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64)화 (64/194)

동화

이연우는 흥분을 참지 못했다. 얼굴은 붉게 물들었고, 가만히 있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정신없이 서성이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선명한 청사진이 그려진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야, 다른, 더 괜찮은, 내가 안전한-”

혼자 중얼거리는 이연우를 미래 이연우가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리고는 천천히 손을 폈다. 눈동자 안의 주사위가 구르기 시작한다. 데구르르-

“이제 그만 가봐.”

성공!

“예? 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이연우의 몸이 점점 흐려진다. 유령처럼 반투명한 이연우는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다급하게 손을 뻗어 크게 외쳤다.

“주사위 결과 통제하는 법 좀-”

“한 번 죽어.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부활 판정 굴려. 그때 대성공 뜨면 주사위랑 한 몸이 돼.”

“아니, 뭔, 그러면 다른 팁이라도-”

상대는 미래의 자신. 수많은 사건사고를 겪으며 몸으로 체화한 요령이 많을 터.

거기에 이대로 돌아가면 나무 인간을 상대해야 할 텐데, 사소한 도움이 절실하다.

이연우가 자존심이나 경계 따위는 다 내버리고 간절하게 빌자, 미래 이연우는 조금은 황당하게 보다가, 귀찮다는 듯이 가볍게 손짓했다.

“어휴. 됐다, 가라.”

손짓에 따라 확률이 조작되며, 이연우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생겨났다. 그것의 정체를 확인하기도 전에, 이연우의 세상이 변했다.

현실로, 크립티드 연구동호회의 지하신전으로 돌아왔다.

어질어질한 머리와 흐릿한 시야. 언뜻 공포와 분노가 뒤섞인 정신파가 느껴진다.

- 저놈을 죽여!

위험. 시야가 또렷해졌다.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진 나무 인간이 일그러진 얼굴로 앙상한 가지를 뻗었고, 동호회 직원은 애매한 표정을 짓고 천천히 이연우를 둘러쌌다.

빽빽하게 둘러싼 직원. 하나둘 품에서 무기를 꺼낸다. 테이저 건, 나이프, 권총, 삼단봉 등등….

이연우를 겨눈 수많은 무기 앞에서, 이연우는 심호흡을 반복하며, 미래 이연우에게 받은 것을 확인했다.

머릿속에 생겨난 자그마한 티켓 하나. 주사위와 멀찌감치 떨어진 그것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설득 성공 확정뽑기권(1회용)]

“오….”

포위된 상태에서도 이연우는 감탄을 뱉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주변 사람들을 보았다.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이연우를 포위한 직원. 수많은 무기가 당장이라도 이연우를 향해 쏟아질 듯하다.

누군가가 무기를 고쳐잡으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어쩔 수 없어요.”

이연우는 태연하게 그들을 보다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확정뽑기권은 아껴야지.’

이런 비장의 아이템은 절체절명의 위기가 올 때까지 애지중지 아껴둬야 하는 법.

그렇다면, 이 위기는 어떻게 돌파하는가.

이연우가 잔뜩 들이마신 숨을 한 번에 쏟아냈다.

“잠깐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유언이라면 남기십시오.”

직원들이 멈칫하며 무기를 살짝 내렸다.

이연우는 기도문을 읊듯, 미래 이연우에게 들은 이상목록을 줄줄이 쏟아냈다.

“북풍과 태양, 맬서스의 악마, 수르트의 검, 나비효과, 기독교적 재앙-.“

직원들의 표정이 점점 변한다. 그들도 회사원이다. 미래를 아는 회사원. 이 목록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리가 없다.

대리석 신전의 중심에서 그들은 오직 이연우만을 바라보며, 귀를 기울였다. 그림자 진 그들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점점 차오르며 그림자를 완전히 지워냈다.

이연우가 말했다.

“이것이 제가 미래에서 구한, 이상기후를 물리칠 방법입니다.”

“….”

침묵 속에서 그들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이연우를 둥글게 포위했던 진형이, 이연우를 호위하는 진형으로 한순간에 변했다.

심상치 않게 빛나는 그들의 눈동자 앞에서, 나무 인간이 비명 같은 정신파를 내뿜었다.

- 저걸 믿느냐? 내가 약속한 구원, 내가 약속한 지상낙원을 의심하느냐?

“…너보단 믿지. 왜냐면.”

반장과 투닥거리던 회장이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말했다.

“애초에 너를 믿은 적은 없거든.”

그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저 미래가 너무 암담하여, 이상異常에 기대 생존을 꾀했을 뿐.

“미래를 볼 수 있다면, 당연히 그 원인과 해결책도 찾을 수 있지. 그런데 너는, 원인을 찾으려고 시도조차 한 적 없어. 우리도 적당히 타협했을 뿐이라, 그걸 요구하지 않았고.”

회장이 이연우를 한 번 보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무 인간을 노려봤다.

이상기후를 물리칠 수 있다면, 굳이 이상異常 따위와 타협하지 않는다.

그는 짧게 명령했다.

“격리해.”

“예.”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간다. 바퀴벌레와 원숭이 인간은 얌전하게 구속을 받았고, 북풍과 태양은 애초에 양피지일 뿐.

드래곤이 문제였지만, 골드 드래곤은 저항하지 않았다. 대세를 판단할 능력이 있다. 도리어 직원을 도와 나무 인간을 덮쳤다.

“어리석은 필멸자. 순순히 제압되어라.”

- 도마뱀 따위가 감히!

