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반장을 언뜻 보면 잘 자는 사람처럼 코까지 골아가며 뒤척이고 있다. 어쨌든 살아 있으면 됐다.
이연우는 유지유에게 말했다.
“반장님은 사람으로, 회사원으로 사시는 분 아닙니까. 아무래도 지렁이가 되기 싫었던 듯합니다.”
“아쉽네요. 반장님도 같이 지렁이가 되면 좋을 텐데.”
대화가 끊겼다. 유지유는 위대한 지렁이를 열광적인 눈으로 보고, 이연우는 찝찝한 의심을 풀기 위해 지하실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했으니까.
위대한 지렁이는 제단 위에 장엄한 형상을 드리우고, 인간들은 벽에 붙어 꿈틀거렸고, 교주는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이연우는 교주를 유심히 보았다. 기도를 외는 흐릿한 목소리.
“화재가 땅 아래에 닿지 않게 해주시고-”
얼굴은 탈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발음을 보아 혀와 이빨은 잘 붙어 있는 듯하고, 팔과 다리는 멀쩡하게 달려있다.
“교주는 지렁이가 아닙니까?”
“네. 그분은 더 많은 인간을 지렁이로 만드는 사명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사명을 완수하는 날, 약속받은 자리로 가 큰 지렁이가 된대요.”
유지유는 자기 무릎을 끌어안으며 부럽다는 듯 교주를 올려봤다.
여전히 서 있는 이연우는 냉정한 눈으로 교주를 내려보다가 눈을 감았다.
‘사명? 약속? 그런 게 있다고?’
눈을 감으면 정신으로 선명하게 느껴지는 위대한 지렁이의 존재감.
그 존재감은 거대하고 위대하고 초월적이지만, 인간과 소통할 만한 지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인간이 개미와 소통하지 못하듯 말이다.
‘지유 선배는 돈을 바쳐야 교주가 의식을 승인해준다고 했어.’
하지만 위대한 존재에게 무슨 돈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기껏해야 우주의 무한한 별 중 하나인 지구, 지구에서도 자그마한 땅인 한국에서 쓰는, 섬유 따위.
교주가 의심스럽다.
이연우는 눈을 뜨고 상처가 심각한 사람들을 보았다. 흙먼지로 지저분한 바닥에 누워 바르작거리는 사람들.
‘…의식은 진짜일까? 신체만 훼손됐지, 여전히 인간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했다.
위대한 지렁이는 진짜지만, 그 아래로는 모든 것이 이상하다.
이연우는 의식을 치르는 자신을 상상해보았다. 스스로 눈을 뽑고, 이빨을 뽑고, 사지를 자른다. 그 과정에서 죽지는 않겠지만, 그 후에는?
스스로 인간 지렁이가 되었지만, 정작 진짜 지렁이가 되지 못한다면? 죽기 쉬운 몸만 남을 뿐 아닌가.
위대한 지렁이와 미심쩍은 의식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던 이연우의 눈에 섬광이 스쳤다. 결론을 내렸다.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지.'
이연우에게는 의식의 진실성을 가리고, 더 나아가 의식을 건너뛸 방법이 있다.
“지유 선배. 제가 한 번 지렁이가 되는 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네? 아, 주사위 굴려보게요?”
“아무래도 교주가 못 미더워서요. 주사위.”
위대한 존재감에 가려져 흐릿한 주사위가 정신 한편에 나타났다. 빨리 굴려달라는 듯 빠르게.
이연우는 잠시 고민했다.
‘뭘 굴리지? 지렁이 되기? 아냐, 지유 선배도 지렁이가 돼야 하니까 정보를 얻자.’
생각에 잠긴 눈이 위대한 지렁이를 본다.
우주의 진리를 품은, 위대한 지렁이. 그것의 육신은 헤아릴 수 없는 지혜로 가득 차 있으니, 조금만 접촉하여도 마법 같은 의식을 얻을 것이다.
이연우는 마침내 판정을 골랐고.
“정보 얻기.”
주사위가 구른다.
데구르르-
성공!
