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의 남자
소대장은 자신감 있게 검은 컨테이너 문을 탕탕 두드렸다. 컨테이너와 전투 슈트의 단단한 장갑이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는 자신이 쥐고 있는 독특한 총을 살짝 들어 올렸다.
“이 무기도 공간 격리 특성이 있어서 충분히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행이네요.”
긴장을 완전히 내려놓은 이연우가 한결 풀어진 표정으로 거리를 둘러보았다.
이연우가 총을 쏘아 깨트린 가로등과 곳곳에 달린 CCTV와 핸드폰 카메라. 거기에 잡혔을 자신의 모습.
일말의 꺼림칙함이 남았다. 이연우가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 제가 막 총 쏘고 그랬는데. 이거 뒷수습은 어떻게 될지.”
“정보부에서 처리할 거고, 경찰 신고도 무마됐을 겁니다. 저희가 출동할 때면 이미 관련 정부기관에 연락이 돌아간 상태입니다.”
완벽하게 해결된 듯한 이상현상에 뒷수습까지. 더 걱정할 거리가 없다. 이연우는 늘어뜨린 에코백을 어깨에 걸쳤다.
“그러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예.”
소대장의 배웅을 받으며, 이연우는 길을 건너 원룸 건물로 향했다. 태연하게 유리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사라지는 이연우.
병사 하나가 그 뒷모습을 보다가 소대장 옆으로 다가와, 잡담을 나눴다.
“소대장님, 저 사람, 그 조사원 아닙니까? 막 이상개체 끌고 다니는 그.”
“맞을걸.”
“그러면 이런 도심 말고 어디 외딴곳에서 혼자 살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헛소리는 그만하고 돌아갈 준비나 해라. 저기 수송부대 오네.”
소대장이 고갯짓한 길의 저편.
부우웅-
컨테이너를 들어 올릴 중장비, 컨테이너를 실을 트럭, 전투원을 수송할 SUV 차량까지 줄줄이 길을 달려온다.
“복귀한다!”
전투원은 대열을 맞춰 차량에 탑승하고, 컨테이너는 빠르게 적재되어, 그들은 언제 있었냐는 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직 박살 난 도로와 사람들이 사라진 빈자리만 남았다.
***
사용한 완강기를 대강 정리한 이연우는 반장과 통화했다.
- 그래, 해결됐다고?
“예, 반장님. 끝났습니다.”
이연우는 눈살을 찌푸리고, 편의점 도시락을 보았다. 거칠게 휘둘러서 김칫국물이며 반찬 따위가 다 넘쳤다.
먹기 싫어지는 비주얼이지만, 배가 고프니 어쩔 수 없다. 한 손으로 힘겹게 비닐을 뜯고, 전자레인지에 도시락을 집어넣은 이연우가 통화를 이어갔다.
“이제 보고서 쓰면 됩니까?”
- 두 개만 쓰자. 하나는 전체적인 상황보고서고, 하나는 네가 확인한 이상개체 특성 보고서. 특성 보고서부터 써서 올려.
“예, 점심만 먹고 바로 쓰겠습니다.”
- 오냐, 고생했다.
통화가 끝나니 전자레인지도 다 돌아갔다.
식탁에 앉은 이연우는 허겁지겁 도시락을 퍼먹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래서 무슨 이상異常이었지?’
회사에서 확인하지 못한 이상개체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처음 조사 일을 나갔을 때 본 안개괴물도 최초 발견된 개체였으니까.
싹 비운 도시락을 옆으로 치운 이연우가 노트북을 켜, 회사 정보망에 접속했다.
하얀색 배경의 문서 작성 페이지.
“공간 이동은 확실하고. 움직이기 시작했고. 문? 문 앞에 서 있다가 누가 열어주면 같이 들어가서 뭘 하는 거 같은데. 증식? 전염?”
타닥타닥-
천천히 보고서를 작성하던 이연우가 문득 손을 멈추고 고민하다가 대충 작성 완료 버튼을 눌렀다.
‘자세한 내용은 연구자들이 밝혀내겠지.’
