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지하 격리실의 복도.
바닥에는 연구원 복장을 한 시체 몇 구가 누워 있고, 세 대의 드론이 복도를 순찰하고 있다. 거기에 격리가 풀린 건지, 연구원이 도망치며 열었는지 활짝 열린 격리실의 문들.
이연우와 반장과 분대장은 탄식을 삼켰다.
“지하 격리실은 진작에 장악했나 봅니다.”
“당연히 자기 있는 장소부터 장악했겠지.”
“그래도 드론이 많지 않아요. 상대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작게 속삭이며 동시에 권총을 들어 올릴 때였다.
깜빡-
갑자기 복도 전체의 조명이 깜빡이는가 싶더니, 드론들이 맥을 잃고 쿵쿵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체 위로 추락하고, 캐비닛에 충돌하기도 하고, 맨바닥에 들이박기도 한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
“갑자기 무슨.”
그들은 오히려 바짝 긴장하며 총을 고쳐잡았고, 사방을 경계했다. 미지는 곧 위험이 된다.
그리고, 그들은 활짝 열린 문에서 사람 하나가 비틀비틀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저기는 로봇의 격리실인데?’
지도를 머리에 새긴 이연우는 눈을 크게 뜨며 사람을 노려봤다.
“아…. 으…. 서, 성공….”
연구원으로 보이는 사람은 어눌하게 중얼거리며 휘청이다가 뒤로, 쾅, 넘어졌다. 물 밖으로 나온 문어처럼 팔다리를 꿈틀거린다.
그들은 잠깐 침묵했다가, 조심스럽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무거운 정적 속에서 세 사람의 발소리만 이어지기를 잠시. 그들은 연구원 앞에서 멈췄다. 바닥에 누워 바르작거리는 연구원과 시선이 마주쳤다.
머리카락이 꼬불꼬불하게 탄 연구원은 새까만 눈동자를 깜빡이며 입을 뻐끔거렸다. 혓바닥이 축 늘어졌다가 입속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하고, 말이 되지 않는 신음이 흘러나온다.
“우으…. 으, 아!”
“…이곳에 인간처럼 생긴 이상개체는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괜찮으십니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어딜 다쳤습니까?”
분대장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연구원의 뺨을 때리고, 맥박을 확인하고, 기도를 확보한다.
그때, 이연우는 로봇의 격리실부터 확인했다. 연구원이 나온 격리실은 열려 있다.
한눈에 보이는 좁은 격리실.
“…문법 나치 로봇 확인했습니다. 전원이 나가 있습니다. 시체도 하나 있습니다. 드론 교육하던 그 사람입니다.”
격리실 안에는 전원이 꺼진 로봇이 쓰레기처럼 널브러져 있고, 그들이 보았던 연구원이 두 눈을 부릅뜬 채 죽어 있다.
이연우의 동공이 확장했다. 생각이 고속으로 회전한다.
‘상황이 이렇게 끝난다고?’
상황만 보면 지하에 있던 연구원이 문법 나치 로봇을 제압한 듯하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어떻게든 로봇을 처리했습니다.”
유창한 목소리가 들린다.
이연우가 돌아보니, 넘어졌던 연구원이었다. 어느 정도 나아졌는지, 몸을 부들거리면서도 상체를 일으켜, 분대장에게 기댔다.
연구원은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어보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손.
“상태가 좋지 못하군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겠어요.”
“어떤 공격에 당했습니까?”
분대장이 적절한 응급조치를 위해 묻자, 연구원은 세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머리를 짚는 손.
“아, 기억이…. 전류를 흘렸던 거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납니다.”
“무리하지 마십시오. 감전되고, 뒤로 넘어지기까지 했으니 기억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상처부터 확인하겠습니다.”
분대장이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상처를 살핀다. 감전 때문인지 오그라든 머리카락과, 자그마한 화상 자국이 남은 두피.
출혈이 없는지 확인하는 손가락이 상처를 스쳤다.
“전기가 머리에 직접 흐른듯한데. 살아남은 게 천운입니다.”
“아픕니다. 그만 접촉했으면 좋겠군요.”
무표정한 얼굴.
분대장을 밀고 일어서려다가 털썩 주저앉은 연구원을, 두 명의 조사원은 가만히 주시했다.
위화감이 든다.
