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51)화 (51/194)

미러전

쏴아아아-

역대급 태풍이 온다더니, 비바람이 어마어마하게 몰아친다.

회사에서 출근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올 정도로 무서운 폭우와 강풍이 창문을 때렸다. 닭 튀기는 듯한 빗방울 소리와, 덜컹이는 창문.

“저것도 이상기후인가….”

침대에 누운 상태로, 고개만 돌려 창문을 보던 이연우는 이내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 이게 말이 되는 사고입니까! 촉법소년? 유조차? 가스차? 가스관 폭발? 상식적으로-

박상준의 과장과 추측투성이인 영상을 보기도 하고, 청와대 사태로 인한 여파를 찾아보기도 하고, 모바일 게임을 하기도 하고, 시계수리공으로서 여러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뭐 한 것도 없는데 찾아온 오후.

띠링-!

문자가 왔다. 발신자는 1차대응과 과장. 며칠 전에 부탁했던 일에 대한 답장이었다.

“왔다.”

슬슬 배고파, 뭘 먹을까 고민하던 이연우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문자를 열자, 기나긴 문자내역이 주르륵 있었다.

이전에 나누었던 대화.

- 이연우 : 이것들 혹시 가능할까요?

- 1차대응과 과장 : 어렵지 않은 일인데, 지금은 푸른 꽃 테러를 수습하느라 바빠. 어떻게 멸망주의자 짓으로 만들긴 했는데, 비밀유지가 문제야.

- 이연우 : 천천히 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지금 인터넷 난리 났는데, 그건 어떻게 되는 겁니까?

- 1차대응과 과장 : 거의 비밀유지는 포기하고 방관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어.

며칠 동안 테러의 결과와 비밀유지에 관한 정보를 직접 들었다.

- 1차대응과 과장 : 정보통제에 쓰던 장비들, 이 기회에 덜어내서 이주지로 옮긴다더군.

- 1차대응과 과장 : 정보생명체와 문화적 재해 전파를 막기 위한 장비만 남긴다고.

조사원으로서는 모를 정보도.

‘이건 다 읽은 거고.’

휙휙-

엄지손가락이 화면을 밀어 올렸다. 화면이 미끄러지며, 방금 온 문자가 화면을 차지했다.

- 1차대응과 과장 : 여기 자네가 부탁했던 거. 뭘 하려는지 모르겠는데, 조심해서 써.

이연우는 조심스럽게, 실수로라도 다른 곳을 누르지 않게 심혈을 기울이며 화면을 내렸다.

그곳에는 언젠가 보았던 스팸 문자가 있다.

[…당신을 대신해, 당신의 싫은 순간을 대신해주는 도플갱어를 소환하는 법!

링크를 누르기만 하면 도플갱어가 소환되어, 당신의 고통을 대신해 줄 것입니다!

링크 : 666.13.666]

나태의 악마를 소환하는 법.

이연우는 배고픔도 잊고, 링크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나태의 악마는 목적이 아니다. 그걸 소환하면 찾아올 사람이 목적이다.

‘이걸 소환하면 악마숭배자가 감지하고 찾아오겠지.’

악마숭배자와 접촉하기 위한 수단.

조금 위험한 방법.

이연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침대 아래로 흘러내린 이불을 밟기도 하고, 비바람에 흔들리는 창문을 열었다 닫기도 하고, 옆에 달린 완강기를 괜히 붙잡기도 하고, 현관 옆의 복층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한다.

‘악마숭배자와 대화가 통할까. 나태의 악마를 소환해도 괜찮을까.’

생각을 해두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려니 걱정이 슬금슬금 기어올랐다.

‘나태의 악마. 소환한 채로 13일이 지나면 내가 지옥으로 이동된다고 했지. 그러면 나태의 악마가 내 자리를 차지하고 나로 산다고. 그러니까 13일 안에 나태의 악마를 죽여야 한다고.’

나태의 악마는 큰 문제가 아니다.

지옥이라 불리는 이차원에 떨어져도 탈출할 기회가 있다. 주사위가 있으니까.

나태의 악마도 마찬가지. 사제 권총을 쥐고 있으면 처리는 어렵지 않다.

이연우가 1층 중앙에서 걸음을 딱 멈췄다. 동그란 플라스틱 테이블 앞에서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하자.”

악마숭배자와 동맹을 맺으면 좋다. 악마자치구의 정보도 얻을 필요가 있다. 살만한 곳이면 악마숭배자가 되는 것도 길이다.

