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죽이는 병
끙끙 앓는 협회장을 향해 이연우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그때였다.
“잠깐.”
요원이 손을 내밀어 이연우를 막았다. 이연우의 붉은 눈동자가 요원을 보았다. 요원은 헬멧의 귓가에 손을 올린 자세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 부사장입니다.
소형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부사장의 냉담한 목소리다.
- 감염자는 모두 죽이세요. 공장 밖으로 전파되지 않게, 확실하게 처리하란 말입니다. 좋은세상만들기도 죽이세요. 이건 회사에 대한 공격입니다. 철저하게, 악!
이어서, 쿵, 치직거리는 소음, 부사장의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오더니, 경호원이 침착하게 명령하는 소리가 들렸다.
- 방금 명령은 들을 필요 없다. 부사장이 감염됐어. 1소대는 부사장을 데리고 퇴각한다. 남은 소대는 감염자와 좋은세상만들기를 제압하라. 제압이 어려우면….
잠깐 멈췄던 목소리가 단호함을 품고 이어졌다.
- 사살하라.
동시에 총성이 공장 곳곳에서 울렸다. 비명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성. 스프링클러가 쏟아지는 소음을 뚫고도 들리는, 전장의 소리.
“끝났습니까?”
이연우가 자신을 막은 손을 쳐냈다. 총구가 협회장을 겨누고, 붉게 물든 눈동자가 협회장을 노려봤다.
“예. 마음대로 하십시오.”
요원은 말리지 않겠다는 듯 한 걸음 물러섰고, 협회장은 피를 흘리며 입을 벌렸다. 다급한 목소리와, 스프링클러의 물인지 침인지 모를 액체가 입 밖으로 튄다.
“멈춰! 안 돼! 날 죽이면-”
“입 다무세요. 죽이고 싶으니까.”
이연우는 손을 살짝 떨며,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뺐다. 당장이라도 쏴 죽이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그건 조금 뒤에 해도 된다.
일단은 생존이 우선이다.
힐끔, 지우개를 보고 살인충동을 억누른 이연우가 말했다.
“핸드폰 이쪽으로 넘기세요.”
“살려준다고 약속하면-”
탕-!
반대쪽 허벅지가 총탄에 맞았다. 협회장은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으슬으슬 떨었다. 피가 빠져나가 창백한 얼굴과 물줄기를 맞아 빼앗긴 체온.
“출혈로 죽기 싫으면, 아까 버튼 누른 어플 켜서 이쪽으로 넘겨. 아니지. 죽이고 가져가면 되는구나.”
살인병에 감염되어 붉게 물든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난다.
협회장은 다급한 손놀림으로 핸드폰을 밀었다. 거의 내던지는 손. 핸드폰이 물로 젖은 바닥을 미끄러져, 이연우의 발 앞에서 멈췄다.
“요원님, 확인해주십시오.”
“공장관리시스템…. 스프링클러를 이걸로 작동했군요. 원래 있던 기능은 아닌 거 같은데.”
핸드폰을 주운 요원은 마이크로 상황을 보고하면서도, 곧바로 중지 버튼을 눌렀다.
쏴아아- 뚝, 뚝-
스프링클러에서 쏟아지던 물줄기가 멈췄다. 물방울이 몇 방울씩 떨어질 뿐. 이연우가 거추장스러운 우산을 대충 바닥에 내던졌다.
그사이 요원은 무슨 명령을 받았는지, 협회장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왜 이런 짓을 준비했습니까? 살인병은 어디서 얻었습니까?”
“당신들이 안 도울 때를 대비해서…. 성형 기계나 오크통이나 우리 핵심 이상개체인데, 그것까지 빼앗길 수는 없잖아.”
피와 물이 섞여 붉게 물든 웅덩이 위에 주저앉은 협회장이 힘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군인들 헬멧 벗기고 뿌리려고 했는데. 이 TV 때문에.”
“살인병, 어디서 얻었냐고 물었습니다.”
“오크통에서 나왔지….”
어지럽다는 듯 머리를 흔들면서 벽에 등을 기댄 협회장은 절박한 눈으로 이연우를 올려보았다.
“이제 치료를, 그 주사위로 치료를 제발….”
끝까지 이상異常에 집착하는 모습에 이연우는 고개를 저었다.
온갖 일을 겪고 또 교육을 철저하게 받는 회사원에 비하면, 행동양식이나 사고방식이 일반인에 가깝다. 이상異常을 마법처럼 여기는 점이 특히.
TV 하나 똑바로 쓰지도 못하면서, 무슨 주사위를 이용하고 이상개체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건지.
그러다가 이연우는 문득 깨달았다.
붉은 시야. 바닥의 핏물과 협회장의 눈동자의 색이 다르다.
“…당신은 감염 안 됐습니까?”
“치료제를 미리 먹어서.”
“치료제? 어딨습니까? 분량은 얼마나 됩니까?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요원이 다급하게 묻자, 협회장은 눈을 감으며 흐릿한 목소리로 말한다.
“오크통으로 만들었지. 레시피는…. 민트초코 콘 아이스크림 3개, 그린티 콘 아이스크림 3개, 치킨 무, 국물까지 세 개, 피클도 국물까지 다섯 개, 파란 이온 음료 2리터, 파인애플 피자 한 판을 갈아서…. 3분 숙성하면….”
그 끔찍한 레시피에 이연우와 요원은 지금 상황도 잊고, 경악했다. 멍청하게 서서 귀를 의심하다가, 서로를 보며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한다.
이연우가 침도 못 삼키고, 얼른 말했다.
“살인병 레시피를 말한 거 아닙니까? 방해공작 같은 느낌으로?”
