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죽이는 병
협회장이라는 남자는 이런저런 손짓까지 해가며,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제대로 된 이상개체 몇 개만 만들면, 한계가 사라질 겁니다. 무한한 에너지, 무한한 식량, 무한한 공간, 무한한 수명-”
“저기요.”
요원이 지우개를 손안에서 굴리다가 주먹을 쥐었다. 조금 돌아간 헬멧이 정확히 협회장을 보았다.
“당신 때문에, 건물 하나를 지웠습니다. 그 안에 있던 피해자가 한둘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그런 말이 나옵니까?”
헬멧을 거치면서 뭉개진 목소리지만, 그 안에 도사린 분노만은 선명하게 전해진다.
협회장이 눈을 피했다.
“그건 사고였습니다. 의도한 부분이 아니었는데…. 공간이동만 하는 줄 알았단 말입니다. 그렇게 위험한 줄 알았으면-”
“하.”
요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손바닥 안을 구르던 지우개가 손가락 사이에 잡혔다.
당장이라도 움직일 듯 꿈틀거리는 손을, 이연우가 턱 잡았다. 그리고는 총구를 치우듯 지우개를 살짝 틀어, 자신과 반대 방향으로 밀었다.
“진정하세요. 일단 이야기는 듣자고요.”
요원은 가만히 있다가, 몸을 의자에 기댔다. 요원은 이연우에게 맡긴다는 듯, 머리를 돌려 먼 곳을 본다.
이연우가 협회장을 가만히 보았다. 언뜻 차분해 보이는 눈동자와 목소리.
“그래서 우리는 왜 불렀습니까? 주사위로 이상異常을 만들고, 위험한 실패작은 지우개로 지우자고?”
“바로 그겁니다! 얼마나 안전한 제작법입니까! 지금 저희가 주먹구구식으로 만드는 방식에 비하면, 혁신적이지 않습니까?”
신나서 박수까지 치는 협회장. 이연우는 탁자에 손을 올리며, 몸을 기울였다.
“당신 의도는 알겠고. 내가 물어볼 게 두 개 있는데. 그것부터 대답해보세요.”
“질문하시죠.”
“이상개체는 어떻게 통제합니까?”
그 질문에 협회장은 열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듯한, 혹은 키보드를 치는 듯한 손짓.
“컴퓨터 형태의 이상개체가 있습니다. 특정한 개체한테 명령 하나를 부여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사람을 해치지 마라, 주사위를 찾아라, 같은.”
“….”
이연우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협회장을 보았다. 머릿속에서는 이런저런 생각이 스쳤다.
‘그 컴퓨터로 주사위를 통제하면….’
정신 한편의 주사위가 느껴진다. 이연우는 가만히 주사위를 보다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굳이 이런 방법을 쓰고 싶지는 않아.’
주사위는 자신을 적대하지 않는다. 시간이 멈추면 알아서 저항을 굴려주었고, 그동안 함께 헤쳐나온 시련도 적지 않다. 반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인데도 정이 붙을 만큼.
거기에 미래 이연우가 보여준 길과, 자신이 문 앞의 사람들을 상대하며 느꼈던 묘한 감각이 있지 않나. 굳이 통제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한 몸이 될 수 있다는 느낌.
이연우가 입을 열어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주사위는 어떻게 알았습니까?”
“오래전부터 찾던 이상개체였습니다.”
“…주사위를요?”
협회장이 미소를 지었다.
“그 주사위야말로 전능에 가까운 이상개체 중 하나일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감당하지 못하겠지만, 당신은 멀쩡하게 쓰고 있고요.”
확률조작이라는 힘.
이연우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미래 이연우의 수준에 다다르면, 어느 정도는 전능에 가깝다고 자신도 생각했다.
‘그런데도 지구는 망한 상태였지만.’
주사위와 비견할 만한 이상異常은 많다. 당장 지우개만 하더라도 끔찍하다. 그 외에도 회사가 가정하고 있는, 수많은 멸망 시나리오.
