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53)화 (53/194)

펜션은 2층 건물이었는데, 1층에는 주인이 머무는 방, 간단한 편의점, 창고 따위가 있었고, 2층에 4개의 방이 있었다.

이연우는 곧장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걸음이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서편호 연구원의 방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졸려….”

누가 봐도 대학원생처럼 보이는 남자.

초췌한 안색을 한 남자가 플라스크와 실린더 따위의 실험도구를 한아름 끌어안고, 흐느적흐느적 어느 방으로 들어간다.

대충 열리고 닫히는 문.

‘저기인가.’

이연우는 남자가 들어간 방 앞에서 서서, 문을 쿵쿵 두드렸다.

“계십니까?”

- 누구세요?

피곤한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돌아온다. 의아함이 섞인 목소리.

이연우는 답했다.

“서편호 씨 안에 있나요? 그분이 부르셔서 왔는데요. 제가 방을 잘못 찾았나요?”

- 아뇨, 제대로 찾아오셨는데…. 잠시만요.

언뜻 사람이 바쁘게 움직이는 기척이 문 너머에서 느껴졌다.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소리와, 대학원생 같은 남자를 잔소리하는 중년의 목소리.

- 내가 사람 하나 온다고 말했을 텐데. 이렇게 기억을 못 하면 연구는 어떻게 하나?

- 아, 맞다…. 깜빡깜빡하네요….

목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들렸다. 문 앞까지 다가온 인기척. 직후, 문이 열렸다.

중년과 노년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 남자가 활짝 웃으며, 이연우를 반겼다.

“이연우 씨?”

“예. 지원 요청하셔서 왔습니다. 서편호 연구원님 맞습니까?”

“예, 예. 맞습니다. 정말로 와주셨군요.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연구에 이연우 씨가 꼭 필요했습니다.”

지나친 환영.

이연우는 내심 경계심을 품으며, 다시 한번 서편호 연구원을 위아래로 살폈다.

흰머리가 몇 가닥씩 나기 시작한 머리. 뿔테 안경과 이지적인 얼굴.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은 몸.

‘일단 겉보기에는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데.’

그가 손을 뻗어 방 안을 가리켰다.

“여기 이렇게 서 있지 마시고, 안으로 들어오시죠.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연우가 펜션의 방으로 들어간다. 서편호는 앞서 걸으며 사람 좋게 웃었다.

“여기 펜션에 있는 방, 저희가 다 장기숙박으로 계약했거든요. 여기는 저희가 임시 실험실로 쓰는 방입니다.”

“본격적이네요.”

이연우는 빠르게 눈을 움직이며, 주변환경부터 살폈다.

현관 너머에는 널찍한 거실이 펼쳐져 있었는데, 이런저런 책상과 화학실험실 같은 복잡한 도구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컴퓨터도 세 대나 설치되어 있다.

대학원생 같은 남자는 컴퓨터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렸고, 비슷한 느낌인 대학원생 여자는 실험도구 앞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

“저 대학원생, 아니, 보조연구원은 최현상이고, 저쪽 여자 보조연구원은 공윤아입니다. 제 연구를 돕는 착한 친구들이죠.”

서편호가 그들을 언급해도, 그들은 구부정한 자세로 자기 할 일에 집중하고 있다.

서편호는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듯, 이연우를 안쪽 방으로 안내했다.

화장실 옆으로 붙어 있는 작은 방 하나.

“여기는 제가 자는 방인데. 하하. 손님을 대접할 방을 준비를 안해서.”

“괜찮습니다.”

거실보다 작은 방에는 침대가 하나 놓여있고, 동그란 탁자가 창가에 가깝게 있다.

서편호가 탁자 앞 의자에 앉으면서 건너편 의자를 손짓했다.

“앉으세요. 마실 것은, 따로 없네요.”

“필요 없습니다. 목이 안 말라서.”

“아, 좋죠. 좋아요.”

“그런 것보다는 저를 왜 불렀는지부터 설명해주시죠.”

이연우가 의자를 끌어 뺀 후 앉자, 서편호는 몸을 돌려, 침대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문서 몇 장을 찾아 탁자 위에 놓았다.

“이연우 씨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주사위는 둘째치고, 이상異常이나 사고를 부른다고요. 개인적으로는 미신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거랑 상관이 있습니까?”

“그 미신이라도 믿고 싶은 마음이라. 여기 문서 보시죠.”

서편호가 종이 한 장을 쭉 밀었다. 이연우가 눈동자만 내려 훑어보니, 무슨 고문서 같은 것을 조사한 자료다.

[문헌에서 나타나는 머리골의 이상현상]

- …이러한 기록을 보아, 머리골에는 불규칙적으로 ‘머리가 빠지는 비’라는 이상異常이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 짧으면 몇 년, 길면 몇백 년의 주기로 머리가 빠지는 비가 내린다고 추정되는데. 이게 언제 내릴지 몰라서.”

