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77)화 (77/194)

사람을 죽이는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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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의 복도를 걷는다.

경호원은 분무기를 고쳐 잡은 후, 슬쩍 연구원을 보았다. 연구원은 눈을 번쩍이며, 누구 하나 보이기만 하면 치료제를 잔뜩 퍼 올릴 자세를 유지했다.

경호원이 걸음을 늦췄다.

“제가 치료제를 먹이고, 연구원님이 이걸 메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얼렁뚱땅 자신이 통을 짊어지게 되었지만, 이건 적합한 역할 배정이 아니다.

상대는 살인병에 전염된 사람. 아무래도 방호구를 입은 경호원이 접근하는 편이 효율적이지 않을까?

특전대원으로서 던진 합리적인 제안에 연구원은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아니지. 내가 할 거야. 내가 느낀 고통을 나눠줄 거야. 아니면, 자네도 먹어볼 텐가? 그러면 역할을 바꿀 의향이 있어.”

“아닙니다. 연구원님이 하십시오.”

경호원은 기겁하며 걸음을 서둘렀다. 아무리 효율적인 작전도, 이걸 입에 넣어가면서 수행할 생각은 없다.

그렇게 경호원이 빠르게 걷고, 연구원이 경호원을 쫓아 거의 달리기 시작할 때였다.

척, 제일 앞에서 전방을 경계하던 이연우가 멈춰 서며 뒤로 손을 내밀었다. 앞에 뭔가 있다는 손짓.

모두가 따라 멈췄다. 오직 연구원만이 신나서 물통에 손을 들이밀었다.

“앞에 있나? 감염자면 좋겠는데.”

“감염자가 있는데-”

“좋군!”

철퍽!

호다닥!

두 손 가득 치료제를 퍼 올린 연구원이 말릴 새도 없이 달려 나간다. 그러나, 몇 걸음을 뛴 연구원은 곧바로 발걸음이 느려졌다. 그는 멍하니 멈춰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물이 흠뻑 젖은 공장 복도일 뿐이다. 감염자는커녕 사람도 없다.

“감염자는?”

“저기 복도 끝에 있지 않습니까.”

“…저기?”

어슬렁어슬렁 쫒아온 이연우가 복도의 끝자락을 가리킨다. 흐릿하게 보이는 복도 끝. 가장 많은 사람이 있던 공장 중앙이 멀리서 기다리고 있다.

성형 기계가 널브러져 있고, 경호원과 감염자가 맞서 싸우던 공장 중앙.

연구원이 입꼬리를 파르르 떨었다. 그는 눈동자를 아래로 굴렸다. 새삼 느껴지는 질척한 촉감과, 머릿속에서 되살아나는 그, 혼자만 느낄 수는 없는 맛.

“…빨리 가지.”

그들은 연구원에게서 조금 떨어진 후 움직였고, 공장 중앙에 도착했다.

감염자는 모두 제압되어 어디에 묶인 채 몸을 비틀고 있고, 경호원은 그들을 포위한 채 총구를 겨누고 있다.

“죽어, 죽어!”

“조금만 참으십시오. 통신을 받았는데, 곧 치료제가 올 겁니다.”

“치료제 따위 필요 없어! 지금 얼마나 후련한데! 다 죽어어…. 세상에, 저게 뭐람?”

묶인 채로 몸을 마구 흔들던 감염자 하나가 경호원 너머의 연구원을 보았다. 몸부림이 멈췄고, 표정도 이상해졌다.

경호원 몇도 그랬다. 감염자의 반응을 보고 몸을 돌렸다가, 총부터 치켜들었다.

“정지!”

손에 짙푸른 무언가를 잔뜩 묻힌 연구원이 미소를 짓는다.

“아, 안심해. 치료제야. 이거 한 입만 먹으면 정신이 돌아와.”

“치료제…?”

잠깐 침묵하는 경호원들. 그중 소대장이 먼저 총을 치웠다. 미리 통신으로 치료제가 가고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까.

눈동자의 색을 한 번 확인한 소대장이 옆으로 피해 길을 내주었다.

“분량은 충분합니까?”

“부족하면 더 만들어야지.”

“다행입니다. 그러면 빨리 치료 부탁드립니다. 더 있다가는 자해까지 할지 모릅니다.”

“좋지.”

연구원이 히죽히죽 웃으며 다가와,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감염자들을 보았다. 마치 뭘 먼저 먹을지 고민하는 듯한 시선.

