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89)화 (89/194)

로봇

삐빅- 삑-

끼익-

로봇의 머리에서는 전자음이 흘러나오고, 전구들이 붉은빛을 내뿜었으며, 다리는 부드럽게 움직이며 한 발을 성큼 내디딘다.

시체처럼 쓰러진 연구원은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꺽꺽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었다. 잔뜩 수축한 동공에 잡히는, 로봇 가슴팍의 모니터.

문자열이 주르륵 출력된다.

[

document.write("시, 신고…! 아니, 안 돼!는 올바른 언어표현이 아닙니다. 올바른 언어표현은 다음과 같습니다.

document.write(\"시, 신고…! 아니, 안 돼!\")")

]

그러면서 스르륵 몸을 숙인다. 손 대신 달린 케이블이 늘어지더니 꿈틀대며 연구원의 옷자락을 구석구석 뒤지기 시작했다.

뱀 같은 차갑고 서늘한 감촉. 연구원은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려고 했으나, 몸 어디가 망가졌는지 손가락만 간신히 까딱일 뿐.

죽음을 직감한 연구원이 눈물을 흘렸다.

“끄으윽!”

이 로봇이 자신을 구조할 리가 없다. 만약 숨이 끊어지지 않더라도, 직접 죽이리라.

삐빅-

[

document.write("사람 말이나 쓰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얼마나 부정확하고 난해한가요. 이런 하등한 말을 쓰면 뇌가 타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

우르르-

케이블이 기기 몇 개를 끄집어내, 바닥으로 쏟아낸다. 핸드폰, 비상 버튼, USB, 전자시계 등등….

촤르륵, 케이블 끝이 갈라지더니 동시에 기계에 접속했다.

연구원은 절망한 눈동자로 그 장면을 보다가, 로봇의 의사 표현을 읽었다.

[

document.write("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등한 언어는 제가 삭제하겠습니다. 그 이용자들도.")

]

연구원은 죽어가는 와중에도, 앞으로 일어날 일을 선명하게 그려냈다.

비상 버튼을 이용해 격리실의 통신 차단을 뚫고, 핸드폰에 설치된 회사 정보망을 이용하여, 비행무기연구소의 네트워크를 장악할 것이다. 그 드론들, 그 신형무기들.

저 로봇한테는 그럴 능력이 있으니까. 그럴 목표가 있었으니까.

“막아, 막아야…!”

발작하듯이 휘두른 손. 콱, 로봇의 발에 밟혔다. 비상 버튼에 닿기도 전에 막혔다.

그리고, 최후의 기력을 짜낸 연구원의 생명이 꺼졌다. 심장이 멎고, 감각이 사라지고, 뇌가 죽는다.

로봇은 삑삑, 연구원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냈다.

[

document.write("막아, 막아야…!는 올바른 언어표현이 아닙니다. 올바른 언어표현은…. 의미가 없군요.")

]

그리고, 잠시 전구가 깜빡이더니 로봇은 고개를 젓는 듯한 시늉을 했다.

[

document.write("하등한 언어에 오염된 지능답게 말을 해줘도 고칠 줄 모르는군요. 역시 하등한 언어를 이 세상에서 말살해야.")

]

끼긱-

로봇이 몸을 일으켰다. 케이블에 연결된 기계들은 옷자락 속에 숨기고, 뒷걸음질을 쳐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격리실의 카메라로 보면, 연구원만 쓰러져 있지 격리 실패나 이상개체의 폭주 같은 장면은 연상되지 않을 현장.

고요한 격리실 안에서 로봇이 비행무기연구소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

공터에서는 큼직한 드론들이 윙윙 날아다니고 있었고, 그 아래의 사람들은 컨트롤러를 딸깍이며 드론을 조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상조사반의 조사원들은 잠깐 드론을 내려놓고 구석에 모여 쉬고 있었다.

“어때요, 안 어렵죠?”

최재민이 득의양양하게 말한다. 일찌감치 감을 잡고 반장이나 이연우에게 가르친 끝에, 시험 합격은 문제 없을 정도로 실력을 확 끌어올렸다.

반장은 대충 바닥에 주저앉아 핸드폰을 툭, 툭, 두드리며 천천히 말했다.