이연우가 와주면 비가 내릴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이연우를 불렀다는 것이다.

얼결에 토템이 되어버린 이연우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머리가 빠지는 게 전부입니까? 그러면 인류의 미래 어쩌고 한 말은 뭡니까?”

그 말만 보고서 찾아왔는데, 머리가 빠지는 비라니. 그건 잘해야 강화된 산성비 아닌가.

굳이 찾아온 보람이 없다.

서편호는 능청스럽게 머리를 쓸어내렸다.

“탈모는 인류의 적 아닙니까. 이 이상현상을 잘 분석하면 탈모를 물리칠 수 있지 않을까요?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죠.”

이연우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의욕이 전부 사라졌다. 적당히 펜션에서 쉬다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저는 언제까지 있으면 되겠습니까? 급한 일이 아니면 빨리 조사원으로 복귀하고 싶은데요.”

“어디 보자. 곧 추석이죠. 추석 연휴가 끝날 때까지만 함께해주시죠.”

그 말에 이연우는 확 인상을 썼다.

추석 연휴 내내 이곳에 있어 달라니. 취업한 후 첫 명절이라, 반드시 본가로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하지만 이어지는 서편호의 말에 이연우의 얼굴이 사르르 풀렸다.

“출장비는 넉넉하게 드릴 겁니다. 일단 천만원을 생각하고 있는데. 부족할까요?”

“아닙니다. 저는 뭘 하면 될까요? 자리만 지키면 될까요?”

명절연휴, 기껏해야 4일.

그동안 펜션에서 시간만 보내면 천만원? 이건 못 참는다.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못 가는 대신 부모님께 용돈이나 넉넉하게 드리면 충분하지.’

이연우가 싱글벙글 웃자, 서편호도 하하 웃었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예, 이곳에 함께 있어 주면 충분합니다.”

“알겠습니다. 혹시 시킬 일 있으면 불러주십시오.”

“일이라. 사람이 부족하면, 부탁하겠습니다. 그럼 짐 풀고 쉬시면 됩니다.”

이연우는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서다가, 몸을 돌렸다. 이연우를 주시하던 서편호와 시선이 마주친다.

서편호가 고개를 기울였다.

“왜 그러시죠? 출장비가 부족한가요?”

“아뇨. 저는 어떤 방을 쓰면 되나 해서.”

“빈방 중 아무거나 쓰면 됩니다. 방 하나는 보조연구원들이 쓰고 있으니까, 그 방만 아니면 됩니다.”

네 개의 방 중 하나는 실험실 겸 서편호의 숙소. 방 하나는 보조연구원의 방.

남은 두 개의 방 중 하나를 고르면 된다.

이연우가 경쾌한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서편호는 이연우가 닫고 나간 방문을 보며,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쉽군. 좋은 결과를 얻겠어.”

***

하룻밤이 지났다.

늦은 아침. 이연우는 느지막이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펜션 앞마당에 나왔다.

흐린 하늘 아래 푸른 잔디가 깔린 앞마당. 나무 벤치에 기대 앉은 이연우는 핸드폰을 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 이 시간에 웬일로 전화니.

“이번 추석에 못 내려가서. 가려고 했는데, 회사에서 일해야 해.”

수화기 건너편에서 엄마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 뭔 놈의 회사가 명절에도 일을 시킨다냐.

“대신 돈 엄청 받아.”

- 어디 돈 벌기가 쉬운 일이니. 너 월급 받는 것도 나는 이해가 안 된다. 위험한 일 아니면 그렇게 받을 리가 없어.

날카로운 눈치. 이연우는 식은땀을 살짝 흘렸다.

“아, 조금 위험하긴 한데. 그렇게까지 위험하지는 않아. 어, 어. 일해야 해. 끊을게.”

이연우는 일부러 부산스러운 소리를 냈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큰 소리로 발을 구르고, 나무 벤치를 툭툭 친다.

그리고는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역시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하기는 힘들다.

한숨을 돌린 이연우가 문득 사람 하나를 보았다.

“아, 피곤해….”

연구보조원 최현상.

새빨갛게 충혈된 눈을 깜빡이며, 최현상이 걸어왔다. 아침부터 무슨 일을 했는지, 옷자락에 흙먼지와 풀떼기가 잔뜩 묻어 있다.

그리고 질질 끌다시피 들고 가는 삽과 큼직한 쌀 포대기.

이연우가 얼른 다가갔다.

“무거워 보이는데, 들어드릴까요?”

“아. 괜찮아요. 보기엔 이래도 가벼워서.”

