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92)화 (92/194)

로봇

로봇이 연 통로. 앞은 로봇이 몰아넣기를 유도하는 지하 격리실이고, 뒤는 드론의 파도가 몰려오는 사지다.

두 방향 중 이연우는 드론의 파도를 선택했다. 적의 의도를 따르는 편이 더 위험하다.

“여기서 상대해야 합니다!”

이연우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반장과 분대장이 테이저 건을 쏘았다. 연달아 번쩍인 섬광.

세 갈래의 푸른 번개가 복도를 가로지르고, 스팀펑크 드론 하나와 생체 드론 둘을 둘둘 말며 스파크를 사방으로 튀겼다.

파지직-!

벌레 타는 냄새가 풍기고, 얄팍한 곤충 날개가 오그라들며 생체 드론이 떨어졌지만, 이연우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칙-! 칙칙-!

뿌연 증기를 뿜어내는 스팀펑크 드론은, 번개뱀에 물려도 아무 문제 없이 기계장치를 덜컥인다. 정교하게 맞물려 회전하는 톱니바퀴와 심장박동처럼 철컥이는 실린더.

파직-

스팀펑크 드론을 휘감은 번개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몸통을 흔들었다. 마치 이게 왜 계속 움직이냐는 듯.

생체 드론의 시체에 똬리를 튼 뱀들도 고개를 세우고, 드론에 실려 날아가는 번개뱀을 보았다. 마치 놀이기구를 구경하는 모양새.

이마를 짚은 이연우가 외쳤다.

“그 드론 말고, 생체, 아니, 큰 벌레를 공격해! 다른 애들도 가만히 있지 말고!”

번개뱀이 알아듣기 쉽게 손까지 퍼덕이자, 세 마리의 뱀이 고개를 기울이다가, 그들을 스쳐 가는 생체 드론을 향해 날아들었다.

푸른 번개가 질주하며 생체 드론의 날개를 태우고 신경계를 파괴한다.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지는 생체 드론.

그동안, 사람들은 총을 들고 스팀펑크 드론을 격추하기 시작했다.

“스팀펑크 드론만 쏘세요! 생체 드론은 뱀이 처리할 수-! 미친! 총을 어디다 겨누는 거야!”

난장판이다. 정보부 요원이나 특전대원은 그런대로 잘 싸우지만, 연구원은 어설프게 권총을 겨누다 같은 팀을 쏠 뻔하기도 한다.

결국, 스팀펑크 드론 하나가 거리를 좁혔다.

칙-! 철컥철컥!

둔중하게 왕복하는 말뚝이 특전대원의 방탄판을 후려친다. 쾅쾅쾅, 잇따른 타격에 특전대원은 그대로 밀려났다. 방탄판은 버텼지만, 그 충격을 감당하지 못한다.

“밀쳐!”

분대장의 외침에 특전대원이 이를 악물고 체중을 실어 방탄판을 쭉 밀었다. 쾅, 스팀펑크 드론이 비틀거리는 순간.

탕탕탕-!

분대장이 단번에 세 발을 쏘아, 드론의 핵심기관을 맞췄다. 고스란히 박힌 세 발의 총탄. 황동 빛의 금속이 우그러진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추락한 스팀펑크 드론.

순간 이연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위험한 거 같은데, 감각이 확실하지 않다.

‘느낌이 이상해. 뭔가 둔하고 탁한 느낌-’

생각이 마무리되기 전에 사고가 일어난다.

덜커덕덜커덕-

땅바닥에 떨어져 꿈틀대는 스팀펑크 드론에서 고압 증기가 물줄기처럼 쏘아지는가 싶더니, 한순간, 쾅 하고 폭발했다.

콰아앙-!

상상을 초월하는 폭발. 화염이 한순간 솟구치고, 톱니바퀴며 파이프며 실린더의 파편이 산탄총처럼 쏘아졌다. 거기에 뜨거운 증기와 물방울까지.

으아악, 비명이 복도를 메아리쳤다. 드론을 밀어냈던 특전대원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주변의 파편을 맞은 사람들은 악을 쓰면서 상처를 살폈다.