“진짜, 진짜야. 그러니까, 제발, 빨리 치료를….”
협회장은 말을 하다 말고, 머리를 푹 숙였다. 몸이 옆으로 쓰러지며, TV가 부서진 잔해 위로 몸을 눕혔다. 감기지 않은 눈이 스프링클러를 올려본다.
요원이 고개를 저었다.
“사망했습니다.”
“아. 이러면….”
이연우는 알 수 없는 아쉬움에 총의 방아쇠를 매만졌다.
‘내 손으로 마무리를 했어야, 아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정신 차려. 옆에 지우개 있어. 그보다는 치료제가 중요하지.’
요원을 몰래 살핀다. 지우개를 손에 쥔 요원은 열심히 레시피를 보고하고 있다.
“…이게 치료제를 만드는 법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예. 알겠습니다.”
“뭐라고 합니까?”
이연우가 묻자, 요원이 장갑 낀 손으로 물기를 탁탁 턴 후 몸을 돌렸다.
“일단 만들어 보라고 합니다.”
“재료는 어떻게 구하고요?”
“드론으로 재료들 보내준답니다. 우리는 오크통을 확보한 뒤, 옥상의 물탱크 옆으로 가라고 합니다.”
“오크통을…?”
이연우는 앞서 걷는 요원과 요원 너머 공장의 한복판을 보았다.
연구원처럼 무장을 하지 않은 회사원들이 미쳐서 날뛰고 있고, 방어구로 무장한 경호원들이 그들에게 얻어맞으면서도 하나씩 기절시키고 있다.
‘지우개 옆에 있는 편이 안전한가?’
이연우는 얼른 요원을 쫓아갔다.
***
난장판이다.
이상개체를 옮기던 공장 중심에서, 방호구를 착용한 경호원과 살인병에 감염된 회사원이 어지럽게 뒤엉켰다.
“정신, 차리십쇼!”
“닥쳐! 일은 돕지도 않으면서 옆에 서서 잔소리만 하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 죽어!”
“아니, 그건 그냥 위험해 보여서-”
“죽어어어!”
이상개체를 옮기던 회사원이 경호원에게 달려들어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두르지만, 경호원의 단단한 무장에 도리어 주먹의 피부가 벗겨지고 있다.
경호원은 가만히 맞아주다가, 한순간 주먹을 확 뻗었다. 정확히 인중을 때리는 주먹.
뻐억-!
회사원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젖은 바닥을 잘못 밟아 그대로 미끄러지며 뒤로 휙 넘어졌다. 회사원이 넘어지는 곳에는 성형 기계가 있다.
“안 돼!”
경호원이 다급하게 손을 뻗었지만, 분홍색 캡슐 형태의 성형 기계가 저절로 열리는 게 빨랐다. 회사원이 캡슐 안쪽으로 들어간다.
쾅!
캡슐이 닫혔다. 경호원이 주먹으로 캡슐을 두드려도, 한 번 닫힌 캡슐은 열리지 않는다. 대신 경쾌한 멜로디와 신난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띵띵띵-!
- 완전히 새로운 나!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특별한 몸으로 세상을 즐기세요!
푸슉, 분홍색 연기가 자욱하게 뿜어진 뒤 문이 열렸다. 더 짙어진 연기. 경호원은 뒤로 물러나며, 연기를 향해 총을 겨눴다.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
뿌연 연기 사이로 사람의 그림자가 언뜻 보인다. 연기가 가시며 인영이 선명해졌다.
“으르르.”
괴물이 서 있다. 늑대인간처럼 잿빛 털이 부숭부숭 나고 등이 굽은 괴물이 주둥이를 쩍 벌렸다. 침이 뚝뚝 떨어진다.
“빌어먹을….”
철컥-
경호원은 입술을 깨물며 총기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동시에 몸을 웅크렸던 괴물이 땅을 박차며 달려들려는 순간.
스윽-
괴물의 상반신이 지워졌다. 덩그러니 남은 머리통과 하반신이 툭 떨어져 바닥을 구른다.
“이건.”
경호원은 멍하니 머리통을 보다가, 발걸음 소리를 듣고 다급히 몸을 옆으로 틀었다.
두 명의 사람이 다가왔다. 지우개를 손에 쥔 특수요원.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오는 남자.
그들이 지나온 길에는 사람들이 넘어져 있거나, 기절해 있다.
“어….”
경호원은 저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더 물러섰다. 지우개와 주사위. 저들은 이곳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들이다. 거기에 저 붉은 눈. 살인병에 감염됐다는 증거.
그는 펄쩍 뛰며 총을 겨눴다.
“정지! 거기서 멈추십시오!”
“예.”
이연우가 멀뚱히 멈추고는, 두 손도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그 총 좀 치워주시겠어요? 내 안전을 위해 당신을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당신 감염-”
“상부에서 명령 내려왔습니다. 도우십시오.”
길어지려는 말을 싹둑 자른 요원이 공장의 어느 한 곳을 가리킨다.
“저 오크통 들고 따라오십시오. 치료제를 만들 겁니다.”
“치료제? 치료제가 있다는 말입니까?”
“예.”
경호원은 서둘러 총을 내렸다. 얼른 오크통을 들어 올린 경호원은 문득 주변을 보았다.
도무지 진정될 기색이 보이지 않는 난장판.
“그런데 어떻게 돌파합니까? 감염자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건….”
요원이 이연우를 본다. 경호원은 경계 섞인 눈으로 이연우를 따라 보고, 그가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미끄러짐, 발목 골절, 기절, 수면, 감각 상실….”
감염자들을 대상으로 주사위가 구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