남은 보고서는 상황을 서술하는 것뿐. 기억을 떠올려, 문 앞의 남자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창 보고서를 작성하던 중이었다.
띵띵띵띵-!
돌연 처음 보는 번호에서 전화가 왔다. 벨소리를 쉴 새 없이 울리며, 진동으로 부르르 떠는 핸드폰.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낀 이연우가 바로 핸드폰을 주워들었다.
“여보세-”
- 이연우 조사원 맞습니까?
높고 빠른 목소리가 다급하게 스피커를 뚫고 귓가를 때린다. 저도 모르게 통화 소리를 줄인 이연우가 말했다.
“예, 맞는데요. 누구-”
- 방금 그쪽이 신고한 이상개체 받은 쪽인데, 지금 사고가 터졌습니다!
“사고요? 뭔-”
- 그 이상개체들, 이쪽 사람들 잔뜩 잡아먹고 사라졌습니다! 지금 그쪽으로 갔을 확률이 가장 높으니까, 조심하십시오!
“….”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한, 몸서리쳐지는 감각. 이연우는 침을 꿀꺽 삼키고, 에코백부터 찾아 어깨에 걸쳤다.
- 여보세요? 듣고 있습니까?
“예, 듣고 있습니다. 그보다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 그것들이 직접 문을 열고 닫았습니다! 자료도 보내드리겠습니다! 만약 정말로 그쪽으로 갔으면, 바로 연락해주세요!
뚝, 통화가 끊겼다.
이연우는 멍하니 핸드폰을 보다가 벌떡 일어났다. 자료 확인은 걸어가면서도 할 수 있다. 그보다는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띵-!
바로 온 동영상 파일을 열면서, 이연우는 현관으로 달렸다. 살짝 떨리는 손가락은 CCTV 영상을 앞으로 돌리고, 발은 운동화를 구겨 신으며 집 밖으로 나간다.
“….”
벌컥 열린 현관문. 이연우는 문밖으로 나가다 말고 걸음을 멈췄다.
원룸 건물의 복도.
짧지 않은 복도와, 좌우로 늘어선 현관문 여럿. 그리고 현관문마다 앞에 서 있는 사람들. 이연우가 끈으로 묶었던 사람부터, 전투 슈트나 전투복을 입은 전투원들이 문마다 이마를 기대고 서 있다.
꽈악-
이연우는 현관 손잡이를 부서져라 잡고는, 천천히 문 너머로 머리를 뺐다. 현관 모서리로 빼꼼 삐져나온 한쪽 눈.
멀리 보이는 엘리베이터와 비상구마저도 사람들이 등을 보이고 서 있다.
‘층이 봉쇄됐다고?’
머리가 차갑게 가라앉는다. 심장이 빠른 박동으로 뛰며 전신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완강기.’
창가의 완강기로 내려가면-
“…언제.”
현관에 몸을 돌린 이연우가 가라앉은 얼굴로 창문을 보았다. 언제 이동했는지, 연구원 복장의 사람 셋이 창가에 빼곡히 붙어 있었다. 거리를 내려다보듯, 창문에 이마를 붙인 자세로.
이대로면 꼼짝없이 당한다. 살길을 찾아야 한다.
‘문 앞의 사람. 문. 맞아, 문부터.’
이연우는 다시 몸을 돌렸다. 조금 열려 있는 현관문. 조금 더 밀어 활짝 열고, 문을 고정하는 도어 스토퍼를 아래로 내린다.
그리고는 에코백에서 드릴을 꺼냈다.
‘문이 닫히지 않으면, 일단 이상현상은 피해.’
고속으로 스치는 생각 속에서, 그는 분명히 떠올렸다. 원룸 건물과 편의점으로 들어간 사람들, 문이 닫힌 뒤 일이 벌어졌다는 기억의 파편을.
위이잉-
드릴이 맹렬하게 회전했다. 드릴 끝이 노리는 부분은, 문이 열린 상태에서도 문틀에 고정된 경첩 부분.
키이이잉-!
나사나 부품을 분리할 생각도 없이, 구멍을 연속으로 뚫어 이음새를 끊어버리겠다는 손짓. 불티가 마구잡이로 날리며, 현관문의 모퉁이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쾅!