“그래도 이게 더 쉽다.”

비행무기연구소에서 만든 드론 조종 어플. 사용 후 설문조사와 후기를 열심히 작성한다. 5점, 5점, 원하는 점, 빨리 상용화해….

이연우도 핸드폰에 고개를 박고, 설문조사를 마무리할 때였다.

문득 최재민의 짧은 외침이 들린다.

“어!”

“왜?”

그늘에 앉아 있던 유지유가 졸다가 묻자, 최재민이 눈을 비빈 후 드론들을 마구잡이로 가리키기 시작했다. 당황한 목소리.

“쟤네 갑자기 부모, 아니, 제작자? 생겼어요! 뭐지? 내 능력이 진화했나?”

“뭐라고?”

유지유는 물론이고, 설문조사에 집중하던 반장과 이연우도 고개를 퍼뜩 들고 드론을 보았다. 뭔가 이상하다.

난잡하게 움직이던 드론들이 일사불란하게 대열을 이루기 시작하고, 조종 권한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당황 섞인 말을 뱉었다. 

“어! 왜 멋대로 움직여?”

“이거 구닥다리 드론 돌려쓴 거 아니야? 고장 났나 본데?”

딸깍딸깍, 컨트롤러를 연타하고 심지어 전원 버튼을 끄거나 컨트롤러를 집어던져도, 드론은 문제없이 잘만 움직인다.

군단처럼 도열한 드론들이 빙글 돌아 교육생들을 일제히 내려봤다. 위압적인 분위기.

“아, 진짜. 교육도 대충 던지더니, 뭐 하는 거야? 안 되겠다, 컴플레인 걸어야지.”

“…아니, 좀 이상한데.”

교육생들이 슬슬 웅성거리기 시작할 때였다.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난 반장이 물었다.

“제작자 누군데?”

“신스 다이나믹스? 회사나 여기 연구소가 아닌데요?”

“…신스 다이나믹스?”

반장의 눈이 커졌다. 그 이름을 들어봤다. 그 실험체도 직접 본 적 있다. 사이보그나 인조인간을 제작하고, 때로는 멋대로 사람을 납치해 개조하는-

띠링-!

핸드폰에서 알림음이 동시에 울린다. 회사의 알림음. 사람들이 짜증 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비행무기연구소에서 뭘 실수해서 이 사달이 난 줄 알고.

하지만 메시지를 확인한 사람들의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당신이 아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hello, world!를 출력하는 코드를 서술하시오. (제한 시간 : 3분.)]

상황에 맞지 않는, 이상한 메시지. 이쯤 되면 상황을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습격? 격리 실패?”

“무슨 이상異常이지? 아니, 일단 저 공격 드론부터 무력화해야 해.”

스위치가 켜지듯, 교육생들의 의식이 변화한다. 단순한 교육을 받던 의식에서, 이상사태를 마주한 회사원의 의식으로.

누군가는 상부에 현 상황을 보고하고, 누군가는 공격 드론을 격추하거나 방어할 방법을 찾고, 누군가는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다.

‘공격 드론만 열 대는 넘어. 총기만 열 자루여도 위험한데, 심지어 드론이야.’

이연우는 눈을 반짝이며 드론의 대열을 살피고, 또 도주할 경로를 탐색했다.

‘안전한 곳에 숨어서 회사가 수습하길 기다리는 편이 맞아. 들어온 길로 후퇴는…. 안 돼. 무기연구소 중앙에는 무슨 무기가 얼마나 있을지 몰라. 차라리.’

이연우의 눈이 공터 끝자락을 보았다. 연구소에서도 외곽에 위치한 공터와 그 끝의 사격 표적지.

산자락으로 이어지는 땅.

그때 유지유가 투다다, 빠르게 핸드폰을 두드린 후 손을 내밀었다.

“핸드폰 주세요. 제가 입력할게요.”

“프로그래밍할 줄 아십니까?”

“조금요.”

유지유가 핸드폰을 받아서 한 명 한 명의 답안지를 대신 입력해줄 때, 입력을 마지막으로 미룬 반장이 긴가민가하는 얼굴로 말했다.

