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95)화 (95/194)

벌레

“이대로 돌아갈 수도 없는데.”

한 번 실패했다고 포기하기에는 업무다. 몇 번은 더 시도해야 한다.

찜찜한 표정으로 서 있던 이연우는 몸을 돌려 골목을 빠져나왔다. 인파가 북적거리는 도심에는 전도하는 인형 탈이 더 있을 테니까.

터벅터벅

걷고, 걷고, 걷는다.

버스정류장이며 지하철역을 몇 개나 지나 지역 이름이 바뀌고, 해가 중천에 떠 사람들이 점심을 먹으러 몰려나올 때까지.

하지만 사람만 많지, 인형 탈 비슷한 것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연우는 슬슬 눈살을 찌푸렸다. 슬리퍼를 신은 발이 아파 왔다.

‘다 어디 간 거야. …일단 점심이나 먹자.’

근처에 있는 햄버거집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이연우의 발이 멈췄다. 시선이 저 멀리 길 끝을 향한다.

길 끝에는, 또 다른 인형 탈을 쓰고 피켓을 흔들며 사람들에게 크게 외치는 전도자가 둘.

“위대한 분 믿고 영생하세요!”

“근심걱정이 사라진답니다!”

찾았다. 이연우는 한차례 몸가짐을 정돈했다.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입꼬리를 축 내리고, 고개를 숙이고, 자신감 없이 무기력하게 발을 뻗는다.

하지만 곧 걸음이 멈췄다. 이연우보다 먼저 그들에게 붙들린 사람이 나타났다.

유지유.

한참을 걸었는지 피곤한 얼굴의 유지유는 인형 탈 듀오와 뭐라 대화를 나누더니, 그들에게 소매를 잡힌 채로 끌려가 골목길로 사라졌다.

“….”

이연우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예 몸을 돌려 햄버거집으로 돌아갔다.

“지유 선배면 저놈들도 도망치지는 않겠지.”

한 명이 성공했으면 굳이 열심히 할 필요 없다. 이연우는 남은 시간을 설렁설렁 보내고, 그날 저녁 근처 카페에서 조사원들과 모였다.

***

한적한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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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원들은 한 테이블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반장이 먼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들이켠 후, 투덜거렸다.

“염병. 나는 실패했다. 나랑은 아예 대화도 안 해.”

“저도요. 학생이 이 시간에 왜 길에 있냐고, 학교 가라고 잔소리만 들었어요.”

최재민도 불퉁한 표정을 지으며 샌드위치를 입에 집어넣다가, 이연우를 보았다.

“형은요?”

“거의 다 됐는데. 도망가던데.”

“도망을 간다고?”

이연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정형편 물어보길래 돈 없다고 하니까. 그냥 돈이 목적인 사이비 종교 같긴 한데. 지유 선배는 어땠습니까? 같이 가던 거 봤는데요.”

“저는 본단 건물에 들어갔어요.”

확실한 성과.

세 명이 유지유를 보며 가만히 말을 기다렸고, 유지유는 손을 주무르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직장 잘리고 고민이라고 하니까, 알바나 하라면서 데려갔는데. 하루 종일 인형 탈만 만들다가 나왔어요.”

유지유는 가방에서 인형 탈 하나를 꺼냈다. 어설프게 만들어진 동그란 인형 탈은 잔뜩 구겨졌고, 얼기설기 봉합되어 지저분해 보인다.

최재민이 인형 탈을 가져가 머리에 썼다. 그리고는 먹먹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 돈은 받았어?”

“10만 원 받았어.”

“엄청 못 만들었는데 그렇게나 줬다고?”

이야기가 이상한 곳으로 흐르자, 반장이 탕탕 테이블을 두드렸다.

“뭐 이상한 점은 없었고?”

“수상한 점이 몇 개 있긴 해요. 그 사람들 건물 안은 물론이고, 방 안에서도 무조건 탈을 쓰고 있어요. 그리고 금지구역도 있고. 전자기기도 압수하고요.”