마지막으로 문을 걷어차, 문짝을 복도로 쓰러뜨린 이연우가 드릴을 총처럼 쥐고 사방을 둘러봤다.
현관문마다 늘어선 사람들.
‘아직 움직이지는 않았어.’
하지만 언제든 움직일 수 있다. 이웃이 손을 뻗었던 때를 기억한다. 전투원은 물론이고, 민간인이나 연구원도 위험하다.
‘계단.’
혼자서 다수를 상대하려면 좁은 길목으로 유도하는 편이 나았다.
이연우는 재빠르게 발을 놀려, 계단을 타고 올라 복층에 자리했다. 짐을 넣어둔 박스까지 계단 근처에 옮긴 후, 이연우는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방금 통화한 사람.
“이연우 조사원입니다. 여기 왔습니다. 전투원이랑 연구원까지 이상개체가 되었습니다.”
- 알겠습니다! 회사에서 사람이 출발할 겁니다. 너, 빨리 그쪽에 연락해! 이쪽으로 출동하라고!
누군가에게 지시하는 목소리.
이연우는 계단 아래에 주의를 기울이며, 질문을 던졌다.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그리고 누가 옵니까? 어지간한 대응으로는 안 될 것 같은데요.”
- 지우개를 쓸 겁니다.
격리가 힘든데, 연구 가치도, 이용 가치도 낮은 개체. 파괴를 망설이지 않는다.
“아.”
이연우가 다소 안도하며, 통화를 마무리했다. 지우개면 확실하지. 직접 코앞에서 겪었기 때문에 잘 안다.
“알겠습니다.”
- 조금만 버티고 계십시오.
통화가 끊어졌다. 기묘한 침묵이 원룸에 내려앉았다. 귀를 기울이면 들리는 사람들의 숨소리. 이연우 자신의 숨소리와 심장박동.
이연우가 꽈악 주먹을 쥐고, 창가의 이상개체들을 보았다.
‘맞설 준비는 마쳤어. 지금은 저것들을 조금이라도 파악해야 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긴장을 유지하며 이연우는 저쪽에서 보내온 영상파일을 확인했다. 소리 없는 CCTV 기록.
어딘가의 창고.
마치 격납고 같은 그곳에 검은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이 들어오고, 몇몇 연구원이 손에 종이를 들고 운전수를 맞이했다.
컨테이너와 운전수를 번갈아 보며 무어라 말하고 종이를 팔랑이는 그때.
스르륵, 컨테이너 문이 열렸다. 그 소리가 작지 않았는지, 연구원과 운전수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렸지만, 늦었다.
이상개체들이 자유를 찾았다.
하나는 컨테이너 밖으로 걸어 나오고, 하나는 격납고의 문 앞에 서더니 문이 저절로 닫히고, 나머지는 공간을 이동했다. 아마 부서 어딘가로 흩어졌겠지.
그리고, 끝이었다. 격납고 문이 닫히기 무섭게 CCTV가 망가졌다.
이연우가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문을 직접 열고 닫는, 아냐. 이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핵심은, 밀폐된 공간에 저것들과 함께 있으면 이상개체로 변이한다는 사실.
이연우가 드릴을 놓고, 총을 들었다. 그는 창문을 겨눴다.
‘건물도 넓게 보면 밀실이지 않을까?’
모든 창문이 닫히고 모든 출입구가 닫히면, 건물도 밀실이나 다름 없지 않을까.
물론 저 이상개체의 영향력이 그렇게 큰지는 모르지만, 이연우는 작은 가능성도 무시하지 않았다.
탕-!
와장창!
유리창이 깨져나가며 바람이 훅 불어왔다. 유리 파편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창가에 선 사람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
바르작-
창가에 선 세 명의 사람이 동시에 몸을 돌렸다. 신발에 짓밟힌 유리 파편. 그들은 고개 숙인 자세로 눈동자만 도로록 위로 굴렸다.
시선이 마주친다. 이연우는 박스를 계단 아래로 던질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