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남자의 승용차에 올라탄다. 물론 비에 맞지 않게끔 조심하며, 조수석까지 머리를 기울인 뒤에야 우선을 접었다.
빗물에 젖은 우산을 염산 다루듯 조심스러운 손길로 조수석 바닥에 둔 뒤, 이연우는 곧바로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았다.
승용차가 급가속하며 주차장을 벗어난다.
부우웅-
‘일단 비가 내리지 않는 곳까지만 가자.’
이연우는 흐릿한 전면 도로를 보았다. 회색빛으로 물든 세상, 쏟아지는 비. 와이퍼가 바쁘게 움직이며 빗물을 쓸어내고, 밀려난 빗물은 바람에 밀려 데구르르 굴렀다.
길을 찾을 생각도 없었다. 오직 직진. 머리가 빠지는 비의 영역만 벗어난다.
촤아악-
빗물이 고인 웅덩이를 지나칠 때면, 빗물을 파도처럼 뿌리며 달리는 자동차.
산골의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몇 분 정도 달렸을까.
“어.”
돌연 산짐승 같은 것이 자동차 앞으로 뛰어든다. 이연우는 이를 꽉 물며, 되려 엑셀을 강하게 밟았다. 짐승이 죽든 말든, 차가 망가지든 말든, 여길 벗어나는 게-
쿵- 쾅- 쾅- 쾅-!
끼이이익-!
브레이크를 밟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짐승이 한두 마리가 아니다.
산골 도로에 멈춘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깨져 버린 자동차 안에서, 이연우는 떨리는 눈으로 백미러를 보았다.
그가 지나쳐 온 길. 그가 치고 지나온 짐승 무리.
끼긱- 끽-
멧돼지, 고라니, 들개, 들고양이 따위가 비에 흠뻑 젖은 털을 자랑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통이 움푹 파이고, 다리가 부러진 상태로, 머리가 없는 몸으로.
머리 없는 짐승이 부러진 다리를 질질 끌며 자동차로 다가온다.
이연우는 깨달았다.
‘머리가 빠지는 비. 사람만이 아니야. 짐승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또한 포위되었음도.
백미러에서 눈을 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비 오는 산길. 양옆으로 높게 솟은 산봉우리와 무성한 나무.
그 틈으로 보이는 머리 없는 짐승의 무리가 이연우를 향해 점점 다가온다.
머리 없는 멧돼지나 고라니처럼 큼직한 생물이 산길을 내려오고, 도로 앞에서는 머리 없는 다람쥐, 머리 없는 닭, 머리 없는 뱀 따위가 오르막길을 거슬러 올라온다.
철컥-
이연우는 에코백에서 총부터 잡아 쥐었으나, 심장은 불안하게 쿵쾅쿵쾅 뛰었다.
‘사람한테 적의가 있어. 어떻게 하지. 이대로 전진? 펜션으로 후퇴?’
그때였다.
쾅-, 굉음을 내며 거뭇한 무언가가 전면 유리창에 내리꽂혔다. 크게 균열이 일어난 유리창.
이연우가 화들짝 놀라 총부터 내세우니, 금이 간 유리창 너머 머리 없는 까마귀가 꺾인 날개를 퍼덕거렸다. 이연우는 입술을 깨물며 까마귀 너머의 하늘을 보았다.
한 마리가 아니다.
비 오는 하늘 아래, 까마귀며 비둘기며 매 따위가 날갯짓하고 있다. 머리 없는 몸으로, 오직 이연우를 향해 일직선으로.
“…염병.”
반장한테 옮았는지 비슷한 욕을 하며, 이연우는 기어를 후진으로 바꿨다.
‘펜션으로 돌아가야 해.’
눈에 보이는 하늘은 전부 비를 쏟고 있다. 잠깐 달린다고 비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다.
또한 새가 큰 문제다. 유리창이 깨지면, 비를 맞을 수밖에 없다. 머리가 빠진다는 말이다.
부우웅-!
승용차가 뒤로 달리며, 그가 이미 치고 지나간 머리 없는 짐승을 다시 한번 짓밟았다. 방지턱을 만난 것처럼 들썩이는 승용차.
동시에 자동차가 후진하여 지나간 도로로, 퍽, 퍽, 퍽, 머리 없는 새들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폭격에 가까운 낙하.
