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의 남자
정신이 어지럽다. 한순간에 지워진 집, 집 안에 있던 사람들, 무엇보다 뭔 집단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기분 나쁜 소식.
“아니….”
이연우는 세수를 하듯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완강기의 로프에 쓸려 피부가 벗겨진 손바닥이, 얼굴에 핏방울을 치덕치덕 발랐다.
그 아릿한 고통과 불쾌한 촉감.
이연우가 침착하게 질문을 던졌다.
“뭔 집단이 이 지랄을 벌인 겁니까? 그것도 왜 굳이 저를 목표로.”
“좋은세상만들기 협회라고, 한국지사의 관리를 받는 조그마한 집단인데…. 주사위를 찾다가, 감당이 안 되는 사고를 터트렸다고 스스로 말했습니다.”
“주사위요? 내 주사위?”
생각지 못한 이유.
당혹스러운 목소리에 요원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헬멧의 증강현실 정보를 보며, 흘러가듯 말했다.
“공간격리 부서에 크게 피해를 준 후, 그쪽에서 자진신고했습니다. 전부 자백했는데…. 자세한 건 일이 마무리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이거, 위험한 이상개체 아닙니까.”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눌 때가 아니다. 상대는 공간이동에 증식까지 달린 위험한 이상개체. 걷잡을 수 없는 전염성을 지녔다.
혹시 살아남은 개체가 있을지 경계하고, 작전을 마무리 짓는 게 우선이다.
이연우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짜증, 황당함, 답답함, 분노 따위를 애써 다스린 후, 길바닥에 주저앉아, 유리 파편 몇 개가 박힌 발바닥을 보았다.
“일단, 저는 응급치료부터 받겠습니다. 발바닥이 이래서. 119 불러도 될까요?”
“음. 그게.”
요원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잠깐 고민했다. 이상개체가 남아있을지 모르는 상황,
이 위험구역에 119를 불러도 될까? 특히 구급차는 밀폐된 공간이지 않나. 구급차 문이 열리더니 이상개체가 걸어 나올지도 모른다.
그 망설임을 눈치챈 이연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면 저기 편의점에서 물티슈랑 소독제 같은 거 사다 주십쇼. 응급처치는 제가 직접 할 테니까.”
“작전 중이라 지갑을 안 들고 와서….”
이연우는 말없이 에코백에서 카드를 꺼내 건넸다. 요원은 어색하게 손을 뻗어 카드를 받았다.
“다녀오겠습니다. 혹시 이상개체 나타나면 소리치세요.”
“슬리퍼도요.”
요원이 길을 건너 편의점으로 사라진다.
혼자 남은 이연우는 몸을 웅크리고 가만히 두 손바닥을 내려봤다. 그리고는 유리파편이 박힌 발바닥으로 시선을 옮겼다.
나지막한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빗물….”
하루에 한 방울씩 흡수한 빗물. 그 효과인지 출혈이 벌써 멈췄다. 만약 남은 빗물을 전부 흡수한다면. 사람없는산골펜션에 남은 성분을 조금씩 흡수한다면.
“여기 있습니다. 카드는 안 썼습니다.”
돌연 눈앞에서 잡동사니가 우르르 쏟아졌다. 생각에 집중하느라 기척도 못 느꼈다. 천천히 다리 옆에 쏟아진 것들을 보니, 물티슈, 연고, 밴드, 슬리퍼 따위였다.
이연우가 물티슈로 유리 파편을 잡아 뽑으며 입을 열었다. 고통에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카드는 왜, 안 썼습니까.”
“안에 사람 없어서 그냥 들고나왔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편의점도 이상개체에 당했지.
그렇게 이연우가 대강 응급처치를 마치고 슬리퍼를 신을 때쯤, 요원이 고개를 기울이더니 절도 있게 말했다.
“이상개체 제거 확인. 현 시간부로 작전종료. 이연우 조사원과 해당지점으로 가겠습니다.”
철퍽-
이연우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밴드 너머로 넘칠 정도로 연고를 치덕치덕 바른 발바닥이 질척하게 슬리퍼에 문대졌다. 그는 요원을 보았다.
