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의 남자
당장 박스를 집어던질 자세를 취한 이연우는 이상개체를 내려보며 말했다.
“내 말을 알아들을지 모르겠는데. 이쯤에서 그만하자. 여기서 더 나가면 나도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진심이 담긴 위협.
지우개가 도착하기 전에 막다른 곳까지 몰리면, 이연우는 망설임 없이 주사위를 굴릴 것이었다.
‘단순한 피해는 별 의미가 없어 보여. 단순한 공간 이동도 무의미하고.’
눈을 번뜩이며, 이연우는 미리 판정들을 떠올렸다.
그 위협을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다. 창가의 이상개체 셋은 여전히 미동도 없이 이연우를 주시했다. 감정과 생각을 엿볼 수 없는, 무기질적인 눈동자.
“….”
“….”
눈도 깜빡이지 않는 이상개체와 눈싸움을 하는 그때였다.
저벅-
무거운 발소리가 들린다. 현관이다. 발소리는 한 번으로 멈추지 않고, 천천히, 한 걸음씩 가까워졌다.
저벅- 저벅-
이연우는 목을 쭉 빼 난간 아래를 보았다. 그곳에는 전투 슈트를 입은 전투원이 있었다. 헬멧과 전투 슈트가 한눈에 내려 보인다.
딱 봐도 튼튼한 질감의 무장. 이연우는 무거운 에코백을 옆으로 던졌다.
‘어차피 총은 별 소용 없었겠어.’
방호구를 둘둘 두른 전투원 상대로 권총이 의미가 있을까. 영화에서나 볼 법한 킬러처럼 틈새만 노려 쏘는 실력이 있지 않고서야.
‘박스를 던져서 올라오는 거 막고, 그 다음으로 주사위를-’
그리고, 이연우가 시선을 돌려 다시 창가의 이상개체를 확인했을 때. 이연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창문 앞에 서 있던 세 명의 이상개체가 움직였다. 계단 첫 칸부터 세 번째 칸까지 줄줄이 늘어서 있다. 여전히 고개를 조금 숙이고, 눈동자만 올려 이연우를 보는 자세로.
이연우는 박스를 붙잡은 손을 떼어내었다.
“그래, 이상異常한테 무슨 위협을 하냐.”
행동으로 보여줘야지.
이연우가 주사위를 불렀다. 그리고는 평행세계의 자신을 본 후 꾸준히 생각해온 판정들을 단번에 떠올렸다.
‘리스크가 덜 위험한 것부터.’
시작은 미끄러짐. 다음은 다리 골절. 다음은 감각 상실. 다음은 근력 상실. 실패하거나 대실패하더라도 크나큰 위험은 부르지 않는 판정.
‘하나쯤은 성공하겠지.’
연이은 요청에 주사위가 신나서 펄쩍 뛰어오르고는, 경쾌하게 구르기 시작했다.
데구르르-
성공! 꽝! 실패! 꽝!
우당탕!
돌연 사람들의 발바닥이 미끄러지더니, 그대로 앞이며 뒤로 자빠졌다. 전투원은 헬멧으로 바닥을 쾅 박았고, 계단의 사람들은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지며, 한 곳에 뒤엉킨 사람들.
미소를 지은 이연우는 곧장 그 위로 박스를 집어 던졌다. 쾅, 계단에 부딪혀 튕긴 박스가 연구원의 명치를 때린다.
그리고는 침묵.
“….”
“….”
이상개체들은 방바닥에 볼을 댄 자세로, 다른 사람한테 짓눌린 자세로, 뒤로 넘어진 자세로, 눈동자만 움직여 이연우를 보았다.
이연우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손만 더듬더듬 움직여 다른 박스를 찾았다.
‘이걸로 버티다가, 밀리면 치명적인 판정을 굴리자.’
물론 개체의 숫자가 많긴 하다.
