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78)화 (78/194)

사람을 죽이는 병

옥상으로 올라온 사람 셋은 짐을 옮기던 일꾼들이다. 두꺼운 안전 작업복을 입고, 안전 헬멧을 머리에 느슨하게 걸친 숙련된 노동자.

그들은 어딘가 위험한 눈으로 이연우와 지워진 옥상 바닥을 보았다. 그러다가 키가 큰 사람이 성큼 다가왔다. 짙푸른 치료제가 묻은 입이 열린다.

“오크통. 너희들이 치웠구만.”

불온한 분위기를 풍기는 목소리. 요원이 슬며시 지우개를 쥐고, 경호원이 몸을 던질 태세를 갖출 때, 이연우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치료제를 많이 만들려면 오크통부터 확보해야죠.”

“허. 헛소리. 재료가 다 여기 있는데, 여기서 만들어야 빨리, 많이 만들 수 있지.”

남들에게 치료제를 먹이겠다는 열망에 휩싸였지만, 지능이 심하게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들은 회사원답게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저들이 치료제 제작을 방해했다고.

노동으로 다져진 근육을 꿈틀대며 그들이 천천히 다가온다.

이연우는 그들을 향해 정면으로 다가갔다.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 머릿속에서는 생각이 스쳤다.

‘오크통은 경호대원들이 지키고 있고. 이제 치료제를 어쩌다 만들었는지, 오크통을 연구한 결과가 어떤지, 이런 정보부터 수집해야 해. 그래야 치료제를 파악하고 대응하지.’

주사위를 돌리더라도 무턱대고 돌리는 것보다는 문제점을 세세하게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돌리는 편이 덜 위험하다.

이연우는 그것을 위해서 감염자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코앞까지 다가온 감염자들. 이연우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먹었습니다. 그리고, 더, 더, 더 많은 사람들한테 맛보여줄 생각이고요.”

감염자들이 멈춰 선다. 어쩐지 동료를 보는 듯한 눈으로 이연우를 보며 몸을 기울인다.

“어떻게?”

“오크통 저 작은 걸로 만들어봐야 뭐 얼마나 만들겠습니까. 오크통의 원리와 치료제의 제작법, 이런 연구자료를 분석해 치료제 자체를 대량생산할 방법을 찾아야죠.”

흐르는 물처럼 흘러나온 말에 감염자들이 눈을 번쩍 떴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고개를 열렬히 끄덕이다가, 얼른 몸을 돌렸다.

“이게 맞지.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 말을 전해줘야겠어.”

건들건들 옥상 문으로 돌아간다.

이연우는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요원에게 물어볼 말이 있다. 하지만, 정작 요원과 경호원은 몇 걸음이나 떨어져 있었다. 경계하듯 이연우에게 고정된 헬멧.

이연우가 의아하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이연우 조사원님. 멀쩡한 거 맞습니까? 방금 굉장히 진심 같았는데요.”

이연우의 말이 그럴듯했기에 생긴 의심. 이연우는 헛웃음을 흘렸다.

“제가 진짜 심각하게 감염됐으면 이런 귀찮은 짓은 안 하죠. 그냥, 상수도 찾아가서 물을 치료제로 바꾸려고 했겠죠. 아니면 치료제의 비가 내리게 한다던가. 안개도 괜찮겠네요.”

“….”

서슴없는 발상과 발상을 이뤄낼 능력.

헬멧에 가려진 요원의 얼굴이 굳는다. 지우개를 쥔 손이 살짝 떨렸다. 지우개를 보급받았기에 생긴 자신감이 흔들린다.

‘그 지독한 멸망주의자도 이 사람한테 당했지. 만약 이 사람이 회사 소속이 아니었다면….’

생각은 이어진 이연우의 질문에 멈췄다.

“그보다는, 그 지우개로 사람 안의 치료제만 지우지 못합니까? 저번에 보니까, 멸망주의자는 자기 몸에 침투한 이상異常도 지우던데.”

“…그게 가능하다고요?”

잡생각이 완전히 사라진다. 요원은 도저히 이해가 안 돼, 손에 든 지우개를 물끄러미 보다가 살짝 손을 까딱였다.

옥상의 콘크리트는 내버려 두고 내부의 철근만 지워보려는 시도. 하지만 결과는 단순했다. 옥상이 통째로 지워졌다.