더 묻고 싶은 말은 없다. 여러모로 상대할 가치가 없다.
철컥-
이연우가 에코백에서 권총을 꺼내 쥐었다. 협회장의 표정이 굳어도, 이연우는 총을 까딱여 그의 머리를 겨눴다.
“당신들 도울 생각은 없으니까, 나한테 줄 보상이나 말해보세요.”
보상이 마음에 안 들면, 보상의 가치가 자기 목숨값보다 부족하면 그쪽의 목숨을 보상으로 받겠다는 태도. 방아쇠에 손가락이, 협회장의 목숨이 걸렸다.
서늘한 눈빛을 받으며, 협회장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가 작게 말했다.
“아, 그래요.”
그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싫다면 어쩔 수 없죠. 이상개체 하나 보상으로 드리겠습니다.”
“아니, 뭔. 위험한 이상異常 따위는-”
“안전합니다. TV일 뿐이에요. 가끔 이상한 방송을 하는데, 제법 도움이 될 겁니다. 가서 직접 보시죠.”
협회장이 일어나 가벼운 손짓으로 회의실 바깥을 가리켰다. 이연우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다가, 먼저 회의실을 나갔다.
바깥의 소리가, 회사원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쏟아진다.
“조심해서 움직여! 기계형 이상개체야!”
“압니다, 알아요. 내 경력이 몇 년인데.”
SF 영화에서나 볼 법한 큼직한 수면 캡슐 같은 성형 기계를, 냉장고 옮기듯 여러 사람이 달라붙어 옮긴다.
한쪽에서는 오크통을 박스에 담거나, 침대를 여럿이 들어 올려 바깥으로 꺼냈다.
협회장은 그들을 차가운 눈으로 보다가, 이연우를 제치고 어느 방으로 향했다. 이연우와 요원은 그를 따라가며, 그의 설명을 들었다.
“평소에는 노이즈만 끼는 TV인데, 가끔 뉴스 같은 것을 방송합니다.”
“…어떤 뉴스 말입니까?”
“이상異常으로 인한 사건? 사고? 미리 알려주는데, 우리한테는 별 소용 없는 물건이죠.”
다른 회사원이 없는 조용한 방문 앞에서, 협회장이 문을 열었다.
문 안쪽에는 구형 텔레비전 하나가 놓여 있다. 까맣고 하얀 노이즈가 낀 화면과 치지직거리는 소음.
“들어가서 보시죠.”
“…됐습니다. 우선 회사 쪽으로 보내세요.”
이연우는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안 그래도 사건사고에 휘말리는 몸인데, 그 정보를 미리 알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진짜 문제가 없는 물건인지, 회사에 일차적으로 검사를 맡길 생각이다.
어쨌든 TV 자체는 마음에 들었다. 이연우가 협회장을 보았다.
“이번은 넘어가겠습니다. 하지만, 한 번만 더 날 건드리면-”
협회장을 위협하는 그때였다.
- 오늘의 소식입니다.
갑자기 TV에서 유창한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흐릿한 화면 속에서 모자이크 처리가 된 사람 하나가 데스크 뒤에 앉아 말하고 있다.
- 좋은세상만들기 협회의 공장에서 ‘사람을 죽이는 병’이 유출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인류보호회사 한국지사의 여러 사람이 다치거나 죽거나 변이하는….
“유출? 이게 무슨 일….”
이연우와 협회장이 눈을 마주쳤다.
협회장은 당황한 눈빛을 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바로 움직였다. 핸드폰을 꺼내, 공장관리시스템의 어떤 버튼을 눌렀다.
꾹-!
스프링클러가 일제히 작동하며 뿌연 물줄기를 뿜는다. 사람을 죽이는 병이 담긴 액체가 공장을 가득 채운다.
***
쏴아아아-
어찌 반응할 새도 없이 물을 뒤집어썼다. 이연우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물줄기가 턱을 타고 뚝뚝 떨어진다.
TV의 방송, 쏟아지는 물, TV가 있는 방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문을 잠근 협회장.
