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63)화 (63/194)

동화

나무 인간은 당황한 듯 잠깐 말을 멈추었다가, 천천히 정신파를 쏘았다.

- 너는 우리를 거부하고 나갔다. 그리고 세상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죽었겠지.

“시체라도 보여주십쇼.”

이 기회에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라도 알아야겠다. 이연우의 단호한 목소리에 나무 인간은 천천히 세상을 바꾸었다.

그리고는 당혹이 섞인 목소리를 뱉었다.

- 살아있다고?

한순간 바뀐 세상.

어딘가의 한적한 산골.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고, 부드러운 바람결에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오는 오두막.

오두막 앞 흔들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미래의 이연우가 이상한 기척을 느끼고 천천히 눈을 떴다.

“으으…?”

복실복실한 잠옷을 입고, 손을 들어 눈을 비빈다. 덥수룩한 머리와 깔끔하게 다듬은 수염.

주사위가 선명하게 비치는 동공이 문득 현재의 이연우를 주시하다가, 느릿하게 허공을 보았다.

- 이건…!

나무 인간이 다급하게 말했다.

- 이제 볼 건 다 봤으니, 돌아가-

“이건 뭐 하는 새끼야.”

나직한 목소리. 어딘가 어눌한 발음.

미래 이연우가 손을 뻗었다. 무수한 실타래를 헤아리는 듯한 손짓. 동시에 동공 속에서, 주사위가 굴렀다. 손을 움켜쥠과 동시에 주사위가 딱 멈췄다.

성공!

- 안 돼!

나무 인간의 단말마와 동시에 어떤 끈이 탁 끊어지는 감각. 침을 꿀꺽 삼킨 이연우의 몸도 점점 흐려질 때였다.

미래 이연우가 다시 한번 손을 폈다가, 주먹을 쥐었다. 동공 안의 주사위가 구른다.

성공!

흐려지던 이연우가 다시 돌아왔다. 미래 이연우의 앞으로 이동됐다. 낮은 확률을 뚫고 미래에 붙잡혔다.

“어….”

이연우는 주춤 물러서며, 미래 이연우를 경계했다. 동일 개체라고 안심할 수 없다. 나태의 악마를 보지 않았나. 생존에 위협이 된다면, 다른 자신이라고 해도 얼마든지 죽인다.

입이 바짝 마른다. 잔뜩 긴장한 몸.

미래 이연우는 그런 이연우를 힐긋 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몸을 돌렸다. 오두막 문을 열고 문 너머로 사라졌다.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예.”

이연우는 공손하게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나무 바닥을 밟는 다리가 달달달 떨렸다.

‘도대체 뭐지?’

딱 봐도 지금의 자신보다 상위호환이었다. 주사위로 뭘 했는지 눈동자에 비치고 있고, 결과도 통제하는 듯하다.

만약 상대가 자신을 죽이려고 마음먹으면…. 순식간에 죽으리라.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오두막 문을 닫은 이연우는, 내키지 않는 걸음을 옮겨, 거실의 탁자로 갔다.

미래 이연우는 의자에 앉아 탁자 건너편 의자로 손짓했다.

“앉아.”

“예.”

이연우는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그가 떨리는 눈으로 미래 이연우를 보자, 미래 이연우는 탁자 위에 놓인 주전자에서 물을 따라 한 모금 마셨다.

“대화를 한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 그래, 넌 어디서 왔지? 과거? 평행세계?”

“그, 과거 같습니다. 크립티드동호회에서 나무 인간이 미래를 보여준다며, 뭔가 했습니다.”

“아. 그때구나. 좋네.”

미래 이연우는 고개를 까딱였다. 그는 잠시 나무 잔에 담긴 물을 보았다. 물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내려본다.

불편한 침묵.

이연우는 안절부절못하며 손을 무릎이며 탁자 위로 옮기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왜 남기셨는지….”

“들어.”

“예.”

미래 이연우는 천천히 말했다.

