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87)화 (87/194)

의뢰

상황이 마무리되었지만, 찝찝함이 끈적하게 남았다. 이해하기 힘든 미래 이연우의 반응부터, 실체를 확신할 수 없는 방주까지.

- …불청객이 정말 돌아갔나 확인을 해봐야겠어. 방주는. 굳이 알아볼 필요는 없겠지.

방주가 실제로 존재하든 말든, 지금 그들이 알아야 할 정보는 아니다. 불청객의 귀환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이사가 생각을 정리하며 통신을 슬슬 끊으려고 했다.

그것을 이연우가 막았다.

“저는 이만 돌아가면 되겠습니까?”

- 그러게. 불청객에게 납치되었을 때의 일은 보고서로 써서 올리고.

“예.”

통신이 끊긴다. 까맣게 죽은 화면이 스크린 위로 쏘아졌다.

침묵이 내려앉은 회의실.

쓰러진 요원들이 코를 고는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이연우는 가볍게 변한 에코백을 뒤지려다가, 생각을 바꾸고 몸을 돌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돌아가는 길에 천천히 생각을 정리해야겠어.’

뜬금없이 이동된 크립티드연구동호회.

택시를 타든,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쉘터로 돌아가려면 시간이 걸린다. 생각을 정리하기 충분한 시간이.

이연우는 크립티드연구동호회를 나와, 평야 바깥까지 걸어간 후, 택시를 잡아탔다.

“…여기로 가주시면 됩니다.”

과묵한 택시 기사가 운전에 집중하는 동안, 가능성의 실타래를 받은 에코백부터 뒤진다.

‘이상개체로 변했나? 이게 보상인가?’

미래 이연우가 뭔가 정보를 얻긴 한 모양이다. 온갖 공구로 불룩하고 무겁던 에코백이 홀쭉하고 가볍게 변했다.

그렇다고 공구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텅 빈 에코백 안으로 손을 깊이 쑤셔 넣으면 공구가 만져진다. 꼭 마법 가방처럼.

‘이러면 좋지.’

무게나 공간의 제한은 있는 듯하지만, 평범한 에코백보다는 훨씬 좋다.

‘이런 보상을 줄 정도면 뭘 얻은 건데.’

이연우가 괜히 에코백 안에 넣은 손을 휘저으며 생각에 잠길 때였다. 휴지나 메모장 종이 같은 것이 손에 잡힌다.

무심코 꺼내 보니, 햄버거집의 네모난 휴지 몇 장이다. 프린터기가 찍은 듯한 문자가 인쇄된 휴지.

이연우는 휴지를 무릎 위에 두고 가만히 고개를 숙여 글을 읽었다.

- 짧은 시간이지만 고생했다. 나는 돌아간다. 널 다시 찾을 일은 없을 거야. 앞으로는 너나 나나 서로 얼굴 봐서 좋은 일은 없을 것 같거든. 불편하기만 할 거 아냐.

미래 이연우가 남긴 글귀가 휴지 몇 장에 걸쳐 인쇄되어 있다.

‘무슨 확률을 어떻게 조작했길래….’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며, 글을 읽는다.

- 방주가 깨어나는 조건은 찾았어. 하하. 확률과 가능성만 믿고, 그 의미를 해석하지도 못했던 거야. 내가 오만했지.

다음 장.

- 보상은 에코백을 업그레이드해준 걸로 끝이야. 널 보니까, 크게 도와줄 건 없어 보여. 그럼 잘 살아남으라고.

끝.

이연우는 휴지를 몇 번이고 다시 보다가, 다시 에코백에 집어넣었다.

고개를 돌려, 고속도로를 달리는 택시의 창문 바깥을 본다. 빠르게 지나가는 주변 풍경과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

그리고, 흐릿한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

“진짜 끝났네.”

우우웅거리는 차 소리에 묻힌 작은 목소리.

미래의 이연우가 방주의 단서를 찾고 떠났다는 사실 하나만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연우가 눈을 감았다.

‘지금 내가 해야 할 건….’

미래 이연우의 실수를 보고 배울 때다.

‘주사위에 의존하지 말기. 그래도 확률을 조작하는 감각을 얻을 것. 하지만 근본적으로, 나 자신의 생존본능과 능력을 갈고닦을 것.’

잠자듯이 편하게 등을 기대고, 평온하게 숨을 쌕쌕거리며, 이연우가 내면에 침잠해 들어갔다. 떠올리는 기억은 세 가지다.

주사위의 결과를 직감했던 감각, 미래 이연우의 형상을 엿봤던 감각, 끝내 실타래를 쳐냈던 감각.

좀처럼 잡히지 않는 감각을 쫓아 이연우가 고개를 꾸벅이다가, 잠들었다.

***

“도착했습니다. 여기 맞습니까?”

택시 기사의 목소리에 이연우가 눈을 뜨며, 입가를 쓱 닦았다. 잠에 취한 눈으로 창밖을 보니, 쉘터 주변을 두른 철조망 앞이다.

“예, 예. 맞습니다.”

카드를 내밀어 결제를 마친 이연우가 기지개를 쭉 켠 후, 철조망을 지나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건물 바닥의 해치를 열고, 아래로 내려간 끝에 도착한 쉘터의 복도.

이연우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

“…왜 이렇게 안 좋아 보이지.”

최후의 쉘터를 보고 왔기 때문일까. 그토록 마음에 들었던 쉘터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연우는 찝찝한 표정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음을 옮겼다. 복도의 질감이나, 콘크리트 벽의 느낌이 굉장히 낡아보인다.

