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
적막한 격리실. 긴장의 실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이연우의 등골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는다. 안 그래도 좁은 격리실, 미래 이연우의 시선과 존재감이 선명하게 와닿는다.
이연우가 주춤 물러난 끝에 격리실 벽에 등이 닿았다. 그 차갑고 서늘한 감각.
‘이거, 안 좋은데.’
미래 이연우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품었는지, 짐작이 간다.
‘날 위험요소로 보고 있어.’
이전까지는 밟지만 않으면 터지지 않는 지뢰로 보았다면, 지금은 남의 손에 쥐어진 수류탄으로 보고 있다. 언제 어떻게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수류탄으로.
그도 그럴게, 가능성의 실타래에 간섭해 튕겨냈으니까. 그게 한 가닥이더라도.
“….”
미래 이연우는 아무런 말도 않고 가만히 있다가, 한 가닥의 실타래를 갑자기 쥐었다.
그리고, 사라졌다.
“….”
- ….
이연우와 나무 인간은 바짝 긴장하여, 한동안 감각을 곤두세운 상태로 유지하다가, 뒤늦게 상황을 깨달았다.
미래의 이연우가 도주했다.
나무 인간이 안타까움에 한숨을 쉬었다. 표면적인 생각을 읽었기에, 더더욱 안타까웠다.
- 아…. 그가 격리를 풀려고 했는데. 결국 그냥 갔군.
“격리를 풀려고 했다고?”
- 그래. 회사에 대대적인 공격을 가하려다가, 널 경계하더니, 다 포기하고 갔어.
이연우는 가만히 격리실 바닥을 내려보다가, 질문을 던졌다.
“어디로 돌아갔지? 그리고 또 무슨 생각을 했지?”
- 너! 내가 너한테 그걸 왜 말해야 하지?
괴물 같은 것이 사라졌음을 깨달은 나무 인간이 눈을 부릅뜨며 분노를 토하자, 이연우는 가만히 에코백에 손을 넣었다.
어떤 급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챙긴 에코백에서 미니 전기톱과 가스 토치가 나온다. 나무 한 그루쯤은 손쉽게 파괴할 수 있는 공구가 나무 인간에게 향한다.
“내가 지금 여유롭지 않거든. 얌전히 말할래, 공구 맛 좀 볼래?”
- …어디로 갔는지는 몰라. 그렇게 깊이 읽을 수는 없어. 자연스럽게 읽힌 생각은, 여러 수단으로 회사를 공격하려다가 널 경계하고, 뭘 고민하더니 사라졌어.
이연우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어두운 시야를 도화지 삼아, 생각을 이어간다. 미래 이연우의 입장에 자신을 대입하여, 그의 생각을 가늠한다.
‘이대로 끝나지는 않았을 거야. 방주를 포기할 것 같지 않아.’
위험한 상황에 스스로를 던져넣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방주에 진심이란 사실을.
‘하지만 자기 안전보다는 우선순위가 낮아. 그래서 위험요소인 나를 버리고 방주를 찾으러 간 거야.’
지금은 그저 회사의 보안이나 어중간한 공격보다, 가능성에 간섭한 이연우를 더 위험하게 여겼을 뿐이다. 얼마든지 방해할 수 있으니까.
“찾을 확률이 낮더라도 안전하게 찾을 길을 선택했나.”
무뎌진 생존본능이 움직였다고, 이연우가 어렴풋이 결론을 내릴 때였다.
미래의 이연우가 사라진 지금, 크립티드연구동호회의 보안 시스템이 작동했다.
격리실의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침입자? 움직이지 마시오! 당신은 기밀구역에 침입하였으며-
“특수조사원 이연우입니다. 상부, 아니, 본사로 연락해주십시오. 불청객에 대한 정보를 가져왔다고.”
구석에 위치한 카메라를 향해 특수조사원 신분증을 들이댄다.
그 신분증과 이연우의 침착한 태도를 보고, 보안직원이 침묵하다가 답한다.
- 잠시 대기하십시오. 우리도 확인해야 하니까. 허튼짓하면 규칙에 따라 대응할 생각이니 알아두시고.
그리고, 채 꺼지지 않은 마이크를 통해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난데없이 본사에서 사람이 오지를 않나….
***
신분 확인은 신속하게 진행되었고, 크립티드연구동호회의 회의실에서 이연우와 본사 소속 요원들이 모였다.
“….”
“….”
대화는 없다.
미래 이연우로부터 시설을 지키기 위해 파견된 요원들은 전투슈트로 몸을 꽁꽁 싸매고는 입을 닫고 있었고, 이연우는 생각을 거듭하느라 무어라 말을 꺼낼 여유가 없었다.
- 아, 아.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벽에 위치한 스크린에는 목소리만 들리는 통신 시스템이 켜졌다.
이사라는 이름을 단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 이연우 특수조사원. 불청객과 조우했다고 들었는데.
이연우는 테이블에 놓인 마이크를 잡아, 입가로 가져왔다.
“예. 불청객에게 악의는 있지 않았습니다.”
- 악의가 없다고? …아, 그렇지. 정보를 아직 확인 못했나 보군. 정보 먼저 확인하게.
그와 동시에 스크린에 이미지 파일이 열렸다. 마크 정이 확인했던, 불청객의 소행으로 여겨지는 공격 장면.
이연우가 슬라이드처럼 지나가는 이미지를 뜯어보는 동안, 이사의 설명이 뒤따른다.
- 평행세계 몇 곳이 그 불청객에 공격받았네. 우리 최후의 쉘터도 이미 뚫렸지. 이런데도 악의가 없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이연우 특수조사원의 정신을 의심할 수밖에 없어.
“…의심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의 목적은 방주 하나뿐입니다.”