쩌적, 균열이 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장엄한 허영이 흩어졌다. 안개가 걷히듯, 기이한 분위기가 드리운 제단이 진실한 실체를 드러냈다.
눈이 크게 떠지고 입이 벌어진다.
‘저게 위대한 지렁이라고?’
낡은 유리 상자.
흙과 풀뿌리가 조금 깔린 상자 안에는, 보잘것없는 지렁이가 한 마리. 위대한 존재감과 괴리되는, 하찮게 꿈틀거리는 지렁이.
“어. 어.”
이연우의 입에서 당혹성이 반복됐다. 유지유는 의아하게 이연우를 올려봤다.
“왜요? 실패했어요?”
“아뇨, 잠깐, 잠깐만요.”
이연우가 발걸음을 떼었다. 교주 앞의 유리 상자로 다가갔다.
여전히 초월적인 존재감이 정신을 짓누른다. 정신이 아찔하게 멀어지고, 심장이 쿵쾅쿵쾅 달음박질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버텨. 버틸 수 있어. 내 인생이 걸려 있는데. 확인해야지.’
끝내 그 모든 압박을 이겨낸 이연우가 가까스로 유리 상자 앞에 섰다.
이연우는 몸을 숙여, 유리 상자에 거의 코가 짓눌릴 정도로 얼굴을 들이댔다. 흔들리는 눈동자가 상자 안을 본다.
촉촉한 흙더미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
허탈한 목소리가 나왔다.
“진짜 지렁이잖아. 그냥, 그냥, 지렁이.”
이제 상황이 파악됐다. 이상개체인 지렁이가 인식개변이든, 정신지배든, 그런 힘으로 환각을 보여준 것이다.
우르르, 압박감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초월적인 존재감이 산산이 흩어져 사라졌다.
이 자리에 남은 것은 초라한 지하실과 지렁이 하나뿐.
그때 뒤에서 낮고 탁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죠. 위대한 지렁이 님이십니다. 이 위엄이, 위대한 형상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교주다. 어느새 일어난 교주가 텅 빈 허공을 올려보며, 황홀감에 휩싸인 목소리로 말한다.
“러브크래프트는 진실을 보았던 게 분명합니다. 그레이트 올드 웜! 우주적인 존재가 바로 이곳에-”
탕-!
“악!”
총성과 비명이 지하에 메아리쳤다. 화약 냄새가 고이는 지하. 허벅지에 총을 맞은 교주가 주저앉았고, 이연우는 소총을 내렸다.
차가운 얼굴로 교주를 내려본다.
“거짓말하지 말고.”
“거짓말이라니! 어찌 위대한 분 앞에서 그런 짓을 하겠나!”
교주의 고함이 쩌렁쩌렁 울렸다. 신도들은 교주를 보았다. 눈이 멀쩡한 사람은 이연우를 자연스럽게 여겼고, 눈이 망가진 사람은 의문을 품었다.
“무슨 일이야?”
“누가 교주랑 대화하는데. 그럴 수 있지.”
“아니, 총소리가 났는데?”
“자연스러운 일이잖아. …아닌가? 뭐지?”
술렁이는 분위기.
비록 눈이 먼 사람이나 이미 아는 사람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 형광조끼지만, 문제 될 일은 없다.
하지만 이연우는 음울한 눈으로 사람들을 보았다. 지렁이의 환각에 속아, 지렁이가 되겠다고 스스로를 망가뜨린 사람들.
‘나도 당할 뻔했지. 주사위한테 지렁이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기라도 했으면.’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
꾸욱, 소총의 총구가 교주의 인형 탈을 짓눌렀다. 이마를 찾아 이곳저곳을 꾹꾹 누르다가 탈의 정중앙에서 멈춘 총구.
여기서 방아쇠만 당기면 죽는다.
교주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그리고는 기도하듯 양손을 모아 깍지를 끼고, 머리를 살짝 올려 허공을 보았다.
“물론 내가 욕심은 부렸지. 사실 금품은 필요 없는데, 요구했어. 하지만 위대한 분께서는 이런 일탈은 신경 쓰지 않아.”
