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79)화 (79/194)

사람을 죽이는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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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서류 뭉치를 한 장씩 넘기며, 중요한 문단만 찾아 읽는다. 이연우의 눈동자가 위아래로 빠르게 움직였다.

본격적으로 오크통을 실험한 기록들.

[인간이 싫어하는 재료, 인간에게 해가 되는 결과물. …테마가 확실해. 실험하기 쉬워졌어.]

[사람을 공격하는 질병? 좋아. 나중을 대비해 무기로 비축해야겠어. 소방용 물탱크를 이걸로 채우고, 원하는 공간에만 스프링클러를 가동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보자.]

[회식을 마치고 남은 음식물들이 많다. 아이스크림에 치킨 무에 피자에…. 누가 메뉴를 골랐지? 다시는, 아니, 어쨌든 음식물 쓰레기로 치우기도 귀찮은데, 오크통에 넣어볼까?]

[왜 정신적 문제를 치료하는 약이 나왔지? 재료와 결과물, 둘 중 하나만 테마에 맞으면 되는 건가? 모르겠군. 모르겠어.]

살인병과 치료제를 실험한 기록이 끝났다. 이연우가 눈살을 찌푸리며 종이를 휘리릭 넘겼지만, 도움이 되는 정보가 없었다.

글로 읽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오는 재료와 결과물의 나열일뿐.

‘우욱. 어떻게 이런 걸 섞을 생각을 하지? 치료제를 먹여서 음식의 소중함을 깨닫게…. 아냐. 이건 내 생각이 아냐.’

이상하게 비틀어지는 생각을 바로잡고, 종이를 계속 넘긴다.

사라락-

빠르게 지나간 종이가 끝 무렵에 멈췄다. 마지막 장에 휘갈겨 쓰인 글을 읽은 이연우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건 오늘 일 같은데.”

주사위를 찾으라는 명령을 주입했더니 문 앞의 사람이 사고를 친 이야기.

사고를 알자마자 회사가 냉큼 내민 제안과, 협회장의 끝내 참지 못한 분노.

[성형 기계는 그렇다 쳐도 오크통과 침대까지 내놓으라고? 더는 못 참아! 스프링클러를 뿌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수단을 사용한다! …그 전에 치료제부터 복용해둬야지.]

[끔찍하다! 내 혓바닥이 죽었어! 인간의 고통이란 테마에서 벗어난 게 아니야!]

치료제를 먹었는지 벌벌 떨리는 필체가, 다음 문단부터 단정하게 가다듬어졌다.

[…생각을 해봤는데, 굳이 회사와 갈라설 필요까지는 없어. 채찍과 당근. 사고인 척 병을 뿌리고, 치료제를 제공하는 연극을 해볼까?]

[회사 놈들이 치료제를 먹고 고통스러워하는 꼴을 보면 기분이 참 좋을 거야.]

마치 사고가 왜곡된 듯한, 어리숙한 발상으로 기록은 끝.

더는 기록도, 넘어갈 종이도 없다. 이연우는 종이 뭉치를 뒤집어, 앞으로 돌아왔다.

그곳에 쓰여있는 의미심장한 문장을 내려보던 이연우가 짜증을 담아 종이 뭉치를 내려놓았다. 퍽, 강하게 금고로 돌아간 기록.

‘이것은 고통을 원한다? 빌어먹을. 감염을 되돌릴 방법은 안 쓰여 있잖아.’

한편 요원은 다른 기록을 헬멧의 카메라로 한 장 한 장 기록하고 있고, 경호원은 연구원과 다른 감염자를 경계하며 질문을 던졌다.

“뭐 좀 알아내셨습니까? 저쪽은 아무것도 못 찾은 듯한데.”

훔쳐보니, 연구원은 거의 키보드를 때려 부수려는 기세로 데이터를 탐색하고 있다. 키보드를 쾅쾅 내리치는 손가락과 짜증 섞인 목소리.

“이, 이! 원숭이만도 못한 인간! 어떻게 이런 멍청한 짓거리를 연구랍시고 기록을 하지?”

협회장이 회사의 감시를 알고, 거짓으로 기록한 연구자료다. 아무리 뒤져봐도 연구원이 원하는 정보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답답함은 이연우 자신의 심정과 비슷하여, 절로 꽉 막힌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은 파악했는데요. 이걸 되돌릴 방법은 없네요.”

상황은 단순했다.

오크통의 조합법을 알아내기 힘든 협회장이 오크통에 테마를 부여했고, 오크통은 인간의 고통을 원하게 되었다.

그 결과가 살인병과 치료제다. 감염자 하나만이 아니라, 감염자를 매개로 더 많은 사람을 괴롭게 하는 이상異常.

회사와 좋은세상만들기 사이에 갈등도 있던 듯한데, 그건 썩 중요하지 않고.