“이걸 방송을 해? 빌어먹을! 확실한 때에 뿌릴 계획이었는데!”
문 너머로 흘러나오는 고함과 TV를 때려 부수는 소리.
촤악-!
이연우는 일단 우산부터 꺼내 썼지만, 늦었다. 제때 반응하지 못했다.
정체 모를 여러 불안요소 앞에서 뭐가 더 위험한지 파악하지 못했고, 뭘 먼저 대처할지를 바로 정하지 못했다.
“아….”
그렇게 이연우는 사람을 죽이는 병에 감염되었다. 몸과 정신으로 증상이 느껴졌다.
붉게 물드는 시야와 쿵쾅대는 심장. 원인 없는 분노가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치며,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싶게 만든다.
아찔한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은 이연우는 손을 떨며, 주사위를 불렀다.
“저항, 빨리!”
데구르르-
실패!
“아.”
주사위가 한 번 구를 시간 동안 살인병이 뇌수까지 치달았다. 사람을 죽이고 싶은 충동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이연우의 머릿속에서 냉정하고 효율적인 생각이 스쳤다.
‘사람을 죽이는 법.’
살인병의 전염성을 증폭해도 좋다. 자연재해를 굴려도 좋다. 방법은 많다. 사람은 다양한 이유로 죽는다. 대부분이 실패해도 하나만 성공하면, 쉽게 죽는다.
‘살인은 생존보다 쉬워.’
물에 젖은 이연우의 눈동자에 붉은빛이 스치는 때였다. 이연우가 문득 요원을 보았다.
다양한 방호 기능이 있는 헬멧, 가죽으로 만들어진 라이더 복장, 장갑과 부츠. 감염은 피한 요원이 이연우를 유심히 보고 있다.
요원은 헬멧의 마이크에 대고 보고했다.
“사람을 죽이는 병이 살포되었습니다. 이연우 조사원이 감염되었습니다. 눈동자가 붉습니다. 현장에서 대응하겠습니다.”
지우개를 쥔 손이 이연우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그 순간 소생되는 기억. 멸망주의자의 손끝에서 시작된 파괴. 구름을 지우고, 산을 반으로 쪼개고, 주사위의 결과마저 지운 지우개.
이연우의 눈빛이 맑아졌다. 떨리는 손도 평온하게 멈췄다.
“잠깐, 잠깐만요. 저 멀쩡합니다. 진짜요.”
항복하듯 들어 올린 손. 손에 잡힌 우산이 높이 솟아 천장을 찔렀다.
이연우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죽이긴 뭘 죽여. 내가 죽겠는데.’
여전히 눈은 붉지만, 공격적인 생각과 살인충동이 생존본능 아래로 내려갔다.
“…확실합니까?”
“예. 주사위 몇 번은 굴릴 시간이 지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무 짓도 안 했고요.”
“살인충동 같은 건-”
“남 죽이려다가 내가 죽으면 그게 무슨 멍청한 짓입니까. 안 합니다. 그보다, 저 협회장 먼저 잡아 죽입시다.”
요원은 미심쩍은 듯 이연우를 계속 주시하다가, 손을 틀었다.
지우개가 허공을 짧게 긋는다. 쏟아지는 물줄기에 공백이 한 줄 생겨났다가 이어지는 물줄기에 밀려나고, 잠긴 문이 지워졌다.
“이딴 TV 때문에…!”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쏟아지는 방.
협회장은 TV를 벽을 향해 던지고, 내동댕이쳐진 TV를 마구 밟다가 딱딱하게 굳었다. 그가 머리만 돌려 이연우와 요원을 보았다.
“거기 요원님. 주사위부터 지워야 합니다! 저게 무슨 재난을 일으킬지-”
탕-!
총탄이 허벅지를 꿰뚫는다. 한 줄기 핏물이 솟구쳤다. 협회장이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총구를 내려 머리를 조준한 이연우는 차분하게 그를 내려보았다.
‘주사위에 관심을 보였지. 앞으로도 계속 귀찮게 굴 거야. 그러니까 여기서 죽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