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뒤처리는 귀찮았지만 어떻게든 끝났다.
태풍 속에서도 총기 소리를 신고 받고 찾아온 경찰과, 성수를 받아 오느라 조금 늦은 반장이 동시에 도착해, 조사를 피했다.
태풍이 지나간 뒤 깨진 유리창을 새로 달고, 비에 흠뻑 젖은 집 안을 청소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고.
그렇게 태풍이 지난 후.
이상조사반의 사무실.
이연우는 반장의 앞에 서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반장의 눈매가 매섭다.
“도대체 그걸 왜 소환해?”
“그게, 혹시 조사 업무에 도플갱어를 써먹을 수 있을까, 시험을 해보려고 했는데요.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적당히 둘러대는 말. 악마숭배자와 접촉하기 위해 소환했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다행히 반장은 의심하지 않았다. 한숨을 푹 쉬며 의자에 등을 기댄다. 한숨 같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신입아, 신입아.”
그 자신이 이전에 부조리의 악마를 상대하기 위해 소환한 일도 있고, 이연우가 오죽 사건사고를 많이 겪으면 나태의 악마라도 쓰려고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반장이 데스크를 툭툭 두들기며, 이연우를 올려봤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조사원이 무슨 장비를 지원 받는 것도 아니고. 자기 힘으로 장비 챙기는 느낌으로 그럴 수 있지.”
사정을 봐주려는 듯한 말. 이연우의 어색한 미소가 자연스럽게 변했다.
하지만 반장은 갑자기 데스크를 쾅 내리쳤다. 얼마나 세게 쳤는지 모니터가 흔들렸다.
“그래도 어! 이상개체를 함부로 소환하면 안 되지! 하다못해 우리가 보는 앞에서 했어야지! 그리고 골드버그 클럽 총은 또 어디서 났어?”
“아. 그거 훔친 건데요.”
“뭐?”
화를 내던 반장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근처에서 구경하고 있던 유지유의 표정도 같았다. 귀를 의심하는 표정.
이연우는 재빨리 에코백에 손을 넣어 사제 권총을 꺼냈다.
거무튀튀한 사제 권총이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낸다. 반장과 유지유가 어떻게 반응하기 전에, 이연우가 반장의 데스크에 총을 놓았다.
그리고는 유지유에게도 총 하나를 건넸다.
“꽤 많이 훔쳤거든요. 반장님과 유지유 선배님도 하나씩 받으십쇼. 공구나 나이프보다는 권총이 좋지 않습니까.”
“진짜 주는 거예요?”
“잠깐. 지유야, 만지지 말아봐.”
눈을 반짝이며 권총을 잡으려던 유지유가 멈췄다. 그녀는 반장을 보았다.
반장은 심각한 눈으로, 악마 소환을 추궁할 때보다 진지한 눈으로 총을 보았다.
골드버그 클럽의 총을 이렇게 많이?
“…너, 골드버그 클럽에 들어갔냐? 이건 뇌물이고?”
반장이 무거운 목소리로 묻는다. 그도 골드버그 클럽을 잘 안다. 그들의 방식도. 이게 총처럼 보이지만, 금괴 같은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연우는 두 손을 열심히 내저었다.
“저 심문 받을 때 일, 아시지 않습니까. 이거 진짜 훔친 겁니다.”
“어떻게? 한두 자루도 아닌데.”
여전한 의심.
이연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시간이 정지한 동안 있었던 일을 보고한 문서는 반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상부로 올라갔다. 올라간 문서는 반장도 못 보게 보안이 걸렸고.
“이게 보안 걸린 문제인데…. 저번에 강의 들으러 가지 않았습니까?”
“이상시간학 강의?”
“그때 왜인지 모르겠는데, 시간이 멈췄습니다. 주사위가 저항해서 저는 잘 움직였고요.”
“그러면 그때?”
반장이 이연우를 유심히 살피면서 물었다. 이연우는 씩 웃었다.
“골드버그 클럽의 총기제작장이 근처에 있더라고요. 그대로 들어가서 털어왔죠.”
“허. 그놈들이 도둑질당하는 날이 다 오네.”
짧게 감탄한 반장이, 냅다 손을 뻗어 권총을 덥썩 잡았다.
유지유가 슬그머니 뒤로 의자를 빼는 순간, 반장은 익숙하게 총기를 분해했다. 손이 휙휙 움직이는가 싶더니, 탄창이 빠지고, 총기 부품이 후두둑 떨어졌다.
이연우가 살짝 놀라서 보고 있자, 반장이 중얼거렸다.
“진짜 신품이잖아.”
흠집 없는 총기 부품이 반짝반짝 빛난다.
“써보셨습니까?”
“몇 번 써봤지. 일하는 중에 놈들 총 뺏어서 쓴 적도 있고. 몰래 챙겨온 것도 있고.”
“예?”
반장이 한 손을 내려 서랍을 드르륵 열었다. 서랍을 뒤적거리는 손이 곧 올라왔다. 손에는 먼지 쌓인 권총이 들려 있었다.
똑같은 모델.
“신입아, 나도 한 자루 있다. 총알은 다 쓰고 없는데. 어쨌든 잘 쓰마. 시말서는…. 됐다. 우리만 알고 있으면 되지.”
이연우는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에코백에서 총알을 잔뜩 넣어둔 검은 비닐봉지를 꺼내, 슬그머니 반장의 데스크에 올려두었다. 잘그락거리는 소리.