아슬아슬하게 스친 새가 사이드 미러를 박살을 내도, 이연우는 백미러만 보며 운전에 집중했다.
‘실수하면 죽는다.’
중앙선도 지키지 않는다. 중앙선에 차를 걸친 채로, 구불구불한 길을 휘청휘청 후진한다.
때때로 차 천장을 두들기는 새와 한번 더 맞아 거의 부서지기 직전인 유리창. 엉망이 된 차가 간신히 펜션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펜션에 가까워질 즈음에는 새가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쾅-!
중간에 유턴한 자동차가 정면으로 펜션 입구에 들이박았다. 펜션 벽과 문을 그대로 박살 내며 펜션 안으로 진입한 자동차.
주차를 마친 이연우는 사제 권총을 꺼내 쥐고, 펜션 안에서 하차했다.
***
펜션 1층에는 남자와 여자, 우비를 뒤집어쓴 최현상, 펜션 주인이 있었다. 그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완전히 무너진 현관과 망가진 자동차를 보았다.
“어, 어. 내 차. 차.”
“내 펜션! 아이고! 이걸 다 부수면-”
하얗게 질린 얼굴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그들이 돌연 입을 닫았다.
살벌한 얼굴을 한 이연우가 총을 쥐고 내렸기 때문이다. 그는 수상한 사람들을 노려보다가, 문득 질문했다.
“서편호 연구원이랑 그 머리 없는 사람은 어디로 갔습니까?”
“실험하겠다고 임시실험실로 가져갔어요. 윤아랑 서 박사님은 실험실에 있어요.”
“그분들 불러주세요.”
“어…. 저는 빗물 채취하러 나가야 하는데.”
그가 우비를 꾹 눌러쓰자, 남자와 함께 온 여자가 후다닥 계단을 올랐다. 공포에 질렸는지 몸을 벌벌 떠는 여자가 계단 너머로 사라졌다.
최현상은 삽과 페트병이 들어 있는 봉투를 흔들며, 이연우를 지나쳐 무너진 벽면을 통해 바깥으로 나간다.
‘힘만 강하지, 평범한 보조연구원 같은데.’
이연우는 그를 향해 말했다.
“저 비, 짐승들 머리도 뽑습니다. 조심하세요. 머리 없는 것들, 사람한테 해 끼치려는 놈들 같으니까.”
“정보 감사합니다. 역시 조사원이시네요. …나간 김에 그 짐승도 챙겨야 할까요? 실험재료 같은데.”
“거기 차 앞에 머리 없는 새 박혀 있으니까 그거 가져가 쓰세요.”
“아. 고맙습니다. 이따 가져갈게요.”
밝아진 안색으로 떠나는 최현상.
그 사이에 펜션 주인은 눈치를 보다가 창고로 사라졌고, 1층에는 이연우와 남자만 남았다.
이연우는 침착하게 남자에게 차 키를 던졌다. 남자는 차 키를 붙잡고는 울상을 지었다. 정말로 눈물이 맺혔다.
“할부 한참 남았는데….”
“그건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당신 누구입니까? 어디 소속입니까? 여기는 뭘 어떻게 알고 왔습니까?”
“그게.”
남자가 권총을 힐끗 보고는 침을 꿀꺽 삼킨다. 긴장과 흥분과 슬픔이 복잡하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미스터리나 괴담 추적하는 동영상 제작하는 팀인데요. 이곳에 머리가 빠지는 비가 내린다는 문헌을 찾아서, 찾아왔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고개를 퍼뜩 들어 이연우를 보았다.
“어디 비밀기관 소속 맞죠? 청와대 사태 그것처럼, 진짜 남들이 모르는 뭔가를 알고 계시죠? 그 서 박사님이란 분도 그렇고, 같은 소속 같은데. 인터뷰, 아니, 이야기라도-”
“그건 지금 중요하지 않습니다. 위험에 대처할 준비부터 하세요.”
이연우는 남자에게서 눈을 돌렸다. 단순한 일반인이었으니까.
그보다는 서편호와 펜션 주인이다.
펜션 주인은 어딘가로 사라졌고, 서편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계단을 내려왔다. 그는 무너진 현관과 현관을 뚫고 들어온 자동차를 보고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이연우 씨? 무슨 일입니까? 가신다면서.”
“탈출 불가능했습니다.”
“자동차까지 타셨는데요?”
