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북풍과 태양은 포기한다.’
이연우는 빠르게 판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임무는 무슨 임무. 생존이 우선이지.
두근두근, 강한 심장박동에 피가 빠르게 돌며 두뇌와 전신 근육에 산소를 전달했다. 미약한 활력이 샘솟으며 이연우의 컨디션이 최고조에 달했다.
“반장님. 2층으로, 아니, 아예 바깥으로 도망가죠?”
“어…. 잠깐만. 저기 뭐 있다.”
반장은 그가 연 격리실 문의 틈새를 보았다.
skan20@@라고 적힌 격리실 안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원뿔형으로 다듬은 침엽수.
뾰족뾰족한 나뭇잎이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의 뒤편에, 무언가가 있다. 뭔지 모르겠는데, 뭔가가, 나뭇잎의 틈새로 어렴풋이 보인다. 보면 볼수록 눈을 뗄 수 없는 무언가가 나무 뒤에서 꿈틀거렸다.
반장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문 틈새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마가 차가운 강철문을 밀어내며, 격리실 너머로 머리가 들어가려는 순간.
“반장님!”
이연우가 반장의 목깃을 쥐고 그대로 뒤로 잡아당겼다. 상의가 확 끌려 올라가 목을 콱 조이고, 몸이 뒤로 넘어갔다.
“켁!”
반장은 단말마를 뱉으며 넘어지고 말았다. 그는 멍한 눈으로 이연우를 올려보았다.
이연우는 눈을 꼭 감고, 문고리를 찾아 문을 더듬었다. 반장의 반응을 보니, 시각으로 인식하면 문제가 생기는 듯했으니까.
쾅, 격리실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도 10초를 더 센 후, 이연우가 눈을 떴다.
“반장님, 괜찮으십니까?”
“어, 어….”
반장은 힘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머릿속에서 이미지가 떠나지가 않았다. 원뿔형의 침엽수. 그 너머에 도사리는 무언가. 그것인 뭔지, 빨리 봐야-
짝-!
강하게 뺨을 때리는 소리. 스스로 때렸다. 힘을 잔뜩 실었다. 입술이 찢어진 반장이 피를 핥은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옘병. 내가 병신이지.”
방심했다. 비상격리절차가 끝났겠다, 시험 삼아 열어봤지만, 그것 자체가 실수다. 조사원으로서 행동해야 한다.
이곳은 이상異常이 널려 있는 위험 지역.
반장과 이연우는 눈을 마주쳤고, 서로 경계를 한껏 끌어올렸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들은 더 말하지 않고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존본능이 곤두선 두 조사원은 동시에 머리를 돌려, 탈출구를 보았다.
덜컥덜컥-
“이게 왜…!”
직원이 나무 문을 붙들고, 문을 흔들고 있었다. 그사이에 잠겼는지, 비상구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지하 3층 적색구역에 갇혔나? 갇혔구나.
반장은 핸드폰을 꺼내 격멸대대에 전화를 걸었고, 이연우는 물총을 도로 넣고 권총을 꺼내 쥐었다. 반장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고개를 저었다.
“통신 끊겼다. 지하라 그런 건지, 이곳에 문제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고.”
“격멸대대 호출 버튼은 작동했습니까?”
“이건 멀쩡할걸. 단순한 버튼 같아도 복잡한 기계장치거든. 어떤 상황에서도 신호는 확실히 보낸다.”
“이곳에 오기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이연우가 권총을 점검하는 동안, 반장은 품에서 일전에 이연우가 선물한 사제권총을 꺼내 안전장치를 풀었다.
“1차 진입부대는 30분 내. 그들이 사망하거나 연락이 끊어지면, 해당 부서 전문대응장비로 무장하고 출동하기까지 2시간.”
“2시간으로 봐야겠군요.”
“그렇지.”
대놓고 이런 짓을 벌였다. 격멸대대와 싸울 준비가 끝났다는 소리.