“어디 갑니까?”
“예. 그 집단, 좋은세상만들기 협회와 협상하는 자리로 갈 겁니다. 그쪽에서 당신과 나를 보기를 원했거든요.”
“…좋습니다. 가죠.”
이상개체를 보낸 장본인을 보러 간다. 이연우가 눈을 확 빛내며, 요원의 오토바이 뒤에 올라탔다.
부아앙-!
오토바이가 망설임 없이 도로를 달렸다.
***
두 사람은 짧지 않은 시간을 달려, 자그마한 공장에 도착했다.
끼이이익-
급정거한 오토바이에서 이연우가 내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3층 건물 정도 되는 큼직한 건물에, 회사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과 장비들이 잔뜩 모여 있다.
총기를 든 특전대원부터, 흥분한 낯빛의 연구원, 컨테이너를 적재한 트럭까지. 분주하고 엄중한 분위기.
“여기입니까? 사람들 많은데요?”
“예. 좋은세상만들기 협회가 가진 이상개체 몇 개 압수하기로 해서. 그거 옮기러 온 사람들입니다.”
요원은 헬멧의 증강현실 UI를 보다가, 앞서 걷기 시작했다. 헬멧에 지도가 켜지고, 내비게이션처럼 그들이 갈 장소를 안내했다.
이연우는 딱딱한 슬리퍼를 질질 끌며 따라갔다.
“좋은세상만들기? 처음 듣는데, 거기 설명 좀 해주십쇼.”
“굉장히 작은 집단입니다. 그 이름대로 좋은 이상개체를 만들어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인데.”
공장의 입구를 지나고, 안쪽의 회의실로 가는 길. 요원은 계속해서 설명했다.
“주요집단처럼 이상장비를 제작하는 전문적인 기술은 없습니다.”
회사가 형광조끼나 기억소거제나 테이저 건을 만들고, 골드버그 클럽이 금괴를 양산하는, 그런 기술은 없다.
하지만.
“자기들이 가진 이상개체로 이상異常을 만듭니다. 그 문 앞의 사람들도 그렇게 만들어졌겠죠.”
“이상異常을 만드는 이상異常….”
이연우는 눈매를 좁히고 생각하다가, 별거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당장 자신만 해도 주사위로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고, 안개괴물도 안개를 만들지 않나.
두 사람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공장 안쪽에 위치한 회의실. 총기로 무장한 경호대대 전투원들이 문 앞에 서 있다가, 헬멧의 증강현실로 출입 허가를 확인했다.
“확인. 들어가십시오. 한국지사 부사장님과 좋은세상만들기 협회의 주요구성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이연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잠깐 옷차림을 내려봤다. 막 입은 옷과 한바탕 난리를 겪느라고 엉망이 된 몸 상태.
핸드폰으로 얼굴을 비춰보니 얼굴에는 핏물이 옅게 말라붙었다. 문득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하하. 나한테 이상개체를 보낸 놈들이 안에 있다는 말이지?’
탁- 탁-
슬리퍼로 바닥을 때려가며 걷는다. 경호원은 몸수색이나 소지품을 압수하지도 않고, 옆으로 살짝 비켜섰다.
벌컥-
문이 거칠게 열린다.
회의실에는 커다란 탁자와 그 주변에 빙 둘러선 사람들이 있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가 경호원을 등에 지고 상석에 앉아 있고,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 사람들이 반대편에 앉아 있다.
그들이 문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중년 남자가 무어라 말하려고 입을 열 때였다.
이연우가 먼저 말했다.
“나한테 이상개체 보낸 인간. 누구입니까?”
“…이연우 조사원. 당신은 화낼 자격이 있지요. 하지만 잠깐 진정하세-”
주름지고 단단한 눈매의 할머니. 부사장이 말을 하다 말았다. 부사장의 눈동자는 이연우가 대뜸 내놓은 신분증에서 멈췄다.
특수조사원 신분증.
“부사장님이시죠? 그런데, 나한테 명령할 권한은 없으시고.”