“그쯤의 나면, 생존에 집중하고 있겠지. 회사도 그렇고.”

“예.”

“그러면 안 돼.”

“예?”

이연우가 고개를 들었다. 상대가 무서워도, 의문을 참을 수 없다. 이게 진짜 내가 맞는지 의심이 든다.

미래 이연우는 의자에 등을 기대, 오두막의 천장을 보았다. 현재의 이연우보다 어려 보이는 미래 이연우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과거의 자신, 그가 지나온 여정, 그가 겪은 사고. 그리하여 잃어버린 것들.

미래 이연우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전부 몸으로 겪었어. 이상기후, 회사의 실패, 피난선, 최후의 쉘터, 이주지….”

지금도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광경. 간혹 악몽으로 나타나는 그때 그 순간.

그가 탑승한 피난선. 충돌을 막겠다고 돌린 주사위가 대실패하여 주변의 위성과 피난선까지 휘말렸다. 도미노가 무너졌다. 그가 무너뜨렸다. 모든 피난선이 동시에 터져나가며, 우주 쓰레기가 되었다.

최후의 쉘터로 잠입한 날, 멸망주의자의 손짓에 몸의 절반이 소멸하기도 했고.

이주지를 찾아간 날, 이주지의 성벽을 넘어오는 이상異常의 군세 앞에서 바로 도망치기도 했다.

“그, 어쨌든 살아남았지 않습니까.”

어설픈 위로에 미래 이연우가 눈을 뜨고 현재의 이연우를 보았다.

“살아남았지. 주사위와 한 몸이 되고, 빗물을 전부 소화하고, 그 외의 수많은 이상異常을 수집하고, 지배하고, 몸에 받아들여서. 위험레벨 6이나 7쯤 되는 수준까지 왔지.”

이연우의 피부에 닭살이 돋았다. 그런 위험한 존재가 눈앞에 있다는 두려움 반, 내가 그 수준까지 갈 수 있다는 놀라움 반.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힘을 손에 쥔 미래 이연우의 얼굴에는 기쁨이 없다.

“그런데, 그뿐이야. 살아만 있어.”

미래 이연우가 이연우와 눈을 마주쳤다. 미래 이연우의 눈이 질척하게 가라앉았다.

사람보다는 이상異常에 가까운 눈동자.

주눅이 든 이연우가 눈을 내리깔며, 미래 이연우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미래 이연우는 비웃음을 섞어 말했다.

“다른 사람은 다 죽었어.”

손가락을 활짝 펼치고, 하나하나 접는다. 손가락 하나에 그의 추억이 접혔다.

“가족, 이상조사반의 반장님, 지유 선배, 잼민이, 입사동기 친구들, 시계수리공, 내가 직접 포섭한 동맹, 그 외의 친구들. 내 살길만 찾는 동안, 모두 죽었어.”

이연우의 마음에도 돌이 하나 얹어졌다. 가슴이 답답하고,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미래 이연우가 말했다.

“내가 나무 인간하고 협력하지 않은 이유는, 정신을 지배당해 노예로 살기 싫어서였지. 그런데. 지금 나는 사람답게 살고 있나?”

인류가 멸망한 세상에서, 최상위급 이상개체가 되어 홀로 살아온 이연우가 조소했다.

“생존만이 문제가 아니야. 생존한 뒤의 세상도 생각했어야 해. 나 혼자 살아남은 세상에는 의미가 없어. 그러니까.”

미래 이연우가 이연우를 보았다. 주사위가 비치는 동공 위로, 이연우의 형상이 겹쳤다.

“돌아가서 미래를 바꿔. 생존에만 집중하지 말고, 이상기후를 물리칠 생각을 해. 그래야 사람답게 살 수 있어.”

이연우가 입을 다물었다. 조금쯤은 공감이 가고, 많이 반발이 들기도 하고.

결국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상기후를 막을 방법을 모릅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주사위를 돌릴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런 이연우를 보고, 미래 이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건 과거의 자신이다. 그 생각을 훤히 알았다.