탈을 벗지 않는 사람들. 금지구역과 핸드폰 압수. 수상하다면 수상하지만, 이상한 사이비 종교라면 당연하기도 하다.

물론 사이비 종교라기엔 돈이나 사람이 목적 같지도 않다.

“애매하네….”

조사원들은 생각에 잠겼다. 커피잔을 매만지고, 샌드위치를 먹고, 에코백을 고쳐 매고.

하지만 확실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럴듯한 증거가 없다. 반장이 넌지시 유지유를 불렀다.

“지유야. 내일도 가냐?”

“네. 내일도 와서 인형 탈 만들라고 하더라고요. 돈은 챙겨주겠다고.”

“그럼 가보고. 한 1주일 정도만 다녀봐.”

유지유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날 업무는 그걸로 끝났다.

그리고, 며칠이 채 지나기도 전.

유지유와 연락이 끊겼다.

***

깊은 밤.

새로 단장한 이상조사반 사무실에는 반장과 이연우가 모여 있다. 새집 냄새가 풀풀 풍기는 사무실의 모습에도 둘의 표정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유지유가 따로 연락도 없이 사라졌다.

반장이 검지손가락으로 책상을 쉴 새 없이 두드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연락 끊긴 지 3일 지났지?”

“예. 아무래도 상부에 지원을 요청해야 할 듯합니다.”

“안 돼.”

단호한 목소리에 이연우가 의아하게 반장을 보았다. 반장은 피곤한 얼굴을 쓸어내렸다.

“증거가 없어. 지유가 그냥 사이비 종교에 홀린 건지, 이상개체에 당한 건지. 이 정도로는 특전대 못 움직여.”

자기 의사로 사직하고 사이비 종교에 입교했다면, 회사가 간섭할 수 없다.

그렇기에 반장은 이 사이비 종교에 이상개체가 있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회사를 움직일 수 있다.

“빌어먹을. 이상개체여야 하는데. 그 증거를 찾아야 하는데.”

이연우는 잠깐 침묵하다가, 주먹을 쥐었다.

“그러면 쳐들어갑시다. 아예 뒤집어엎으면, 뭐든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다못해 지유 선배라도 데리고 나올 수 있고요.”

“…거기를? 어떻게? 걔네들 민간인인지 뭔지도 정확하지 않아.”

반장은 잘 생각해보라고, 우리는 회사라고, 눈빛으로 전했지만, 이연우는 개의치 않았다.

“반장님이 거기 가서 격멸대대 호출 버튼 누르면 되지 않습니까. 아니면, 이제 자연스러운 형광조끼도 있고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면 방법은 많다. 대충 권총 들고 난동을 피워도 되고.

반장은 고민하는 듯 눈을 감았다. 주먹을 쥐었다 펴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마침내 결심한 듯 눈을 뜨고 말했다.

“격멸대대까지 부르는 건 선을 넘는 짓이야. 하지만, 조끼는 쓰자.”

“지금 바로 갑니까?”

“그래.”

그들은 더 지체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상장비보관함으로 가 자연스러운 형광조끼를 껴입고, 총기보관함에서 소총을 꺼내 몸에 걸고, 소형 카메라를 옷자락에 단다.

군인보다는 테러리스트에 가까운 모양새.

그렇게 그들은 심야의 거리로 나왔다.

***

큼직한 소총을 들고 심야의 거리를 걷는데도 사람들은 그들을 자연스럽게 지나친다. 순찰하는 경찰조차 그들을 힐긋 보았다가, 자기 갈 길을 서둘렀다.

방해받지 않고 도착한 곳은, 도시 한 가운데 위치한 자그마한 빌딩.

“….”

“….”

이연우와 반장은 정문 앞에서 심호흡을 했다. 적진이다. 민간인이더라도 그 수가 많으면, 예기치 못한 사고가 날 수 있다.

까맣게 선팅된 유리문을 거울삼아, 무장을 점검하기를 잠시.