나무 인간이 제단 아래로 굴러떨어지며 거친 정신파를 내뿜었지만, 드래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무감정한 황금색 동공을 번쩍이며, 몸을 던져 짓누를 뿐.

으지직-!

드래곤의 발톱이 나무껍질부터 속까지 파고들었다. 드래곤은 고고하게 머리를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필멸자여. 너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를 보면 그린 드래곤이 생각나.”

- 미친 도마뱀!

동시에, 나무 인간의 정신지배를 이겨낸 직원들이 다가와, 품에서 주사기를 꺼냈다.

주사기보다는 말뚝에 가까운 외형. 그들은 그것을 나무 인간의 몸통에 꽂아 넣었다.

“수면제 주입!”

- 멸종할 인간 따위가….

천천히 잦아드는 정신파. 나무 인간의 눈이 감겼다. 끊임없이 뿜어지던 정신파가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회장이 명령했다.

“비상격리 제대로 실시하고, 저 나무 놈, 실험실로 보내. 나머지도 제대로 격리하고.”

“예.”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문득 직원 하나가 회장에게 물었다.

“드래곤은 어떻게 할까요?”

“…내버려 둬. 어리석은 짓은 안 할 거야.”

골드 드래곤은 입으로 나무 인간을 물어, 직원의 안내에 따라 실험실로 나무 인간을 옮기는 중이다.

어느 정도 현장이 정리되자, 회장은 이연우를 향해 다가왔다.

이연우는 반장과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는데, 대화를 멈추고 회장을 보았다.

회장은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고맙소. 당신 덕분에 희망이 생겼소.”

“우연히 얻어걸린 일이었습니다.”

정말로 우연한 일이었다. 미래의 내가 살아 있고, 그 내가 정보를 주는 것 전부.

회장은 감탄하며, 어딘가로 손짓했다.

“부디 안쪽에서 이야기를 더해주시오. 앞으로 어찌 행동할지,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오.”

“알겠습니다.”

반장은 퉁퉁 부은 얼굴을 매만지다가 중얼거렸다.

“염병. 잘된 일이긴 한데. 내 이빨은….”

***

신전 안쪽의 회의장.

이연우만 있다. 격멸대대의 1차 진입조가 들어와, 동호회가 격리절차 미준수로 탈탈 털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반장은 이빨을 치료받으러 갔고.

대화를 나누기에는 시간이 꽤 남았다.

정적 속에서 이연우는 가만히 탁자를 두드렸다. 탁자 위에 올려둔 물총과 정신 한 구석의 확정뽑기권.

미래 이연우를 보고 떠오른 아이디어.

한참을 고민하던 이연우는 조심스럽게 물총을 쥐었다.

“빗물을 다 소화했다고 했지.”

생각해보면, 빗물의 독성에 저항했으니 이 몸에 항체 같은 것이 있는 건 아닐까? 항체가 버티는 한도 내에서 빗물을 흡수할 수 있지 않을까?

결심했다. 이연우가 빗물 한 방울을 손으로 찍어, 머리에 문질렀다.

“….”

잘 모르겠다. 변한 게 없다. 머리카락은 멀쩡하고, 활력도 증가한 느낌이 없다. 한 방울이라 그런가.

‘꾸준히 흡수해봐야겠어.’

다음으로 이연우는 눈을 감았다.

[설득 성공 확정뽑기권]

어쩐지 주사위와 뽑기권의 거리가 아까보다 멀어져 있지만, 이연우는 뽑기권을 살폈다. 주사위를 이용하는 새로운 방법. 주사위의 리스크를 조절하는 방법.

‘이거 나도 만들 수 있지 않나?’

이연우가 주사위를 불렀다.

“음…. 찾기 성공 확정뽑기권 제작.”

가벼운 실험.

데구르르-

실패!

새로운 뽑기권이 생성되었다. 이연우는 그 이름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찾기 실패 확정뽑기권]

“주사위. 영수증 찾기.”

에코백인가, 지갑인가, 주머니인가, 어딘가에 넣어둔 영수증을 찾겠다고 선언하자, 주사위가 굴렀고, 실패했다.

실패 뽑기권이 사라진 자리를 보던, 이연우는 생각했다.

‘내가 뭘 찾으려고 했지?’

뭘 찾으려고 했는데.

이연우는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냈다. 중요한 건 뽑기권 실험이다. 결과를 대강 알았다. 이연우의 얼굴에 밝은 빛이 어렸다.

‘이거면 리스크를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어.’

평소에 뽑기권을 만들어두면 된다. 실패 뽑기권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판정에 소모하고, 성공 뽑기권만 쌓아두면 된다.

이연우가 빠르게 입을 달싹였다.

“찾기 성공 확정뽑기권 제작. 찾기 성공 확정뽑기권 제작. 찾기 성공 확정뽑기권 제작. 찾기 성공 확정뽑기권 제작. 찾기 성공 확정뽑기권 제작.“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진땀을 뺀 회장은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들어오다가, 흠칫 멈췄다.

“괜찮소? 아파 보이는데.”

이연우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회장을 보았다. 회장이 뒷걸음질 쳤다.

엉망이 된 머리와 핏발 선 눈.

그리고, 정신 한쪽에 수북하게 쌓인 실패 뽑기권. 단 한 장도 없는 성공 뽑기권.

“괜찮, 괜찮습니다. 정말요.”

“그렇다면야….”

회장은 이연우의 건너편에 앉아, 입을 연다.

“그러면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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