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76)화 (76/194)

사람을 죽이는 병

감염자를 돌파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한 번 수면에 당한 감염자가 꿈의 일부를 구현하는 침대 위로 쓰러질 뻔한 아찔한 사고가 있었으나, 근처에 있던 경호원의 재빠른 태클에 무마되었다.

그렇게 도착한 공장의 옥상.

녹슨 철문을 열고 나온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서늘한 강풍과 벌떼처럼 무리 지어 날아드는 드론의 무리였다.

위이이잉-

박스를 옥상 한쪽에 내려놓고 돌아가는 드론들. 아이스박스, 음료가 담긴 궤짝, 이것저것이 담긴 박스 따위가 주르륵 늘어섰다.

“저게 다 재료입니까?”

찬바람에 몸을 벌벌 떠는 이연우가 팔짱을 끼며 턱짓을 하자, 경호원이 오크통을 박스 앞에 내려놓고는 머리를 기울였다.

“방역용 분무기도 있습니다. 이건 방역부대 애들이 쓰는 것만 봤는데.”

경호원이 박스를 뒤적이는 동안, 이연우와 요원은 오크통 앞에 쭈그려 앉았다. 이연우가 오크통을 툭 건드렸다.

“레시피 기억나십니까? 저는 아이스크림만 기억나는데요.”

“걱정 마십시오.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헬멧의 증강현실 UI가 반짝이며, 레시피가 출력된다. 요원은 레시피를 슥 읽고는, 오크통의 마개 구멍에 느슨하게 박힌 코르크 마개를 뽑았다.

요원은 몇 차례 오크통을 흔들고 뒤집기까지 하며 통이 텅 비었음을 확인하고는, 오크통을 옆으로 눕혔다. 마개 구멍이 하늘로 향하게끔.

“이제 레시피대로 넣으면 되는데.”

“여기 깔때기 있습니다.”

경호원이 박스에서 큼직한 깔때기를 꺼내, 마개 구멍에 꽂았다. 이제 레시피대로 재료를 주입하기만 하면 된다.

“….”

“….”

이연우와 요원은 망설였다. 진짜 이걸 만들어도 되는 걸까? 진짜 치료제일까? 내 손으로 이런 음식모독적인 것을 만들어도….

경호원이 의아한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안 하십니까? 아래에 감염자들 많습니다.”

“…이연우 조사원님. 제가 레시피를 불러드릴 테니까, 만드십시오.”

“요원님. 저는 감염자이지 않습니까. 요원님이 하시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서로가 서로에게 미루기를 잠시. 무언가를 떠올린 요원이 자기가 하겠다고 말하려 할 때였다.

경호원이 나섰다. 그가 요원을 옆으로 밀어낸 후, 오크통 앞에 앉았다.

“제가 하겠습니다. 옆에 가만히 서서 뭐라 말만 하기는 조금 그래서.”

“알겠습니다.”

요원과 이연우가 얼른 일어나 박스 앞으로 갔다. 요원은 아이스박스부터 열었다. 청색과 녹색인 콘 아이스크림들이 한가득 차 있다.

“이연우 조사원님은 녹차 아이스크림 들어주세요.”

“예.”

경호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먼저 내밀어진 민트초코 콘 아이스크림부터 받았다.

“치료약의 재료가 아이스크림입니까? 달아서 맛있겠네요.”

“어, 음. 그, 콘까지 넣으세요. 콘 아이스크림이 재료라니까 다 들어가야 할 듯합니다.”

이연우가 눈을 피하며 말해도, 경호원은 이상한 점을 못 느끼고 순순히 손에 힘을 주었다. 와자작, 콘과 아이스크림이 뭉개지고, 꾹꾹 누르는 손가락에 밀려 깔때기 아래로 떨어진다.

“민트초코, 녹차. 섞여도 괜찮지 말입니다. 재료 더 넣어야 합니까? 주십시오.”

찌이익-

비닐을 뜯어낸 치킨 무가 손바닥에 올라갔다. 생각 없이 손을 내밀었던 경호원의 헬멧이 흔들렸다. 손도, 목소리도, 치킨 무의 국물도 떨렸다.

“아니, 치킨 무는 왜? 이걸 여기에 넣으라는 말 맞습니까?”

“국물까지 다 넣으세요.”

“무슨 치료약이.”

경호원이 떨리는 손으로 치킨 무를 쏟아붓는다. 한 개, 두 개, 세 개. 치킨 무가 큼직한 깔때기 관을 타고 아래로 떨어지고, 국물에 푸르른 아이스크림이 녹아 흘러내린다.

“재료, 더 있습니까? …피클? 설마 이것도 국물까지?”

“예.”