“그게 끝이에요. 이걸 고칠 방법은 회사의 전문가나 주사위밖에 없어요.”

안심하기에는 둘 다 문제가 있는 방법들. 치료가 가능할지 모르는 전문가와, 리스크가 존재하는 주사위.

그때 문득 요원이 이연우를 보았다. 증강현실 헬멧의 표면에 비치는 이연우의 얼굴. 진심으로 가슴이 답답한 표정.

연구원이나 다른 감염자 같지 않다.

“이연우 조사원님은 왜 멀쩡합니까?”

“안 멀쩡해요. 이런 일을 벌인 협회장이나 그쪽 사람들 입에 치료제 막 넣어주고 싶어요. 그냥, 참는 거지.”

이연우의 눈동자가 살짝 내려가, 요원의 지우개를 보았다. 처음으로 주사위 자체를 막아냈던 지우개는, 알게 모르게 정신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꼭 트라우마처럼, 지우개만 보면 그 당시의 충격이 떠오르며 생존본능이 곤두설 정도로.

“지우개 없었으면 살인병도 못 참았을걸요. 치료제도 아마, 한참 지나야 깨달았을 겁니다.”

그 말을 곱씹어보던 요원은 느릿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니까, 극도의 위협을 느끼면 일단 정신은 차린다는 말입니까?”

“일단 저는 그랬는데.”

그게 지금 중요한가? 의아한 마음에 요원을 돌아보니, 요원과 경호원의 헬멧이 오직 연구원만을 주시하고 있다.

키보드에서 손을 뗀 연구원. 이연우와 비슷하게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한 연구원이 엉망이 된 옷매무새를 다듬으면서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도 멍청했군. 오크통만 찾던 저 친구들처럼 하나에만 집착하는 꼴이라니.”

대량생산방법을 찾지 못한 연구원은 다른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뛰어난 직관이 대각선으로 튀어 나간다.

“여기에 다른 이상개체도 많지. 꿈의 일부를 현실로 가져오는 침대로 치료제를 가져오면 돼. 명령을 부여하는 컴퓨터를 응용할 수도 있겠지.”

몸을 돌리고는 바닥에 널린 종이를 짓밟으며 나아간 연구원이 멈췄다. 그의 앞에는 감염자들이 기대를 담은 눈으로 그를 보고 있다.

연구원이 말했다.

“대량생산의 단서는 없어.”

마치 뺨이라도 맞은 듯, 감염자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간다. 공장의 이상개체를 모아둔 경호원을, 그들 가운데의 오크통을 본다.

무언가 이상을 느낀 경호원들이 반응하기 전, 감염자들이 달려 나가기 전, 연구원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떠올렸지.”

“어떤 방법이요?”

“침대. 우리 모두 그 끔찍한 치료제를 꿈꿀 자신은 있지.”

감염자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자면 분명 그 치료제 꿈을 꾸겠죠. 그건 꿈속에서도 못 잊을 맛이니까요.”

“그거면 충분하지. 오크통은 경호원이 지나치게 지키고 있으니까, 평범하게, 우리 할 일 하는 것처럼 다른 이상개체 옮기는 척, 침대를 써보자고. 어때?”

작게 소곤이는 연구원의 목소리. 몸을 앞으로 숙이며 그 말에 귀를 기울인 감염자들이 알겠다며 하나둘 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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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우르르, 발걸음 소리를 쏟아내며 움직일 때였다.

스으윽-

돌연 햇빛이 내리비친다. 지우개가 천장을 훑고 지나갔다. 찬 바람이 돌풍이 되어 들이닥치고, 선명한 위협이 그들의 발걸음을 막는다.

“거기. 사우님들. 잠깐 멈추시죠.”

“지우개? 지금 뭘 하는 거지?”

감염자들이 똑같은 감정을 품은 시선으로 요원을 노려봤다. 요원은 마른침을 삼키고는, 지우개를 곧게 치켜들었다.

“더 이상 움직이지 마십시오. 한 걸음이라도 더 움직이면 지우겠습니다. 당신들, 지금 그 치료제에 오염되었습니다.”

위협하듯 한 번 더 천장을 긋고 지나간 지우개. 이제는 남은 부분보다 지워진 부분이 더 많은 천장 아래에서, 감염자들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요원이 원했던 효과는 나지 않은 듯했다.

“….”

“….”

번들거리는 눈빛. 누군가 말한다.

“…헬멧을 썼군. 치료제를 안 먹었어. 그러니까 그딴소리를 지껄이지.”

“오염? 그걸 먹어보면 그런 소리 못할 텐데. 우리는 순수하게 더 많은 사람에게 먹이려는 것뿐이야. 그리고, 저거 정신적 이상문제를 해결하는 약이야.”