이연우는 한숨을 짧게 쉬고, 몸을 옆으로 옮겼다. 그는 총을 들어 자동차를 가리켰다.
“저기 새 보입니까?”
“…머리가 없군요. 역시 짐승도 영향을 받나 봅니다.”
“머리만 빠지는 수준이 아닙니다. 머리 없는 것들이 오직 저만 노렸습니다. 그러니까.”
서편호는 자동차 앞까지 걸어가, 여전히 살아서 꿈틀거리는 까마귀를 쿡 찔렀다. 이연우에게 등을 보인 자세.
이연우의 눈에 광채가 번뜩였다. 재빠르게 손을 움직인다.
철컥-
서편호의 뒤통수에 닿은 총. 서편호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같은 회사원끼리 왜 이러십니까.”
“뭘 알고 있는지 말하세요. 나한테 숨긴 정보, 전부.”
“지금 일반인이 보고 있는데-”
“회사가 비밀유지 손 놓은 거 모릅니까?”
여차하면 방아쇠를 당길 수 있게, 검지손가락을 방아쇠에 건다.
서편호는 침묵하다가, 천천히 손을 움직여 꿈틀거리는 까마귀를 뒤적거렸다.
“그럼 회사가 지구를-”
“압니다. 헛소리하지 말고, 지금 정보를 내놓으세요. 이게 무슨 이상異常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대처할 필요 없습니다. 이건 우리 인류의 희망이니까.”
서편호가 항복하듯 양손을 들어 올리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부서진 현관과 자동차, 비가 쏟아지는 야외를 배경으로, 그가 이연우를 똑바로 보았다.
눈동자에 알 수 없는 열의와 사명이 반짝인다.
“저는 거짓말하지 않았습니다. 이 연구에 정말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죠.”
이연우는 살짝 물러섰다.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 반격당할 위험이 있다.
여전히 머리를 겨누며, 이연우가 질문했다.
“말 돌리지-”
“이상기후로 멸종한다면, 이상기후에 적응하면 됩니다.”
서편호가 한 손을 뒤로 빼, 까마귀를 붙잡았다. 손아귀 안에서 머리 없는 까마귀가 몸을 비틀었다.
“이 생명력. 이 생명력만 인간에게 부여한다면, 우리는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우드득, 강하게 쥐어진 손아귀. 까마귀한테서 바람 빠지는 소리와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난다.
그런데도 까마귀는 죽지 않고 그 몸을 꿈틀댔다. 서편호는 까마귀의 움직임을 손바닥으로 느끼며 기쁘게 웃었다.
“그리고 흙에 남은 성분을 통해 연구는 어느 정도 성공했습니다. 불면증, 탈모, 기억상실, 공격성 향상, 정신이상, 사망 등의 부작용만 줄이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연우 씨.”
서편호가 언뜻 이연우의 뒤를 본다. 이연우는 본능이 경종을 울리는 것을 느꼈다.
“부디 우리 연구에 협조해주시길. 당신한테 ‘빗물’을 주입하고, 주사위로 부작용을 극복하면 완벽한 빗물을 얻을 테니까.”
휙-
이연우의 얼굴을 향해 까마귀를 던진다. 이연우는 물러나지 않았다. 도리어 앞으로 몸을 던졌다.
‘뒤! 위험한 건 내 뒤야!’
쐐액-!
뾰족한 무언가가 뒤통수를 스치고 지나갔다. 앞에서는 까마귀가 얼굴을 쓸고 지나갔다.
이연우는 몸을 던진 기세 그대로 서편호를 덮쳤다. 가까이 붙어 서편호의 배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탕-!
세 번의 총격.
동시에 서편호의 팔을 붙잡고 그대로 빙글 돌았다. 둘의 위치가 바뀌었다. 이연우는 서편호를 방패처럼 앞세웠다.
투명한 약물을 방울방울 흘리는 주사기가 멈췄다. 소리 없이 내려온 공윤아가 주사기를 떨어뜨렸다.
“박사님.”
“아.”
서편호는 창백한 얼굴로 배를 매만졌다. 세 개의 구멍이 뚫린 복부에서 피가 쏟아졌다.
“안 돼. 연구가.”
이연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기후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한테 위험한 약물을 주입하려던 사람이었지.’
이연우는 옷자락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까마귀가 스치며 묻은 빗물이 닦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