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빨리 이동합시다!”
그들은 연구원의 안내를 따라 널찍한 공터로 갔다. 운동장처럼 넓은 공터 입구에는 여러 종류의 드론이 놓여 있고, 쭉쭉 그어놓은 선을 따라 구역이 나뉘어 있었다.
서둘러 움직인 연구원은 일렬로 나열된 드론 앞을 서성였다.
“연습용 드론들입니다. 여기 아무것도 안 달린 드론은 기초훈련용이고, 공격 드론, 관측 드론, 수송 드론, 이 세 개는 실기연습용 드론입니다.”
이연우가 드론을 가만히 보니, 총과 카메라와 박스가 달린 드론이다. 그중 공격 드론을 가만히 보다가, 손을 들었다.
“저거, 진짜 총입니까? 실탄 장전된?”
“그럼요. 사격 훈련도 교육과정에 있으니까, 당연히 실제 총기죠.”
연구원은 손을 쭉 펴, 공터 건너편을 가리켰다. 공터 끝에 위치한 사격 표적. 그 앞으로 거리별로 선이 그어져 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몰렸을 때, 연구원은 박수를 짝짝 치며 주의를 집중시킨다.
“여기 컨트롤러 있고 설명서랑 시험 안내사항도 있으니 한 번 읽어보신 후, 자유롭게 연습하십시오. 저는 일이 바빠서 잠깐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헐레벌떡 어딘가로 사라지는 연구원.
“아니, 뭔 교육을 이따위로….”
“드론도 다 뭐 새로운 시스템으로 바꾼다던데. 그래서 대충 때우려는 거 같은데요.”
사람들은 웅성거리다가 하나둘 설명서를 가져가고, 컨트롤러를 쥐고 드론을 우우웅 날려 보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단 설명서부터 보자.”
반면 이상조사반 사람들은 냉큼 설명서를 쥐고는, 공터 구석으로 도망쳤다.
탕, 탕, 총을 쏘기 시작하는 공격 드론의 방향을 주시하며, 조심스레 설명서를 유지유에게 넘긴다.
유지유가 대표로 설명서를 읽었다. 총 소리 속에서 설명서를 뒤적이다가, 목소리를 높여 정리한다.
“음…. 실기시험은 공격 드론을 이용한 사격, 관측 드론을 이용한 정밀촬영, 수송 드론을 이용한 수송, 이거 세 개가 끝이네요.”
반장은 하늘을 떠다니는 드론들을 보다가, 가볍게 질문했다.
“어렵냐?”
“해봐야 알겠는데요. 설명서만 보면 은근히 복잡해요.”
그들은 어려운 표정을 지으며 낯선 것을 보듯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는 드론을 보았다. 다른 부서에서 쓰는 것만 봤는데.
막상 배워서 쓰려고 하니, 이상하게 귀찮고 믿음이 안 간다. 반장이 특히 그랬다.
“저걸 믿을 수는 있나 몰라. 맨몸으로 직접 부딪쳐 보는 게 제일 정확한데. 그리고, 어! 막 드론이나 기계 조작하는 개체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안개 괴물만 해도 드론이 있었으면-.”
벌써 조사업무에 사용할 생각을 하며 이런저런 상황을 가정한다.
반대로 최재민은 신난 표정으로 공격 드론을 향해 달려갔다.
“저 드론으로 몇 번 놀아봤어요. 저거 써본 후 제가 알려드릴게요.”
“아니, 저게 민간용이 아닌데.”
반장이 차마 말리지는 못하고 중얼거리는 동안, 최재민이 공격 드론의 컨트롤러를 쥐었다. 유심히 보며 컨트롤러를 몇 번 까딱거리더니 드론이 하늘을 난다.
반장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느릿하게 발을 움직였다.
“염병. 기계는 잘 못 쓰는데….”
“설명서 안 보세요?”
“드론 몇 개 부숴 먹으면서 배우면 되지 않겠냐. 어차피 우리 물건도 아니고.”
그렇게 반장과 유지유가 슬슬 기초훈련용 드론을 향해 다가갈 때였다.
이연우가 문득 입구를 보았다. 어디로 갔던 연구원이 달려오더니 숨 가쁘게 소리친다.
“지원자 받습니다! 연구소에서 만든 프로토타입 시스템인데, 써보고 설문지 작성해주시면 됩니다! 실기시험에 가산점 드립니다!”
“프로토타입? 위험한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누군가 던진 질문에, 연구원은 핸드폰을 꺼냈다.
“조종에 편의성을 더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위험한 기능은 없습니다. 베타 테스트한다고 생각하면 편하실 겁니다.”
“내가 하지.”
가산점과 편의성이라는 말에 반장이 냉큼 나선다. 연구원은 활짝 웃으며, 핸드폰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소속이랑 성함 말씀해주십시오. 드론 조종 어플 보내드리겠습니다.”
“이상조사반 반장인데.”
“예?”
핸드폰을 두드리던 손가락이 딱 멈춘다. 연구원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반장을 보았다. 어딘가 불편한 표정.
연구원은 입술을 몇 번 핥고는, 말했다.
“혹시 감사 오셨습니까…?”
반장이 그동안 감사 권한을 사용해 난리를 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지간한 회사원은 거부감부터 느낄 정도로.
반장은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드론 자격증 따러 왔는데, 왜? 감사 한 번 해줘? 뭐 꺼림칙한 일 했나?”
“아닙니다! 안 했습니다! 드론이나 만드는 연구소가 이상개체에 지배당할 일이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자, 어플 보내드렸습니다. 지원자 더 없습니까?”