피클까지 쏟아부은 경호원은 몸을 떨며, 이연우와 요원의 뒷모습을 보았다. 박스를 뒤지고 있는 모양새를 보니, 아직도 재료가 남았다.

‘치료제를 만드는 거야, 음식물 쓰레기를 만드는 거야. 혹시 정신에 작용하는 이상異常에 당했나? 환각? 정신 착란?’

가벼운 의심은 파란 이온 음료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물 쓰레기 같은 무언가를 보는 순간 확신이 되었다.

끼릭-

뚜껑이 열린 이온 음료가 앞에 들이밀어져도, 경호원은 받지 않았다.

“여러분. 이거 정말로 치료제 맞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저도 믿고 싶지 않은데. 협회장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상부에서도 일단 만들어 보랍니다. 그리고 이상개체지 않습니까. 이상한 게 당연하죠.”

이연우와 요원이 하나 같이 그렇게 말하자, 경호원은 다시 손을 움직여 파란 이온 음료를 깔때기에 부었다.

콘 부스러기와 아이스크림과 국물 잔해가 파란 음료수에 시원하게 쓸려 내려간다.

“이게 마지막 재료입니다.”

이연우가 배추 하나를 담아둘 법한 붉은색 플라스틱 통을 건넸다. 경호원은 받지 않았다. 고개를 숙여 내용물을 보았다.

“….”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 경호원이 고개를 들었다. 헬멧 표면에 이연우의 얼굴이 비친다.

이연우가 말했다.

“파인애플 피자입니다.”

잘게 갈린 치즈는 떡처럼 다져졌고, 토마토소스 때문에 붉은빛을 띠었으며, 파인애플과 빵을 비롯한 건더기들이 곳곳에 박혀 있다.

“이게 말입니까?”

“넣으십시오.”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닌데.”

경호원이 넋이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피자였던 것을 깔때기에 쏟았다. 넘치지 않게 조금씩. 꾹꾹 눌러가면서. 마지막으로 깔때기를 탁탁 치면서.

그렇게 모든 재료가 오크통에 들어갔다.

요원은 마개 구멍을 코르크로 막은 뒤, 조심스럽게 오크통을 세웠다.

“지금부터 3분-”

꾸르륵- 부글부글-

오크통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스프가 끓는 소리 같기도 하고, 괴물의 위장이 아우성치는 소리 같기도 하다. 심지어 진동까지 느껴졌다.

오크통에 손을 올린 요원이 화들짝 손을 거두며 빠르게 물러섰다. 넋이 나갔던 요원도, 이연우도 철문 앞까지 물러났다.

찬바람 때문인지 그들은 한곳에 모여 오들오들 떨며, 오크통을 바라보았다. 부르르 진동하는 오크통이 꼭 괴물이라도 되는 듯.

“저거, 저거. 치료약 만드는 거 맞아요? 차라리 제가 주사위 돌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연우가 그렇게 묻자, 요원이 말한다.

“주사위는 리스크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꿈틀대는 오크통을 가리키는 손가락.

“당신이 먹을 치료제입니다. 감염자니까요.”

“아. 아!”

차마 오크통을 보고 있을 수 없다. 이연우는 푸른 하늘을 올려보며, 대책을 세웠다.

‘주사위로 치료를, 아냐. 치료제를 먹는 게 확실해. 물론, 저게 진짜 치료제가 맞다면 말이야. 우선 다른 감염자한테 시험해야지. 그리고 내가 먹어야 한다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3분이 순식간에 지났다. 오크통은 여전히 이상한 소리를 내며 진동하고 있어, 요원이 서둘러 달려가 마개를 뽑았다.

“담을 거!”

“여기, 분무기 물통에 넣으십시오.”

경호원이 방역용 분무기를 오크통 앞에 내려놓는다. 등에 메는 형태의 물통 뚜껑이 열렸다. 그 위로 기울인 오크통.

주르륵-

형용할 수 없는 것이 걸쭉하게 쏟아진다. 탁하고 끈적한 질감, 심해처럼 짙푸르고 혼탁한 색감, 그 안을 둥둥 떠다니는….

“우욱.”

경호원과 요원이 고개를 돌렸다. 헬멧이 냄새를 막았는데도, 비주얼만으로 속이 뒤집혔다. 식은땀이 전투복 안에 맺힌다.

요원은 떨리는 손을 뻗어 이연우를 불렀다.

“이연우 조사원님. 이쪽으로.”

“잠깐, 잠깐만요. 속이 안 좋아요. 우우욱.”

철문 앞의 이연우가 입을 가리고 몸을 숙였다. 멀리서 봤을 뿐인데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생존본능이고 살인충동이고 맨정신이고, 끔찍한 충격에 얻어맞아 쓰러진 느낌.

그때였다.

