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60)화 (60/194)

동화

드래곤이 날아간 자리.

강풍에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흔들리는 가운데, 직원은 생각했다.

‘저 드래곤이 머리는 조금 이상해도, 거짓말은 하지 않아.’

비늘 색깔로 차별하는 드래곤이지만, 어디까지나 드래곤만을 혐오하는 이상개체. 드래곤의 짐이라며 인간을 가르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회사에 우호적인 드래곤.

그렇기에 직원은 드래곤의 말을 믿었다.

재난을 부르고, 나쁜 속내를 숨기고 왔다는 말을.

망설이지 않는다. 손에 쥔 빨간색 비상 버튼을 엄지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조사반장님. 거기 조사원님. 비상 신호 보냈습니다. 경비대대한테 사살당하기 싫으면 가만히 있으십시오. 조사 후 풀어드리겠습니다.”

언제 굽신거렸냐는 듯 날카로운 눈매.

이연우가 헛웃음을 지었다. 빗물로 얻은 활력이 쭉 빠져나가는 느낌.

‘일이 이렇게 틀어진다고?’

부서 내부까지 이렇게 잘 들어왔는데, 레이시스트 드래곤한테 속내를 폭로 당할 줄이야.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역시 회사라고 해야 할지, 참 이상한 보안 능력이다.

결국 이연우는 포기하고, 제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뒷수습은 어떻게든 되겠지. 실제로 사고 친 것도 아니고. 정보부 인맥도 있고.’

이연우는 가까이 다가온 구름 고양이를 향해 손짓했다. 새까만 먹장구름으로 이루어진 고양이가 천천히 꼬리를 흔들며 다가온다.

이연우가 솜사탕 같은 몸통을 어루만지자, 구름 고양이가 천둥 같은 소리로 작게 울었다.

“으릉.”

촉촉한 몸통을 쓸어내리는 손바닥에 물기가 묻어나온다. 이연우가 조심스럽게 구름 고양이를 쥐어짜자, 비처럼 물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물을 쏟아낸 구름이 회색으로 바랬다.

그렇게 이연우가 고양이와 놀고 있을 때.

“….”

반장은 드래곤이 떠나간 자리를 가만히 보다가,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직원을 노려보았다.

“너. 정신 나갔냐?”

단단하게 굳은 눈동자와 무거운 목소리.

직원이 비상 버튼을 내보이며 입을 벌리기 무섭게, 반장은 손을 뻗어 직원의 멱살을 잡고 끌어당겼다.

반장의 키가 조금 작은 탓에, 직원의 머리가 그대로 아래로 끌려 왔다.

“으르릉!”

험악한 분위기에 고양이가 놀라 도망치고, 이연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서둘러 반장에게 다가갔다.

“반장님.”

걸음이 멈췄다. 괜찮다고, 이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반장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반장은 당황한 낯빛의 직원의 멱살을 쥐고, 좌우로 흔들었다. 맥없이 흔들리는 머리.

“지금 뭘-”

“너 뭐냐? 하수인이야? 이상異常이 한마디 했다고 비상 버튼을 눌러? 저게 죽으라고 하면 죽을 거냐? 풀어달라고 하면 풀어줄 거야? 사람 죽이라고 하면 죽일 거야? 어!”

“그건.”

직원은 당황하다가,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반장의 손아귀를 쳐낸 후, 말했다.

“저 드래곤의 적대등급은 그린입니다. 우호적인 개체라고요. 못 믿을 것도 없지 않습니까!”

“지랄. 이상異常을 믿어?”

“그러는 당신도 아래에 이상개체 두고 있지 않습니까! 부모감별사!”

“우리 애들은 사람이야. 그리고 조사반장은 나고.”

반장은 코웃음을 치며 주머니에서 버튼 하나를 꺼냈다. 그 버튼을 본 직원의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조사반장의 격멸대대 호출 버튼이다.

이상감사 중 부서가 이상異常에 지배당하고 있다고 판단될 경우, 부서의 제압 혹은 파괴를 요청하는 악명 높은 버튼.

꾹-!

버튼이 눌렸다. 반장이 사납게 웃었다.

“어디 뒤집어엎어 보자고.”

이미 이연우의 용건은 뒷전이다. 반장은 본래 직업에 충실하게, 크립티드연구동호회를 감사하기로 했다.

귀엽고, 아름답고, 위대한 형상의 이상개체와 함께 생활하여, 정신무장이 헐거워진 크립티드연구동호회를.

직원은 입을 뻐끔거리다가, 이를 악물었다.

“해보시죠! 누가 잘못한 건지-”

“으흠.”

그쯤에서 이연우가 슬쩍 끼어들었다. 그는 눈을 빛내며, 반장에게 넌지시 말했다.

“감사 계속 진행하시죠? 뭘 더 숨기고 있을지 모르지 않습니까.”

북풍과 태양을 찾아 움직이자는 말.

반장은 순간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눈동자를 굴려 이연우를 힐끔 봤다가, 돌려서 말했다.

“지금? 비상 버튼 눌려서 다 격리됐을걸? 당장 엘리베이터도 차단됐을 텐데. 차라리 격멸대대 오면 그때 구석구석 뒤집어엎어야지.”

격멸대대도 없이 조사원 둘이 부서를 탐색하는 건 무리다. 총기로 무장한 경비대대와 싸울 수는 없지 않나.

하지만 이연우는 태연하게 고개를 저었다.

“명분은 저희한테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격리는….”