“리스크가 너무 커서, 돌이킬 수 없는 날이 오면 돌릴 생각이었지.”

“예….”

“그렇게 미룬 결과가 지금이야. 어차피 망할 세상이야. 그냥 돌려.”

“아니.”

이연우가 입을 벌렸다. 그렇다고 지구의 운명을 걸고 도박을 하라고?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차라리 이상기후의 원인과 해결책을 알려주지?

미래 이연우는 피식 웃었다.

“정확히는, 이것저것 해보다가, 이상기후가 닥쳐오기 전에는 무조건 돌려. 이상기후가 시작되면 끝이야.”

“그 이것저것 좀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저는 지금 북풍과 태양만 찾았습니다.”

대화하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아, 이연우가 슬쩍 편한 마음으로 물었다.

미래 이연우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두드리는 박자에 따라, 그동안 깊이 묻어둔 생각이 샘물처럼 솟아 나왔다.

“내가 생각한 게 있는데.”

한때 밤마다 눈을 감고 생각해왔던, 이상기후를 물리치는 방법.

“북풍과 태양, 맬서스의 악마, 수르트의 검, 나비효과, 기독교적 재앙…."

수많은 이상異常이, 미래 이연우의 입에서 끝도 없이 흘러나왔다. 이상기후에 기여하는 개체, 이상기후를 저지할 수 있는 개체, 회사가 아는 개체, 회사가 모르는 개체….

이연우는 단어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새기면서,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 숫자가 지나치게 많다.

더구나, 그 위치가 전 세계에 퍼져 있다.

“…이것들만 처리하면 돼. 사용하든, 설득하든, 파괴하든. 상황 맞춰 판단해.”

한참이 지나 말을 끝낸 미래 이연우에게, 이연우가 말했다.

“너무, 너무 많지 않습니까. 거의 다 해외에 있고요. 이걸 내가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안 할 거야?”

미래 이연우는 손가락을 뻗어, 오두막의 창문을 가리켰다가, 이어 스스로를 가리켰다.

“이왕 살아남는 거, 도시에서 잘 살아야지. 햄버거 사 먹고, 커피 마시고, 스마트폰 하고, 컴퓨터도 하고.”

“…알겠습니다.”

방법이 있겠지. 이연우는 작게 입술을 달싹이며, 일단은 미래의 그가 말한 이상목록을 두뇌에 새겼다.

미래 이연우가 거기에 충고를 더했다.

“그때쯤의 나면 충분히 할 수 있어.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능력이 있는데, 그걸 잘 쓰지 못했지.”

“예를 들면요?”

이연우는 경계를 풀고, 아예 배움을 청했다.

“너 자체가 자그마한 회사야. 학살회사는 타격대로 사용해. 관리회사는 정보부로 사용하고, 시계수리공이나 적대집단은 정보원이나 하청으로 써.”

이연우가 맺은 동맹은 스스로의 생각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다들 지구를 포기하지 못 한 사람들이야. 최종목표가 같은데, 내가 내준 정답을 거절할 리가 없지.”

그제야 이연우가 고개를 똑바로 들었다. 눈동자에 깨달음의 빛이 서린다. 그는 이 정보의 값어치를 지금 깨달았다.

천둥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거면 회사의 파벌을, 아니, 적대집단까지 하나로 만들 수 있습니다!”

“어….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는데.”

미래 이연우가 멈칫했다. 그는 황폐한 세상에서 홀로 살아남은 시간이 길어, 큰 그림은 그리지 못했다.

그냥, 과거의 자신이 다른 사람을 이용하라는 정도로 생각했을 뿐.

하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 직접 동맹을 맺고 있는 지금의 이연우는 달랐다.

“가능합니다! 이거면 충분히 가능해요!”

이건 일개 정보나 목표가 아니다. 깃발이고 등대다. 이상적인 미래로 향하는 확실한 길.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 헤매는 모든 인간을 끌어모을 빛.

희미한 희망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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