벌컥-

철문이 열리며 눈이 붉은 회사원이 기세등등하게 걸어들어왔다. 이연우가 쓰러뜨렸던 연구원이다.

“역시 여기에 있었군! 감히 날 넘어뜨려? 내 뇌가 다치기라도 했으면 어쩌려고! 그러니까 너희도 죽…. 저게 뭐야?”

연구원이 모독적인 것을 본 사람처럼 엉거주춤 물러날 때였다.

이연우와 요원과 경호원의 시선이 교차했다. 눈빛만으로 암묵적인 협의가 달성됐다.

‘이 사람한테 먼저 먹이자.’

살인충동을 억제하는 이연우보다는, 증상이 심각한 연구원 먼저 치료하는 게 옳다.

이연우가 냅다 몸을 던졌다. 체중을 실어 강하게 뻗은 두 손바닥이 연구원의 등을 강하게 밀친다.

“윽!”

연구원이 힘없이 밀려나는 동안, 경호원은 장갑으로 그것을 한 움큼 퍼 올렸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그것.

뚝뚝, 옥상에 점점이 흘리며 달려간 경호원이 연구원의 얼굴에 장갑을 처박았다.

“우웁! 으읍!”

연구원이 도리질을 치고, 경호원을 떨쳐내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경호원은 단단하게 연구원을 붙잡았다.

코와 입까지 막은 장갑과 치료제. 끝내 그것을 한 입 삼킨 연구원이 그대로 굳었다. 동공이 확장되고, 정신에 쓰나미가 몰아친다.

경호원이 조심스럽게 물러났고, 세 명의 제작자는 연구원을 유심히 관찰했다. 만약 이상개체로 변이하기라도 하면, 당장 공격할 태세.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우에에엑!”

붉은 눈동자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몸을 웅크리고 몇 차례 헛구역질을 한 연구원은 입가의 치료제를 닦아냈다. 손에 묻은 그것을 보고 진저리를 치며, 정신을 차렸다.

“나는 뭘…. 아. 치료제. 이게 치료제였나? 어떻게 만들었지? 얼마나 있지?”

“오크통 썼습니다. 여기서 계속 만들 수 있습니다. 자, 이연우 조사원님. 어서 드십시오.”

“아….”

이연우는 눈을 꼭 감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주사위로 미각 상실을…. 아냐. 괜히 미각이 강화되면 더 끔찍할 거야.’

더 미룰 수 없다. 이연우는 가만히 입을 열었고, 한 움큼 퍼진 그것이 입으로 들어왔다.

철퍽-

‘우욱.’

시간이 늘어지는 듯한 감각 속에서 그것의 맛이 천천히 번진다.

진득한 스프 같은 질감. 묵직한 건더기.

처음 와닿는 맛은 달다. 이온 음료의 밋밋한 단맛과 아이스크림의 강렬한 단맛이 불협화음을 연주하며 혓바닥을 스친다.

그 뒤로 살짝 시큼한 맛이 쏜다. 앞선 단맛에 치킨 무와 피클이 향이 더해진 괴상한 맛.

그리고, 건더기를 씹었다. 피자 치즈가 뭉친 건더기. 파인애플을 비롯한 토핑이 터지며, 묽은 피자 소스의 맛이 느껴진다.

모든 향과 맛이 뒤섞였다.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자극이 정신을 휩쓴다. 이연우가 눈을 번쩍 떴다. 저절로 벌어지는 입.

“끄으윽!”

“삼키십시오! 치료제입니다!”

“욱! 이, 욱!”

이연우는 바닥에 주저앉아 꿈틀거리며, 차마 말이 되지 않는 신음을 뱉었다. 다른 생각을 할 정신이 없었다. 오직 고통받을 뿐.

영원 같은 찰나가 지난 후, 이연우가 퀭한 눈을 하고는 하늘을 보았다. 그것처럼 파래서 보기가 싫다. 눈을 감고 이연우는 생각했다.

‘이건 아니야. 사람 입에 들어가서는 안 돼. 인격을 모독하는 범죄야.’

자신이, 입과 위장이 음식물 쓰레기통이 된 느낌. 하지만, 이내 이연우가 눈을 떴다.

‘하지만 나만 맛볼 수는 없지.’

이연우가 벌떡 일어났다. 붉은빛이 사라진 맑은 눈이 치료제를 보았다.

“치료제 확실하네요. 빨리 다른 사람들한테도 먹입시다. 아니, 치료합시다.”

경호원과 요원은 물론, 연구원까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경호원이 방역용 분무기를 짊어지고, 연구원이 언제든지 퍼서 먹일 준비를 갖춘다.

“갑시다!”

이연우와 요원은 그들을 앞뒤에서 호위하며, 철문 너머 공장으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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