의심을 거둔 반장이 흐뭇하게 웃었다.
“총알도 훔쳤어? 잘했다. 넉넉하네.”
“그, 반장님. 혹시 이 권총 관리하는 법이랑 사격법 배울 수 있을까요?”
“아, 당연하지. 지유도 이리 와. 이왕 얻은 총, 쓰는 법 정도는 알아야지.”
그렇게 그들은 반장의 지도 아래, 총기를 관리하는 법과 권총을 사용하는 요령을 배웠다.
“권총 꼭 쏠 필요는 없어. 보여주는 것만으로 상대를 위협할 수 있다.”
“이런 연습만으로는 부족해. 사격장 가서 다른 권총으로 연습해. 그게 제일 효과 좋다.”
“쏠 거면, 확실하게 해. 저격 같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은 하지도 말고. 적당한 거리에서 총탄을 쏟아부어. 그중 한 발만 맞아도 충분해.”
“상대도 총 들었으면.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도 특전대원은 아니지 않냐.”
그렇게 배우길 한참.
띠링-!
반장의 컴퓨터에서 경쾌한 알람 소리가 났다. 문서가 도착했을 때 들리는 소리.
진지하게 말하던 반장이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보았다. 살짝 찌푸려진 눈살.
“이 새끼들은 또 뭘 하려고.”
이연우와 유지유는 총기를 매만지며, 반장의 말을 기다렸다.
딸깍딸깍-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하고, 드르륵, 휠이 몇 번 오간다. 반장은 이상한 눈으로 모니터를 들여보다가, 이연우를 올려봤다.
“신입아. 지원 요청 들어왔다.”
“저 말입니까?”
“그래, 너. 딱 너만 콕 집어 보내달라는데.”
문득 불길한 느낌이 든다.
반장이 이리 와서 보라고 손짓하자, 이연우는 머뭇머뭇 반장의 옆으로 가, 화면을 보았다.
[조사원 지원 요청]
- 한국민담연구소 연구원 서편호
- 저희 연구활동에 조사원 이연우가 꼭 필요합니다. 제발 지원 부탁드립니다. 이 연구에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 장소는 머리골의 사람없는산골펜션입니다. 반드시 와주세요.
“이놈은 뭔, 지원요청서를 이렇게 성의 없이 썼어. 신입아, 무시해도 된다.”
“…아닙니다. 가겠습니다.”
“이거 강제 아니야.”
하지만 이연우는 인류의 미래라는 단어만 보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기후와 관련된 연구 같아. 조사할 가치는 있어.’
그리고, 이 연구원은 인류관리회사나 인류학살회사와는 다른 느낌이 든다. 다른 파벌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계수리공으로서 접촉하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그래, 네가 가겠다면.”
반장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지원 요청에 답신을 보냈다.
“연우 씨, 잘 갔다 와요. 음, 준비 단단히 하고요. 또 뭐 이상한 사고 터질 거 같은데. 아, 총 있으니까 괜찮나?”
“…그렇겠죠.”
그렇게 이연우의 출장이 결정됐다.
***
부웅-
이연우의 중고 경차가 구불거리는 산길을 달렸다. 목적지는, 머리골의 사람없는산골펜션. 그의 지원을 원한 서편호 연구원이 있는 곳.
이연우는 내비게이션 어플을 힐긋거리며, 그가 사전에 조사한 내용을 떠올렸다.
‘머리골. 사람없는산골펜션.’
머리골에는 사람 머리를 조각한 큼직한 바위가 오래전부터 있어, 머리골이 되었다고 한다.
사람없는산골펜션은 한적한 산골에 있어, 고요함과 사람 없는 편안함을 즐기라는 의미에서 그런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그쪽에 전해지는 민담 같은 건 못 찾았는데. 한국민담연구소가 뭘 연구하는지 모르겠어.’
고민하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네비게이션이 알람 소리를 내며 도착을 알렸다.
-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이연우는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핸드폰과 에코백을 챙겨 나왔다. 자갈로 덮인 주차장 위에 서서 주변을 쭉 둘러본다.
“좋은데?”
인가라고는 하나도 없는 고요한 산골에 위치한, 자그마한 펜션.
시원하고 맑은 공기가 가득하고, 도시의 시끄러운 기척이라고는 하나도 들리지 않아 적막하다. 나무의 푸르름과 맑고 높은 하늘.
일하러가 아니라 놀러 왔으면 좋았을 느낌.
“나중에 조사반끼리 놀러 오자고 할까.”
이연우는 잠시 풍경을 감상하다가, 펜션으로 다가갔다.
펜션 근처에는 머리가 듬성듬성한 아저씨가 빗자루를 쥐고 배수로를 보다가, 발걸음 소리를 듣고 이연우를 쳐다봤다.
“아이고.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지금 펜션은 다 차 있는데요.”
“안에 있는 사람이랑 일행입니다.”
“아! 미리 이야기 들었습니다. 들어가시죠.”
이연우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펜션 주인을 지나쳤다.
펜션 주인은 이연우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빗자루로 길가를 쓸기 시작했다. 태풍에 휩쓸려 날아온 나뭇잎과 나뭇가지가 따위가 쓸려 내려간다.
싸악- 싸악-
빗자루질하는 박자에 맞춰 펜션 주인이 중얼거렸다.
“머리가 하나, 머리가 둘, 머리가 셋, 머리가 넷…. 머리가 더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