이연우가 직원을 보며 묵직한 에코백을 뒤졌다. 휘젓는 손짓에 따라 잔뜩 부푼 에코백이 울퉁불퉁 꿈틀거린다.

‘미니 전기톱 아니고, 망치 아니고. 드릴, 절단기 아니고. 가스 토치 아니고. 전기충격기 아니고. 권총도…. 아니고. 아, 찾았다.’

에코백에서 나오는 손에 쥐어진 물총. 물총이 직원의 머리를 겨눴다.

직원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물총으로 뭘 하려냐는 듯. 그에 이연우가 답했다.

“탈모약이 들어 있습니다.”

“탈모를 치료하는 약이요? 나는 탈모 없는데.”

“탈모를 일으키는 약입니다. 대머리 되기 싫으면 협조하세요.”

“그게 왜 약….”

물총이 가까워진다. 직원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그는 떨리는 눈으로 에코백을 보았다.

“아니, 뭘 들고 다니는 겁니까.”

“협조할 겁니까, 안 할 겁니까?”

물총이 이마를 긁고 지나 정수리를 꾹 누른다. 직원은 눈을 꼭 감았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낯빛이 한순간에 수십번을 변했다.

그가 돌연 눈을 부릅떴다.

“협조하겠습니다.”

***

직원은 태도를 바꿔, 그들을 들판 어느 곳으로 안내했다.

“이곳 지하 2층은 회사의 핵심기술로 이루어진 일종의 아공간입니다. 당연히 엘리베이터도 그렇고, 비상구도 그렇고 위상학적 이동장치입니다.”

반장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쿵쿵 걸음을 옮겼고, 이연우는 갸우뚱거렸다.

‘방주나 최후의 쉘터에 사용되는 기술인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들판 한가운데 서 있는 문짝 앞에 도착했다. 고동색 나무로 이루어진 문짝은 홀로 굳게 서 있었는데, 먼지가 잔뜩 쌓여 있다.

직원이 문짝 앞에 섰다.

“지하 3층으로 가는 문입니다.”

“…지하 3층에는 뭐가 있습니까?”

이연우는 녹슨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다가 멈춰서 물었다. 직원은 태연하게 말했다.

“비현실적 생물체가 있죠.”

“위험합니까?”

“안 위험한 이상異常이 어딨습니까. 전기 뱀이나 푸른 불꽃이나 구름 고양이나. 다 귀여워 보여도 사실은-”

똑바로 대답하지 않고 빙빙 돌리는 말.

슉-

이연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총을 들이댔다. 살짝 방아쇠를 당겼다. 물총 끝으로 방울방울 새어 나오는 빗물. 이연우는 말없이 시선으로 그를 압박했다.

직원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이연우를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지하 3층. 적색구역. 적대등급이 레드나 오렌지인 비현실적 생명체를 격리하는 곳입니다. 안 위험할 리가 없죠.”

그 말에 이연우는 짧게 고갯짓했다.

“당신이 먼저 열고 들어-”

“됐다, 뭘 그렇게 겁먹냐.”

반장이 성큼 나아가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녹슨 방첩이 비명을 지르며, 문짝이 열렸다. 세 사람은 점점 넓어지는 문 틈새를 보았다.

문이 열렸다. 문 너머는 다른 세상이었다.

붉은 등이 켜진 음산한 복도. 검은색으로 도색된 강철로 이루어진 복도. 수많은 문이 길고 빽빽하게 들어찬, 연구소의 풍경.

발을 들이기 싫다.

하지만 반장은 거리낌 없이 문을 넘었다.

“어차피 다 비상격리 처리 끝났다.”

이연우는 망설이다가, 물총으로 직원의 명치를 쿡 찔렀다. 직원은 조심스럽게 반장을 쫓아가고, 이연우는 마지막으로 문을 넘었다.

그렇게 도착한 지하 3층, 적색구역.

“….”

이연우는 눈동자를 굴리며 환경을 파악했다.

넓고 기다란 복도. 좌우로 늘어선 철문.

철문에는 알아볼 수 없는 문자가 쓰여 있다. 비밀번호 같은 QJF20!@나 skan20@@, alfo21)) 따위. 글씨체와 크기도 다 똑같고, 따로 표식도 없다.

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조금도 예상할 수 없다.

직원이 말했다.

“여기에 뭐가 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비상격리를 여는 법도 모르고요.”

이연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길 때.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직원과 이연우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들의 시선 끝에는 반장이 있었다.

인상을 구기며, 문 하나를 연 반장이.

“이 새끼들. 비상격리도 안 해? 아니지. 이건 애초에 격리조차 안 했는데.”

레드나 오렌지 수준의 이상개체를 가둔 방이 문고리 돌렸다고 바로 열린다? 반장이 작게 중얼거렸다.

“진짜 이상異常한테 지배당했나?”

“그럴 리가 없는데.”

직원이 다급하게 비상 버튼을 꺼내, 꾹꾹꾹꾹 연달아 눌렀다. 변하는 건 없었다. 이미 비상격리가 끝난 건지, 애초에 비상격리가 자체가 무시된 건지 알 수 없다.

직원의 얼굴이 붉은 조명 아래서도 하얗게 질렸다.

‘어차피 비상격리 끝나서 안내해도 문제없다고 생각한 건데…!’

하지만 생각해보면, 비상격리가 끝났는데 비상구를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뭔가가, 심각하게 잘못됐다.

그들 셋의 머릿속에서 같은 생각이 스쳤다. 등골을 타고 오르는 오한. 닭살이 돋은 피부. 핏빛처럼 붉은 조명 아래에서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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