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94)화 (94/194)

벌레

시간이 지난다.

비행무기연구소에서 무슨 사고가 더 났다고 하지만, 조사원들에게는 일상이 이어졌다.

자동차 수리를 마치고, 부서진 핸드폰을 새로 사고, 조사반 사무실의 공사가 끝나갈 때.

다시 사무실로 출근하기 전, 반장과 유지유와 최재민은 집들이 겸 이연우의 쉘터로 놀러 왔다.

“여기 맞아요? 아무리 봐도 사람 사는 곳 아닌 거 같은데.”

주변에 편의점은커녕 사람 사는 집조차 없는 부지. 철조망 문에 붙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 표지판 앞에서, 그들은 헛웃음을 흘렸다.

반장은 술을 한 아름 담은 봉투를 끌어 올려, 턱을 쓰다듬었다.

“염병. 담배 하나 사려면 어디까지 나가야 하는 거야.”

“먹을 거를 왜 사 오라고 했는지 알겠네요. 배달도 안 오겠는데요.”

애매한 표정을 지은 유지유가 피자와 햄버거 봉투를 흔들다가, 문 옆의 벨을 꾹 눌렀다.

삐—!

벨이 울리며, 울타리 위의 카메라가 움직여 방문자를 본다. 곧 문이 철컥 열렸다. 작은 스피커에서 이연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안에 집 있으니까 그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지금 올라갈게요.

“올라온다고요?”

“쉘터에서 올라오나 보지.”

그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문을 넘어갔다.

차가운 바람에 몸을 떨면서 잡초가 무성한 부지를 걷기를 잠시. 그들은 외딴 폐가를 보았다. 사람이 사는 집이라기에는 뭔가 좀 그런 집.

최재민은 호기심 가득한 눈을 빛내며 집을 요모조모 뜯어보다가, 방폭 셔터가 내려간 창문을 보고는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격리된 거 아니에요?”

“맞는 거 같은데….”

반장도 떨떠름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반인에게서 격리된 집. 아무래도 이상하게 사건사고에 잘 엮이는 이연우를 도심에서 떨어뜨려 놓은 듯한데.

문득 쉘터를 자랑하던 이연우의 얼굴을 떠올리고 다른 말을 꿀꺽 삼켰다.

‘자기가 만족하면 됐지. 방폭 셔터도 자기가 내려놓은 걸 텐데.’

그때, 문이 살짝 흔들리더니 무거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이연우가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안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들어오세요.”

문 너머는 진짜 폐가다. 가구도 없고, 먼지가 잔뜩 쌓여 있고, 공기는 탁하다.

“어. 연우야, 집 좋, 좋다.”

“청소 안 해요?”

반장이 말을 더듬고 유지유가 질색을 해도, 이연우는 태연하게 그들을 해치 뚜껑 앞으로 안내했다.

“여기 아래가 쉘터라. 위는 딱히 관리 안 했습니다.”

“…여기 아래서 산다고요?”

사다리가 깊게 내려간 수직 통로. 척 봐도 오르내리는 데 상당한 체력이 필요해 보인다.

이연우는 머쓱하게 웃었다.

“귀찮긴 한데, 운동도 되고 생각보다 살만합니다.”

“아니…. 이러면 출퇴근할 때마다-”

“저 먼저 내려갈게요!”

최재민이 흥분해서 탕탕탕 사다리를 빠르게 내려간다. 이연우는 반장과 유지유가 든 먹거리를 보다가 에코백을 넓게 벌렸다.

“들고 내려가기 힘들 텐데, 여기 넣으세요.”

“어, 그래. 허, 참. 회사 쉘터는 처음인데. …그러고 보니까 그 가방은 뭐냐?”

“어쩌다 보니 우연히 이상개체가 됐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쉘터의 상황실로 갔다.

“오.”

탁자도 넓고 컴퓨터가 많은 상황실에서 그들은 피자며 햄버거, 술을 내려놓으며 주변을 힐끔힐끔 보았다.

큼직한 화면 몇 개에는 이연우가 검색했던 건지, EMP 차폐, EMP 차폐 자동차와 핸드폰, 방폭셔터 강화, 절단기 방어하는 셔터 등의 검색 결과가 있다.

무엇보다 미래적인 기계장치로 도배된 상황실의 세련된 분위기.

“안은 괜찮네.”

“여기 인터넷 돼요? 여기서 게임 돌리면, 와. 아니, 영화만 봐도 좋을 것 같은데요?”

바깥의 음산한 부지나 허름한 폐가는 잊어버릴 정도로 훌륭하다.

