주워 먹다가, 시원한 맥주잔을 붙잡았다.
짠-
맥주잔이 테이블 중앙에서 부딪친다. 꿀꺽꿀꺽, 몇 모금 마신 후, 김갑동이 시끌시끌한 술집을 둘러봤다.
“이게 진짜야? 아니, 뭔.”
“위튜브 봐봐. 장난 아니야.”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과, 얼마 전에 있었던 푸른 꽃과 푸른 뱀 사태를 방송하는 TV.
아나운서가 거대한 푸른 꽃과 고개를 쳐든 뱀을 배경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 청와대에서 일어났던 참사의 원인은 여전히 불명입니다. 우리는 저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랄 났네….”
“이제 비밀유지도 때려쳤나봐요.”
대놓고 공표하지는 않았지만, 이쪽 세계 사람이 나서서 알리지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알려지는 것을 막지는 않는다.
SNS고 인터넷이고 난리가 났는데도. 이 순간에도 이상異常의 존재가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었다. 푸른 꽃의 번식과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김갑동이 맥주잔을 들어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많이 남아있던 맥주가 전부 사라진다.
쾅, 유리잔을 거칠게 내려놓은 김갑동이 헛웃음을 흘렸다.
“회사가 진짜 포기했구나.”
이연우에게 이야기를 듣고, 부정하고, 좌절하고, 분노하기를 며칠이었나.
김갑동은 이제 현실을 받아들였다.
반면 이서연은 처음부터 의욕을 잃지 않았다. 주먹을 쥐며 자신 있게 말한다.
“그러면 우리가 하면 되죠. 우리도 이제 시계수리공 소속이잖아요.”
“가능할까.”
김갑동은 맥주잔 손잡이를 매만졌다. 의심이 들었다.
“파벌 하나가 가능한 일이면 회사가 진작 했겠지. 물론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다른 파벌도 나름대로 대응하고 있으니, 희망은 있지 않겠습니까.”
이연우는 핸드폰을 두들기다가 고개를 들어, 그들에게 말했다. 이왕 동료가 된 사람들, 응원은 어렵지 않다.
“15년 조금 안 되게 남지 않았습니까. 가능할 겁니다.”
“그렇겠지?”
“안 되도 되게 해야죠.”
“맞아요. 힘내자고요.”
그들이 다시 맥주잔을 쥐고 건배하려다가, 김갑동이 잔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김갑동이 벨을 눌러 종업원을 불렀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한참 남았잖아! 막을 수 있겠지! …여기 소주 한 병이요.”
종업원은 금방 소주잔 세 개와 소주 한 병을 가져온다. 김갑동은 소주를 받아 들고, 바로 따서 잔을 채웠다.
“기분 나쁜 이야기는 그만하고 마시자!”
“아니, 오늘 시계수리공으로 뭘 할지 대화하려고-”
“대화할 게 뭐 있어. 적당히 살다가 이상기후 막는데 쓸만한 거 있으면 얻는 거잖아. 이상異常이든, 사람이든.”
짠-
그렇게 잔을 부딪치기를 몇 번.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술 몇 병을 해치운 그들은 그 자리에서 한참 동안 먹고 마시기를 반복했다.
김갑동은 답답했기 때문인지 혼자 연거푸 술잔을 기울이더니, 완전히 취해버렸다.
이서연과 이연우가 서로를 마주 봤다.
“이제 가야 할 거 같은데요.”
“많이 취했네.”
김갑동이 동공이 풀린 눈으로 손을 휘적였다. 힘없이 흐느적거리는 손.
“계산. 내가 할 거야. 다 비켜. 비켜어-”
“선배님, 무슨 치킨집 차리겠다고 돈 아꼈잖아요.”
“적금 깼어. 치킨집이 무슨 소용이야. 이, 이, 빌어먹을 회사. 때려칠 수도 없어.”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계산대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이서연과 이연우는 말리지 않았다. 대신 슬슬 떠날 준비를 한다.
소지품을 챙긴 둘은 먼저 술집을 나왔다.
밤바람이 서늘했다. 잠깐 술집 안쪽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서연이 핸드폰을 들어 무언가를 찾아, 이연우에게 보여줬다.
“박상준 씨 기억나요?”
“누구였지.”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기억이 떠오른다.
인간자격시험을 보고 합격한 사람. 신입사원연수를 버티지 못하고 돌아간 사람. 안개 괴물이 나오는 괴백산에서 자살 시도를 한 사람.
“아. 그 사람.”
“요즘 엄청 유명해졌어요.”
이서연이 핸드폰을 까딱인다. 이연우가 보니 동영상 사이트였다.
어렴풋이 기억 나는 박상준이 흔한 형식의 썸네일에 박혀 있다. 푸른 꽃과 푸른 뱀 사진에 눈이 아픈 자막이 덧씌워졌다.
이서연이 몇 번 눌러 박상준의 채널로 들어가니, 그가 올렸던 영상 리스트가 보였다. 눈에 들어오는 영상이 익숙했다.
[충격! 괴백산에 괴물이 산다!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괴백산, 나라에서 괴물을 키운다?!]
[청해항구 사건의 비밀! 말도 안 되는 조사결과, 정부는 무엇을 숨기고 있나!]
[아파트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도 침묵하는 이유!]
그것 말고도 수많은 음모론, 미스터리, 공포를 영상으로 만들어 올렸는데, 조회수가 심상치가 않다.
“와.”
이연우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먹고 살 길을 잘 찾았다고. 타이밍도 좋다. 회사가 정상이었으면 모조리 검열되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