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크립티드연구동호회는 천연보호구역인 어느 평야에 있었기에, 자동차로 몇 시간은 달려야 했다.
부웅-
고속도로를 달리는 반장의 차.
반장은 힐끗 백미러로 이연우를 보았다. 이연우는 핸드폰을 보며, 턱을 쓰다듬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머리로 손이 갈 때는 깜짝 놀라며 손을 다급하게 내린다.
“탈모 심하냐?”
반장이 묻자, 이연우가 머리를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당장 심하지는 않은데. 많이 빠져서요. 지금은 괜찮아 보이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연우가 손바닥으로 앞머리를 밀어 올렸다. 풍성했던 머리숱이 줄어든 느낌. 이마도 M자로 조금 후퇴했나?
핸드폰 카메라를 셀카 모드로 키고, 고개를 조금씩 틀어본다.
반장은 지루한 장거리 운전 중 잡담이라도 나눌 겸 이야기를 이어갔다.
“주사위 안 굴려보고?”
“지금은 딱히 탈모 티도 안 나고, 리스크가 무서워서…. 그래도 굴려볼까요?”
“아니, 그걸 왜 나한테 묻냐. 네가 잘 생각해서 결정해야지.”
반장이 당황했다. 잡담일 뿐 진짜로 굴리라는 말은 아니었다. 대실패라도 나오면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찰칵-
하지만 이연우는 앞머리를 넘긴 셀카를 한 장 찍어 그 사진을 유심히 보더니, 어떤 결심을 한 눈을 하였다.
“굴려봐야겠습니다.”
“어, 어?”
“이대로 두면 어차피 결국 대머리가 됩니다. 그때 굴리나 지금 굴리나 똑같습니다.”
반장이 말릴 새도 없이, 이연우는 주사위에게 말했다. 단호한 목소리.
“주사위. 탈모 저항.”
데구르르-
반장이 침을 삼키며 백미러로 이연우를 곁눈질하고, 이연우는 각오가 서린 눈으로 주사위의 결과를 기다렸다.
몇 분 같은 몇 초가 지나고, 주사위가 결과를 내보였다.
실패!
펑-!
무슨 폭죽 터지는 소리가 났다. 머리카락이 폭발하여 나풀거렸다. 이연우는 크게 뜬 눈으로 허공을 보았다. 머리카락이, 꽃잎처럼 떨어지고 있다.
“아.”
“어. 어.”
이연우와 반장이 입술을 떨었다. 차마 말이 되지 못하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반장은 차선을 넘어가려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운전대를 붙잡았다.
“여, 연우야. 너, 너. 머리가.”
“….”
이연우는 손을 벌벌 떨며, 한 손으로는 듬성듬성한 머리를 매만지고, 다른 손으로는 핸드폰 카메라를 보았다. 탈모가 급작스럽게 진행된 머리. 하얀 구멍이 숭숭 뚫린 머리.
“주사위.”
“연우야. 잠깐, 진정-”
“탈모 저항.”
데구르르-
실패!
펑!
머리카락이 폭죽처럼 흩날린다. 이제 머리카락보다 두피가 더 많이 보인다. 이연우의 눈이 돌아갔다. 희번득거리는 눈동자. 잃을 것도 없어졌다.
“주사위. 탈모 저항. 성공할 때까지, 계속.”
광기가 서린 목소리에, 주사위가 벌벌 떨듯이 몸을 굴렸다.
데구르르-
성공!
쏙쏙쏙-!
맨들맨들한 두피 위로 검은 머리카락이 슬그머니 돋아났다. 하얀 구멍이 검게 채워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몸이 가볍다. 잠을 얼마 못 잔 피로가 사라지고 활력이 몸을 감돌았다. 이연우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빗물이 약이 됐어.’
탈모 저항이 아니다. 빗물에 저항한 것이다.
그 결과 탈모를 일으키던 빗물이 반대로 작용하여, 체력을 강화했다. 그리고 아마도, 조금의 재생력 상승도 있을 것이다.
이연우는 손을 쥐락펴락하였다. 느낌이 달랐다. 뭐라고 할까. 생기? 활력? 체력? 미약한 힘 한 줄기가 몸에 깃든 느낌.
“하하.”
이연우가 미소를 짓자, 반장도 안도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편안한 마음으로 운전에 집중했다. 전면을 보며 운전대를 돌린다. 고속도로를 빠져나가는 길.
“연우아…. 주사위 조심해서 써라…. 대실패 나오면 어쩌려고 그래.”
“다음부터 조심하겠습니다.”
이연우는 당당하게 머리를 긁적이고는, 무릎과 자동차 시트, 발아래를 보았다. 머리를 잔뜩 자른 것처럼 수북이 쌓인 머리카락.
“머리카락은 바로 치우겠습니다.”
“그래야지. 여기 박스에 봉지랑 휴지 있으니까, 그걸로 치워.”
그렇게 자리를 청소하다 보니 도착한 평야.
이연우와 반장은 천연보호구역의 직원전용도로를 타고, 크립티드연구동호회가 자리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
크립티드연구동호회는 겉보기에는 군사지역의 임시초소처럼 보였다.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안쪽에는 길쭉한 전망대 겸 초소 같은 것이 두 개 있고, 자그마한 콘크리트 건물이 하나 있다.
치직-
전망대에 달린 스피커에서 소리가 났다.
-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돌아가십시오.
“관계자다, 인마.”
반장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철조망으로 이루어진 정문으로 다가가, 벨을 꾹 눌렀다. 누렇게 변색된 초인종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 누구십니까?
“이상조사반 반장인데. 너희들 감사하러 왔다. 빨리 문 열어.”