성큼성큼-

에코백에 집어넣은 사제 권총부터 챙긴 다음, 이연우는 심호흡을 반복했다.

“한다, 소환한다.”

살그머니, 엄지손가락을 링크 위로 올리고. 손톱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강하게 누른다.

결과는 즉각적이었다.

촤악-

회색 물줄기가 화면 위로 치솟았다.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 회색 점토는 마네킹 형상을 이루고, 이내 이연우와 똑같은 외형으로 조형되었다.

호다닥-

이연우는 얼른 현관문으로 달려가, 회색 점토를 향해 총을 겨눴다. 머리를 맞출 자신이 없으니, 넉넉한 몸통을 겨누는 총구.

그 사이에 회색 점토 마네킹에 색과 숨결이 깃들었다. 회색이 이연우와 같은 피부색으로 물들고, 후, 크게 숨을 뱉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이연우와 똑같은 외형으로 이연우를 보았다. 잠깐 사이에 총구를 스치는 시선.

그것이 두 손을 만세하듯 들었다.

“저항할 생각 없습니다.”

항복.

하지만 진짜 이연우의 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식은땀이 이마에 맺히더니, 떡진 머리에 스며들었다.

자신과 똑같은 얼굴. 자신과 같은 기억. 자신과 같은 사고방식.

이연우는 지금 와서야 크나큰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았다.

‘저거 나잖아. 내가 얌전히 죽어주겠냐고.’

거꾸로 생각하면 간단했다.

이연우가 나태의 악마라면, 원본을 죽일 것이다. 지구에서 이연우로 살기 위해.

‘죽여야 해. 지금 당장.’

동시에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똑같은 눈매와 똑같은 눈동자, 그리고 똑같은 생각. 그들은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든 상대를 죽인다는 생각.

우르릉-

천둥이 친다. 잠시 후 번개가 번쩍이고, 거세게 몰아치는 강풍에 덜컹이던 창문이 와장창 깨졌다.

빗물이 스며드는 방안, 바람이 소용돌이치는 원룸.

이연우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거는 순간, 가짜 이연우가 말했다.

“지금 날 죽이면 목적 못 이루지 않습니까? 이렇게 바로 죽이면 악마숭배자도 감지 못할 텐데.”

“필요 없어.”

나태의 악마가 말을 거듭할수록 살의가 짙어진다. 나태의 악마도 마찬가지.

“당신은 주사위도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내가 그만한 리스크를 감수할까? 확실한 총을 놔두고?”

“그렇지. 나 같아도 안 하지.”

대화를 들어줄 필요가 없다. 지금 대화는 결국 내가 살고 상대를 죽이기 위한 수단이다. 자신이기에 안다.

이연우가 방아쇠를 당겼다.

탕-!

가짜 이연우는 즉시 몸을 던졌다. 이연우가 사격을 결심하는 순간 이뤄진 행동.

핏-

총탄이 팔뚝을 긁고, 깨진 유리창을 지나쳤다. 빗줄기 사이로 사라진 총탄.

이연우는 서둘러 현관문에서 거실로 진입하려다가 걸음을 멈췄다.

‘어디 갔지? 복층?’

가짜 이연우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대신 들리는 것은 복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서둘러 올라가는 발소리.

복층에 오른 가짜 이연우가 말했다.

“권총 안 쏴봤잖아? 사격연습도 못 했고. 차라리 주사위 굴리지?”

“절대 안 굴리지.”

들어줄 가치가 없다.

주사위는 최후의 수단. 그걸 굴리라는 소리는, 나태의 악마가 주사위 도박이 필요할 정도로 몰렸다는 소리.

‘내가 더 유리해.’

똑같은 신체라도 이연우는 총을 들었으니까.

그렇다고 총만 믿을 수도 없다. 어쨌든 상대는 나 자신이다.

“….”

이연우는 잠깐 생각하다가, 핸드폰을 뻗어 원룸 천장에 달린 형광등의 스위치를 눌렀다.

복층이라 높은 천장. 형광등을 바꾸려면 사다리가 필요한 천장에서 하얀 조명이 켜졌다.

이연우는 살짝 눈동자를 내려 그림자를 보았다. 복층은 현관 위에 있기에, 복층 난간에서 드리워진 그림자가 보인다.

현관 앞으로 삐죽 튀어나온 네모난 그림자.

‘상자? 복층에 쌓아둔?’