말을 돌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이연우는 가만히 상황을 보다가, 손을 들고 다가갔다. 어쨌든 어려운 일도 아니고, 가산점을 받아두면 좋다.
“저도 지원하겠습니다. 이상조사반 이연우입니다.”
“조사반, 이연우…. 어플 보냈습니다. 설치하시고, 드론에 연결하시면 됩니다.”
그 후로도 지원자 몇이 나서서 어플을 다운 받는다.
이연우는 기초훈련용 드론에 무선 연결한 후, 단순한 화면을 뜯어봤다.
“게임 화면 같은데.”
드론에 달린 카메라의 시야와 편의성에 집중한 UI. 직관적이라 뭘 더 배우지 않아도 바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이연우는 바로 드론을 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밌는데?’
시험 생각은 안 날 정도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느낌. 높이 날려도 보고, 이리저리 움직여보기도 하고.
그렇게 그들이 드론에 집중하는 동안, 연구원은 피곤한 눈을 비비며 또 어딘가로 사라졌다.
***
연구원은 서둘러 어딘가로 걸음을 옮겼다. 머릿속에는 후회뿐이었다.
‘내가 미쳤지. 코인에 전 재산을 꼬라박다니. 빌어먹을. 이거 복구도 못할 텐데.’
좋은 정보를 얻어, 그동안 저축한 자금은 물론 빚까지 져가며 투자했더니 지하를 뚫고 추락했다. 퇴사 후 화려하게 살겠다는 꿈이 남김없이 증발했다는 말이다.
‘당장 이번 달에 나갈 돈만 해도….’
연구원은 연구소 본관 복도를 걷다가, 끝내 입 밖으로 욕설을 뱉었다.
“빌어먹을. 지금 맡은 일만 해도 감당이 안 되는데.”
“…지금 그게 무슨 말이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연구원이 화들짝 놀라며, 앞을 보았다. 걱정에 빠져 어두워졌던 시야에 그의 상관이 보인다,
“그게….”
“일이 힘들면 다른 사람에게 넘겨줘. 그 많은 일을 굳이 자네가 다 맡아서 할 필요는 없어.”
그건 안 될 말이다.
연구원으로서 맡고 있는 이상개체 연구부터, 추가 수당이 나오는 드론교육지원, 드론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 신형 무기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까지.
억지를 부려 받아낸 일 중 하나라도 빠지면 당장 이자 내기도 빠듯하다.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기한을 맞추지 못하거나, 프로젝트에 지장을 주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음…. 힘들면 언제든지 말하게. 업무는 조정 가능하니까.”
“예.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연구원은 고개를 숙인 뒤, 잰걸음으로 격리실로 향했다.
‘일단, 무기 시스템이 우선이야. 내가 맡은 부분 먼저 어떻게든 끝내야지.’
코인에 정신을 쏟고 보니, 어느새 기한이 다가왔다. 그것부터 수습해야 한다.
‘시간이 없으니까….’
연구원은 고전적인 방식으로 격리된 문 앞에 서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자물쇠와 쇠사슬로 잠긴 문에 열쇠를 가져다 댄다.
그가 두 개나 되는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었던 이유인 이상개체의 격리실이 열린다.
들어가기 전, 연구원이 작게 중얼거렸다.
“문법 나치 로봇. 실수만 안 하면 돼.”
***
격리실 너머에는 로봇이 구석에 서 있었다. 사람 옷을 입히고, 가슴팍에는 모니터 하나가 달린 로봇.
연구원은 자그마한 소리도 나지 않게 살금살금 걷고, 숨소리조차 함부로 뱉지 못했다.
문법 나치 로봇.
프로그래밍 언어로만 소통하며, 사람 말을 쓰거나 프로그래밍 언어의 오타를 하나라도 내는 순간 살인을 시도한다.
대신 프로그래밍 방면으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연구원은 그동안 로봇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연구원은 구석에 놓인 컴퓨터 앞에 앉아, 문자를 쓰고, 오타가 없는지 몇 번이고 검사한 뒤에 엔터를 눌렀다. 그가 맡은 프로그램 개발을 마무리해달라는 요청.
삐빅-
머리 부분의 기계장치에 빛이 점멸하고, 가슴팍의 모니터에 문자열이 떠오른다.
본래 그가 개발했어야 하는 파트의 결과물이 한순간에 주르륵 출력되었다.
‘됐다! 이번에도 어떻게든 됐어!’
연구원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연구원은 손으로 입과 코를 가린 후, 다른 손으로는 그 결과물을 그대로 복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순간에 얻어낸 결과물에 기뻐하기도 잠시.
연구원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몇 마디 문자열을 입력한다.
네가 예측한 코인에 투자했는데 다 하락했다고. 이걸 어쩔 거냐고.
답은 단순했다.
네 선택이라고. 예측은 당연히 틀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왜 내 탓을 하냐고.
당연한 소리지만, 연구원은 순간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네 말만 믿고 빚까지 졌는데…! 하다못해 해결책이라도…!
“어억!”
쿵-
연구원이 그대로 쓰러졌다. 머릿속에서는 혈관이 터지는 소리가 난듯하다. 그는 까맣게 꺼지는 시야를 느끼며, 손을 허우적거렸다. 입에서는 다급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시, 신고…! 아니, 안 돼!”
끼긱-!
프로그래밍 언어에 어긋나는 말을 들은 문법 나치 로봇이 움직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