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54)화 (54/194)

둘은 비가 쏟아지기 전에 실내로 들어왔다.

펜션 현관에서 멈춰 선 이연우는 숨을 몰아쉬었다. 빠르게 오르내리는 가슴과 적당하게 긴장한 전신의 근육.

하지만 그 와중에도 펜션 주인을 주시하는 눈. 호흡을 조절하며 슬금슬금 물러났다.

‘행동이 수상해. 평범한 사람이 아니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선점하는 발, 여차하면 주먹을 휘두르기 위해 꽉 쥐어진 손.

펜션 주인 역시 가쁜 숨을 들이켰다. 그러다가 문득, 이연우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으, 머리가 얼마 안 남아서. 산성비 이런 거, 예민하거든요.”

“…안 물어봤습니다.”

듬성듬성한 머리를 쓰다듬는 손. 굳이 할 필요 없는데도 어리숙한 변명.

이연우는 펜션 주인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랐다.

‘무장이 우선이야. 총부터 챙기자.’

상황이 불확실하고 알 수 없는 위험이 느껴질 때는 총부터 들어야 하는 법.

이연우는 자기 방으로 달려가, 에코백에 넣어둔 권총부터 확인했다. 매일 같이 닦아내는 총의 상태는 좋았다.

철컥-

‘관리 상태 좋고. 탄창 꽉 채웠고.’

총기의 묵직함만큼 마음이 든든하다.

다른 공구도 한 번씩 점검하고, 에코백을 어깨에 걸친 후 조용한 복도를 지나쳐, 이연우는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

1층에는 어느새 모든 사람이 내려와 있었는데, 모두 현관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비가 쏟아지기 전에 들어온 남녀와, 수상한 펜션 주인과, 연구팀 전원이 바짝 긴장한 자세로 현관문 너머의 무언가를 보고 있다.

이연우도 현관문을 본 후, 언제든 총을 꺼낼 수 있게끔 에코백에 손을 넣어 총을 쥐었다.

‘저게 뭐지.’

반투명한 유리창으로 이루어진 현관문에 사람 그림자가 드리웠다. 머리 없는 사람의 그림자가 손을 들어, 꾸욱 유리문을 짓누른다.

쩌적-

두 손바닥을 중심으로 유리문이 갈라지더니, 끝내 와장창 깨져나가며 유리 파편과 빗물, 두 팔이 펜션 안으로 들어왔다.

머리 없는 사람이 빗물과 유리 파편을 뒤집어 쓴채로 펜션으로 느릿하게 걸어들어왔다. 철퍽-, 빗물을 발자국처럼 남기며, 점점 사람들에게 가까워지는 머리 없는 남자.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숨을 들이켜며 뒤로 물러날 때. 그러나 서편호와 남자와 펜션 주인이 눈빛을 번뜩일 때.

탕-!

총성이 울렸다.

이연우였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 이연우를 보아도, 이연우는 냉정하게 머리 없는 남자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며,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말 그대로 머리가 빠지는 비? 머리가 빠진 사람은 저런 좀비 같은 걸로 변하고?’

탕-! 탕-!

총알을 아끼지 않고 쏟아붓는다. 머리 없는 남자는 짧은 순간 쏟아진 총격을 이기지 못하고 춤추듯 비틀거렸지만, 조금 밀려날 뿐 쓰러지지 않았다. 구멍이 숭숭 난 몸으로도 멀쩡하게 움직였다.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

이연우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식은땀에 젖은 검지손가락이 연달아 방아쇠를 당겨도 총탄이 나가지 않는다.

철컥- 철컥-

탄창 하나를 전부 사용했다. 머리 없는 남자는 죽지 않았다.

‘…이걸 안 죽어?’

이연우는 자연스럽게 뒷걸음질 치며, 주변 사람을 보았다.

“뭐 하십니까? 저거 제압 안 합니까?”

“아니, 그거, 총-”

“어, 어. 저거 온다. 빨리 제압하세요!”