이런저런 책이나 버리기에는 아까운 잡동사니, 언젠가는 쓸 일이 있을 생활용품, 다른 계절에 입을 옷을 넣어둔 상자가 분명하다.

‘들어오는 순간 떨어뜨릴 생각이야.’

터벅-

이연우는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냈다. 습기로 찐득한 바닥에 달라붙었다 떨어지는 발바닥 소리.

몸을 숙여 머리를 먼저 들이민다.

툭-

복층 난간에서 가짜 이연우가 아래를 노려보다가, 검은 정수리가 보이기 무섭게 손을 놨다. 가벼운 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상자.

상자의 그림자가 점점 커지고 짙어지는 순간, 이연우는 숙였던 몸을 피며, 재빨리 몸을 뒤로 뺐다.

쿵-!

무거운 상자가 코앞을 스치고, 바닥을 때린다. 한 걸음 거리에 떨어진 상자.

한 번이 아니었다.

쿵-! 쿵-! 쿵-!

6개의 상자가 비뚜름하게 쌓였다. 현관이 상자로 막혔다. 언뜻 희미한 발소리가 계단을 슬그머니 내려오는 것이 들린다.

‘상자를 치울 때 습격할 생각인가?’

이연우는 그 자리에서 핸드폰 화면을 켰다.

‘이건 네가 갇힌 거야.’

전화를 건다. 상대는 통화를 바로 받았다.

- 어, 신입아. 왜?

“반장님. 제가 지금 나태의 악마를 소환했습니다. 지원 바랍니다.”

- 아니, 그걸 왜 소환해? 그리고 지원은 또 왜? 지금 소환한 거면 별일 없을 텐데.

나태의 악마는 소환자에게 위험이 되지 않는다. 소환자와 똑같이 행동하기 때문에, 소환자의 일상을 따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연우는 달랐다.

처음부터 죽일 생각을 하고 소환했으며, 이연우는 죽을 생각이 없었다.

“지금 서로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 뭐? 도대체 뭘 하면…. 신입아, 일단 버텨라. 태풍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려.

“금방 오신다고요? 알겠습니다.”

상대를 압박하기 위한 거짓말로 마무리하고 통화를 끊었다.

이연우는 현관과 상자의 틈새를 보았다. 하얀 조명이 적당히 새어 나오는 틈새.

통화하는 순간부터 복층에서 내려온 가짜 이연우가 은밀하게 거실을 돌아다니며, 이연우의 물건을 챙겼다.

차 키, 지갑, 신분증, 에코백, 완강기 박스.

그리고는 깨진 창문 옆에 있는 완강기 지지대로 향한다. 화재가 일어나면, 로프를 늘어뜨려 지상으로 대피하기 위한 완강기.

이연우가 눈을 크게 떴다.

‘도망칠 생각이야.’

놓치면 위험하다. 저게 13일 동안 소환되어 있으면, 지옥으로 간다.

냅다 상자를 걷어찼다.

쾅, 충격음이 터지고, 상자가 우르르 무너졌다. 가짜 이연우는 완강기 박스의 로프와 갈고리 따위를 쥔 자세로 바로 몸을 돌렸다.

“저기 말로-”

대화는 필요 없다.

탕- 탕- 탕- 탕-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천둥 같은 사격 소리와 자욱한 화약 냄새.

가짜 이연우는 눈을 깜빡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 몸통을 내려봤다. 구멍이 셋. 핏물이 서서히 번진다. 가짜 이연우가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죽기 싫은데.”

촤아아악-

가짜 이연우가 회색 점토가 되어 무너졌다. 회색 점토가 질감을 잃고, 페인트처럼 퍼졌다.

그 위로 빗방울이 내리치다가, 회색 점토는 결국 증발하여 사라졌다.

원룸에 남은 것은 깨진 유리창, 유리 가루, 바닥을 흠뻑 적시는 빗물뿐.

“진짜….”

이연우는 현관 벽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다. 이제 와서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멍청이지.”

자신과 똑닮은 것을 죽였다는 충격이나, 자신처럼 생긴 것이 죽는 모습을 본 충격 같은 건 없다.

하지만 까딱 잘못하면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생각에, 그것도 자기가 초래한 위험이라는 생각에 정신이 아찔했다.

찰싹찰싹-

이연우는 자기 뺨을 몇 대 쳤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뒷정리를 시작했다.

“다시는 이런 위험한 짓은 안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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