상황실은 그나마 나았지만, 한 번 쎄게 온 역체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나 혼자 살기에는 너무 넓은데. 밥 먹고 치우려면 30분은 걸어야 하고. 출퇴근하기 시작하면 맨날 사다리 타고 나가야 하고.”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는 단점에 이연우는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가도, 한숨을 쉬며 얼른 정신을 차렸다.

“다를 것도 없어.”

최후의 쉘터나 집 삼은 쉘터나 똑같다. 진짜 위험한 이상개체가 각 잡고 쳐들어오면 못 막지 않나.

큼직한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에 손을 올린다. 회사 정보망을 들어가니, 반장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다.

- 사무실 공사는 아직 안 끝났는데, 교육 일정은 잡았다. 내일부터 회사 비행무기연구소에서 드론 교육 받고 드론 자격증 딸 거고, 공사 끝나면 정보부에서 사람 와서 감시장비 교육할 거다.

“아, 자격증….”

회사가 조사원에게 제공하기 시작한 장비를 운용하기 위한 교육.

장비 지원은 좋지만, 막상 교육을 받으려니 귀찮다. 이연우는 무거운 손을 움직여, 불청객 조우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다.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죽었다.

‘사고, 교육, 출근, 보고서, 업무. 진짜 죽겠네. 회사 때려칠까?’

그렇게 이연우의 하루가 다시 지났다.

***

비행무기연구소는 산자락에 있었다.

군부대처럼 위장한 연구소. 때때로 울리는 총성이 메아리치고, 다양한 복장을 한 여러 사람이 오가는 도로.

주차를 마친 이연우는 곧바로 교육실로 갔고, 드론 교육을 받으러 온 여러 사람과 이연우를 향해 손짓하는 조사반 식구들을 보았다.

“어, 연우야!”

“형, 왔어요?”

고개를 책상에 박고 자는 유지유와, 크게 소리치는 반장과, 웬일로 학교도 안 간 부모감별사 최재민이 구석에 모여 있다.

이연우는 말없이 그들 사이의 빈자리로 갔다. 피로가 엿보이는 얼굴에서 피곤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안녕하세요, 안녕.”

“왜 이렇게 처졌어. 자택 근무라 집에 있었을 텐데.”

“저 나가서 일했어요.”

“일을 했다고?”

반장은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 조사반 반장인 그가 알지 못하는 업무라니. 그러다 문득 상황을 깨달았다.

“특수조사원?”

“예….”

“아니, 뭔 일이 있었길래. 아, 보안 걸렸으면 말하지 말고.”

며칠 동안 아무런 이상도 느끼지 못한 반장은 황당해하면서도 그러려니 받아들였다. 이런 일이 한 두 번도 아니고.

하지만 최재민은 몸을 홱 돌려 앉으며, 눈을 반짝였다.

“특수조사원이 뭐예요?”

“그냥. 본사 소속 조사원.”

빗물도 해결하지 못한 정신적 피로에 몸을 축 늘어뜨린 이연우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맞다. 저 이사했는데. 집들이 오실래요?”

“집을 벌써 구했다고?”

이연우가 살던 원룸 건물이 지워진 사실을 아는 반장이 묻자, 이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에 받기로 한 건물이 있었거든요. 남는 방도 엄청 많고, 안전하기도 한데. 이사 오셔도 돼요.”

“저, 저! 저 갈래요!”

최재민이 손을 퍼뜩 든다. 그리고는 질문을 쏟아냈다.

“집 좋아요? 방은 어때요?”

“좋지. 안전해. 조금 귀찮긴 한데, 회사 기술이 많이 적용됐어. 발전기나, 보안 시스템이나, 자원 관리 시스템이나.”

“….”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아무리 들어도 평범한 집은 아니다.

문득 유지유가 부스스 몸을 일으키고는, 흐린 눈으로 이연우를 보았다.

“그거 집 맞아요? 말만 들어보면 비상 쉘터 같은데.”

“쉘터 맞습니다. 50명까지 살 수 있는, 회사가 지은 쉘터라던데요.”

유지유의 눈에서 잠기운이 걷힌다.

“쉘터라고요? …그러면 회사가 건물 준다는데 쉘터를 받은 거예요? 무슨 서울에 아파트나 이런 거 거부하고?”

황당한 목소리와 눈빛.

이연우는 도리어 이상하다는 듯 그들을 마주 보았다.

“아파트를 왜 받습니까? 그럴 거면 튼튼한 쉘터를 안전하게 받아야죠. 아파트 그거 공격 몇 번 받으면 무너지잖아요.”

“아니, 아니.”

어디서부터 반박해야 할지 말을 더듬던 유지유가 멍하니 이연우를 보았다.

“쉘터면 아파트가 몇 번이고 무너질 공격도 버티지 않습니까. 가성비가-”

“그거 격리당한, 아니에요. 생각해보니까 좋네요. 연우 씨는 이상하게 운이 안 좋으니까. …교육 끝나면 집들이 가도 돼요?”

유지유가 자연스럽게 주제를 바꾸기 무섭게, 최재민과 반장이 흥미를 보였다.

“회사 쉘터는 아직 안 가봤는데. 뭐 부족한 게 있나? 집들이 선물로 뭘 사가면 되지?”

“오늘 가는 가죠? 엄마한테 늦게 간다고 문자 보내야지.”

“선물은 필요 없습니다. 진짜로, 쉘터에 다 있어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교육실의 앞문이 열리더니, 연구원 하나가 문가에 서서 소리쳤다.

“교육생 여러분! 나갑시다! 드론 실습하러 갈 겁니다!”

“이론교육은-”

“아, 그런 건 필요 없어요. 대충 쓸 줄만 알면 되잖아요? 자세한 건 현장에서 굴리면서 배우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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