회개하듯 무거운 목소리.
이연우가 가만히 듣다가 물었다.
“의식은? 그리고 이, 위대한 지렁이는 어디서 얻었지?”
“의식은 내가 만들었어. 우리는 지렁이가 되어야 하잖아. 위대한 지렁이 님은-”
대화에 집중하며 살짝 기울어진 몸과 느슨해진 팔. 빈틈이다. 교주가 순간 총을 쳐내며 벌떡 일어섰다.
탕탕탕-!
즉각적으로 당긴 방아쇠. 세 발의 총탄이 인형 탈을 뚫고 지나가지만, 외곽일 뿐이다. 아슬아슬하게 치명상은 피했다.
교주가 곧바로 총의 몸통을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 탕탕, 총탄이 지하실 천장을 때리고, 총을 두고 힘 싸움이 이어졌다. 총으로 교주를 겨누려는 이연우와 총을 붙들고 밀어내는 교주.
서로 밀고 밀리며 휘청거리기를 잠시.
탈에 뚫린 구멍 사이로, 교주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모두 모이세요! 지금 의식을 하겠습니다! 여기로! 제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오세요!”
“드디어!”
“지렁이가 되자!”
벽에 빙 둘러 늘어져 있던 사람들이 몸을 꿈틀거리며 바닥을 기어 온다. 인간으로 이루어진 동심원이 거꾸로 좁아져 왔다. 광신적인 외침이 파도가 되어 몰려오고, 촛불 조명 아래 무수한 팔과 머리가 흔들린다.
지하실 바닥이 드드득 진동했다. 이연우는 빠르게 판단을 마쳤다.
‘도망가자.’
더 남아 있을 이유는 없다. 빡, 교주를 걷어차 밀어낸 이연우가 유지유를 찾아 소리 높여 외쳤다.
“지유 선배! 반장님, 챙겨서 올라가세요!”
“안 돼요! 나는 지렁이가 될 거예요!”
소음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 인파를 뚫고 달리던 이연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거 가짜입니다! 진짜 방법은 제가 알아요! 제가 지렁이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팔다리도 안 잘라도 됩니다! 안전하게 지렁이가 될 수 있습니다!”
“믿을게요!”
찾았다. 유지유는 제일 바깥에서 느릿하게 기어 오고 있었는데, 바로 반장을 향해 달려가 반장의 뺨을 때렸다.
‘이제 나만 잘 빠져나가면 돼.’
이연우가 천장에 대고 드르륵 총탄을 뿌렸다.
그를 둘러싼 인파가 깜짝 놀라 멀어졌다. 순식간에 조그만 공터가 만들어졌다. 이연우가 눈을 번쩍이며 소리를 질렀다.
“비켜! 길 막지 마!”
정신없이 인간 지렁이들을 헤치고 나간다.
어떻게 빠져나갔는지도 기억 안 날 정도로 달리다 보니 도착한 지상.
와장창 깨진 정문 앞에서 이연우는 숨을 몰아쉬었다.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있자니,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한밤중의 차가운 공기에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문득 이연우가 고개만 들었다.
좁은 복도에서 반장과 유지유가 비틀비틀 나오고 있었다. 반장은 이마 한가운데가 멍들었다. 반장이 이마를 문질렀다.
“아래에 괴물이, 괴물이 있었는데. 회사 불러라. 빨리. 격리, 아니, 파괴해야 해.”
“괴물이 아니고 위대한 지렁이 님이라니까요.”
그렇게 조사원이 모두 나온 건물.
헛소리를 반복하는 둘을 두고, 이연우가 뭐라 설명하려고 할 때였다.
이연우의 입이 꾹 다물렸다. 두 손을 들고 고개를 숙여 바닥을 본다. 드드득, 진동하는 지면. 언뜻 보면 길가의 나무조차 흔들린다.
‘지진? 아니, 이건 건물이!’
이연우가 다급하게 옆으로 달리며 두 사람의 옷소매를 잡고 끌어냈고, 직후 건물이 무너졌다. 굉음을 내며, 흙먼지를 내뿜으며, 폭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