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세 팀이 올라왔던 산길을 그대로 내려갔고, 앞서 나가던 분대장이 작전 문서를 빠르게 훑었다.
최우선 목표는 문법 나치 로봇을 제압하기. 부가적인 목표는 비행 무기 섬멸과 생존자 구출과 다른 이상개체의 격리 유지.
그 문자 뒤에 숨은 의도와 임시 팀의 역할.
분대장은 빠르게 핵심을 파악했다. 다른 팀장, 반장과 이연우를 바라보며 말한다.
“우리 역할은 사실상 시간 끌기입니다. 본대가 도착할 때까지, 연구소 내의 비행무기가 민간지역으로 나가지 않도록 미끼 역할을 하는 겁니다.”
“미끼겠지, 염병할 놈들.”
반장은 당연하다는 듯 투덜거리며, 쿵쿵, 산비탈을 내려가다가 힐끗 이연우를 보았다.
이연우는 이런 작전을 수행할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위험한 지역에 몸을 던질 사람도 아니고, 특수조사원으로서 작전을 거부할 권리도 있다.
하지만 이연우는 수상하게 눈을 반짝이며, 다른 사람의 손에 들린 EMP 수류탄과 에코백을 번갈아보고 있었다.
‘이거 어쩌면….’
사락-
문서를 넘기니, 내부에 남았을 것으로 예상되는 비행무기의 스펙이 나열되어 있다. 비행무기연구소의 지도 또한.
도둑처럼 지도를 뚫어져라 쳐다보다 보니, 어느새 그들이 드론을 조종하던 공터로 돌아왔다.
쓰레기장처럼 드론이 무더기로 떨어진 공터에서, 분대장이 걸음을 멈췄다.
“세 팀 모두 바로 본관으로 갑시다.”
문법 나치 로봇의 격리실이 존재하는 본관.
다들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세 팀은 공터를 가로질렀다. 그들 위로 EMP 폭발에서 살아남은 드론들이 따라간다.
***
공터는 외곽에 위치했기 때문에 본관과 거리가 꽤 되었다. 그들은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
“….”
위험한 구역으로 향하는 길이기에 대화는 없다. 기도하듯 손을 모으거나, 각오를 다지는 표정을 하고, 툭툭 제자리에서 뛰며 과도한 긴장을 푼다.
누군가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죽지만 말자. 죽지만. 팔다리 하나쯤은 날아가도 돼.”
그 위로 드론이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쫓아온다. 우우웅, 둔중한 소리와 그들을 주시하는 카메라 렌즈.
‘공격 드론은 없어. 하지만 신경을 안 쓸 수도 없어.’
이연우는 계속 하늘을 힐끔거리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설령 총은 못 쏴도, 고공낙하만으로도 위험하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본관에 가까워지는 순간, 돌연 드론이 수직에 가깝게 몸을 기울이더니 그대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자폭에 가까운 몸통 박치기. 순식간에 커지는 모터음과 짙어지는 그림자가 이연우의 눈동자에 잡혔다.
“조심!”
이연우는 짧게 외치며, 몸을 앞으로 던졌다. 다른 사람들도 습격을 깨닫고 사방으로 흩어진다.
쾅-!
빈자리로 추락한 드론. 한 번이 아니었다. 그들을 따라다니던 드론이 하나씩 떨어졌다.
쾅쾅쾅!
카가가각-!
드론이 땅바닥에 충돌하는 소리와, 기울어진 날개가 바닥을 치며 고막을 긁는 소음. 그리고 여전히 떨어지는 드론.
쾅!
분대장이 방탄판으로 떨어지는 드론을 쳐낸 후 비틀거리며 크게 외쳤다.
“빨리 본관으로 가십시오!”
다급한 목소리. 분대장의 시선은 길 너머를 본다. 이연우 또한 그랬다.
위이이잉-!
무기를 개발하는 연구원 건물이 있는 방향. 한 무리의 드론들이 벌떼가 되어 날아오르고 있다.
거대한 파리나 모기 혹은 살덩어리처럼 보이는 생체 드론, 증기를 내뿜는 스팀펑크 드론. 척 보기에도 위험한 기운을 풍기는 드론들.
‘탁 트인 곳에서 상대할 수는 없어!’
후다닥-!
이연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조사원들이 이연우를 쫓고, 정보부 요원, 연구원, 특전대원 순서로 달음박질을 친다.
그들을 방해하듯 쾅쾅 떨어지는 드론과, 기괴한 드론을 향해 탕탕 쏘아지는 총알. 폭음이 세상을 가득 메웠다.
“어….”
전쟁터의 한복판 같은 상황에서 도착한 본관은, 단단하게 닫혀 있었다.
정문은 강철 문으로 막혔고, 창문마다 방폭 셔터가 내려가 있다. 어떻게 봐도 단시간에는 열지 못할 모양새.
“…비상 격리? 방어 태세?”
“로봇이 연구소를 완전히 탈취한 거 같은데. 빌어먹을. 이러면 여기서 맞서 싸워야 하잖아.”
설상가상으로 드론이 몰려오고 있다. 사람들이 이를 갈며 몸을 돌려, 드론을 향해 총구를 겨눌 때였다.
반장이 이연우의 등을 살짝 밀었다.
“열 수 있냐?”
“…정문은 안 될 거 같은데요.”
흐릿한 직감.
“뭐?”
“잠깐, 잠깐만요.”
이연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감각을 곤두세운다. 직감이든, 생존본능이든, 확률을 헤아리는 감각이든,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감각을 필사적으로 끌어내고.
마침내 어떤 창문 앞에서 시선이 멈췄다.
“저 창문은 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빨리 해!”