반장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자.”

뒤로 바짝 당긴 소총. 개머리판으로 유리문을 냅다 내려친다. 와장창, 유리문이 박살이 나며, 유리 파편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두 조사원은 성큼 유리 파편을 짓밟고 진입하려다가, 멈춰 섰다. 정문 너머에 뭔가 있다.

조명 아래, 좁은 복도.

웜 인형 탈을 쓴 사람이 바닥에 엎드려 꿈틀꿈틀 기어 오고 있다. 뼈마디가 없는 연체동물처럼 팔다리를 흐느적거리며, 끄으윽, 이상한 소리를 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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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컥-!

두 사람이 동시에 인형 탈을 겨눈다. 반장이 긴장한 목소리를 냈다.

“누구요?”

“경비….”

쯔억, 진득한 침으로 가득한 입을 벌리는 소리가 탈 너머로 흘러나온다. 인형 탈은 두 팔을 뻗어 벽과 바닥을 짚고 흐느적 일어났다.

인형 탈이 조사원들을 똑바로 본다. 하지만 시선보다는 다른 감각으로 그들을 인지하는 듯한 느낌.

“문 깨지는 소리가 났는데. 당신들이야말로 누굽니까?”

“…지나가던 사람인데.”

“아? 아?”

인형 탈이 머리를 빙빙 돌렸다.

두 조사원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인형 탈을 보며, 슬며시 손가락을 방아쇠에 올렸다. 자연스러운 형광조끼를 입었지만, 이상한 감각.

인형 탈의 머리가 딱 멈췄다. 주르륵, 침이 흐르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인형 탈이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나간다고? 여길? 아. 이상하지 않은 일인데. 아. 뭐지?”

“…지나갑니다.”

잠깐 침묵하던 반장이 그를 지나치고, 이연우도 반장을 쫓아 복도로 진입한다. 이연우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깨진 유리문 앞. 인형 탈이 우두커니 서서, 머리만 돌려 그들을 주시하고 있다.

‘뭔가 불길해.’

심상치가 않다. 이연우는 작게 속삭였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합니다.”

“이상개체의 흔적만 찾고 돌아가자. 우리 둘만으로는 힘들 거 같다.”

빠르게 대답하다 보니 중앙 홀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는 없고, 좌우로는 복도가, 정면에는 위와 아래로 가는 계단이 있다. 네 갈래 길 앞에서 반장이 이연우를 찾았다.

“어디가 위험할 거 같냐?”

이상개체가 있다면 위험한 곳에 있을 것이다. 그 증거를 얻기 위해 던진 질문이지만, 이연우는 침착하게 계단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계단 위를 보았다.

“아래가 위험한 느낌인데-”

희미한 소리가 밀물이 되어 내려온다.

“누가 내려옵니다.”

“뭐?”

우르르, 수많은 발걸음 소리가 천천히 커진다. 한두 명이 아니다. 계단 난간이 흔들리고, 메아리치는 발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반장과 이연우는 당황해서 숨을 곳을 찾다가, 자연스러운 형광조끼를 입었음을 깨닫고, 가만히 홀 가운데에 섰다.

그렇게 그들은 보았다.

잡담 한 번을 나누지 않고 조용히 계단을 내려오는 수많은 인형 탈들. 그들은 이연우와 반장은 본 척도 안 하고 지하로 내려갔다.

“….”

“….”

발소리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다가, 점점 잦아든다.

반장과 이연우는 침중하게 가라앉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인형 탈 사이에서 익숙한 탈 하나를 보았다.

“그거. 지유가 만든 인형 탈이지.”

“예. 저번에 보여줬던 그거였습니다.”

엉성하고 조잡한 인형 탈을 쓴, 익숙한 옷차림과 체구의 여자가 있었다.

반장은 위험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보다가, 성큼 계단에 발을 디딘다. 반장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너는 돌아가. 만약 나도 연락 끊기면 상부에 보고해. 나까지 당하면 확실히 이상개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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