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
이연우가 보낸 메시지는 마크 정을 통해 이사에게까지 곧바로 올라갔다.
호텔 방에서 급박하게 진행되는 통화.
“이연우한테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그 내용은 방금 보냈습니다. 확인하셨습니까?”
- 확인했네. 잘 됐군. 마침 추가정보를 얻어 정체도 대강 파악했고, 목적까지 파악했으니.
좋은 소식을 이야기하는 이사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결의가 서려 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마크 정이 망설이다가 질문했다.
“불청객이 위험인물입니까?”
- 우리가 염려했던 최악의 경우야.
“그 말씀은 설마.”
- 자네에게도 자료를 보내주지. 중요한 사항을 정리해서 이연우에게 보내주게.
띠링띠링-!
노트북에서 알림 소리가 난다. 마크 정이 곧바로 메시지를 열어보자, 영상과 사진과 텍스트 파일이 여럿 보였다.
통화 중이라 사진부터 확인한다. 이상전략무기의 폭격 앞에서, 검은 실타래 같은 것으로 이루어진 인간이 헐레벌떡 도주하는 장면.
“사진 먼저 확인했습니다. 실뭉치 같은 것이 불청객입니까?”
- 그래. 우리가 얻은 정보를 지표 삼아 관측한 평행세계의 어떤 순간인데, 몇 개 세계가 그 불청객의 공격을 받았더군.
“공격이라면.”
마크 정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린다. 머릿속에서는 불길한 장면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끔찍한 저주나 오염, 멸망을 부르는 무언가.
그 불길한 상상력에 이사는 방점을 찍었다. 마크 정의 두루뭉술한 상상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위협으로.
- 이상기후를 이루는 이상개체를 평행세계에서 잔뜩 가져와 이상기후를 증폭하는 일은 기본이고.
딸깍, 이사의 말에 맞춰 사진을 바꾼다.
불청객이 온갖 이상개체를 바리바리 싸 들고, 또 그 이상개체를 바다 아래로 처박는 사진.
- 여러 세계에 온갖 위기사태를 만들었네. 최후의 쉘터 폭파, 화성기지 붕괴, 회사 본사 테러….
연달아 사진을 바꾼다.
최후의 쉘터 위로 버섯구름이 피어오른 사진, 화성기지가 척박한 화성의 환경으로 돌아간 사진, 모자이크 처리된 회사의 본사가 무너져내리는 듯한 사진….
상상 이상으로 악의적이고 현실적인 위협.
마크 정은 떨리는 눈가를 한 손으로 짓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반문했다.
“멸망주의자입니까?”
- 아마도.
그들이 확인한 정보만 보았을 때, 불청객의 신분은 멸망주의자로 추측되었다.
이사와 마크 정 사이에 잠깐 침묵이 이어졌다. 불청객이 인류를 위협하는 적이라면, 회사는 불청객과 싸울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강대하고 위험한 상대더라도.
침묵 끝에 이사가 말했다.
- 불청객의 목표가 방주라고 했지. 아마 최후의 희망조차 남기지 않을 셈이겠지. 나는 이사회를 소집해, 방주의 보안을 강화하라고 제안하겠네.
“저는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마크 정의 목소리와 눈이 결의를 품었다.
- 이연우와 연락하게. 그는 비장의 카드로 쓰일 거야.
“하지만, 불청객이 옆에 있지 않습니까. 함부로 연락해서 자극하면-”
- 상관없어. 불청객은 신경 쓰지 않을 거야. 세계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방주를 찾는 게 목적일 테니까. 오히려 좋아하겠지.
이사는 말을 이어갔다.
- 불청객의 행선지가 예상이 가는군. 방주가 목표라면 찾아갈 장소는 정해져 있지. 평행세계에서 공격받은, 최후의 쉘터 등과 크립티드연구동호회와 몇 곳. 이 시설에 특수팀을 구성해서 배치하게.