그리고 조사원도 살아남을 준비를 마쳤다.
권총으로 무장한 둘이, 문짝 앞에 주저앉은 직원을 향해 걸었다. 문고리를 붙잡고 늘어진 직원의 위로 두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붉은 조명을 등진 반장이 말했다.
“너. 여기서 허무하게 죽기 싫으면 아는 거 전부 말해.”
“저도 아는 게 없습니다….”
직원은 울먹거리면서 손을 떨었다. 이연우는 발로 그를 슬쩍 밀고는, 문에 손바닥을 올렸다.
“여기 동호회에 대해 아는 것, 평소 뭔가 수상했던 점, 이상한 일, 가리지 말고 말해봐.”
“저는 말단 직원이란 말입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반장과 직원이 뭐라 대화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한편, 눈을 감아 주사위를 불러냈다.
지금 상황에서 제일 먼저 시험할 일.
‘이 문 쓰고 싶은데. 가능할까?’
주사위가 펄쩍 뛰어오른다. 그리고.
실패!
콰직- 끼이익-
녹슨 경첩이 갑자기 박살 나며, 문짝이 뒤로 넘어갔다. 문짝은 먼지를 풀풀 날리며 박살이 났다.
위상학적 이동장치가 쓰레기가 되었다.
직원과 반장은 대화를 나누다 말고 황당한 눈으로 문짝과 이연우를 번갈아봤다. 이연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실패했네요.”
“괜찮다. 어차피 못 쓸 문이었어.”
두 조사원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어차피 잠겨서 못 쓸 문, 성공하면 좋은 거고, 실패해서 망가져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직원은 얼떨떨하게 부서진 문짝을 매만지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울한 목소리.
“수상한 점은 잘 모르겠는데. 고위급 직원이 요즘 좀 이상하긴 했습니다. 제가 정문 담당 아닙니까.”
작은 단서라도 중요하다. 이연우와 반장은 직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무슨 일인지, 최근 고위급 직원들이 일찍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고, 때로는 이곳에서 밤 새기도 했는데. 그 사람들 아주 기뻐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일을 많이 하는데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반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정신지배라도 당했나?”
“정신에 간섭하는 이상異常은 어떻게 저항합니까?”
이연우가 묻자, 반장은 행동으로 대답했다.
찢어진 입술을 짓씹었다. 콰직, 송곳니가 입술을 물어뜯는다. 살점이 떨어지고, 핏방울이 맺혔다. 입 안에 피비린내가 감돈다.
“약한 수준은 강한 정신력과 고통으로. 너는 주사위도 있고.”
“강하면 못 막습니까?”
“전문대응장비가 없는데 어떻게 막나. 아예 안 만나는 게 최선이지.”
반장이 발끝으로 직원을 툭 찼다.
“일단 엘리베이터부터 찾아보자. 그리고, 비상구. 이거 하나뿐이냐? 두어 개는 더 있을 텐데?”
“제가 아는 건 이 문 하나뿐입니다…. 엘리베이터도 어딨는지 몰라요.”
반장이 고개를 젓고는, 복도 한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직원이 허겁지겁 일어나 반장을 뒤쫓고, 이연우도 감각을 예민하게 가다듬은 후 제일 뒤에서 걷기 시작했다.
***
붉은 조명 아래, 강철 복도를 걷는다.
좌우로 빽빽하게 늘어선 격리실. 그 문 하나하나가 폭발물처럼 위험하여, 그들은 긴장을 놓지 못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나아갔다.
그렇게 몇 개의 문을 지나쳤을까.
반장이 총을 고쳐 잡았다.
“끝이 안 보이는데. 방향을 잘못 잡았나?”
“일단,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지는 않습니다. 전부 다른 격리실입니다.”
이연우는 격리실마다 쓰여 있는, 암호 같은 글자를 보며 말했다. 지나갈 때마다 몇 개씩 눈에 새겨뒀는데, 같은 것이 없었다.
