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반장이 계단 아래로 내려간다. 총기를 앞으로 내밀고,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유달리 큰 발소리가 계단 아래로 가라앉아 사라졌다. 마치 괴물의 아가리에 잡아먹힌 듯.
이연우는 음침한 계단 앞에 우두커니 섰다. 얼굴에는 망설이는 기색이 선명했다.
‘돌아가는 게 안전해. 안전한데.’
계단 아래는 위험하다. 스물스물 일렁이는 그림자가, 습하고 탁한 공기가, 기이한 분위기가 가시가 되어 정신을 쿡쿡 찔렀다.
숨이 턱 막히는 그런 곳에 두 사람이 갔다.
‘반장님. 지유 선배.’
못이 박힌 것처럼 발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이연우는 한동안 석상이 되어 계단 앞을 지키고 서 있다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계단 아래는 못 가.”
어렵게 떼어낸 발이 뒷걸음질을 치고, 몸이 돌아가 출구를 바라본다. 이어, 몸이 조금 더 돌아 벽에 붙은 화재 비상벨을 향했다.
붉은색으로 칠해진, 동그란 자명종처럼 생긴 비상벨.
‘하지만 바깥에서 도울 수 있지.’
이연우는 냉큼 손을 뻗어 비상벨을 눌렀다.
띠디디디딩!
비상벨이 미친 듯이 울고, 건물 내부의 스피커에서 사이렌이 길게 울었다. 거기에 더해지는 안내 방송.
- 지금 화재가 발생하였으니, 비상구를 통하여 신속히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미리 녹음된 방송이 반복된다. 하지만 혼란이 부족하다.
이연우는 묵묵히 에코백에 손을 넣어 가스 토치를 꺼내고, 근처에 놓인 화분 따위를 끌고 와 그 위로 올라갔다.
콰아아, 불을 뿜는 토치가 스프링클러를 지진다. 태우고 녹이고, 그 고온을 감지한 스프링클러가 쏴아아 물을 뿜어냈다.
비가 내리는 복도. 축축하게 젖은 이연우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난장판이 커질수록 아래도 안전해질 거야. 여기에 사고 몇 개만 더 일으키면-’
흐뭇하게 이어지던 생각이 멈춘다. 이연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벌컥- 쾅-
좌우로 길게 뻗은 복도의 문들이 일제히 열렸다. 문고리를 잡았던 손이 떨어지고, 손을 따라 이연우의 시선은 문고리 아래의 바닥을 보았다. 머리가 바닥에서 기어 나온다.
“끄으으, 비, 비! 불!”
꿈틀꿈틀, 인형 탈을 쓴 사람들이, 콘크리트 도로 위로 올라온 지렁이마냥 젖은 바닥을 기었다. 머리를 뒤로 꺾어 물줄기를 환영하며, 온몸을 물기 가득한 바닥에 비벼대며.
방에서 기어 나오는 인간 지렁이들이 많다. 좁은 복도가 순식간에 인형 탈들로 가득 찼다.
마치 사람을 엮어 하나의 거대한 지렁이로 만든 모양새. 몸통이 뒤엉키고, 팔과 다리가 얽힌다. 툭툭 튀어나온 머리가 흔들렸다. 인형 탈 너머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래로! 아래로! 땅 아래로!”
“위대한 분이 계신 아래로! 축축하고 어두운 아래로! 불길이 닿지 못하는 아래로!”
불길한 합창을 외치며, 계단 아래로 기어 내려가는 인간들.
그 경로에 이연우가 있다.
‘미친 건가? 불이 났으면 바깥으로 대피해야지, 왜 지하로 내려가! 아니, 광신도구나!’
실수를 깨달은 이연우는 다급하게 뒷걸음질을 쳤다가, 물컹한 무언가를 밟았다.
“윽!”
인형 탈이다. 뒤에도 인형 탈이 있다. 어디서 나왔는지, 출구로 향하는 길목에도 인형 탈들이 파도가 되어 몰려오고 있었다.
그때 이연우에게 밟혔던 인형 탈이 꽈악, 이연우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아래로!”
“꺼져!”
사다리를 타며 단련된 힘으로 손아귀를 뿌리치지만, 숫자가 지나치게 많다. 끝도 없이 밀려오는 사람들이 바닥을 가득 메우며 손을 뻗어 밀고, 몸으로 밀고, 뒤이어 밀려오는 사람이 치고 지나가고.