삽을 늘어뜨린 최현상이 잔뜩 부푼 쌀 포대기를 한 손으로 가볍게 흔들었다. 언뜻 보니, 축축하게 젖은 흙더미가 잔뜩 들었다.

‘엄청 무거워 보이는데.’

이연우는 빼앗듯이 흙 포대를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가, 크게 휘청였다. 이마에 핏줄이 돋고, 이가 꽉 다물렸다.

“윽!”

“주세요.”

최현상이 한 손으로 흙 포대를 도로 가져가고서야, 이연우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힘이 엄청 쎄시네요.”

“아닌데…. 가벼운데…. 그쪽 힘이 약한 거 아닌가요?”

아니다. 쌀 포대에 써진 40KG. 심지어 쌀 대신 흙으로 가득 찼다.

이연우는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눈동자가 빠르게 최현상의 위아래를 훑는다.

‘근육이 보이지는 않아. 뭐지? 타고났나?’

이연우의 시선은 마지막으로 흙 포대에서 멈췄다.

“…이 흙은 뭔가요? 연구에 쓰나요?”

“아, 맞다. 빨리 옮겨야 하는데. 흙은 연구재료 맞아요. 머리 빠지는 비의 성분이 깊은 흙에 남아서. 저는 이만 가볼게요. 늦으면 교수님한테 혼나요.”

그렇게 중얼거리며, 최현상은 흔들흔들 펜션으로 들어갔다.

이연우도 슬슬 아침 겸 점심을 챙겨 먹으러 펜션으로 돌아가다가 걸음을 멈췄다.

도로 끝, 펜션 주인과 낯선 사람들이 보인다.

“죄송합니다. 제가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아서, 실수했나 봅니다.”

연신 듬성듬성한 머리를 굽신거리는 펜션 주인. 그 뒤로 짜증 가득한 얼굴로 거칠게 쫓아오는 세 명의 남녀.

“저기요, 그런 실수를 하면 어떻게 해요. 돈이야 환불받는다 쳐도, 시간 들여서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이미 방이 가득 차 있다니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이고, 그거 잘못 눌렀다고 빈방으로 올라갈 줄은. 일단 1층에 제가 쓰는 방이라도-”

그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이연우는 살며시 눈을 찌푸렸다.

‘펜션 주인이 뭘 실수해서 손님을 받았나 본데. …느낌이 좋지 않아.’

언뜻 찾아봤을 때, 이 펜션은 십 년은 족히 유지되었었다. 이런 기본적인 실수를 할까?

그때였다.

톡!

빗방울 하나가 이연우의 볼을 때리고, 흘러내렸다.

톡!

또 하나의 빗방울이 펜션 주인의 듬성듬성한 정수리를 내리쳤다.

둘의 고개가 수직으로 꺾이며 하늘을 보았다. 먹구름이 몰려온 하늘.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빗방울이 흐릿한 선을 그으며 지상으로 낙하한다.

펜션 주인의 얼굴이 단단하게 굳었다.

“…이렇게 빨리? 안 돼.”

그는 불만으로 가득한 손님들을 뒤로하고 재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바람처럼 내달리는 걸음.

이연우도 망설이지 않았다. 냅다 몸을 돌려 펜션으로 달려간다.

‘뭔지 모르겠는데, 불길해. 머리가 빠지는 비인가?’

탈모는 없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두 사람이 순식간에 펜션 안으로 사라졌다.

“뭐야, 저 사람들.”

“무슨 급한 일 있나-”

남겨진 손님 셋은 황당하게 멈춰 있었는데, 돌연 짐이 가벼운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가 펜션 주인을 쫓아 허겁지겁 달렸다.

달리는 남자의 표정은 뭔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눈빛이 번뜩였다. 그는 여자의 손목을 강하게 잡고 억지로 끌어당겼다.

“아파! 왜 그래!”

“빨리 달려!”

그렇게 사람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짐을 잔뜩 든 남자 하나만 남아 있다.

툭, 툭, 투두둑-

쏴아아아-

소나기처럼 쏟아지기 시작한 비.

“아, 비. 다 젖겠네. 짐이나 나눠 들지.”

큼직한 쇼핑백 두 개를 든 그는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빗물에 흠뻑 젖으면서. 거북목처럼 머리를 앞으로 내밀면서.

우드득- 찌직-

목이 늘어진다. 뼈가 뒤틀리는 소리를 내며, 가죽이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누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목이 늘어나다가, 끝내 뚝 머리가 떨어졌다.

데구르르-

이름 모를 남자의 머리가 축축하게 젖은 땅을 굴렀다. 빗물을 머금은 잔디, 질척이는 흙, 빗물이 고인 웅덩이를 구르다 멈춘 머리.

철퍽-

부릅뜬 두 눈 옆으로, 머리가 빠진 남자가 발을 디뎠다.

머리 없는 인간이 펜션으로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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