그리고, 이연우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넋이 나간 듯 멍하니 금속 파편이 박힌 팔뚝을 본다. 흘러나오는 핏물.

탕탕, 타앙-!

“폭발한다! 날개만 쏴! 망가뜨려!”

“부상! 부상!”

“후방으로 후퇴한다! 계단! 계단으로 가!”

총성과 비명과 모든 소리가 멀게 느껴진다.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세상 자체가 멀어진 느낌. 온통 흐려져 심장 박동만이 들려오는 세상.

어지러운 머리를 오직 공포와 혼란만 가득 채웠다.

‘왜?’

분명히 예측할 수 있는 위험이었다. 당연히 증기기관이 충격을 받으면 폭발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걸, 터지는 순간까지 몰랐다고?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맞았다고?

‘내가 죽을 수 있는 위험을 못 알아챘다고?’

그렇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동안, 누군가 이연우의 목깃을 확 잡고 끌어당겼다.

“정신 차려! 다 물러나는데 뭐하고 있어!”

“아….”

반장의 고함. 이연우는 순간 비틀거렸다가, 지하계단으로 도망치는 사람들을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이 복도에 선을 그리고, 드론들은 핏자국을 쫓아 맹렬하게 날아오다가 계단 앞에서 멈춘다.

그리고, 차르륵 셔터가 내려오며 계단 입구를 단단히 막았다.

***

지하격리실로 내려가는 계단.

사람들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고 몸을 비틀거리며 힘겹게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다가 층계참에서 멈췄다.

계단 앞의 방폭셔터가 내려오고, 드론이 더 이상 쫓지 않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바닥이나 계단에 주저앉고, 난간이나 벽에 등을 기대 숨을 돌렸다.

“응급치료 먼저 하겠습니다.”

이제 얼마 안 남은 특전대원들이 어두운 안색을 하고 주변을 돌아다녔다. 겉옷을 찢어 붕대 삼아 압박해 지혈하는 게 끝이었지만.

한편 이연우는 구석에 쪼그려 앉아, 넋이 나간 얼굴로 팔뚝을 보고 있었다. 한순간에 교차한 생사. 파편이 목에 박히기라도 했으면.

“연우야, 괜찮냐?”

“괜찮아요?”

조사반 식구들이 연우를 둘러싸고 걱정 어린 말을 건네지만, 이연우는 듣지 못했다.

오직 혼란에 빠져 생각을 거듭할 뿐.

‘다 잘 되고 있었어.’

빗물부터 에코백까지 이상개체를 모았고, 확률을 헤아리는 감각도 흐릿하게나마 얻었다.

비행무기연구소의 무기를 챙길 계획도 나쁘지 않았다. 다소의 위험은 있겠지만, 그 또한 필요했으니까.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었지.’

일종의 딜레마다. 생존본능을 갈고닦으려면,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몸을 던져넣어야 됐으니까.

하지만 그 결과가 어땠나.

‘죽을뻔 했어. 반응도 못 하고.’

이연우는 검고 딱딱하게 굳어가는 핏물을 보았다. 죽음을 앞두고 필사적으로 살길을 찾아 움직이던 머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이연우의 앞에 분대장이 섰다. 그는 천 자락을 흔들며 이연우의 상처를 보았다.

“응급치료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필요 없습니다.”

“피는 멎은 듯하지만 그래도-”

“정말 괜찮습니다.”

으직-

이연우가 손을 뻗어 금속 파편을 어루만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파편을 쥐어 뽑는다. 마치 가시 뽑듯이 뽑은 파편.

“어어!”

조사반은 물론 분대장도 기겁하며 다가오다가, 멈췄다.

피가 더 흐르지 않았다. 피딱지가 상처를 덮었다. 언뜻 보면 이미 새살이 돋은 듯, 분홍빛 살결이 보이는 듯하다.

“…초인대대 훈련병입니까? 거기는 드론 필요 없을 텐데.”

“그냥 조사원이야. 그만 가봐. 저기 피 흘리는 사람 있네.”

