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80)화 (80/194)

사람을 죽이는 병

“기억소거제가 통해도….”

감염자들을 공장 한쪽에 모아두고, 소대장에게 기억소거제가 약이라는 말을 하자, 소대장은 한 손으로 헬멧을 쓰다듬었다.

어딘가 어려운 목소리.

“기억소거제는 항상 부족해서…. 이런 데 쓸 물량은 없을 겁니다. 우선은 다른 방법들을 시도할 겁니다.”

무턱대고 기억소거제부터 투여하기에는, 그 물량이 충분하지 않다. 회사는 부족한 자원을 쓰지 않고, 여러 기기나 다른 전문가를 사용할 것이었다.

“그냥 알아두시라는 말이었습니다.”

이연우는 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자신이 마실 분량은 있었다. 딱 한 모금만 마셔도 충분하니까.

“그보다는, 회사 지원은 언제-”

삐빅-

헬멧의 증강현실 UI가 반짝인다. 소대장이 바로 몸을 돌렸다. 공장의 정문 방향.

“지금 공장부지에 진입했답니다. 정신정화전문가가 늦장을 부려서, 이제 도착했다고 합니다. 무슨 시간이 안 맞는다고, 투덜댄다던데.”

“그쪽 전문가는 항상 그렇지 말입니다. 계절이 아니다, 날씨가 안 좋다, 별자리가 영 아니다, 맨날 불평만 하지 않습니까.”

경호원들은 짜증을 내면서도 어슬렁어슬렁 공장 문을 열기 시작한다.

둔중한 소음을 내며 열리는 철문.

그 너머로, 방역복을 입은 방역부대가 진입했다. 방역도구와 무거운 장비를 든 그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작전대로 움직여! 물탱크에서 살인병 빼낼 사람은 옥상으로 가고, 나머지는 공장에 뿌려진 살인병부터 회수해!”

“예!”

위이이잉-!

무슨 청소기 같은 것이 강렬한 모터음을 내더니, 흩뿌려진 액체 따위가 슈르륵 빨려 들어간다.

순식간에 건조해진 공기.

메뚜기 떼처럼 방역부대가 지나간 자리에는, 사막처럼 바짝 마른 공장만 남았다.

그리고, 뽀송뽀송한 공장 입구로 웬 마법사 같은 사람이 뚜벅뚜벅 걸어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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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고깔모자를 쓰고 두툼한 가운을 걸친 사람은 불퉁한 표정으로, 곱지 않은 말을 내뱉었다.

“참나, 정화가 그냥 이루어지는 줄 아시오? 마법이 얼마나 섬세한 기술인데. 오염자인지 뭔지, 다 가둬뒀다가 천천히 해도 되는걸. 뭘 이렇게 서두르는지, 원.”

“…부사장님도 감염됐습니다.”

“봤소. 제일 먼저 처치도 했고. 어디, 다른 오염자들이나 봅시다. 빨리 처리하고 돌아가야겠어.”

소대장이 제일 가까운 이연우를 보았다. 어쨌든 치료제에 감염된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연우는 성큼 나서며, 공장 구석에 모아둔 감염자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저기 모여 있습니다.”

“응? 얌전한데?”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정신이 오염된 사람 같지 않다.

“협박이 잘 통해서.”

“허. 그러면 내가 이렇게 서두를 필요도 없었잖소. 아니, 됐소. 더 말하지 마시오.”

주섬주섬

마법사인지 전문가인지 모를 사람이 가운 안에서 유리병을 꺼낸다. 검은 물감 같은 것이 찰랑이는 유리병을 기울여, 공장 바닥에 기묘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언뜻 봐서는 뭘 그리는지 모르겠는 문양.

“한 명씩 데려오시오. 방역부대가 방해하지 못하게 하고. 그리고, 정화는 못 하오. 지금 상황이 안 맞아. 그쪽하고는 연결할 수 없소.”

경호원이 감염자를 데리러 간 사이, 이연우는 꼬치꼬치 질문을 던졌다.

“정화가 아니면 뭡니까? 부작용이나 후유증은 없습니까?”

“아, 방해하지 마시오! 이거 한 번 실수하면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하니까!”

버럭 고함을 내지르면서도, 문양을 그리는 손에는 흔들림이 없다. 일정하게 쏟아지는 물감과 유려한 손짓.

이연우는 얌전히 입을 다물고, 한 걸음 물러서 관찰하기 시작했다. 치료되는 과정을 직접 보면 되니까.