- 예? 예?
반장은 주머니를 뒤져, 신분증 하나를 꺼냈다. 신분증을 초인종 카메라 앞에 들이민다. 카메라가 신분증을 스캔했다.
그 몇 초를 반장은 기다리지 않았다.
“뭐 숨기냐? 왜 이렇게 굼떠? 이상異常이야? 이상異常에 지배당하냐?”
- 아닙니다! 지금 바로 열겠습니다!
삐이이-
철컹, 철조망 문이 열렸다. 반장은 성큼성큼 기세를 끌어올리며 들어갔고, 이연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혼자 왔으면 못 들어갔겠어.’
반장의 이상감사 권한이 아니면 이렇게 쉽게 진입할 수 없었을 것이다. 환영 아닌 환영도 받을 수 없을 테고.
자그마한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초인종을 통해 대화했던 직원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조사반장님! 오셨습니까!”
“어. 동호회장 어딨냐?”
“그….”
직원이 이마의 땀을 훔쳤다. 조사반장의 방문을 알리기 무섭게, 동호회장이 말했다.
‘그 인간이 왜 와? 뭘 또 뒤집어엎으려고? 꼴 보기도 싫다, 나 찾으면 없다고 해라.’
차마 그대로 옮기지 못 할 말.
“병이 나서, 병가 내고 쉬고 계십니다.”
“확실해? 내 얼굴 보기 싫어서 거짓말하는 거 아냐?”
“아닙니다, 아닙니다. 직접 내려가 보십쇼. 진짜 안 계십니다.”
직원은 서둘러 움직이며, 반장과 이연우를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직원이 신분증을 카드처럼 꼽자, 엘리베이터가 열린다.
“어디부터 보시겠습니까?”
지하 3층까지 있는 버튼. 반장은 이연우는 보지도 않고, 흘러가듯 말했다.
“지하 1층부터 전부 둘러보자.”
이연우는 북풍과 태양을 봐야 한다고 했다. 그 목표를 투명하게 드러낼 필요는 없다.
띵-!
지하 1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문 너머에는 절연체로 도배된 거대한 공간이 있었는데, 푸른 뱀들이 자유롭게 뛰놀고 있었다. 강철로 이루어진 봉을 타고 놀거나, 몸을 돌돌 말고 있거나.
직원이 말했다.
“지하 1층 푸른 번개 뱀 사육소입니다. 한국지사에서 사용하는 테이저 건에 들어갈 뱀은 전부 이곳에서 키우고 훈련한 뱀들입니다.”
때마침 검은 복장을 입은 직원이 나타나, 종을 땡땡 울렸다.
“밥 먹자-!”
그가 외치기 무섭게, 번개 뱀들이 푸른 물결이 되어 한쪽 벽으로 몰려간다. 벽에 늘어진 수많은 전깃줄에 각자 머리를 대고, 테이저 건의 출력에 맞춰 주입되는 전기를 먹는다.
반장은 손을 내저었다. 더 볼 것도 없다.
“2층.”
“예!”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잠시 후 열렸다.
이연우는 입을 살짝 벌리고 감탄했다.
“와.”
그곳에는 동화의 한 풍경 같은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무슨 기술을 썼는지, 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듯한 감각.
높은 하늘과 구름. 푸른 잔디가 바람결에 흔들리는 대지.
지상에는 구름으로 이루어진 고양이들이 한가롭게 꼬리를 흔들고 있었고, 각종 기이한 생명이 들판을 거닐었다.
무엇보다 압도적인 것은 들판의 중앙에 앉아 있는 골드 드래곤.
우아한 자태로 고개를 들고, 직원 하나와 대화하는 골드 드래곤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골드 드래곤은 모든 드래곤 중 가장 우수한 드래곤이며, 우주 어느 드래곤과 비교해도 가장 지혜로운 드래곤이다!”
이연우와 반장이 눈을 깜빡거리자, 그들을 안내하던 직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또 저러네. …여기는 지하 2층 비현실적 생물 격리소입니다.”
“어. 한번 보자.”
반장이 눈을 반짝이며 엘리베이터 바깥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직원과 이연우도 따라서 들판으로 들어간다.
그동안에도 드래곤은 커다란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레드 드래곤은 본능 하나 제대로 제어 못하는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쓰레기이며, 그린 드래곤은 드래곤이라 할 수 없는 족속이며, 블랙 드래곤은- “
드래곤이 말을 멈췄다. 그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머리를 살짝 돌려, 새로운 방문객을 보았다. 헤아릴 수 없는 지혜를 품은 눈동자가 인간을 굽어본다.
“아, 어리석은 필멸자들. 내게 지혜를 구하기 위해 왔나?”
하나는 이곳의 직원이요, 나이 많은 남자도 올곧은 직원이며, 다른 하나는.
“으악!”
드래곤이 눈을 감고 혀를 빼물었다. 그것은 짤막한 앞발로 눈을 연신 쓸어내렸다.
“끔찍하구나! 어서 내쫓아라! 재난을 휘감은 자다! 심지어 안 좋은 속셈을 품고 왔어! 빨리, 빨리 내쫓아!”
침묵.
안내하던 직원이 슬금슬금 물러나며 비상 버튼에 손을 옮기고, 반장은 눈을 감았다.
이연우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직원을 향해 말했다.
“아마 제 체질 때문에 그러는 거 같은데-”
하지만 이연우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골드 드래곤은 날개를 활짝 펴더니 돌풍을 일으키며 날아올랐다.
“네가 안 가면 내가 가겠다!”
돌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직원은 비상 버튼을 꾹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