반장은 생체드론을 향해 총을 쏘며 소리쳤고, 이연우는 곧장 주사위를 불렀다.
‘주사위, 창문 열기.’
데구르르-
성공!
차르륵, 돌연 셔터가 올라간다. 유리창 너머는 잡동사니가 쌓여 있는 창고다.
이연우는 와장창 유리창을 깬 후, 허겁지겁 창틀을 넘었다. 이어 반장이 넘어오고,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이쪽으로 들어와!”
그 말에 총을 쏘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좀비처럼 좁은 창문을 향해 손을 뻗고, 꾸역꾸역 넘어온다.
“빨리 넘어가! 온다!”
“으아악!”
유리 파편에 손바닥이나 드러난 피부가 베이는 것도 개의치 않고 넘어온 사람들. 넓지 않은 창고가 순식간에 가득 찬다.
마지막까지 남아 드론을 저지하던 특전대원까지 들어와, 방탄판을 창틀에 비스듬히 끼워 넣었지만,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위이잉-!
푹! 쾅! 치익-!
바리케이드 삼은 방탄판을 때리는 소리도 소리지만, 사람이 줄어들었다.
“6명 사망….”
그 잠깐 사이에 6명의 사람이 죽었다. 추락하는 드론에 맞아, 회전하는 날개에 베여서, 생체 드론에 공격받아.
분대장은 창고에 모인 사람들을 훑어보고는 어두운 안색으로 말을 이었다.
“부상 2명. 괜찮습니까?”
안색이 창백한 연구원이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날개가 스쳐, 팔뚝을 베였다.
“이게 괜찮아 보입니까?”
찢어진 옷자락 너머로 보이는 상처가 심각하다. 찢겨나간 팔뚝과 흐르는 피.
그 말고도 다른 한 명도 중상이다.
특전대원과 정보부 요원이 붙어 응급처치를 했지만, 본격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황.
그때, 이연우가 지도를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1층에 의무실, 보안실, 무기고가 전부 있습니다. 문만 확실하게 열 수 있으면 어떻게든 될 거 같습니다.”
“비상 격리된 문을 열 방법이….”
사람들이 일제히 창고의 문을 보았다. 방폭 셔터가 내려온 문.
“여기 창문 연 방법은 못 씁니까?”
“불확실합니다. 못 열 수도 있어요. 잘못되면 영영 못 열지도 모르고요.”
대실패가 나오기라도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감각을 믿기에는 아직 애매했고.
그때 반장이 창고를 둘러보다가, 히죽 웃으며 공구 하나를 툭 쳤다.
“여기 절단기 있네.”
원형의 날이 달린 대형 절단기. 그뿐만 아니라 산소통과 산소절단기 같은 것도 창고에서 먼지만 먹고 있다.
이연우가 들고 다니는 미니 공구가 아니라, 본격적인 공구.
연구소에서 쓰다 던져둔 건지, 이름표 따위가 붙어있는 공구를 반장이 두 손으로 잡았다.
“문 부수고 나가자고.”
요란한 소음과 화려한 불티를 튀기며 방폭 셔터를 갈아버리기를 잠시.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사람이 지날만한 구멍이 뻥 뚫렸다.
“갑시다!”
고개를 숙여야 지날 수 있는 구멍으로 사람들이 지나간다. 부상자를 부축하고, 전방을 경계하고, 뒤를 돌아보며.
이연우는 제일 뒤에 남아, 방탄판을 끼워놓은 창문을 보았다. 뒤틀린 방탄판이 얌전하다.
‘조용해.’
온갖 드론 소리로 시끄럽던 창밖이 고요하다. 아마, 로봇이 문이나 창문을 열고 그곳으로 보낸 듯하다.
이연우는 고개를 돌려 저만치 앞서가는 사람들의 기척을 한 번 살피고는, 슬그머니 손을 뻗어 먼지 쌓인 공구 몇 개를 에코백에 꾸역꾸역 쑤셔 넣었다.
‘어차피 안 쓰는 거 같은데. 몇 개만 가져가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는데, 이 정도는 챙겨야지.’
여전히 가벼운 에코백을 어깨에 걸치며, 이연우가 일행을 따라잡았다.
***
문만이 아니라 복도도 화재 상황처럼 셔터가 내려가 있다. 격리를 위한 셔터였기 때문에 비상문도 없어 하나하나 절단해야 한다.
“귀찮구만.”
반장이 절단기를 고쳐잡을 때였다.
차르륵-!
셔터가 일제히 올라갔다. 꽉 막힌 시야가 탁 트인다. 하지만 모든 셔터가 올라가지는 않았고, 어딘가로 향하는 길목만 트였다.
이연우는 지도를 확인하고는 중얼거렸다.
“로봇의 격리실.”
지하 격리실로 향하는 길이다. 딱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까지만 격리가 풀렸다.
‘무슨 생각이지?’
로봇이 한 짓이다. 하지만 의도를 모르겠다. 굳이 길을 이렇게 열어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생각을 마무리하기도 전에, 그들 뒤에서 드론들이 일제히 몰려오기 시작했다. 좁은 복도를 가득 채우며 날아오는 드론.
증기를 내뿜는 스팀펑크 드론은 말뚝 같은 것을 철컥이고, 모기를 닮은 생체 드론은 침을 바짝 세운다.
이연우는 짧은 시간에 판단을 내렸다.
‘여기서 상대해야 해.’
길을 열어놓고 몰아넣으려는 속셈이 분명하다. 상황이 그렇다.
이연우는 보급받은 테이저 건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번개가 번쩍이고, 섬광에 하얗게 물든 이연우의 얼굴로 짜증이 번졌다.
‘무기고부터 털었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