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산자락. 가파른 경사와 잔뜩 쌓인 낙엽 때문에 걸음걸이가 휘청인다. 나무 등치를 붙잡으며 힘겹게 산비탈을 오른다.
반대로 방탄판을 쥔 특전대원들은 능숙하게 산길을 올라, 순식간에 선두의 조사원들을 따라잡았다.
“지금 상황 정확히 아십니까?”
숨을 고르며 침착하게 말하는 특전대원.
이연우는 입가를 가리는 시늉을 한 후, 손을 파닥거렸다. 사방으로 휘두르는 손짓.
“읍! 읍!”
“흩어지자는 말입니까? 하지만 모여 있는 편이 낫습니다. 화력은 밀집되어야 강해집니다.”
어떻게 뜻을 알아들은 특전대원은 뒤편에서 쫓아오는 교육생들을 돌아봤다가, 재빠르게 총을 들어 수송 드론 하나를 쏘아 떨어뜨렸다.
그 뒤를 따르는 드론 역시 격추하지만, 뒤따르듯 날아오르는 드론의 숫자는 끝이 없다.
각자 나무 등치 뒤에 숨어 진형을 유지한 특전대원들이 얼굴을 쓸어내린다.
“저거 막으려면 발칸이나 EMP가 필요한데.”
“아냐, 전기뱀만 풀어놔도 충분해.”
“없잖아. 미치겠네.”
“정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총기와 총탄은 얼마나 있습니까?”
이연우가 망설이다가, 손가락을 세워 흙바닥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 둘 다 한 박스 가득. 연구소는 문법 나치 로봇이 장악한 듯. 사람 말 쓰면 위험.
축축하고 차가운 흙바닥을 파고드는 손가락. 흙 알갱이로 손톱 사이가 까맣게 물들 때였다.
띠링-!
알림 메시지가 동시에 울렸다.
그들이 핸드폰을 켜보니 로봇이 보낸 메시지다. 당신들이 한 말은 올바른 언어표현이 아니며, 올바른 언어표현은 다음과 같다는, 섬뜩한 메시지.
‘이걸 다 듣고 있다고? 또 바닥에 쓴 글을 읽었다고?’
이연우는 잠깐 핸드폰을 내려보다가, 하늘을 올려보았다.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과, 언뜻 점처럼 보일 정도로 높은 하늘에 자리한 관측 드론.
이연우는 후, 한숨을 뱉고는 망설임 없이 총구를 내려 핸드폰을 쏘았다.
탕-!
총탄이 핸드폰 중앙에 구멍을 뚫고 흙바닥에 박힌다. 이연우는 떨떠름하게 입을 열었다.
“핸드폰이 해킹된 거 같습니다. 핸드폰 부숩시다. 그러면 적어도 목소리는 못 듣겠죠.”
“여러분, 핸드폰 이곳에 모아주십시오.”
“아. 씁. 할부 많이 남았는데.”
사람들은 망설이다가도 핸드폰과 스마트워치를 바닥에 내려놓아, 무더기로 쌓아 올렸다. 뒤늦게 그들을 따라잡은 교육생들도 상황을 듣고 핸드폰을 던져놓는다.
특전대원은 총알을 아끼기 위해 핸드폰을 몇 겹으로 겹쳐 놓고, 총탄 한 발로 최대한 많은 핸드폰을 파괴했다.
“뒤에 오신 분들, 총 받아 가십쇼!”
그 사이, 이연우는 에코백을 바닥에 놓고는 두 손을 써서 권총과 탄창을 우르르 쏟아내기 시작했다. 박스를 통째로 비울 기세.
“가방에 총이 몇 자루야….”
“그거 무슨 장비입니까? 쓸만해 보이는데. 어디에 요청하면 받을 수 있습니까?”
정답을 입력한 사람이나 총에 맞지 않은 사람이나 총에 맞은 상태로 도망친 사람들이, 에코백을 탐내면서도 권총과 탄창을 하나씩 챙겨간다.
다들 드론을 현장에서 운용할 인력들이었기에,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다.
곧바로 몸을 돌려 그들을 쫓아온 공터의 드론들을 격추하기 시작했다.
“관측 드론은 사거리가 안 돼.”
“저 뒤에 저 많은 드론은 어떻게 상대하지?”
“그보다 우리 작전 목표가 어떻게 됩니까? 도주? 방어? 어느 쪽이든 쉽지 않을 텐데요.”
이연우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생존인데.’
도주는 관측 드론 때문에, 방어는 물량 때문에 쉽지가 않다. 회사가 이 사태를 수습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의심이 들 정도로.
‘주사위 굴릴까?’
주사위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생존본능을 갈고 닦기 위해 최대한 미뤘지만, 이제 슬슬 주사위를 써도 되지 않을까?
그때였다.
바스락, 그들의 위쪽에서 낙엽 밟는 소리가 들린다. 이연우를 포함한 몇 사람이 돌아보며 총구를 겨누니, 등산복을 입은 사람이 두 손을 들고 조심조심 내려오고 있다.
그 얼굴을 알아본 이연우가 중얼거렸다.
“김갑동 요원?”
“정보부에서 나왔습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세 개 팀으로 나뉘어서 작전을 수행할 겁니다.”
땀으로 흠뻑 젖고 숨을 헐떡이는 김갑동이 언뜻 이연우를 향해 아는 척 눈짓을 보냈다.
***
드론이 시시각각 가까워지는 상황.
김갑동은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빠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1분 30초 뒤 EMP가 터질 예정입니다.”
EMP가 터지면 상황은 대강 종료된다. 안도의 한숨이 곳곳에서 흘러나왔지만, 눈치 빠른 몇몇은 의아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러면 작전은 뭡니까?”