조사원답게 안전의식이 투철한 그들이 쉘터를 탐내며 맥주캔을 치익 딸 때였다. 이연우가 햄버거를 한입 먹은 후, 말했다.

“이상개체도 몇 개 있는데. 되게 좋습니다.”

“…뭐가 있다고?”

맥주캔이 입으로 가다가 멈춘다. 그들은 당황한 눈으로 사방을 살피다가, 천천히 긴장을 풀었다. 위험한 개체면 이연우가 이렇게 있을 리가 없다.

“이상장비 같은 거냐?”

“사과나무나 톱니바퀴 같은 거요. 쉘터의 핵심이라는데, 위험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쉘터를 주제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문법 나치 로봇을 욕하고, 조사반 공사가 곧 끝나고 사무실로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에 우울해하고.

술자리가 무르익을 즈음.

문득 반장이 품 안을 뒤지더니 서류 몇 장을 꺼냈다. 얼굴이 대추처럼 달아오른 반장은 술이 흐른 자리에 대충 서류를 놓았다.

“맞다. 조사 업무 하나 내려왔다. 내일 우리 모두 나가야 해.”

“아. 공사 끝나고 하면 안 돼요? 이상장비 챙겨서 나가면 좋잖아요.”

유지유가 투덜거리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반장은 술에 젖은 서류를 툭툭 쳤다.

“이거 보니까, 조사하려면 시간 좀 걸릴 거야. 조사하다 보면 공사 끝날 거고, 그때 장비 챙기면 된다.”

“무슨 일입니까?”

이연우가 슬며시 서류를 내려보니, 한적한 도로에 이상한 사람 둘이 서 있는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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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지렁이 머리 같은 것을 뒤집어쓴 사람.

다른 서류에도 비슷한 사진이 있다. 웜의 머리를 따라 만든 듯한 인형 탈을 쓰고 피켓을 목에 건 사람.

‘뭐라고 쓰여 있는 거지?’

카메라가 흔들렸는지 화질이 영 안 좋다. 이연우가 피켓의 흐릿한 글씨를 노려볼 때였다.

혼자 콜라를 마시던 최재민이 갑자기 고함을 내질렀다.

“어! 저 이거 봤어요! 막 학교 앞에서 전도하다가 쫓겨났는데!”

“전도? 사이비 종교 같은 거야?”

이연우가 새삼 사진을 보았지만, 딱히 종교스러운 느낌은 없다. 차라리 괴상한 이벤트 느낌이지. 하지만 최재민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막 위대한 뭐 믿고 영생하자, 구원은 이곳에 있다, 이러던데요.”

“영생?”

“네. 저도 잘은 몰라요. 아, 길거리에서도 본 거 같기도 하고.”

이연우가 취한 눈으로 사진을 자세하게 살폈다. 영생. 자연스러운 죽음이 없는 삶. 흐릿한 머리가 사고를 계속한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남아도, 결국 늙어 죽겠지. 너무 먼 이야기 같긴 한데.’

술기운에 잡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꼭 사람은 늙어 죽어야 할까? 이 세상에서는 자연사도 회피할 수 있지 않을까?

이연우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사진을 볼 때, 반장이 툴툴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사이비 종교 맞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아무튼 이상개체가 연관되어 있다고 의심되는 놈들이야.”

술에 젖은 서류를 힘겹게 떼어내어 넘기니, 수상한 점이 서술되어 있다.

이상하게 광신적인 사람들, 생활이 송두리째 바뀐 사람들, 가입한 뒤 연락이 끊긴 사람, 연락 끊긴 사람을 찾아 들어갔다가 돌변한 사람. 그 생생한 기록들.

평범한 사이비 종교 같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런 인형 탈과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는 전도하는 사람 찾아서 접촉할 거야. 내부에 침투해서 적당히 이상異常의 흔적 찾은 뒤, 빠져나오면 된다.”

“저희가 다 투입될 일인가요?”

“어. 얘네도 사람 가려서 데려가는데, 누굴 데려갈지는 모를 일이잖아.”

그때 이연우가 손을 들어 올렸다.

영생은 영생이고, 위험은 위험이다.

“진짜 이상개체면 정신조작일 텐데. 그건 어떻게 합니까?”

“기억소거제 마시면 치료되겠지. 아니면 회사에 의료지원 요청하면 되고.”

이연우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한 정신지배면 회사에서 치료할 방법이 많다. 정신력이나 주사위로 저항할 수도 있고. 거기에 영생이란 단어가 흥미를 끌었다.

