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62)화 (62/194)

동화

이연우는 순간 비틀거렸다. 전력 질주를 할 때처럼 심장이 쿵쾅거리고, 아찔한 위기감이 정신을 후려친다. 새하얀 신전 안에 있는데도, 세상이 붉게, 위험하게 물들었다.

목소리. 목소리가 들린다.

- 앞으로 오라.

저도 모르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반사적으로, 본능적으로.

그리고 다음 순간.

으직-!

이연우는 혀끝을 물어뜯었다. 푸우, 피가 넘쳐흐르며 목까지 붉은 얼룩을 만들었다. 그 아찔한 고통.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감각.

잘려 나간 살점을 퉤 뱉어낸 이연우는 그대로 살점을 짓밟으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뇌를 쑤시는 고통과 정신을 끌어당기는 어떤 힘 사이에서 일그러진 눈동자가 앞을 보았다.

직원과 반장은 벌써 몇 걸음 걸어, 이연우에게 등을 보이고 있다.

스윽-

총을 쥔 손으로 입가의 피를 닦아내고, 신전의 천장을 향해 들어 올린다. 고통 때문에 벌벌 떨리는 손.

하지만 방아쇠를 당기는 데 문제는 없다.

탕-! 탕-! 탕-! 

총성이 연달아 울렸다. 직원은 듣지 못한 듯 비척비척 앞서 나가지만, 반장은 문득 몸을 떨었다.

“이, 이. 염. 병.”

뻐억-!

돌덩이 같은 손으로 얼굴을 강하게 후려친다. 한 번, 두 번, 세 번. 얼굴이 부어오른 반장은 퉤, 이빨을 뱉어내고는 작게 웅얼거렸다.

“시부랄놈들이. 이빨이 얼마나 비싼데.”

그리고는 핏발 선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신전에 도열한 고위직원들은 총성 따위는 듣지도 못한 듯 묵묵히 서서 제단을 보고 있다.

이연우는 상태가 좋지 않다. 핏줄이 터진 눈과 피를 쏟아내는 입. 그 상태로 제단을 보았다.

높은 제단 위에 존재하는 다섯 개체의 이상異常. ㅅ자로 자리한 이상.

가장 바깥에는 원숭이와 인간을 하나로 합친 뒤 나눈 듯한, 원시인 같은 존재가 하나. 더듬이를 흔드는 큼직한 바퀴벌레가 하나.

그 안쪽에는 지하 2층에서 보았던 골드 드래곤과 둥둥 떠 있는 양피지. 북풍과 태양이다.

이연우는 마지막으로 중앙에, 가장 안쪽에 서 있는 이상異常으로 시선을 옮겼다.

‘나무 인간?’

나이를 먹은 듯 커다란 나무. 가지로 이루어진 팔과 뿌리로 이루어진 다리. 몸통에 달린 인자한 노인의 얼굴.

그것이 자상하게 웃었다.

- 훌륭하다.

그 칭찬에 진실한 기쁨이 차오른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

이연우의 풀어진 안면 근육으로 웃으려다가, 울컥, 피를 토하며 정신을 차렸다.

“지랄, 하네.”

잘린 혀 때문에 어눌한 발음. 이연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중요한 건 행동이다.

총구를 움직여, 당장 총을 쏜다. 탄창을 전부 비울 기세로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

하지만 이연우의 속내를 알아차리고 먼저 움직인 것이 있었다.

“어리석은 필멸자.”

팅-! 티팅-!

골드 드래곤이 가볍게 뻗은 꼬리. 황금빛 비늘에 총탄이 튕겨나갔다. 도탄된 총탄이 신전 바닥이며 기둥, 천장 따위에 흠집을 새겼다.

철컥- 철컥-

탄창이 비었다. 이연우는 권총을 집어 던지고 에코백으로 손을 넣었다. 여러 공구가 손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손은 물총에서 멈췄다.

이연우는 망설이다가 물총을 꺼냈다. 그는 작게 욕설을 읊조렸다.

‘빌어먹을. 쓸만한 게 없어. 이상개체도 많고, 사람은 더 많아.’