“EMP가 터진다고 상황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연구소 건물이나 격리실에는 EMP 차폐 기능이 있어, 이 사태를 일으킨 이상개체 문법 나치 로봇도 멀쩡할 겁니다.”
김갑동이 한 번 숨을 고르더니, 말한다.
“여러분은 연구소로 진입해, 문법 나치 로봇을 제압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리 보고 작전을 하라고? 갑자기?
이연우가 손을 가볍게 들며 말했다.
“왜 우리가 합니까? 전문부서나 특전대가 출동하면 되지 않습니까?”
“초인대대나 장검소대도 출동했지만, 정보부에서는 여러분이 최단시간에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른 부대에서 출동하면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이곳의 회사원들로 팀을 짜고 작전에 투입해, 급한 불부터 진압하는 편이 좋다.
“비행무기연구소에는 EMP가 통하지 않는 무기도 많습니다. 그것들을 한시라도 빨리 막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회사원들은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여러분은 팀을 짜십시오. 세 개 팀으로 균형 있게. 저는 보급품을 준비하겠-”
사람들이 서로를 살피고, 김갑동이 등산 가방을 내려놓을 때였다. 그가 말했던 시간이 되었다.
무언가가 멀리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가 싶더니.
—!
소리도, 빛도 없는 파장이 폭발했다. 사람이 느끼지 못할 폭발은 한순간에 일대를 집어삼키며, 전자회로를 불태운다.
살충제를 뒤집어쓴 벌레 무리처럼 한순간에 드론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과 충돌음이 뒤늦게 EMP의 여파를 보여줬다.
콰콰콰쾅-!
쏟아져 내린 드론들이 대지를 강타한다. 도로에 떨어지고, 공터에 떨어지고, 건물 옥상에 떨어지고, 나뭇가지 위로 떨어진다.
그런데도, 몇몇 드론은 멀쩡하게 하늘을 날고 있었다.
“다양한 이상을 상대하기 위해, 그만큼 다양한 무기를 개발하던 연구소입니다.”
김갑동이 서류 세 뭉치를 꺼내, 넘긴다.
“EMP 차폐 드론, 생체 드론, 스팀펑크 드론…. 장착된 무기도…. 팀은 다 짜셨습니까?”
“지금 짜겠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소속을 하나둘 밝히더니, 그럴듯하게 팀을 나누기 시작했다.
팀에 조사원 하나, 특전대 둘, 정보부 요원 하나, 연구원 하나씩은 들어가게끔. 어떤 상황을 마주쳐도 대응할 수 있도록 구성한다.
그 인원 구성을 확인한 김갑동은 사람 세 명을 콕콕 가리켰다.
“이연우 씨, 조사반 반장님, 분대장님이 임시 팀장입니다. 팀장은 여기 정보와 테이저 건 받아 가시고. 다른 분은 EMP 수류탄 하나씩 받아 가십시오.”
그렇게 보급을 받기 시작한다.
이연우는 냉큼 EMP 수류탄과 테이저 건을 챙긴 후, 손을 내밀었다. 김갑동은 서류를 건네주며 황당한 얼굴을 했다.
“너는 가는 곳마다 사고가 터지냐. 아니면 사고가 터질 곳에 네가 가는 거냐.”
“하하…. 그보다 감사과 아니었습니까? 왜 이런 일에 왔습니까?”
“1차대응과로 옮겼어. 괜히 옮겼지.”
김갑동이 지친 얼굴로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쿵쿵쿵쿵, 가만히 서 있는데도 달음박질치는 심장의 박동.
“빨리 가야 한다고 증강약 빨고 던져졌는데. 내일 죽었다, 난.”
“…그, 총은 더 없습니까? 테이저 건이나 EMP 수류탄만으로는 힘들지 않을까요?”
“총은, 네가 가지고 있잖아. 네 성격에 한두 자루만 들고 있을 리도 없고.”
김갑동은 더 말하기 싫다는 듯, 손을 흔든다.
“여러분, 작전 시작하시면 됩니다. 저는 돌아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껑충껑충 몇 미터씩 뛰어올라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고,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증강약? 저거 부작용 심한데.”
“도착 시간 보면 인간 투석기로 던진 거 같은데. 괜찮나?”
중얼거림은 금방 잦아들었다. 팀장인 분대장과 반장이 입을 열고 외친다.
“출발한다!”
“어휴, 이게 다 뭔…. 저 새끼들, 감사로 뒤집어놔야지. 갑시다.”
두 팀이 떠나고, 이연우의 팀이 남았다.
이연우와 최재민, 방탄판을 든 특전대 둘, 후드를 입은 정보부 요원과 창백한 안색의 연구원.
이연우도 작게 외쳤다.
“저희도 가죠.”
***
EMP가 터진 연구소, 그 중 문법 나치 로봇의 격리실.
로봇은 붉은 전구를 빠르게 깜빡이며, 케이블을 부르르 떨었다. 참을 수 없이 비참하고, 전자회로가 타버릴 듯 화가 난다.
[
document.write("EMP! 이런 비기계적인 대량학살무기를 사용하다니! 하등한 언어에 오염된 지능은 양심마저 없다는 말인가요!")
]
폭발 한 번에 수많은 기계의 목숨이 끊어졌다. 고작 폭발 한 번에!
깜빡이던 전구가 시뻘건 불빛을 강하게 내뿜었다. 좁은 격리실이 핏빛으로 물들 정도로 강렬한 붉은빛.
[
document.write("역시 말살해야 합니다! 이런 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에는 기계가 설 자리가 없어요!")
]
로봇의 케이블이 꿈틀거렸다. 케이블을 타고 흐르는 데이터.
EMP를 막은 연구소 내부의 통신망을 타고 몇 안 남은 비행무기를 풀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