“움직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딘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분위기에 요원이 재차 손을 치켜들었지만, 통하지 않는다.

그들이 미소를 지었다.

“이봐. 보아하니 신참 직원 같은데. 너는 우리 못 죽여. 네 말이 맞아서 우리가 오염됐다 쳐도, 즉각 사살할 정도는 아니거든.”

“차라리 이건 어때? 너도 치료제를 먹어봐. 먹고도 같은 소리를 하면, 네 말을 들어주지.”

“맞아. 어딜 감히, 치료제도 묻히지 않은 입으로 명령이야! 너도 먹어!”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요원이 그들을 협박하는 자리가, 감염자들이 요원에게 치료제를 종용하는 자리로 변했다. 그 열기를 품은 목소리와 시선 앞에서 요원이 주춤 물러섰다.

그때였다.

속으로 한숨을 쉰 이연우가 나섰다. 요원의 지우개를 빼앗아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으로는 에코백에서 꺼낸 기억소거제를 쥔다.

‘저런다고 협박이 되나.’

요원을 제치고 한 발 나선 이연우에게 집중된 시선. 이연우가 말했다.

“지우개로 오크통과 침대 지우겠습니다.”

“하하, 지워봐. 재현에는 다른 방법도 많을 테니까 의미가 없-”

“그러면 기억소거제 먹이고, 치료제를 먹이겠습니다.”

“뭐?”

감염자들이 눈을 크게 뜬다. 이연우는 태연하게 말했다.

“저도 치료제 먹어봤는데. 한 번 먹긴 아쉬운 맛이더라고요. 치료제를 먹은 기억을 지우고, 또 먹으면 매번 새롭지 않겠습니까?”

말하면서 깨달았다.

‘이거 기억을 지워도 계속 영향이 남나?’

치료제를 먹은 기억이 없으면, 이걸 남들에게 먹이고 싶은 생각도 사라지지 않을까?

치료제에 유도된, 남들에게 먹이고 싶다는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럴듯하다.

방법을 찾은 이연우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번들거리던 감염자들의 눈이 맑은 빛을 되찾았다.

“미, 미친 소리! 다른 사람들한테 먹여-”

“이리 와보세요. 한 번 실험해보죠.”

“아, 안 돼!”

도망치려고 하지만, 늦었다. 경호원이 빠르게 달려가 멱살을 잡아끌고 온다. 팔다리를 버둥거려도 의미가 없다.

이연우가 기억소거제 한 모금을 그 입에 넣었다. 감염자의 눈이 흐려지고, 몇 번 깜빡인 뒤 정신을 차렸다. 그는 침착하게 물었다.

“…기억이 끊어졌는데. 기억소거제를 먹었군. 지금 날짜와 시간이 어떻게 되지?”

“어떻습니까? 뭘 남에게 먹이고 싶거나, 고통을 나눠주고 싶습니까?”

기억이 지워진 입장에서는 생뚱맞은 질문이지만, 감염자였던 회사원은 순순히 답했다.

“딱히. 그런 생각은 없어.”

“그럼 지금 뭘 하고 싶습니까?”

“날짜를 확인하고, 기억을 잃었던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알고 싶어.”

이연우가 끄덕이더니, 경호원의 등에 달린 물통을 가까이 끌어당겼다. 푸른 것이 질척하게 달라붙은 물통.

회사원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건 뭡니까?”

“기억 안 납니까?”

“기억소거제를 먹었을 텐데, 뭔-”

“먹어보세요. 기억이 되돌아오나.”

말보다 빠른 행동. 물통에 얼마 안 남은 치료제를 싹싹 긁어모아, 입에 처넣는다. 회사원은 눈을 크게 뜨고, 구에엑, 구아아악, 비명을 내지르다가 헛구역질을 했다.

“우우욱, 도대체 이게 뭔.”

“남들에게 먹이고 싶습니까?”

“혼자 먹기는 아쉬운데. …잠깐만. 기억소거제, 설마.”

남들에게 고통을 나눠주려던 열망이 빠르게 식는다. 회사원은 뻣뻣하게 굳은 목을 억지로 저었다.

“아냐. 굳이 먹일 필요가 어딨겠어.”

“그렇죠?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원하는 답을 얻은 이연우가 흐뭇하게 주변을 돌아보자, 감염자들은 열심히 손을 내저었다.

“어유. 괜찮습니다.”

“치료제 맛있지 않습니까? 남들한테 먹이고 싶을 정도로요. 그러면 더 드셔야죠?”

“아닙니다, 아닙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이연우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기억소거제를 쓰면 영향력이 사라지네. 급할 거 없겠어.’

회사의 전문가가 치료에 실패해도 방법이 있다. 감염자의 공격성을 억제하고, 방법까지 찾은 이연우는 마음 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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