새로 뚫린 구멍을 쳐다보던 요원이 이연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런 건축물도 안 되는데, 어떻게 사람 몸에 침투한 이상異常만 지웁니까? 사람이 통째로 지워질 텐데.”

“그 사람은 하던데…. 막 확률 같은 것도 지우고….”

혼자 중얼거리던 이연우가 문득 깨닫는다.

‘미래의 나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 인간도 지우개와 하나가 됐구나.’

하긴, 주사위가 다섯이나 모여 구르는 것도 꾸역꾸역 막아냈다. 평범하게 이상개체를 이용하는 수준은 훨씬 뛰어넘은 것이다.

“어으.”

이연우가 새삼 몸을 부르르 떨며, 충격을 느꼈다. 그렇게 위험한 인간과 한바탕 싸웠다니. 진짜 대성공이 안 떴으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그때였다.

가만히 구멍 아래를 보고 있던 경호원이 어색하게 말을 꺼냈다.

“이제 내려갑시다. 저 아래에 감염자들도 다 흩어졌습니다.”

뭘 하든 옥상에서 할 일은 없다. 세 사람은 차가운 바람이 부는 옥상에서 공장 내부로 돌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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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안으로 돌아가니, 감염자들은 없고 경호원들만 대강 서 있다. 오크통과 성형 기계 등을 모아둔 장소를 중심으로 적당히 흩어진 경호원들.

소대장이 세 사람에게 다가왔다.

“오크통은 어쨌든 지켰습니다. 하마터면 싸울 뻔했는데, 갑자기 수근대더니 흩어지던데…. 무슨 일인지 아십니까?”

“연구자료 찾으러 갔을 겁니다. 위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이거 되돌릴 방법은 있다고 합니까? 그리고 지원은 옵니까?”

이연우의 입에서 질문이 주르륵 터져 나온다. 하나하나가 중요한 질문.

소대장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방역부대랑 정신정화전문가가 온다고 합니다. 정화를 준비하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하는데. 못해도 한 시간은 지나야 올 겁니다.”

정화라는 말에 이연우의 눈이 밝아진다.

“전문가면 확실히 치료할 수 있습니까?”

“확신은 못 합니다. 이상개체지 않습니까.”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전문가만 믿을 수 없는 이연우는 작게 한숨을 쉰 후, 공장을 둘러봤다.

경호원들이 적당히 주변을 경계하는 공장.

경호원만 있는 게 이상했다. 좋은세상만들기의 구성원을 풀어놓을 리가 없는데, 보이지가 않는다.

“좋은세상만들기, 그 사람들은 어딨습니까? 그 사람들한테 정보를 얻을 생각인데.”

“회의실에서 다 죽였습니다.”

“…예?”

이연우가 황급하게 고개를 돌렸지만, 그 눈에 보이는 것은 무기질적인 헬멧뿐이다.

소대장이 덤덤하게 말했다.

“이곳은 적진입니다. 어쨌든 감염자는 회사원이니 지켜야 하고, 어떤 이상공격을 또 해올지 모르는 적은 사살이 우선입니다.”

“그거….”

이연우는 가만히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안전이 우선이죠. 정보를 얻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살인병이 뿌려지는 스프링클러 말고 어떤 장치가 설치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 소대장의 판단을 이해한 이연우가 가볍게 몸을 돌려 수색에 참여하려는 때.

누군가의 외침이 공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공장 구석에 달린 문에서, 얼른 손을 흔드는 감염자.

“찾았다! 연구실 같아! 연구원은 와봐!”

이연우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경호원과 요원이 그를 따라간다.

***

순식간에 감염자들이 모여들었지만, 그들은 연구실로 들어가지 않았다. 연구와는 연관이 없는 탓이다. 봐도 모르고, 괜히 건드렸다가 귀찮은 일만 만든다.

연구실 주변에 서서 웅성거리는 인파.

“지나가겠습니다.”

이연우가 그들을 뚫고 지나가 연구실 문가에 섰고, 연구실을 보고는 입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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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연구실?’

무슨 폐허처럼 헐벗은 콘크리트에, 종잇장들은 바닥에 널려 있고, 화분이랍시고 가져다 놓은 식물은 이미 죽어 있었다. 심지어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큼직한 모니터 하나만 실험실답다고 할까.

‘일단 들어가자.’

이연우가 고개를 숙였다.