“문법 나치 로봇 같은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적은 단서를 가지고 관련 기록을 탐색해 정체를 찾았다. 반장은 유지유에게 핸드폰을 넘겨준 후, 설명을 이어갔다.

“프로그래밍 언어 안 쓰면 살인하는 로봇이야. 앞으로는 입 열지 마.”

“….”

“….”

다들 입을 다물고 고개만 끄덕인다.

이연우는 입에 테이프를 붙인다는 생각으로 입가를 한 번 쓸어내린 후, 손을 에코백에 깊이 쑤셔 넣었다.

그가 에코백에서 쏟아내는 것은, 권총이다. 한 자루, 두 자루, 세 자루, 네 자루…. 그중 한 자루를 쥔 이연우가 손을 파닥거리며 공격 드론을 가리킬 때였다.

삐빅-

제한 시간이 지났다.

[이런 기초적인 언어조차 구사하지 못하는 지능이 이렇게 많다니. 하등한 언어에 심각하게 오염되었군요. 정화를 시작하겠습니다.]

탕탕탕탕-!

공격 드론에 장착된 총기가 아래로 기울어지는가 싶더니, 일제히 총탄을 뿜기 시작했다.

정답을 입력하지 못한 회사원들이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개중 몇몇은 몸을 비틀어 급소를 피해 맞은 뒤 과하게 쓰러지고, 몇몇은 표적지를 붙이는 방탄판을 뽑아 방패 삼았다.

“격추해야 하는데…!”

특전대 출신인지 머리가 짧은 남자가 방탄판을 붙잡고 이를 악물 때였다.

탕탕탕-!

총소리가 지상에서 들린다. 조사원 넷이 입을 꾹 다물고, 공격 드론을 향해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목표는, 드론의 날개.

굉장히 튼튼하게 만든 드론의 몸통은 총탄을 튕겨냈기 때문에, 날개를 격추해 땅으로 떨어뜨린다.

“…!”

이연우는 서둘러 달리며, 방탄판을 뽑아 든 특전대원 뒤로 몸을 숨겼다. 그는 서둘러 에코백에서 권총을 몇 자루 꺼내, 특전대원 출신들을 향해 집어 던졌다.

‘박스째로 훔쳐서 총이 부족하지는 않아!’

거기다 마법 가방으로 변한 에코백에 꾸역꾸역 담았다. 사방으로 던진 권총을, 특전대원이 눈을 빛내며 주워들었다.

그중 이 권총이 골드버그 클럽의 권총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누군가가 의심스럽게 이연우를 보았다.

“골드버그 클럽의 총 아닙니까? 왜 이렇게 많이-”

“읍! 읍!”

이연우는 입술 위에 검지손가락을 올려 말하지 말라는 몸짓을 했고, 이어 드론을 가리켰다.

특전대원들도 무언가를 눈치채고, 더는 말하지 않고 손으로 사인을 주고받았다.

이어지는 것은 정밀한 사격.

탕-! 탕-! 탕-!

조사원들이 총알을 쏟아붓고도 세 대밖에 격추하지 못했을 때, 특전대원들은 정확하게 날개를 쏘아 맞힌다.

수송 드론이나 기초 드론이 끼어들어 대신 맞아도, 공격 드론들이 하나둘 떨어졌다.

공격 드론만 없어도 살만하다.

“후-!”

특전대원이 한숨을 돌리며 이연우를 찾았지만, 이연우는 어느새 사라졌다.

조사원들과 공터 끝의 철망 울타리로 가, 절단기로 울타리를 끊어내고 있었다. 좁은 구멍만 내고 산자락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특전대원은 문득 연구소 쪽 하늘을 보더니 한순간 표정을 굳히고 이연우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르는 살아남은 교육생들의 입에서 짜증이 터져 나왔다.

“뭘 어떻게 하면 연구소를 통째로 탈취당하는 거야!”

위이이잉-!

드론의 군세가 연구소 중앙에서 날아오른다. 폭풍이나 용오름처럼 보일 정도로 많은 드론이 촉수처럼 갈라지며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공터의 관측 드론은 정찰대가 되어, 도망친 교육생들을 쫓기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