이연우는 몸을 뒤로 빼며 시야를 넓게 두었다. 원룸 1층을 전부 시야에 넣었다. 언제 어디로 이동해 와도 바로 반응할 수 있게끔 곤두선 긴장.
그 긴장이 얼마나 유지되었을까.
깜빡-
눈꺼풀이 닫혔다가 떠지는 찰나.
원룸 거실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
“….”
원룸 바깥에 있던 모든 이상개체가 난간 아래에 빼곡히 모여서 이연우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전투원은 물론, 이연우가 노끈으로 묶었던 사람들이 눈동자만 굴려 이연우를 본다.
헬멧 너머로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시선. 카메라 렌즈처럼 섬뜩한 시선들이 일제히 이연우에게 향했다.
저것들이 한 번에 우르르 몰려온다면….
이연우는 침착하게 주먹을 쥐었다. 빠른 심장박동과 혈관을 타고 전신을 휘도는 피. 저로 모르게 가쁘게 반복하는 호흡을 느릿하게 가라앉힌다.
‘흥분하지 마. 과하게 긴장하지도 마.’
냉정과 침착을 유지해야 산다. 실수하지 않는다.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다.
“일단은.”
후다닥-
이연우는 계단 근처의 벽에 기대 시야를 최대한 넓게 두었다. 언제 복층으로 올라올지도 모르니까.
복층과 1층을 한눈에 담으며, 이연우는 핸드폰을 더듬어 통화부터 걸었다. 상대는 바로 받았다.
- 예, 이연우 조사원님!
“언제 옵니까? 지우개, 언제 도착합니까?”
- 잘 모르겠습니다.
“예?”
시야를 유지하느라 차마 핸드폰을 노려보지 못했지만, 눈매가 험악하게 좁혀졌다. 이연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 그쪽에 연락 갔고, 바로 출동했다고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우개가 저희 쪽 부서가 아니라, 정확한 시간은 모릅니다. 그쪽 연락처 드릴 테니, 그쪽에 연락해보시는 게….
우리 담당이 아니니 담당부서로 연락하라는 소리.
이연우는 뚝, 신경질적으로 통화를 끊고는, 핸드폰을 높이 들었다. 이연우는 확 핸드폰을 난간 아래로 던졌다.
빠악-!
이연우를 주시하던 최초의 남자의 이마를 강타하는 핸드폰. 모서리로 제대로 찍었다.
“….”
머리가 살짝 밀려났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왔다. 찢어진 이마에서 한줄기 핏물이 흘러내리는데도 여전히 이연우를 보는 눈.
이연우는 짜증이 담긴 눈으로 마주 봤다.
‘컨테이너에서 탈출했으면 그냥 다른 곳으로 가지, 굳이 나한테 와서 난리야.’
통화로 시작된 울분이 들불이 되어 온 마음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한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런 일이 도대체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고, 세기도 싫다.
‘그냥 삭제 돌려버릴-’
짝-!
경쾌한 타격음. 이연우가 자기 뺨을 때렸다. 붉게 부어오른 뺨을 매만지며, 이연우는 중얼거렸다.
“진정해, 살아야지. 화낸다고 사는 거 아니야. 도움 안 돼.”
삭제 굴렸다가 대실패하면, 그래서 불멸 특성이라도 생기면 감당이 안 된다.
“그런 판정을 굴릴 정도로 몰리지 않았어.”
이연우는 계속 중얼거리며 마음을 다스렸다. 아릿한 고통 속에서 화와 짜증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감정이 물러난 자리를 오직 생존본능만으로 채웠다.
이연우는 이상개체들을 내려보다가, 생각했다. 빼곡한 이상개체.
‘…다 여기 있네? 한 번에 다 넘어뜨리면 탈출할 수 있잖아? 주사위.’
정신 한편의 주사위를 보며, 이연우는 미래 이연우를 따라 하듯 손을 폈다. 그리고는 간절하게 말했다.
“이거 한 번만 성공하자. 딱 이것만. 대성공은 바라지도 않아. 성공만. 그러니까, 미끄러짐 판정.”