그렇게 그들은 마지막 잔을 마시고, 아무 침실로 들어가 잠에 들었다.

***

빗물을 마신 뒤 잠이 줄어들었다. 하루하루 복용한 빗물이 많아질수록 수면시간은 점점 줄어들어, 이제는 4시간만 자면 저절로 잠에서 깼다.

이연우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세면대로 가 거울 속의 자신을 보았다. 떡지고 헝클어진 머리와 듬성듬성 올라온 수염. 개운하게 씻고 싶은 몰골이지만, 이연우는 그대로 두었다.

공시생 이연우로 돌아갈 시간이다.

‘사이비 종교에서 접근할 만한 사람. 공시생이지. 양치만 하자.’

저런 집단에 진짜 영생의 힘이 있을 리는 없지만, 어쨌든 일이다.

‘위험한 낌새가 느껴지면 도망치면 돼.’

양치를 마치고, 거울을 보며 자세를 조정한다.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웅크리고,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힌다.

그러다 보니, 다들 일어나 떠날 시간이 되었다. 찌뿌둥한 표정을 지은 그들은 투덜대며 사다리를 타고 오른 후, 반장의 차를 타고 도심으로 이동했다.

“자, 각자 알아서 접근해라. 특별한 거 있으면 회사 메신저로 보고하고.”

“예.”

반장이 거리 중간중간에 한 명씩 내려준다. 이연우는 제일 먼저 내려, 슬리퍼를 질질 끌며 인파 속을 걸었다.

출근 시간의 도심.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서둘러 이동하느라 붐비는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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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숙여 땅을 보면서도 시야를 넓게 두기를 잠시.

‘찾았다.’

게임에서나 볼 법한 몬스터 웜의 머리 탈을 쓴 사람 둘이 피켓을 흔들며 주변 사람에게 손짓하고 있다.

이연우는 자연스럽게 몸을 틀어, 동선을 그들 앞으로 바꿨다. 터덜터덜 걸으며 그들을 지나치는 순간, 소매를 잡혔다.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에 상체만 돌아간다.

“저기요, 혹시 위대한 옛 것에 관심 있으신가요? 이분만 믿으면 영생하고,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진답니다.”

“…뭐요?”

이연우가 곱지 않은 말을 뱉자, 벌레 탈을 쓴 사람이 상냥한 목소리를 뱉으며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얼굴에 걱정이 가득하세요. 저희는 진짜 당신을 돕고 싶거든요. 정말 잠깐만 저희를 따라오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답니다.”

“그거 돈 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연우가 망설이는 기색을 내보이자, 인형 탈이 고개를 팽이처럼 흔든다.

“저희는 정말 수금 같은 거 안 해요. 위대한 분께 사람의 돈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돈 요구하는 건 다 사람들 욕심입니다.”

“그게 진짜면….”

생각보다 그럴듯한 소리에 설득된 척, 이연우가 몸을 완전히 돌려 그들을 마주 보았다.

인형 탈 듀오는 친절하게 머리를 숙이고 어딘가로 이연우를 이끌었다. 이연우가 본 정보에 따르면 그들의 본단 건물로 향하는 길.

가는 길에 잡담이 이어졌다.

“혹시 무슨 일 하시나요? 일에 따라 의식이 달라지거든요.”

“공시생입니다. 공무원 시험만 네 번을 봤는데. 다 떨어졌어요.”

“저런. 많이 힘드셨겠어요. 그런데….”

인형 탈은 의심이라고는 조금도 하지 않고, 질문을 이어갔다.

“공시생 생활만 5년째면 집안 사정이 좋으신가 봐요. 다 뒷바라지 해주신 거잖아요.”

“아뇨…. 빚까지 져가면서 지원해주셨는데…. 아. 올해는 반드시 붙어야 하는데. 위대한 분이라는 게 정말로 도움이 될까요?”

거짓말을 섞어 절실하게 말하자, 인형 탈 듀오의 걸음이 멈춘다. 그들은 잠깐 시선을 교환하는 듯하더니, 어색하게 바쁜 척을 하기 시작했다.

부산스럽게 주머니를 뒤지고, 손을 들어 이마를 탁 치고.

“아차! 저희가 깜빡한 일이 있네요! 죄송하지만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번에는 합격하길 빌게요!”

“예? 저기요! 잠깐만요!”

이연우가 서둘러 손을 뻗었지만 늦었다. 그들은 그 무거운 인형 탈을 쓰고도, 후다닥 골목 너머로 사라졌다.

홀로 남은 이연우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돈이 목적인 단순한 사이비 종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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