토치로 불을 지르자니 하필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신전이다. 전기톱이니 망치로는 동호회 직원을 상대하기도 힘들다.

결국 남은 수는 둘 뿐이었다.

‘빗물을 나한테 뿌려서 강화를 시도하거나. 주사위를 계속 돌리거나.’

물총이 스스로의 머리를 겨눴다.

이연우는 고민하다가 피가 멎은 혓바닥으로 입천장을 쓸었다. 아릿한 고통이 혀뿌리를 타고 뇌까지 솟구쳤다.

‘할 수 있는 시도는 전부 한다.’

처음은 주사위. 설득부터-

- 멈추어라. 우리는 그대에게 악의를 품고 있지 않다.

순간 생각이 멈췄다. 고통이 정신을 일깨울 때까지 이연우의 눈은 흐리게 풀렸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이연우가 입매를 비틀었다.

“아, 그래? 그러면 개 같은 정신지배부터 그만두지? 그래야 대화를 할 거 아니야?”

데구르르-

실패!

나무 인간이 나뭇잎을 떨었다. 잎사귀가 몸을 비비는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오고, 부드러운 정신파가 이연우의 뇌를 감쌌다.

- 그건 안 되지. 그대는 굉장히 위험하니까. 그리고 내 정신지배는 약해. 고통만으로도 저항할 정도니까.

이연우는 헛웃음을 뱉었다.

약해? 부서 하나를 통째로 집어삼키고, 다른 이상개체까지 부하로 부리면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태연하게 하고 있다.

나무 인간은 그 생각을 읽었다.

- 나는 이들을 지배하고 있지 않아. 그저 미래를 보여주고, 그들에게 구원을 약속했을 뿐.

미래와 구원. 무슨 말인지 짐작이 간다.

그쯤에서 이연우는 조금의 지루함을 느꼈다. 결국 그동안 보았던 이야기의 반복 아닌가. 대충 이상기후로 지구가 위험하니, 이상기후를 물리치고, 지구에서 살아남을 준비 어쩌고.

“나도 아는데. 다른 방법 내버려 두고, 네 노예가 될 생각은-”

- 아니. 그대는 모른다. 그대는 우리와 함께해야 한다.

그때 동호회장인 제단 앞으로 나와, 몸을 빙글 돌렸다. 제단과 다섯 이상개체를 등진 회장이 음울하게 말했다.

“너희들은 미래를 몰라.”

“지랄. 나도 안다.”

반장이 성큼성큼 걸어, 회장 앞에 섰다. 그가 멱살을 잡고, 회장과 코앞에서 눈을 마주했다.

“이상기후, 보존계획. 그런데, 그렇다고 이상異常 따위의 따까리가 돼? 미친 새끼. 네가 그러고도 회사원이야?”

“회사라….”

회장은 어두운 눈동자로 반장을 보다가, 고개를 살짝 틀어 이연우를 보았다. 먼 거리에서도 그들은 눈이 마주쳤다.

“회사는 실패해.”

“…뭐?”

당황한 목소리.

회장은 반장의 손을 떨쳐낸 후, 제단 위의 나무 인간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선지자시여. 저들에게 미래를 보여주십시오. 이상기후가 닥쳐오고, 회사가 지구를 버린 이후의 미래를.”

- 그럴 것이다.

스스스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신전.

나무 인간이 가지를 떨어대며, 물줄기가 쏟아지는 소리가 난다. 한줄기 정신파가 이연우를 향해 흘러들었다.

- 미래를 보아라.

암전.

***

세상이 변했다.

이연우는 무너진 콘크리트 건물의 잔해 위에 서 있다. 그는 다급하게 무장부터 챙기려 했으나, 정장 한 벌을 입고 있을 뿐, 뭐 물건이 없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 하늘을 보아라.

이연우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보았다. 입이 살짝 벌어졌다.

“저건….”

대낮의 하늘에 은하수가 펼쳐져 있다. 반짝거리는 별의 무리가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는데, 별 무리는 빠른 속도로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아름다운 장관.

나무 인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인류의 희망이 스러진 인류의 무덤이라.

“그게 무슨….”

- 우주 쓰레기란 소리다.