데구르르-
주사위가 구른다.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연우는 콱 주먹을 쥐었다. 여전히 주사위는 구르고 있다. 미래 이연우처럼 원하는 결과에 멈추지 못했다.
하지만,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찰나. 1초도 채 안 되는 시간.
이연우는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보지 않아도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듯한, 묘한 확신.
‘성공했다!’
성공!
우당탕쿵탕-!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넘어지며, 마구잡이로 얽혔다. 헬멧에 잘못 맞아 타격음이 들리기도 하고, 보호장구끼리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그 묘한 감각에 집중할 시간이 없다.
이연우는 눈을 빛내며, 곧장 계단을 내려갔다. 한 번에 2칸씩, 성큼성큼. 넘어진 이상개체의 명치를 밟으며 껑충 달려간다.
미동 없는 시선들 속에서 그가 멈춘 곳은 완강기 앞.
‘복도나 엘리베이터나 비상계단은 위험해.’
허겁지겁 로프를 밖으로 던지고, 벨트를 대강 가슴에 끼고, 총에 맞고 유리파편이 남은 창틀을 넘어갔다.
싸악-
맨발인 탓에 유리 파편이 발바닥을 긁었다. 붉은 피가 번진다. 이연우는 이를 악물면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헐렁한 가슴 벨트 때문에 로프를 양손으로 붙잡고는, 천천히 내려간다. 자동으로 내려가는 완강기.
7층에서 6층으로.
이연우는 상쾌한 바깥 공기를 맡다가, 표정을 단단하게 굳혔다. 피부가 쓸려 벗겨질 정도로 로프를 꽉 잡은 손.
“….”
“….”
이연우 아랫집의 창문. 세 명의 이상개체가 창가에 이마를 기대고 이연우를 보고 있다. 완강기가 내려가는 속도에 맞춰, 눈동자가 이연우를 쫓아 움직였다.
6층에서 5층으로, 5층에서 4층으로.
모든 층의 창문에서 이상개체가 이연우를 본다. 빈집에서, 안에 있는 사람을 이상개체로 만들고서.
그렇게 도착한 지면.
이연우는 상처 입은 맨발로 도로를 밟으며 비틀거렸다. 쓰라린 고통이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솟구친다.
그 와중에도 사방을 경계하는 시선에, 문 앞의 사람들이 잡혔다. 원룸 1층의 유리창 너머로 늘어서 있는 사람들.
그리고, 회사의 지원 또한 보았다.
부아앙-! 끼이익-!
밀폐를 피하기 위해서일까. 검은 오토바이 하나가 도로를 가로질러, 이연우 옆에 멈추어 섰다. 그 자리에 남은 스키드마크 위로, 가죽 부츠가 탁 올라왔다.
헬멧에 라이더 자켓을 입은 사람은 품에서 지우개를 꺼내, 손을 수평으로 그었다. 손짓은 멈추지 않았다.
수직으로 연달아 내리긋는 지우개.
원룸 건물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연우가 멍하니 건물이 사라진 자리를 볼 때, 헬멧 너머로 흐릿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핵심 건물 지웠습니다. 생존 개체가 있는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이연우는 그제야 고개를 돌리고, 회사원을 보았다.
검은 헬멧은 증강현실기기인지, 까만 안면부에 푸르고 붉은 빛이 들어와 있다. CCTV와 홈 카메라 등을 해킹하여 일대를 관측하는 시스템과 연계된 지도.
문득 성별조차 모르겠는 사람이 이연우를 보고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연우 조사원님?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그 이상개체가 조사원님을 목표로 삼은 듯해서.”
“아니, 집. 아니. 왜 날 목표로?”
지우개를 든 회사원은 침묵하다가 답했다.
“이상개체를 만드는 어떤 집단이 있는데. 그쪽에서 이연우 조사원님께 관심을 가진 모양입니다.”
“아니, 아.”
이연우는 고통도 잊고, 얼굴을 쓸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