의아한 표정의 분대장을 반장이 돌려보낸다. 반장은 고개를 돌려 이연우를 살폈다.

심각한 얼굴을 한 이연우는 파편을 에코백에 집어넣고 있다. 심상치 않은 기색.

“연우야. 죽을 거 같아서 그래? 그건 걱정하지 마라. 여기 조사원이 몇 명이냐.”

“아뇨. 걱정을 많이 해야겠습니다. 아무래도 방심한 것 같아요.”

이연우는 단단하게 다져진 눈으로 상처를 보며 쓰다듬었다.

확률을 헤아리는 감각과 교환된 듯, 무뎌진 본능. 결국 미래 이연우의 실수를 그대로 담습했다.

‘방주를 찾겠다고 날뛰던 인간이랑, 생존본능을 훈련하겠다고 죽을 자리를 찾는 인간이랑 다를 게 없어.’

생존본능을 갈고닦고 뭐고, 위험한 일은 애초에 피하는 게 옳다.

“초심을 찾아야겠습니다. 빗물 좀 마시고, 주사위 좀 다룬다고 방심했어요. 저는 단순한 인간일 뿐인데.”

인간자격시험을, 그 자격증을 떠올린다. 오직 한 사람으로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던 그때.

이연우가 속으로 다짐을 되뇌었다.

‘나는 단순한 인간이야.’

맨몸의 인간. 이상異常 하나에 죽어버리는 인간. 이곳에서 죽어 나간 회사원들처럼,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인간.

흐려졌던 본능이 살아나는 듯, 머리가 쌩쌩 돌기 시작했다. 예민하게 곤두선 감각이 세상을 선명하게 받아들이고, 쿵쾅거리는 심장이 전신으로 활력을 뿜어낸다.

팔락-!

이연우가 문서를 펼쳤다. 비행무기연구소의 지도와 드론들과 이상개체. 그가 외쳤다.

“로봇이 우리를 지하로 유도했습니다. 그 목적을 파악해야 합니다.”

“뭘 목적이랄 것까지 찾습니까. 우리를 죽이려는 거겠지.”

안색이 창백한 연구원이 근처에서 답하지만, 이연우는 고개도 들지 않고 문서를 샅샅이 훑었다.

“어떻게 죽이느냐가 문제죠. 지하의 이상개체는 직접적으로 위험하지는 않은데. 왜 지하로 몰아넣었지?”

문법 나치 로봇처럼 드론을 조종하거나 네트워크를 해킹하는 등, 직접 사람을 죽일만한 이상개체는 없다.

그때 연구원의 안색이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질리더니, 다시 하얗게 돌아왔다.

“설마…. 아니겠지.”

“말해보십시오.”

이연우가 묻자, 연구원은 꽉 막힌 계단 입구를 보았다. 마른 입술을 몇 번 핥은 후 말한다.

“몇몇 부서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붕괴 시스템이 있어요. 건물째로 무너뜨려서 못 빠져나가게 만드는 시스템인데….”

이연우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그 눈동자에 고개를 젓는 연구원이 비쳤다.

“그러면 로봇도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런 짓까지 할 리는 없어요.”

“그건 모를 일입니다.”

이상개체의 생각을 어떻게 예측할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 이연우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질문을 던졌다.

“붕괴 시스템, 지금 로봇이 장악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됩니까?”

“시간이…. 아마 아직은 안 됐을 겁니다. 독립적인 시스템이고, 손으로 직접 풀어야 하는 것도 있어서.”

생체 드론이 있으니 안심할 수 없다. 수송용 생체 드론은 손 비슷한 것도 달려 있을 테니.

이연우가 손을 들고 외쳤다.

“지금 바로 로봇한테 갈 겁니다! 같이 가실 분 계십니까!”

그나마 멀쩡한 사람 둘이 일어났다.

분대장, 반장.

다른 사람은 부상이 심하고, 또 부상자를 돌볼 필요가 있었다. 애초에 사람이 많이 줄어들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연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빨리 문법 나치 로봇을 처리합시다. 다른 짓 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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