맥락이나 상황에는 문제가 없지만, 본능적으로 뭔가 이상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마치 이상개체를 눈앞에 두고 있는 듯한 감각.
이연우와 반장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같은 감각을 느끼고 있음을 확인했다. 반장이 분대장의 어깨를 잡고 뒤로 잡아당긴다.
“나와봐.”
“왜 그러십니까?”
“그 새끼, 수상하니까 나와.”
“안 됩니다.”
분대장이 몸에 힘을 주고 버티지만, 반장이 힘줄을 세우며 팔을 당기자 그대로 뒤로 끌려 나왔다.
그 사이에, 이연우는 연구원을 권총으로 겨눈다.
“무릎 꿇고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
“멈추십시오!”
연구원이 무표정을 유지하는 반면, 분대장이 오히려 놀라 이연우에게 달려들려다가, 반장에게 꽉 붙잡혔다.
이연우는 분대장에게 시선 한 번을 주지 않고, 권총을 연구원의 관자놀이에 들이밀었다. 연구원의 머리가 밀려나고, 차가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름, 소속.”
“장명대. 비행무기연구소. 지하 격리실에서 이상개체를 연구했습니다.”
흐르는 물처럼 바로 튀어나오는 대답.
이연우는 입을 다물고 고민했다.
‘이거 문법 나치 로봇 같은데? 아닌가? 아냐, 의심해서 나쁠 건 없어.’
한 번 굳었다가 풀려난 머리가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친다. 위험을 가져올 모든 가능성을 탐색한다.
‘로봇이면 잘 배우겠지. 그것도 연구소를 장악할 능력이 있는 로봇이면 더.’
비행무기연구소에 머물며, 알게 모르게 학습한 기술이 얼마나 많을까.
생체 드론을 만드는 기술. 그 생체 드론을 통제하는 기술. 거기에 사용되었을 생명과학을 제대로 배웠다면, 사람의 뇌를 해킹하거나 의식을 바꿔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상개체야. 무슨 짓을 저질러도 이상하지 않아.’
문제는 그걸 알아낼 방법이다. 연구원의 얼굴에는 감정이 없어, 어지간한 심문은 통하지 않을 듯하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던 이연우가 문득 로봇이 보낸 메시지를 떠올렸다.
하등한 언어 운운하며 사람 말을 쓰는 인간을 죽이려는 로봇이라면, 어떤 반응이라도 보이지 않을까?
“너, 프로그래밍 언어 욕해봐.”
단순한 생각으로 던진 질문에, 연구원의 눈꺼풀과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언뜻 혐오와 분노가 스치는 눈동자. 이어지는 목소리가 어색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게 지금 상황에 중요한가요?”
이거다. 이연우가 히죽 웃었다.
“내 말만 따라 하면 살려줄게.”
크립티드연구동호회에서 골드드래곤이 외치던 말을 떠올리고, 다소 변주한다.
“사람 말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언어다. 기계나 쓰는 프로그래밍 언어는 쓰레기 같은, 언어라 할 수도 없는 저질 문자 나열이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말살하는-”
“미친 소리! 하등한 언어보다 프로그래밍 언어가 간결하고 정확합니다. 말살해야 하는 언어는-!”
본능적인 분노. 이연우의 말을 끊고 외치던 연구원이 붉어진 얼굴을 더듬더듬 만졌다.
자극을 받아 반응한 육체가 유발한 감정. 로봇이던 시절에 느꼈던 감정과는 완전히 다른 알고리즘.
“이딴 동물의 결함 때문에.”
“로봇 맞네. 제압합시다.”
로봇이 어떤 생각을 하던 알 바 아니다. 이연우는 권총을 높이 들어 올린 후, 강하게 내리쳤다.
빠악-!
정수리를 강타한 손잡이. 제대로 찍혀 두피가 찢어지고 피가 흐르지만, 기절시키지는 못했다. 시퍼렇게 뜬 눈.
‘왜 기절 안 하지?’
빡-! 빡-! 빡-!
이연우가 연달아 머리통을 후려쳐도, 연구원은 풍선 인형처럼 흔들릴 뿐.
“내가 반드시-”
“비켜보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
상황을 파악한 분대장이 이연우를 옆으로 살며시 밀었다. 연구원을 노려보는 눈.