이연우가 소리를 지르자, 사람들이 번쩍 정신을 차렸다.

“최현상! 제압해!”

“예!”

서편호가 최현상에게 명령하자, 최현상이 흙 묻은 삽을 번쩍 들어 올렸다. 수직으로 세워진 삽날이 칼날처럼 공기를 가르고 떨어졌다.

쐐애애액-! 푸욱-!

어깨를 가르고 상반신에 절반쯤 박힌 삽.

“이야아!”

이어서 펜션 주인이 길쭉한 빗자루로 머리 없는 남자의 발목을 강하게 후려쳤다. 마침 걸음을 내딛던 순간이라, 머리 없는 남자는 그대로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서편호가 히죽 웃었다.

“최현상! 공윤아! 죽이지 말고 구속해! 신선한 연구재료다!”

“어…. 뭐로 구속해요?”

“로프나 노끈 같은 거 없나?”

“그런 건 안 챙겨왔는데요.”

그때 펜션 주인이 후다닥 달려, 창고에서 붉은 노끈을 들고 왔다. 그리고는 최현상에게 건넸다.

“여깄습니다!”

최현상은 피곤한 얼굴로 노끈을 길게 풀어, 노끈의 양 끝을 두 손으로 쥐었다. 그는 머리 없는 남자를 잠시 위아래로 훑어봤다.

일어나려고 버둥거리는 머리 없는 남자.

펜션 주인이 빗자루로 관절을 누르고, 공윤아가 신발로 명치를 짓밟았다.

“다리부터 묶을게요.”

붉은 노끈이 발목부터 종아리, 허벅지를 꽉 휘감았다. 이어 손목과 몸뚱어리, 팔과 어깨까지 꽁꽁 묶는다.

한편 이연우는 뒤로 물러나 탄창에 총알을 가득 채운 다음, 사람들을 하나하나 둘러봤다.

‘펜션 주인. 수상해. 서편호도 수상하지. 나한테 정보를 숨겼어. 저 남자도 이상하고.’

머리 없는 괴물이 나타났는데도, 남자는 흥분한 기색으로 머리 없는 남자를 촬영하고 있었다. 혼자 중얼거리는 목소리.

“역시. 이런 게 진짜 있었어. 우리가 모르는 세상이. 고문서만 뒤적거리기를 잘했어.”

이연우는 잠깐 고민했다.

‘나도 찍혔나? 내 기억소거제 먹이고 핸드폰 훔칠까?’

비밀유지와 상관없이 얼굴이 노출되기 싫어서 떠오른 생각.

하지만 아무래도 지금 당장 급한 일은 아니었다. 위험한 이상현상과 수상한 사람들로부터 도망치는 게 우선이다.

이연우는 에코백에서 접이식 우산을 꺼냈다.

‘차에 탈 때까지만 비를 피하면 될 거야. 한두 방울 맞는 건 괜찮았잖아.’

이연우는 펜션을 떠나기로 했다. 난장판이 된 현장을 지나쳐, 현관문으로 다가간다.

서편호는 눈을 번쩍거리며 머리 없는 남자를 보다가, 이연우를 보고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연우 씨? 어디 갑니까?”

“출장비 필요 없습니다. 이만 가겠습니다.”

“바깥은 위험할 텐데요?”

가지 말라고 말리는 꼴을 보니까,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더 강해진다.

이연우는 서편호를 노려보았다.

“제 역할은 끝나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원한대로 비 내렸습니다. 이제 제가 남을 이유가 없을 텐데요. 그리고 정보까지 숨겼고.”

“하지만 이대로 떠나면-”

“됐습니다.”

이연우는 몸을 돌려 성큼성큼 현관문을 나섰다. 운동화가 빗물과 유리 파편을 짓밟는다.

이연우가 현관문 너머로 사라졌다. 비가 쏟아지는 바깥으로.

서편호는 최현상을 보며 입술을 달싹이다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는 문득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슬며시 웃다가, 표정을 굳히기를 반복했다.