감염자들이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할 때였다. 연구원이 가까운 감염자에게 확 다가가, 두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았다. 그가 당했을 때처럼, 코와 입을 우악스럽게 쥐는 손.

“먹어! 먹어!”

“우으으읍! 우읍!”

몸부림이 의미가 없다. 결국 회사원은 치료제를 삼켰고, 치료제의 맛이 영혼을 강타했다. 영혼이 감당할 수 없는 자극. 벌어진 입에서 얕은 숨이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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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비명도 지르지 못한다. 영원 같은 찰나가 지나간 후에야, 감염자는 정신을 차렸다. 몇 년은 족히 늙은, 수척한 얼굴.

돌연 느껴지는 역겨움에 몸을 숙이고, 울분에 찬 고함을 터트렸다.

“우우욱-! 뭘, 뭘 먹인 거야!”

“음? 치료가 덜 됐나? 더 먹어야겠는걸?”

“아닙니다! 치료됐습니다!”

정상으로 돌아온 회사원이 화들짝 놀라며, 연구원을 올려봤다. 연구원은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눈이 아직 붉은데?”

“원래 붉은빛이 돌아요! 눈동자가 원래 이렇단 말입니다!”

“그래…?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모독적인 것이 묻은 손가락이 입속에 들어온다. 회사원은 눈물을 흘리며 치료제를 삼켰다. 손가락을 짓씹었다가는 역시 치료되지 않았다며 약을 더 먹일 것이 분명했으니까.

구에에에엑!

영혼이 절규하는 소리가 넓은 공장을 메아리친다.

두뇌에 때려 박히는 비명에 경호원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고, 감염자는 살인충동도 잊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살인병이 치료된 회사원이 천천히 일어섰다. 적극적으로 빛나는 눈.

“치료됐습니다. 풀어주십시오. 저도 도와서 먹이겠습니다.”

“훌륭해.”

묶어둔 끈을 풀어준다. 회사원은 얼른 경호원에게 다가가, 두 손 가득 치료제를 퍼 올렸다.

그렇게 하나에서 둘, 둘에서 넷, 넷에서 여덟. 치료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감염자가 모조리 치료되는 데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

그러나 경호원들은 긴장을 풀지 못했다.

맑은 눈으로 돌아온 치료자들이 한곳에 모여 대화를 나눈다.

“감염자 더 없습니까?”

“공장 다른 곳에 숨어 있지 않을까요?”

“찾아봅시다!”

“치료제도 더 만들어야지! 몇 사람은 옥상으로 가서 치료제를 만들어! 이건 더 많은 사람이 먹어야 해!”

“어떻게 만듭니까? 아, 말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깨달았습니다. 더 만들겠습니다.”

치료자들은 삼삼오오 조를 짜서 공장을 수색하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정적이 돌아온 공장.

소대장은 멀리서 이 광경을 보다가, 총을 꽉 잡았다. 바짝 마른 입을 열고, 말한다.

“본부, 들립니까? 보고 있습니까? 살인병은 치료되었지만, 다른 것에 감염된 듯-”

“소대장? 맞나?”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소대장과 경호원들이 일제히 돌아서며 총기를 겨눈다. 총구 끝에는 연구원이 있다. 푸른 치료제를 두 손에 치덕치덕 묻힌 채.

“경계하지 말고. 내가 이걸 먹어보니까, 살인병 말고 다른 정신적인 이상異常에도 통할 듯해. 그러니까, 여기를 치료제 생산 공장으로 만드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연구원이 웃는다.

“소대장이 그런 제안서를 써줬으면 좋겠어. 여러 명이 같은 제안서를 쓰면 상부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겠나?”

“…생각해보겠습니다.”

“잘 생각해보라고. 많은 사람을 구하는 방법이니까.”

그 말을 끝으로 연구원이 몸을 돌려 떠난다. 방향은 옥상. 오크통이 있는 곳.

소대장은 그 뒷모습을 주시하다가, 주먹을 쥐었다. 장갑 아래로 식은땀이 흥건하다. 그는 답답한 숨을 내쉬었다.

“들립니까? 이건 우리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방역부대든, 정신이상전문기관이든 부르십시오! 더 늦기 전에 빨리!”

- 이쪽에서도 보고 있소. 보아하니 단순한 치료제가 아니더이다.

한가한 목소리에 소대장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가,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고 목소리를 꾹 눌렀다.