“알겠습니다!”
이사의 말에 마크 정의 얼굴에 활기가 깃들었다.
주요인력 하나 케어한다고 잡다한 일이나 하다가, 중대한 과업을 맡으니 사명감이 샘솟아 오른다.
“특수팀은 최고레벨 요원들로 구성하겠습니다.”
- …평범한 총탄도 보급하게.
회사에도 13발 밖에 없었으나, 2발을 쓰고 4발을 연구하다 날려 먹어, 7발밖에 남지 않은 평범한 총탄.
마크 정이 멈칫했다가, 열정을 담아 키보드를 치기 시작했다.
***
이연우가 상황실로 발을 들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미래의 이연우가 긴장하고, 위험이 잠재해 있다고 단언한 상황실.
자연스럽게, 이연우는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상황실은 실로 거대하여, 좌우로 늘어선 거대한 스크린은 창문이 되어 어딘지 모를 도시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고, 가장 안쪽에는 쉘터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저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위장작업부터 마무리해야-”
“아니, 내부 공사 먼저 끝내야 한다니까요. 위장작업 끝나면, 내부 공사하기가 얼마나 힘들어지는데!”
“쉘터장님? 회사가 예산을 삭감했으니, 우선순위부터 지정해야-”
부족한 예산을 두고 다투는 부서장들이 일제히 쉘터장을 보자, 쉘터장은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꾹꾹 매만졌다.
“지금 예산으로는 하나 마무리하기도 힘들어, 이것들아….”
대놓고 문이 열리고 사람 하나와 사람 아닌 무언가가 걸어들어왔는데, 그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실랑이를 이어간다.
움찔 놀랐던 이연우가 조심스럽게 그들을 살피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인식을 못 하는 듯한데. 안전한 겁니까?”
“아니. 내가 뭘 잘못 건드렸는지, 인식을 건드리고 나니까, 내가 위험에 빠질 확률이 올라갔어.”
이연우가 입가를 가리며 가까스로 표정을 다스렸다.
‘그거 혹시 내가 메시지를 보내서….’
미래 이연우를 힐긋 살피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는 듯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보다, 방주를 찾아야지.”
미래 이연우가 한쪽의 스크린으로 가, 그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익숙하게 스크린을 조작하는 실타래. 곧 스크린이 바뀌고, 통신 시스템이 스크린을 채운다.
여전히 다투는 쉘터 관리자의 목소리 속에서, 미래 이연우는 옆으로 물러났다.
보이는 것은 회색으로 죽어 있는 통신대상, 방주.
“여기. 방주 통신망부터 활성화해봐.”
“…어떻게 말입니까?”
“어떻게든. 통신을 걸어보거나, 주사위를 굴려보거나.”
이연우는 순순히 손가락을 움직여 통신을 걸기도 하고, 통신 활성화를 안건으로 주사위를 굴려보기도 했지만, 전부 실패했다.
미래 이연우가 음울하게 말한다.
“안 되나.”
“그, 방주 찾기로 주사위를 굴려볼까요?”
어딘가 위험한 분위기에 이연우가 급하게 말해도, 미래 이연우는 머리 부분을 기울였다.
“그게 될까? 방주는 가능성이나 확률 밖에 있는 듯한데. …아니다. 너는 다르니까, 한 번 굴려봐.”
“예.”
데구르르-
실패!
“실패했습니다….”
“다음 장소로 가자.”
미래 이연우가 이연우의 목을 붙잡으려다가, 손을 틀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세상이 바뀐다.
***
크립티드연구동호회의 좁은 격리실.
이연우는 나무 인간을 보았다. 그에게 미래를 보여주었던 나무 인간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말라붙어 있었다.
무슨 조치를 당했는지, 나뭇잎은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았고, 남은 가지마저도 오그라들고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다.
문득 천천히 떠진 나무 인간의 눈과 시선이 마주치고, 가지들이 삐죽 선다.