“글쎄. 탈출하기가 쉬울까. …아니, 저 인간은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빌어먹을.”

***

비가 쏟아지는 바깥.

이연우는 우산을 바짝 내려, 비로부터 머리를 보호했다. 우산의 살이 머리를 스칠 정도로 내렸기에, 간혹 바람이 몰아쳐도 머리만은 빗물에 맞지 않는다.

이연우는 주차장에서 걸음을 멈췄다. 우산 아래로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누가 이런 짓을….”

네 대의 자동차.

이연우의 경차와, 연구팀의 SUV, 펜션 주인과 손님의 승용차가 각각 하나.

남녀 세 명이 타고왔을 승용차를 제외하면, 모두 타이어가 터져 있다. 못이 박혀 있고, 구멍이 뚫려 있어, 타이어가 흐물흐물 늘어졌다.

딱 봐도 운전이 불가능하다. 이연우가 이를 갈았다.

‘누가 했지? 펜션 주인? 서편호? 아니지, 범인은 중요하지 않아.’

탈출이 우선이다.

이연우는 잠깐 눈을 감고, 주사위를 불렀다. 자기 자동차를 수리하기 위해.

“혹시 이거 수리될까?”

오랜만에 부름 받은 주사위가 신나서 펄쩍 뛰었다. 주사위는 데구르르 구르다가, 결과를 내보였다.

실패!

펑-!

작은 폭발음이 들렸다. 이연우는 눈을 의심했다. 멀쩡했던 중고 경차의 엔진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굳이 본넷을 열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자동차가 망가졌다고.

“후우.”

이연우가 한숨을 쉬었다. 싼값에 막 타려고 산 차였지만, 주사위 때문에 망가질 줄은.

‘상관없어. 꼭 내 차만 탈 필요는 없잖아.’

이연우는 걸음을 옮겨 유일하게 멀쩡한 승용차를 봤다. 그 번호를 외웠다. 8562.

그리고는 곧장 펜션으로 돌아왔다.

펜션 1층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이연우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저마다 무기를 쥐다가, 이연우의 머리가 멀쩡한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삽이며 빗자루를 내려놨다.

서편호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역시 바깥은 위험-”

철컥-

사제 권총이 거무튀튀한 빛을 뽐내며 사람들을 겨눈다. 서편호의 얼굴이 굳었다.

“8562. 누구 차입니까?”

“그, 제 차인데요.”

남자가 머리 없는 남자를 촬영하던 핸드폰을 슬며시 아래로 내렸다. 이연우는 그를 향해 총을 겨눴다.

“차 키. 이리 주세요.”

“예? 아니, 그거 할부 한참 남은 새 차-”

“총 맞을래요, 차 키 줄래요?”

“드리겠습니다.”

남자는 얼른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 이연우에게 공손히 바쳤다. 이연우는 그의 머리 앞에서 총을 까딱였다.

“에코백에 넣으세요. 헛짓하면 바로 총 쏩니다. 탄창 갈아꼈으니, 총알도 넉넉합니다.”

한 손에는 우산, 한 손에는 총을 들어서 차 키를 받을 손이 없다.

남자는 손을 잘게 떨며, 에코백에 차 키를 밀어 넣었다. 가까운 거리라 총구가 머리통에 닿았다. 그 차갑고 무거운 감촉.

“예, 넣었습니다.”

남자가 공손히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뒷걸음질 친 끝에, 이연우는 뒤로 한 발 물러섰다.

그는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며 한마디를 남겼다.

“주차장 가보니까, 이 사람 차 빼고는 타이어 다 터져있었습니다. 못을 박았더군요. 누가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알아서 판단하세요.”

사람들의 표정이 가지각색으로 변한다.

펜션 주인이 움찔 입을 떨고, 서편호는 눈을 찡그리고, 남자는 이제야 위험에 빠졌음을 깨닫고 하얗게 질렸다.

어쨌든 이연우가 알 바는 아니다.

철벅-

이연우는 조금씩 뒷걸음질 치다가 주차장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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