사락-

슬리퍼 끝으로 조심스럽게 종이를 밀어 길을 만들며 쓱 훑어보니, 무슨 요리 레시피 같은 것들이 볼펜으로 잔뜩 쓰여 있다.

[실험기록]

- 위스키 200리터 : 결과 없음.

- 소주 50리터, 맥주 150리터 : 결과 없음.

- 보드카 200리터 : 결과 없음.

- 와인 200리터 : 결과 없음. 왜?

결과 없음, 결과 없음, 결과 없음! 오크통이면 술을 넣었을 때 반응해야지! 왜 변하지 않는 거지? 규칙이 뭐지?

그런 종이가 사방에 널려 있다. 쓰레기처럼 버려진 종이 한 장 한 장이 귀중한 실험기록이다.

‘이걸 다 손으로 썼다고?’

이연우가 혀를 내두르는 동안에도 발은 꾸준히 움직여, 모니터 앞에 도착했다. 근처에 대충 놓여 있는 무선 키보드를 툭 치니, 잠금화면이 자동으로 풀렸다.

불쑥 목소리가 들린다.

“비밀번호도 없어? 보안이 개판이잖아?”

침착하게 고개를 돌려보니, 가장 먼저 치료제를 먹었던 연구원이다. 손에는 여전히 치료제가 묻어 있다. 그는 옷자락에 짙푸른 치료제를 쓱쓱 닦고는 이연우를 옆으로 밀었다.

“비켜봐. 연구자는 나니까.”

타닥타닥 키보드를 치면서, 연구원은 이연우를 힐긋 바라보았다.

“네 제안은 훌륭했어. 역시 대량생산공장으로 만들어야지. 저 친구들은 멍청하게 오크통만 쓰려고 해서, 얼마나 답답했는데. 직관이 여간 부족한 게 아니야.”

“…별거 아닙니다.”

“넌 오래 살아남을 거야. 핵심을 파악하는 직관이 있는 사람이 이 바닥에서 오래 살아남지.”

그렇게 쓸모없는 대화를 나누는 때, 누군가가 이연우의 어깨를 친다.

“…조사원님. 잠깐.”

요원이 작게 헬멧을 돌렸다. 그곳에는 지우개가 지나간 금고가 있었다.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진, 서류 뭉치가 한가득 쌓여 있는 금고.

이연우가 살며시 물러나도, 연구원은 모니터만 보느라 눈치채지 못한다. 또한 경호원이 절묘한 위치에 서서 연구원과 사람들의 시선을 몸으로 막았다.

이연우는 제일 위의 종이부터 집어 들었다.

그곳에는 신경질적인 글씨가 쓰여 있었다.

[개 같은 회사! 갑자기 들이닥치더니 뭐? 관리? 압수를 당하거나, 관리를 받으라고? 내가 돈 주고 내가 산 공장인데? 내가 발견한 보물인데! 빌어먹을 놈들!]

회사를 욕하는 글로 시작된 문서는, 회사를 속이는 법을 치열하게 연구한 내용으로 이어진다.

힘을 주어 꾹꾹 눌러썼는지 잉크의 궤적에 따라 짓눌린 종이.

[내 컴퓨터, 핸드폰은 다 감시한다는 말이지. 그럼 아날로그로 작업하면 될 일이야. 꼴에 감시장비는 설치하지 않은 모양이니까.]

[회사의 간섭에서 벗어나야 해. 오크통과 침대만이 희망이야. 사람을 실험체로 쓰는 성형 기계는 회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간섭하니까.]

그때 요원이 어떤 서류 뭉치를 훑어보더니, 이연우에게 건넸다.

“오크통을 실험한 기록 같습니다. 바닥의 가짜가 아니라, 진짜 중요한 것만 기록한 거요.”

“봅시다.”

괜히 데스크 아래로 쪼그려 앉아 몸을 숨기고, 경호원의 그림자 아래에서 서류를 한 장씩 넘긴다.

의미 없는 실험 기록이 아니다. 협회장의 내심과 의도와 행동을 고스란히 써놓은 기록.

[오크통에는 규칙이 없어. 그러니까, 규칙을 부여하자. 명령을 부여하는 컴퓨터를 쓰면 할 수 있다.]

[일관된 규칙을 가지라고 명령했지만, 그 규칙을 찾을 수 없다! 명령은 제대로 입력됐는데! 도대체 규칙이 뭐지?]

[규칙을 찾았다. 이것은 사람이 괴롭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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