몇 걸음 걸어가며 문양을 완성한 마법사가 구부렸던 허리를 편다.

“준비됐소.”

곧장 문장 가운데로 감염자가 밀려났다. 감염자는 눈을 좌우로 데굴데굴 굴렸다. 불안한 혼잣말이 흘러나온다.

“회사 소속 마법사? 뭡니까? 어디 차원이랑 상호작용하는 겁니까?”

“말해도 모를 거요. 어디 보자, 내가 고지해야 할 안내사항이….”

마법사는 감염자는 본 척도 하지 않았다. 가운에서 꼬깃꼬깃한 종이를 꺼내, 그 위로 인쇄된 글을 읽는다.

진심으로 주의를 준다기에는, 사무적으로 빠르게 흐르는 목소리.

“주의사항. 그것을 너무 오래, 깊게 보지 마시오. 잘못하면 정신이 통째로 잡아먹히니까. 부작용. 공허감과 불안감이 계속 느껴질 수 있소. 이로 인해 폭식이나 과음, 자해…. 하여튼 별문제 없소.”

“아니, 지금 뭘!”

“시작하겠소.”

딱-!

손가락을 튕긴다. 그와 동시에, 감염자의 정신이 이상한 세상으로 날아갔다.

시꺼먼 심연. 한 치 앞은 물론, 자신조차 보이지 않는다. 감염자가 불안감에 팔다리를 허우적거렸지만, 마치 우주 공간처럼 둥둥 부유하는 감각만 느껴졌다.

- 어디야! 나한테 뭘 한 거야! 마법사! 네 입에도 치료제를-!

울분에 찬 목소리가 메아리치는 때.

낼름-!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사포처럼 꺼끌꺼끌하고 거친 무언가가 정신을 훑고 지나간다. 정신이 그대로 뜯겨나가는 듯한 감각. 영혼에 구멍이 뻥 뚫린 듯한 공허감.

- 끄으윽! 내, 내 정신! 돌려줘! 먹지 마!

회사원이 절박하게 손을 뻗으며 비명을 내지르는 때였다.

세상이 돌아온다.

어딘지 알 수 없는 심연에서, 공장으로.

“다음.”

귀찮다는 듯 손짓하는 마법사와 회사원을 유심히 바라보는 이연우를 앞에 두고, 회사원은 털썩 주저앉았다.

주륵주륵 눈물이 쏟아지고, 짐승 같은 신음이 흘러나온다. 정신의 공백에서 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박탈감.

“아, 아…. 안 돼. 내 꺼야. 내 정신이야.”

“아, 사람도 많은데. 빨리 치우시오. 다른 오염자들 처리해야 하니까.”

“부작용이 심한데….”

“시간 지나면 괜찮아지니까. 아니면 치료하지 말까?”

경호원의 손에 붙잡혀 짐짝처럼 끌려간다.

이후로도 비슷비슷했다. 치료가 끝난 후, 울고, 잠들고, 난동을 부리고. 심각하면 팔을 움직이지 못하거나, 식물인간이 되고.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이연우가 슬그머니 물러났다. 아무리 봐도 부작용이 심하다.

‘이게 치료?’

손가락이 더러워졌다고 팔을 자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차라리 기억소거제를 마시는 편이 낫다.

이연우는 에코백에서 기억소거제를 꺼내 들고, 요원을 바라보았다.

“그거 헬멧 다 기록되죠? 이거 마신 뒤에 기록, 저한테 보여주세요.”

“…예.”

이연우가 심호흡을 반복한 후, 기억소거제를 조금 들이켰다. 물과 같이 맛도 없고 냄새도 없는 기억소거제.

혓바닥 위에서 기억소거제가 사라지고, 기억도 증발한다. 이연우의 눈이 잠에 취한 사람처럼 풀렸다. 그리고, 몇 초 후 눈을 부릅떴다.

극도로 확장된 동공.

낯선 장소, 낯선 상황.

“여긴….”

사방을 돌아보며 뒷걸음질을 쳐, 공장 입구 쪽으로 물러났다. 머릿속에서는 기억이 빠르게 재생됐다. 문 앞의 남자를 상대하고….

지우개를 든 요원을 따라 어디로 갔는데.

“이연우 조사원님. 어디까지 기억나십니까?”

“당신 오토바이 타고 이동한 건 기억 나는데. 내가 기억소거제를 마셨습니까?”