부사장이고 뭐고, 내 목숨을 위협한 인간들 앞에서는 의미가 없다. 오히려, 목숨을 위협한다면 망설이지 않고 대응할 것이다.
이연우의 눈동자에 섬뜩한 빛이 어렸다. 어딘가 인간이 아닌 듯한, 빗물을 삼키고 주사위를 지닌 자의 이질적인 안광.
철컥- 철컥-
경호원들이 바짝 긴장하며, 총기를 들어 올렸다. 그들은 손가락을 방아쇠에 올렸다. 총구의 방향은 이연우.
이연우는 헛웃음을 흘렸다.
“총 쏘시게요? 그럴 시간에 얼른 대피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연우 조사원. 위험한 짓은 하지 마시오.”
훈장인지 계급장인지 모를 것을 매달은, 부사장 옆의 경호원이 헬멧 너머로 말했다.
이연우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위험한 짓을 하는 게 아니라, 위험한 일이 날 찾아오는 겁니다. 제 소문 못 들어봤습니까? 이상개체가 널린 공장, 회사와 집단이 모인 장소, 사고 터지기 딱 좋지 않습니까?”
“….”
경호원이 침묵하다가, 고개를 돌려 부사장을 보았다. 어쩔지 의중을 묻는 몸짓.
부사장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이연우 조사원. 그러면 우리가 협상 먼저 마치겠습니다. 금방 끝날 겁니다. 그 후의 일은 마음대로 하세요.”
“…그러죠.”
드르륵-
이연우가 옆자리의 의자를 당겨, 그 위에 앉았다. 지우개를 지닌 요원도 이연우의 옆에 앉았다.
부사장은 태연하게 말했다.
“이봐요, 협회장. 그쪽의 요구는 들어줬습니다. 꼭 만나고 싶다던 지우개와 주사위 모두 왔습니다.”
“예, 예.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이상개체 가져가십시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그렇게 위험한 이상개체인 줄 몰랐습니다.”
협회장은 굽실거리면서도, 흘깃, 이연우와 요원을 곁눈질했다. 그러다가 이연우의 시선을 받고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그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성형 기계, 오크통. 침대. 양도하겠습니다.”
사람을 이상하게 바꾸는 성형기계와, 안에 든 액체를 바꾸는 오크통, 꿈의 일부를 현실로 가져오는 침대.
부사장은 협회장을 보았다.
“컴퓨터는요?”
“그게 없으면 저희가 개체를 통제할 방법이 없어서…. 그것만은 안 됩니다.”
“그러면 세 개만 받겠습니다.”
부사장이 고개를 까딱였다. 경호원이 헬멧에 달린 마이크를 켰다.
“개체 셋만 옮기면 된다.”
동시에 회의실 밖에서 분주한 발걸음 소리와 서로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이상개체를 옮기는 기척.
협상이 빠르게 끝났다.
부사장이 탁자에 기대놓은 지팡이를 쥐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부사장은 회의실을 나가다가, 이연우 앞에서 잠깐 걸음을 멈췄다.
“이연우 조사원. 어떻게 할 겝니까? 이들은 우리와 우호적인 집단이라, 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짓은 지양하셨으면 하는데요.”
“…일단 이야기를 들어봐야죠.”
그 대답에 부사장은 고개를 주억이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경호원들이 부사장을 둘러싸며, 문 너머로 사라졌다.
문이 조용히 닫혔다.
“자, 그럼 우리끼리 이야기를 나눌 시간인데.”
이연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끌고 문가로 다가갔다. 여차하면 빠르게 도망치기 위한 자리이자, 이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막는 자리.
좋은세상만들기 협회 사람들이 불편하게 몸을 돌려 이연우를 볼 때, 이연우가 그들을 보며 말했다.
“날 찾았다고요? 이상개체를 풀면서까지?”
“예, 예. 저희가 본의 아니게 위협을 끼친 점은 정말 죄송합니다. 보상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제 말을 들어보세요.”
남자는 눈을 반짝이며 이연우에게 말했다.
“주사위와 지우개를 사용하면, 얼마든지, 안전하게 이상개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상개체를 이렇게 만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연우는 감정 없는 표정으로 남자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