“윽!”
휘청거리며 버티던 이연우가 끝내 뒤로 넘어졌다. 바닥에 뒤엉킨 인형 탈 위로 쓰러지기 무섭게, 인파에 휩쓸려 몸이 떠내려갔다.
“아래로! 아래로 가자!”
“안 돼!”
이연우가 올려보는 천장이 흐른다. 홀의 천장이 계단의 높은 천장으로 변하고, 흐르는 물처럼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빌어먹을! 아래는 위험한 느낌인데!’
이대로 흘러갈 수 없다. 이연우는 이를 꽉 깨물고 발버둥을 쳤다. 어떻게든 빠져나와 중심을 잡고 일어서야 한다.
“비켜!”
뒤엉킨 팔을 꺼내고, 바닥을 디뎌 똑바로 일어서려고 팔다리를 버둥거리지만, 이연우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도리어 더 심각하게 얽혔다.
꿈틀거리는 살점, 축축하게 젖은 옷자락. 꽉 짓눌리는 압박감과 비틀려 어긋나려는 관절. 잘못 움직이면 크게 다칠 느낌.
이연우가 힘을 빼고는, 빠르게 생각했다.
‘주사위. 뭘 굴려야 하지? 뭐가 성공하지?’
이런 상황에서 굴려야 할 판정. 중력? 심장마비? 정신 정화? 정지? 이연우가 침을 꿀꺽 삼켰다. 감각을 곤두세워 성공할만한 무언가를 감지할 여유가 없다.
“주사위, 전부 굴-”
이연우의 말이 멈췄다. 선명하게 느껴지던 주사위의 존재감도 흐려졌다. 세상이 적막하다.
인파에 휩쓸려, 어찌 대응할 새도 없이 지하실에 도착했다.
***
어두컴컴한 지하실.
촛불 몇 개만이 조명의 전부인지 노란빛이 일렁이며 그림자가 물러났다가 몰려오고, 축축한 흙냄새가 가득하다.
이연우는 흐릿한 천장만 보며 몸을 떨었다. 무언가가 느껴진다. 이딴 건물 지하에 있을 수 없는 거대한 존재감.
‘이건. 이건.’
꿈틀꿈틀, 인형 탈들은 언제 소리 질렀냐는 듯 입을 다물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가운데에 있던 이연우는 자연스럽게 풀려나 지하실 바닥에 덩그러니 누웠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이지 못했다.
마치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죽을 것처럼. 침조차 삼키지 못하고, 눈조차 깜빡이지 못한다.
‘이런 게, 이딴 작은 사이비 종교에 있다고? 진짜 위대한 무언가가 있다고?’
닭살이 돋고, 심장이 쿵쿵 뛴다.
이연우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서 도피하듯 존재감을 불신했지만, 정신에 드리워진 존재감을 끝내 부정할 수 없었다.
거대하고, 위대한 존재가 바로 여기 있다.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낮고, 탁한 목소리.
“한밤중에 화재라니. 모두 대피하셨습니까?”
“예.”
“그러면 박 장로가 위로 올라가, 소방서에 신고하고 대응하세요. 우리는 여기서 조용히 대기합시다. 굴도 파면 안 됩니다.”
척척,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가까워진다. 이연우는 뱀 앞의 쥐처럼 굳어 가만히 있었고, 가까워진 누군가는 이연우를 스쳐 지나가, 계단 너머로 사라졌다.
이연우는 눈을 꼭 감고, 주먹을 꽉 쥐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뭘 해야 하지?’
미래 이연우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오히려 더 위험한 존재감. 그 어떤 때보다 선명한 죽음의 기척.
이연우는 하얗게 질려가는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렸고, 문득 눈을 떴다. 흔들리던 동공이 멈춘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당할 수밖에 없어. 어쨌든 움직여야 해. 일단 뭔지 파악을 해야, 주사위를 굴려.’
심호흡을 반복한 후,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계단 입구를 바라보며 일어섰지만, 감히 도망칠 수 없었다.
등 뒤에, 지하실 안쪽에 거대하고 위대한 무언가가 있다. 이곳은 그것의 영역. 허튼짓을 함부로 했다가 어떤 대가를 치를지 모른다.