매번 새로운 격리실, 처음 보는 식별번호.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
그렇기에 이상했다.
“격리가 풀렸는데, 이렇게 조용한 게 정상입니까?”
문이 열려 있는데 이상개체들이 얌전히 있을 리가 없다. 마치 태풍의 눈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기묘한 정적.
반장은 망설이다가, 걸음을 멈췄다.
“어떤 강력한 이상개체가 모든 이상개체를 지배하고 있다면, 이럴 수도 있긴 하지.”
“…그 정도면 위험레벨이 몇 입니까?”
“최소 5. 대부분 6.”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이연우는 말없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종말방어장치 : 고장 난 시계 수준의, 적대적인 이상개체? 마주치기는커녕 같은 세상에 있기도 싫다.
닭살이 돋은 피부를 문지를 때, 직원이 옆에서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이상개체는 이런 곳에 격리하지 않습니다. 불씨를 화약고 옆에 보관하지는 않잖아요. 여기 있는 비현실적 생명체가 몇인데.”
“그건 모를 일이지.”
반장은 다시 걸음을 서두르며 말했다. 세 사람의 발소리가 적막한 복도를 울리는 가운데, 반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어쨌든 우리는 여기서 벗어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여-”
목소리가 멈춘다. 세 사람의 발도 멈춘다.
그들은 나란히 서서 복도 끝을 보았다.
끼이익-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때를 맞춰 열리는 황금문. 문 너머에서 새하얀 빛이 쏟아졌다. 하얀빛 속에서 거뭇한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사람 하나가 문을 나왔다.
직원이 눈을 크게 뜨고 중얼거렸다.
“동호회장님…?”
반장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남자가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 때.
철컥-
두 개의 총구가 회장을 겨눴다. 그들은 동시에 외쳤다.
“움직이지 마!”
“쏜다!”
“…성격 참. 그 불같은 성정 좀 어떻게 안 되나? 어떻게 배알이 꼴린다고 격멸대대를 바로 호출하지?”
총구 앞에서도 회장은 태연하게 혀를 찼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등을 훤히 내보였다.
“들어오시게. 그 분께서 기다리시니.”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본능으로 다가오는 불길한 감각에 두 조사원이 딱딱하게 굳어 있을 때.
직원이 희망을 발견한 표정으로, 활짝 열린 황금문으로 달려들었다.
“회장님!”
직장 상사가 편안히 있으니 살았다는 생각이리라. 거침없이 새하얀 빛 너머로 사라진다.
하지만 두 조사원은 도리어 총을 꽉 잡았다.
“…도망칠 길이 안 보이는데. 저놈이 뭐에 홀렸는지도 모르겠고.”
“정면에서 부딪쳐 봅시다. 정 안 되면 주사위 굴리겠습니다.”
“뭐로 굴리게?”
이연우의 눈동자에 차가운 빛이 흐른다. 그는 그가 겪어왔던 사고를 떠올렸다. 방금 얻은 아이디어도.
“사고발생, 차원이동, 시간정지, 이상지배.”
지배라고 거창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것보다 단순하고 쉬웠다.
거짓말 판정에 성공하면 상대는 믿을 것이요, 설득 판정에 성공하면 상대는 마음을 돌릴 것이다.
반장이 경악했다. 어느새 긴장도 풀고 입을 쩍 벌린 채 이연우를 봤다.
“그게 된다고?”
“…리스크가 크긴 한데. 가능하긴 할 것 같습니다. 죽거나 지배당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그건 맞지.”
그들은 잠깐 침묵했다가, 천천히 빛 너머로 이동했다.
빛 너머에는 신전이 있었다. 크립티드연구동호회의 이상을 모셔둔 제단과 그 앞에 공손히 도열한 동호회의 고위직원 무리.
그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제단까지 길이 열렸다. 제단 위에는 이상개체가, 다섯.
숨이 턱 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