- 너는…! 네 놈 때문에! 나는 죄수만도 못한 신세가 되어-
“조용.”
미래 이연우가 실타래를 너울거리며 한마디를 뱉는다. 나무 인간의 눈동자가 그제야 옆에 존재하는, 괴물 같은 무언가를 보았다.
크게 떠진 눈동자. 따닥, 따다닥, 폭풍을 맞이한 것처럼 가지들이 휘청이고, 얄팍한 나뭇가지는 그대로 부러져 떨어진다.
- 그때 미래에서 본! 내게 무슨 볼일이 있어 찾아오셨소?
한순간에 변화한 정신파가 온화하게 일렁였다. 감히 간섭할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최대한 온건하게.
미래 이연우가 말했다.
“너. 미래에서 방주를 봤다고 했지. 그거 설명해봐. 아니면 나랑 얘한테 방주를 보여주거나.”
- 알겠소. 나는 분명 미래에서 방주를….
한순간 정신파가 흐려진다. 나무 인간은 눈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는 듯하더니, 슬며시 눈을 내리깔았다.
- 이런 말을 하게 되어 정말 죄송하오. 사실, 거짓말이었소. 방주는 본 적 없소.
한순간, 가능성의 실타래가 바짝 수축했다. 고치처럼 미래 이연우를 둘러싼 실타래.
“지랄하지 말고.”
- 정말! 정말이오! 이 인간을 설득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뿐이오! 방주 비슷한 것조차 보지 못했소!
진심이 투명하게 담긴 정신파.
“….”
침묵이 내려앉았다. 실타래가 다시 풀려나더니 벌레의 다리처럼 허공을 기어 다니는 듯하고, 나무 인간은 사시나무처럼 떨며 눈을 꼭 감았다.
이연우가 무슨 사고가 터질까, 눈치를 볼 때였다.
문득 미래 이연우에게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건 처음 보는 보안방식인데.”
대대적인 인식개변, 아니, 근원적인 정보개변에 가깝다.
“좋군. 확실히 제대로 진행되는 듯해. 이번에는 방주를 찾을 수 있겠어.”
- 보안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의미심장한 발언에 의문을 품은 질문.
미래 이연우는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가 항상 쥐고 있던 가능성이, 그가 위험에 빠질 확률과 방주를 찾을 가능성이 비례하듯 함께 상승하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희망적인 상황.
‘역시 내 목표가 방주인 걸 알았나 보군. 조금 더 거칠게 진행해도 괜찮겠어.’
상황이 좋다.
난장판을 벌일수록 회사는 방주를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고, 회사의 움직임이 요란할수록 중요한 단서가 남을 것이다.
거기에 방주를 찾을 확률을 높여주는 토템, 이 세계의 이연우까지 있지 않나.
‘한 번 회사를 강하게 위협하자. 그래야 방주를 지키기 위해 다른 수단을 더 쓰겠지.’
미래 이연우가 한 손을 치켜든다. 다른 곳에 사용하던 여력의 대부분을 회수하고, 그 힘을 고스란히 공격에 쏟아붓는다.
원거리에서 이루어지는 확률 조작. 저주에 가까운 힘의 목표는, 회사.
‘여러 시설과 시스템을 한 번에 뭉개면-.’
소용돌이처럼 휘도는 가능성의 실타래 뭉치. 그것들이 동시에 현실로 구현되려는 순간.
이연우가 등을 꼿꼿이 세우고 미래 이연우를 경계하다가, 순간 느껴지는 묘한 감각에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고양이가 흔들리는 강아지풀을 때리듯, 휙 휘두른 손바닥.
그리고, 실타래 한 가닥이 그대로 쳐내졌다.
“….”
“….”
가능성의 폭풍이 멈춘다. 미래 이연우가 멈췄다. 그는 머리 부분만 사람에게 불가능한 각도로 꺾으며 이연우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