이연우가 하늘에서 눈을 떼고 나무 인간을 찾았지만, 나무 인간의 형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한줄기 목소리만이 들릴 뿐.

- 이상기후가 닥쳐오자, 세계 각국의 정부는 우주로 피난선을 쏘았지. 피난선 하나가 우주 쓰레기와 충돌했고, 연쇄적으로, 모든 위성과 우주정거장과 피난선이 충돌하여 우주의 먼지가 되었다. 하늘이 닫힌 거지.

돌연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커다란 강철 덩어리가 긴 꼬리를 남기며, 이연우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늘을 가득 메우는 우주선의 잔해.

불꽃 너머로 언뜻 보이는 글자, HOPE.

피할 겨를도, 능력도 없다.

거대한 충격파가 터지고, 땅이 뒤집어졌다. 이연우가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린 순간.

다시 한번 세계가 변했다.

이연우는 얼굴을 가렸던 팔을 천천히 내렸다. 그는 이제 침착을 되찾았다.

‘환상이야.’

이연우는 천천히 주변 환경을 보았다.

“여긴 어딥니까.”

어딘지 알 수 없는 산맥의 상공이다. 이연우는 허공에 떠서 아래를 내려보았다.

산맥을 가로지르는, 네모반듯한 절벽. 얼마나 깊은 절벽인지, 까마득한 바닥에 어둠이 고여 있었다.

꼭 그림판의 지우개가 산맥을 한 번 긋고 지나간 듯했다.

- 지구 최후의 쉘터.

이연우가 눈썹을 살짝 떨었다. 이런 게 최후의 쉘터라고?

- 최고위급 멸망주의자가 지우개로 지웠지. 인류는 멸망해야 한다면서.

이연우는 허망한 표정으로 산맥 구석구석을 들여보았다.

지우개가 지나간 산맥.

인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제단에서 보았던 원시인과 커다란 바퀴벌레가 산맥에 득실거린다.

- 인류 다음의 지성종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지구의 지배종은 되지 못해. 하늘은 닫혔고, 대지의 자원은 고갈되었지. 그리고.

다시 시야가 바뀌었다.

그곳은 어느 평야.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푸른 포탈이 두 개.

“여긴.”

- 이주지 둘과 연결된 일방통행 포탈. 정확히 말하면, 쓰레기통의 뚜껑.

포탈이 일렁거린다. 포탈 너머에서 거대하고 기괴한 괴수가 밀려 나왔다. 괴수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포효하더니, 다시 포탈을 향해 몸을 던졌다.

하지만 포탈은 환상처럼 스쳐 지나갈 뿐.

- 회사는, 100만 명의 인구로 이주지를 유지하지 못해. 이상異常을 감당하지 못해.

“그러면 이 포탈은….”

- 쓰레기통의 뚜껑. 감당하기 힘든 이상異常을, 지구를 쓰레기통 삼아 버리는 것이야.

세상이 바뀔 때마다 희망이 하나씩 스러진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감각. 심장이 쿵 떨어졌다.

이연우는 손을 떨며, 다급하게 외쳤다.

“화성기지는, 방주는 어떻게 됐습니까!”

- 화성기지는 자원고갈과 내전으로 파괴됐네. 하늘이 닫혔기 때문에 지구로 돌아갈 희망을 잃었고, 충분한 자원을 공급받지 못해, 서로 싸우다가 모두 죽었어.

“방주는!”

나무 인간이 말했다.

- 지구가 회복된 이후를 기다리며 동면 중이다. 하지만, 지구가 회복되겠는가?

돌연 시야가 쭉 높아졌다. 이연우는 하늘 높이 상승했다. 포탈이 작아지고, 평야가 작아지고, 지구가 작아졌다.

토성의 고리처럼 지구를 맴도는 우주 쓰레기. 우주의 냉기 속에서 얼어붙은 시체 하나가 스쳐 지나간다.

이연우는 시체를 보았다가 지구를 내려보았다. 망원경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푸른 바다와 녹색 대륙.

그 위를 뒤덮은 셀 수 없는 이상異常.

미래 지구는 더 이상 인간의 별이 아니다. 지구는 이상異常의 별이 되었다.

이연우는 물었다.

“나는. 나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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