이연우는 손끝을 떨며, 억지로 몸을 돌려 지하실 안쪽을 보았다.
‘제단? 벌레?’
그곳에는 제단이 있다. 양쪽에 초가 놓였고, 가운데는 곤충을 사육하는 유리 상자 같은 것이, 아니, 아니다.
문득 이연우의 동공이 잔뜩 확장되고, 정신이 거대한 충격을 받았다. 정신을 통해, 망막을 통해 위대한 존재를 영접했다.
그것은 위대한 지렁이다.
우리는 지렁이가 되어야 한다.
***
주사위가 구른다.
데구르르-
꽝!
이연우는 주사위에 신경 한 번을 쓰지 않고, 오직 위대한 지렁이만을 보았다. 온 정신이 위대한 지렁이에게 향해, 그것의 위엄과 강대함을 오롯이 느끼기 바쁘다.
그때 누군가 이연우를 툭 쳤다.
“연우 씨도 왔어요? 이렇게 안 찾아와도 되는데.”
“지유 선배?”
이연우가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엉성한 인형 탈을 쓴 유지유가 다가와, 이연우의 어깨를 치고 있었다. 그녀는 위대한 지렁이를 보며 몽롱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래도 잘 왔어요. 어때요, 지렁이 님 보니까?”
“저도 지렁이가 되어야겠습니다. 저것의 하수인이 되면 죽을 걱정 없이 영생을 누릴 수 있지 않습니까.”
이연우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동안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면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였다.
그 모든 스트레스와 걱정을 해소할 방법이 눈앞에 있다. 위대한 지렁이! 회사조차 감당할 수 없는 우주적인 이상개체!
유지유는 인형 탈을 기울였다.
“저랑은 생각이 다르네요.”
“지유 선배는….”
이연우가 조심스럽게 묻자, 유지유가 털썩 주저앉아 위대한 지렁이를 향해 인형 탈을 고정했다.
“사실 저는 그냥 되는대로 살았거든요. 꿈도 없고. 회사도 방구석에만 있지 말라고 엄마가 집어넣었고.”
흐릿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하지만 지렁이 님을 보고 처음으로 꿈이 생겼어요. 나는 지렁이가 될 거예요. 물론 이것도 쉽지 않은데. 꿈이잖아요. 얼마든지 노력할 수 있죠.”
“쉽지 않다는 게 무슨 말인지.”
유지유가 손가락을 들어 지하실 외곽을 가리켰다. 이연우가 보니, 억지로 무너뜨린 벽과 사람이 손으로 파낸 토굴이 있다.
어두운 토굴 안에서는 은은하게 비명과 신음이 흘러나온다.
“저기가 지렁이가 된 분들이 머무는 곳인데. 그 정도 수준까지 가기 힘들어요.”
“어째서입니까?”
“돈을 바쳐야 교주가 인정해주기도 하고. 의식도 힘들어요.”
유지유가 인형 탈의 눈과 입을, 두 팔과 두 다리를 순서대로 가리켰다.
“지렁이가 되려면, 눈을 망가뜨리고, 이빨과 혀를 뽑고, 사지를 잘라야 하거든요. 이 과정을 버티기 힘들어요.”
위대한 존재의 곁에 가는 게 어디 쉽겠냐며, 유지유가 열정을 불태우며 말하지만, 이연우는 이상한 표정을 하고 입을 다물었다.
뭔가 위화감이 든다. 위화감은 주변을 돌아볼수록 심해졌다.
엉켜 내려오면서 옷가지와 인형 탈이 벗겨진 사람들. 흐릿한 조명 때문에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보니, 다들 상처가 있다.
촛농이 떨어진 눈, 스스로 뽑아낸 눈과 이빨, 텅 비어서 늘어진 옷소매.
‘…저렇게까지 해야 한다고? 이게 맞나?’
찝찝한 마음에 계속 사람들을 살피던 이연우는 반장을 발견했다. 멀쩡한 콘크리트 벽 앞에 엎어져 있는 반장.
“반장님은 어떻게 된 겁니까?”
“반장님이요? 지렁이 님 보자마자 벽으로 달려가 머리 박고 기절했어요. 감격하셨나 봐요.”
“….”
이연우의 눈에 의심이 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