“당연한 소리는 하지 말고. 대응을 하란 말입니다.”

- 대응은 이미 그쪽에서 하고 있는데.

영문을 알 수 없는 말. 경호원은 전부 이곳에 모여 있는데 누가 무슨 대응을 한다는 말인가.

소대장이 화를 참지 못하고 끝내 소리를 치려는 그때였다. 돌연 그들의 자리에 햇빛이 내리비쳤다. 그들이 동시에 올려다본 공장의 높은 천장.

지우개가 지나가, 구멍이 뻥 뚫린 천장.

푸른 하늘 아래 세 명의 머리가 보였다. 이연우, 요원, 경호원. 그리고, 오크통. 오크통을 높이 든 경호원이 악을 썼다.

“소대장님! 잘 받으십쇼!”

곧바로 휙 던져진 오크통이 수직으로 추락한다. 가까운 경호원 하나가 몸을 던졌다. 두툼한 방호구 위로 떨어진 오크통이 퉁 튕겨 나가 공장 바닥에 똑바로 섰다.

- 소대장. 우선 자칭 치료제가 더 생산되는 일은 막으시오. 오크통은 파손하지 말고. 흥미로운 이상개체지 않소.

“…감염자는 어떻게 합니까?”

- 어느 정도 사리 분별은 하는 모양이더이다. 적당히 위협해서 제압하시오. 추가지원이 곧 도착할 테니. 정 힘들면 사살하고.

소대장의 눈이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감염자들을 본다. 그가 총구를 내려 오크통을 겨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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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연우가 처음 이상함을 느낀 때는, 감염자의 치료가 거의 끝났을 때였다. 삼삼오오 모여 감염자를 찾고, 치료제를 만들겠다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고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고통받는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미소를 지은 입가를 매만진다.

‘…내가 이걸 왜 흐뭇해하고 있지?’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고작 살인병에서 치료된 걸 가지고 기뻐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도 아니고, 이연우 자신의 감성이 그렇게 섬세하지도 않다.

‘내가 느낀 고통을 나눠줘서? 아니야. 이건 진짜 아니야.’

한 번 문제를 자각하자, 문제점이 계속해서 발견된다.

애초에, 살인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한다는 행위 자체를 자발적으로 한 것 자체가 이상하다. 감염자와 가까워지는 행동을 할 리가 없다.

‘치료됐으면 도망쳤어야지. 왜 여기에 남아 있는 거야.’

미소가 딱딱하게 굳는다. 뭔가가, 잘못됐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다.

“…요원님. 경호원님. 잠시만 이리로.”

두 사람의 팔을 끌고 철제 계단 아래로 간다. 두 사람 역시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순순히 따라갔다. 다른 사람들을 한 번 살핀 그들은 목소리를 낮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연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치료제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뭔가, 저 사람들 이상해 보입니다. 입사동기한테 듣기로는, 정신 관련한 이상개체에 당하면 저런다던데.”

“…이연우 조사원님은 괜찮습니까?”

“애매합니다.”

살인충동만큼 강렬하지 않다. 은은하게 맴돌며 사람의 의도를 왜곡할 뿐.

하지만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지도 않아, 생존본능이 강하게 저항하지도 않는다.

‘어쨌든 당한 건 확실해.’

이연우가 슬쩍 손가락을 치켜들어 옥상을 가리켰다.

“우선 오크통부터 확보합시다. 이게 더 만들어지게 두면 안 됩니다.”

이제 와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치료제에 당한 몸으로 탈출하기도 힘들뿐더러, 치료제 관련한 자료를 이곳에서 찾아봐야 한다.

‘지금은 오크통을 인질로 잡는 게 우선이지.’

감염자가 더 공격적으로 움직인다면, 치료제를 더는 못 만들게 부숴버리겠다고 협박하기 위해서.

“지금은 그게 최선 같네요.”

요원과 경호원은 반대하지 않았다. 그들도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들은 살금살금 철제계단을 올라 옥상에 도착했고, 곧바로 바닥을 지워, 오크통을 경호원한테 던졌다. 경호원 중에는 치료제를 먹은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치료제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몇 초 뒤에 곧바로 도착한다. 그들이 이연우 일행을 보았다.

“오크통 어디 있습니까? 빨리 치료제 만들어야 하는데.”

이연우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오크통은 경호원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보다는 치료제를 연구한 자료부터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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