이연우는 최대한 침착하고 설득력 있게 말을 꺼내려 노력했다.
어쨌든 미래 이연우의 목적만 이뤄주면, 크나큰 사고는 발생하지 않을 테니.
“그는 이상기후로 멸망한 세계의 생존자이자, 이상기후의 해결법을 알려준 장본인이고, 자기 세상의 방주를 찾아 세계를 재건하려는 최후의 회사원입니다.”
그가 회사원이라는 거짓말이 섞였지만, 대부분은 진실이다.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확인했는지, 이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 진심이군….
“다른 세계를 공격한 것도 전부 방주를 찾기 위한 수단이었을 겁니다. 오직 세계를 재건하기 위해서요.”
- ….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무어라 지시하는 목소리를 끝으로 이사의 마이크가 꺼진다.
침묵은 길지 않았다.
- 그러니까, 자네는 차라리 방주의 정보를 내주자는 말인가? 평화적으로 해결하자?
“최소한, 이상기후의 해결법을 제공한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문제가 있어.
이연우는 물론, 인형 같은 요원들의 머리도 기울어지며 이사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 사소한 이야기는 다 미뤄보지. 불청객을 믿을 수 없다거나, 공격행위는 사라지지 않는다거나, 이런 거는 없던 일로 해보자고.
“예. 계속 말씀하시죠.”
- 가장 중요한 방주. 그 방주가 존재하지 않아.
“그런 보안 조치를 취했다고는 들었습니다.”
미래 이연우가 보안이라고 했다. 이연우가 눈치껏 파악한 이야기를 냉큼 말하지만, 이사는 걱정 섞인 목소리로 부정했다.
- 정보를 조작하는 ‘거짓말’을 말하는 게 아니야.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나는 방주의 정보를 받았어. 분명히 말하는데, 방주는 가짜야. 회사가 가짜로 퍼트린 정보라고.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연우가 동공을 확장하며 스크린을 노려본다. 통화 아이콘만 깜빡이는 스크린.
- 애초에 멸종방어장치가 이렇게 잘 알려질 리가 없지 않나. 이사조차 몇 개나 있는지, 실체조차 모르는 게 멸종방어장치야.
“….”
입을 다물고 이야기를 듣는다. 주먹을 꽉 쥐고, 식은땀을 흘리며, 이 사실을 알게 될 미래 이연우의 반응을 걱정하면서.
- 방주는 프로파간다의 일종이지. 회사가 이렇게 대단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류는 지킬 수 있다, 어떤 재난을 맞이해도 인류는 명맥을 유지할 것이다….
말이 이어진다.
- 적대집단을 위협하고, 방주라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 힘을 낭비하게 만들고, 회사원은 희망을 잃지 않고. 그를 위한 정보공작-
“사실인가?”
문득 목소리가 들렸다. 기괴하게 변조된 목소리.
그리고, 동시에 요원들이 쾅쾅, 머리를 책상에 박았다. 책상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잔뜩 일어났다.
징조조차 없던 난데없는 습격. 기괴한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방주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갈라지고 찢어지는 목소리. 실타래 형상의 미래 이연우가, 스크린 앞에, 이쪽을 보고 있을 카메라 앞에 선다.
이연우는 떨리는 손을 붙잡았다.
‘어디로 간 게 아니라, 내 주변에 숨어 있었다고?’
처음부터 추측이 잘못됐다. 그리고, 그건 지금 상황이 상상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날 위험요소로 봤는데도 떠나지 않을 정도로 방주에 집착하고 있어. 그런데, 방주가 없다는 소식을 들으면.’
미래 이연우의 협박이 떠오른다. 방주를 찾지 못하면, 자기도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협박.
스피커에서 이사의 침착한 목소리가 들렸다.
- 자네가 불청객이군.
“내가 질문했을 텐데. 혹시 지금 네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나?”
미래 이연우가 손을 쥐기 무섭게, 스피커 너머에서 퍽,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 볼펜을 터트린다라. 현실조작인가? 과연 최후의 생존자다워.
“다음은 네 머리야. 빨리 답해. 방주는 없나? 존재조차 하지 않나?”
- 그래. 방주는 없어.
미래 이연우를 휘감은 실타래가 그대로 굳는다. 멈춘 시간 속에 박제된 것처럼.
- 이제 어떻게 할 텐가? 자네가 원하던 정보는 얻었는데.
“흐. 흐흐.”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실타래가 너울거리기 시작했다.
이연우가 당장 달려들어 방해해야 하나, 도망쳐야 하나 고민하다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일어나 있는 편이 움직이기 좋다.
하지만 다행히, 그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방주는 존재해.”
-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네. 하지만 방주는-
“이조차 방주의 보안조치야. 애초에 찾을 수 없는 물건이란 말이지.”
“…괜찮으십니까?”
현실을 도피하는 듯한 분위기가 위험하다. 이연우가 조심스레 묻자, 미래의 이연우는 고개를 드는 듯한 시늉을 했다.
“괜찮고말고. 방법을 알았어. 내가 너무 어렵게 생각한 거였어. 사람 살만한 세상을 만들면 방주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거야.”
그는 가볍게 손을 휘저어, 한 가닥 실타래를 이연우의 에코백에 날려 보냈다. 그리고는 스크린 너머로 고개를 숙였다.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 있을 이유가 없어졌군. 불청객은 이만 돌아가지.”
그렇게 미래 이연우는 한순간 사라졌다. 인사도, 미련도 없는 이별.
회의실에는 기절한 요원들과, 이연우와, 스크린 너머에서 보고 있는 이사뿐.
이사는 의문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진짜 돌아갔나? 그리고, 방주가 존재한다고? 도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