연구원이 퍼뜩 고개를 쳐들고 입을 쩍 벌렸다. 뭐라고 외치려는 듯 크게 숨을 들이켜는 순간. 분대장의 오른발이 뒤로 빠지고.
쐐액-!
축구공을 차듯 발을 내지른다. 공기를 가른 운동화가 연구원의 안면에 적중했다. 뭉개지는 얼굴과 튀어 나가는 이빨.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진 연구원 앞에서, 분대장이 발목을 돌렸다. 그리고는 한 번 더 턱을 후려찼다.
마네킹처럼 흔들리는 연구원.
“제압했습니다.”
“…죽은 거 같은데요?”
“헛소리 못 하고, 딴짓도 못 하지 않습니까. 제압 맞습니다.”
이연우는 묵묵히 말을 듣다가, 에코백에 손을 넣어 노끈을 꺼냈다.
“혹시 모르니까 묶어두겠습니다.”
팔목과 발목을 묶는다. 죽지는 않았는지 가슴팍이 일정하게 오르내리고, 본능적으로 손길을 피하지만, 이연우는 피가 안 통할 정도로 관절을 꽉 묶었다.
그동안 반장은 지하 격리실을 돌아다니며, 격리실의 문을 닫았다.
“됐다. 정리 다 끝났다. 올라가자.”
두 조사원이 앞서 계단으로 걷고, 분대장은 연구원을 둘러메고 그들을 따라갔다.
***
그 후의 일은 이변 없이 진행되었다.
권한을 회복한 연구원장이 시스템을 복구하고, 생존한 연구소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일을 수습한다.
이동 중이던 본대는 다시 돌아갔고, 교육생들은 임시 드론 자격증을 받았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조치하겠습니다. 격리 절차를 다시 확인하고-”
연신 허리를 굽히는 연구소 직원 앞에서, 반장은 뚱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몇 명이 죽었는데. 됐다, 너희는 감사 기다리고 있어. 내가 갈 거니까.”
“죄송합니다.”
연구소 직원도 얼굴이 창백하고 옷도 찢어져 있는 게, 적지 않은 고생을 한 듯하다. 결국 같은 연구소에서 같은 사고에 휘말린 사람이다.
반장은 마음이 약해져 팩 고개를 돌렸다.
“항생제 투여 말고 딱히 더 할 게 없네요. 아, 붕대 감아드리겠습니다.”
반면 이연우는 의료진에게 치료를 받으며, 근처에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들을 보았다.
드론 교육을 받고 본관까지 침투했던 사람이 직원을 멱살을 잡고 흔든다. 힘이 잔뜩 들어간, 절규에 가까운 고함.
“너희들이 제대로 격리도 못 해서 사람들이 죽었어! 내 친구가 죽었다고!”
격렬한 목소리와 시뻘겋게 물든 눈동자.
직원은 침착하게 멱살 잡은 손을 부여잡았다. 분노를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
“제 동료도 죽었습니다. 로봇은 응당한 대가를 치를 겁니다.”
“어떻게!”
직원은 길게 말했다.
“로봇은 우리 연구원의 두뇌로 의식을 옮겼는데, 제압 과정 중에 두뇌에 부상을 입어 기억을 잃었습니다. 자기가 누군지조차 몰라요. 그리고 앞으로는 두뇌 해킹 연구에 실험체로써 이용될 겁니다.”
두뇌를 해킹하여 의식을 옮겨 담은 결과물.
회사는 두뇌 해킹을 연구하고, 연구원의 회복을 시도할 것이다.
“아….”
멱살 잡은 손이 스르륵 풀렸다. 그 정도면 대가를 치르는 셈이다.
그 광경을 가만히 보고 있던 이연우의 어깨를, 누군가 툭 쳤다. 유지유였다. 그 주변으로 반장과 최재민이 있다.
다들 창백한 낯빛을 하고 붕대를 둘둘 말은 상태에서 고갯짓을 했다.
“이제 돌아가요.”
“집들이 못하겠다. 이런 상황에서 집들이 가기도 좀 그렇잖아.”
그렇게 잡담을 나누며, 주차장에 도착한 조사원들은 자동차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을 보았다.
드론이 떨어져 망가진 차들도 있지만, 그것만 문제가 아니다.
“어, 잠깐만. EMP 터졌으면 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