손에 쥔 기억소거제 병을 보니 조금 줄어들어 있다. 이연우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내가 기억소거제를 자진해서 마셨다고? 그리고 여긴 또 어디고, 무슨 상황이야?’

기억소거제를 마신 것도 이상하고, 마법진을 그려놓은 마법사도 이상하고, 한쪽에 모여 울부짖는 회사원들도 이상하다.

정신없이 흔들리는 이연우의 눈동자를 본 요원이 말했다.

“헬멧을 드릴까요? 이곳에 전부 기록되어 있습니다.”

“잠깐만요. 제가 기억소거제를 마셔야 했을 문제는 해결됐습니까?”

“남들에게 뭐를 먹이고 싶거나, 고통을 나눠주고 싶습니까?”

“아뇨. 그런 위험한 짓을 내가 왜….”

멀쩡하다. 요원이 헬멧을 끄덕였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헬멧을 밀어 올리기 시작했다.

“치료됐습니다. 헬멧 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회사 정보망으로 기록만 따로 보내주세요.”

헬멧을 벗던 손이 멈췄다. 헬멧을 다시 꾹 눌러 쓴 요원은 의아하게 물었다.

“지금 바로 필요 없습니까? 답답하실 텐데.”

“그건 안전한 곳에서 확인하면 됩니다.”

이연우가 보니, 사고가 터져도 크게 터진 현장이다. 어떤 문제가 또 숨어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

이연우가 냉큼 몸을 돌렸다.

“저는 이만 집으로, 아니, 집 지워졌지. 어쨌든 돌아가겠습니다.”

“차도 안 끌고 오셨는데.”

“택시 타면 됩니다.”

“여기가 어딘지는-”

계속 발목을 붙잡는 질문. 문제도 되지 않는 질문에 이연우가 대충 손을 휘저었다.

“전봇대에 써진 위치정보 확인하면 됩니다. 안녕히 계세요. 기록은 보내주시고.”

그렇게 이연우가 재빠르게 도망친다. 경호원과 요원은 얼떨떨하게 있다가, 헬멧을 매만졌다.

대강 정리된 현장.

경호대는 복귀를 준비하고, 요원도 더 남을 이유가 없다.

“우리도 이만 헤어지면 될 듯합니다.”

“…저도 돌아가겠습니다.”

그들이 공장을 벗어났다. 이제 공장에 남은 것은, 박탈감에 울부짖는 사람들과 바쁘게 살인병을 회수하는 방역대원과 혼자 돌아가는 마법사뿐.

***

전봇대에 써진 위치정보로 장소를 파악한다. 곧장 택시를 불러 탄 이연우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집이 없는 지금 상황에 가장 먼저 통화할 상대.

본사에서 나와 이연우와 협상을 했던 마크 정이다.

- 예, 이연우 특수조사원님.

“저번에 받기로 한 집 있지 않습니까. 준비됐습니까?”

- 건물은 골랐는데, 에어컨이나 가구 같은 게 아직 준비가 안 됐습니다. 며칠만 지나면, 다 정리가 끝날 겁니다.

가구 몇 개 정도야. 집이 지워졌는데 뭘 더 가릴 겨를이 없다. 이연우는 핸드폰을 고쳐 잡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지금 들어가겠습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 어디냐면.

마크 정이 주소를 몇 마디 덧붙였다. 기존에 살던 도시, 이상조사반과 멀지 않은 거리.

이연우는 핸드폰을 입가에서 살짝 떼고, 택시 기사에서 그 주소를 불렀다. 택시 기사는 무덤덤하게 엑셀을 밟았고, 택시가 도로를 부지런히 달렸다.

“손님, 도착했습니다.”

“아, 예.”

깜빡 졸았다가 일어나니 도착한 장소.

이연우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내렸다가, 멈춰 섰다.

철조망이 둘러싼 넓은 부지. 편의점은 물론이고, 이웃조차 존재하지 않는 넓은 땅. 마크 정이 철조망 앞에서 손을 흔든다.

“오셨습니까? 들어가시죠. 마음에 드실 겁니다. 심혈을 기울여 고른 건물이거든요.”

끼익-

음산한 비명을 지르며 열린 철조망 문. 그 너머의 넓은 공간과 홀로 서 있는 폐가. 사람은커녕 귀신이나 살 법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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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우는 잠이 덜 깼나 눈을 비비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마크 정을 보았다.

“…이게 내 집이라고요?”

“좋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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