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98)화 (98/194)

벌레

굉음을 내며 무너진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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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이 떨어지고, 구조물이 산사태가 되어 쓸려 내려온 길가. 구름처럼 일어난 흙먼지는 가라앉았지만 조사원들은 콜록콜록 기침을 했다.

손을 휘저어 먼지를 날리고, 뒷걸음질로 물러나고, 한숨을 돌리고.

이연우는 옆에 떨어진 에어컨 실외기 따위를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아래에서 기껏 빠져나왔는데 여기서 크게 다칠 뻔했다.

‘갑자기 건물이…. 무너질 만했어.’

지하실을 떠올려보면, 콘크리트와 철근 벽을 무너뜨리고 마구잡이로 굴을 파놨다. 얼마나 깊게 팠는지 안쪽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거기에 건물 기둥도 건드린 듯하니,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반장과 유지유는 여전히 뒤틀린 인식 때문에 야단법석을 떨기 시작했다.

“괴물! 괴물이 몸부림쳤어! 도시가 무너질 거야! 빨리 회사, 회사를 불러!”

“와! 모두 지렁이가 되어서 땅 아래로 갔나 봐요! 연우 씨, 저도 지렁이로 만들어주세요! 빨리요!”

반장은 정신이 나간 듯 창백한 얼굴로 횡설수설하고, 유지유는 이연우를 붙잡고 폴짝폴짝 뛴다.

조사원으로서 언제나 침착하던 평소와 달리 감정에 몸을 맡긴 모습.

이연우는 핸드폰을 꺼낸 후, 두 사람의 어깨를 꾹꾹 눌렀다.

“우선 현장부터 정리하겠습니다. 두 분은 잠깐 기다리고 계세요.”

“안 돼! 괴물이-”

“빨리 지렁이가 되어야-”

“둘 다 주사위로 어떻게든 되니까, 쉬고 계십쇼.”

억지로 둘을 자리에 앉힌 이연우는 곧바로 1차대응과로 전화를 걸었다.

한밤중에 갑자기 일어난 건물 붕괴 때문에 깬 사람들이 많다. 불이 켜진 창문들. 신고를 받고 온 소방관들이 구조하기 전에, 피해자가 늘어나기 전에 회사가 통제해야 한다.

“예, 조사원 이연우입니다. 정신조작 이상개체가 발견되었고, 건물이 무너졌습니다. 빨리 수습해주십시오.”

- 위치 말해주시고, 해당 이상개체의 특성을 말해주세요.

심야에 대기하는 대응요원이 피곤에 절은 목소리로 묻는다.

“정신조작은 위험레벨 3이나 4 정도 되는 느낌이고, 영향범위는 빌딩 한 층. 지금은 건물 아래 묻혔지만 접촉하면 위험합니다. 위치는-”

위험레벨 4는 도시 하나가 괴멸할 수준.

이연우가 직접 겪은 위험성은 목소리에 고스란히 담겼고, 핸드폰 너머에서 타다닥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대응요원은 잠이 확 달아난 목소리로 다급히 말했다.

- 확인했습니다! 바로 관련 부서로 명령 하달했습니다! 정부기관에 협조 요청 넣는 중입니다!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통화가 끝났다. 이연우는 근처에 주저앉아, 회사 인력이 오기를 기다렸다. 에코백에 들어간 흙먼지나 물기를 조금씩 처리하면서.

그때 반장이 한층 침착해진 얼굴로 무너진 건물을 보았다.

“…정신조작에 당한 거냐?”

“예. 그거 그냥 지렁이였습니다.”

“아닌데. 위대한 지렁이 님이라니까요. 아, 나도 지렁이가 되어야 하는데. 언제 해줄거예요?”

유지유가 길바닥에 엎드려 꿈틀거린다.

그 꼴을 본 반장은 시퍼렇게 멍든 이마를 꾹꾹 눌러, 고통을 일으켰다. 망치로 머리를 두드리는 고통. 정신에 드리운 그림자가 조금씩 밀려나며, 정신이 맑게 깨기 시작한다.

하지만 고통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신이 다시 비틀린다.

반장은 자신을 의심하고 괴물을 의심하며, 왜곡된 인식을 필사적으로 바로 잡았다.

“그렇지. 그런 괴물이 이런 작은 건물 지하에 머물 리가 없지. 회사가 놓칠 리도 없고. 강력한 정신지배일 뿐이야. 현실이 아니야.”

“저도 깜빡 속았습니다. 주사위한테 지렁이 되게 해달라고 말할 뻔했습니다.”

“위대한 지렁이 님-”

“지유야, 자라.”

반장이 유지유의 목에 초크를 걸었고, 몇 초가 지난 후 유지유는 축 늘어졌다. 바닥에 늘어진 유지유를 뒤로 하고 반장이 이연우를 불렀다.

“네가 그나마 멀쩡하니까 뒤처리는 네가 해라. 회사에 말하고, 출동 나온 인간들한테 인수인계하고 그런 거.”

“예. 반장님은…?”

말을 흐린 이연우는 반장의 이마를 보았다. 이마 정 가운데에 큼지막하게 번진 피멍. 피부가 긁혀 피딱지까지 맺혀 있다.

얼마나 세게 박은 건지.

“나는 의료진 오면 검사 좀 받아야겠다. 머리가 어지러워.”

그렇게 말하며 반장은 담배를 꼬나물었다. 칙칙, 불을 붙이고 연기를 깊게 들이마신다. 후우, 뿜어낸 연기가 차가운 밤공기로 흩어졌다.

말없이 시간을 보내기를 잠시.

사람들이 도착했다.

***

뒷수습은 빠르게 진행됐다.

띠링띠링, 긴급재난문자가 왔다.

[00:07경 건물 붕괴 및 가스 누출 발생. 주민 여러분께서는 신속히 대피하여 주십시오.]

경찰차와 소방차의 경광등이 푸르고 붉게 점멸하는 도로. 오밤중에 봉변당한 사람들이 창백하고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멈칫멈칫 도로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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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하다가 나온 사람, 근처에서 살다가 잠이 깨서 나온 사람, 밤중에도 열려 있는 술집에서 나온 취객.

그들은 건물이 무너진 현장을 보며 핸드폰을 높이 들고, 대화를 나누었다.

“아이고. 어쩐다냐.”

“와. 부실공사 미쳤다. 건물이 저렇게 무너진다고? 어디 건설사냐?”

“빨리 대피하십시오! 위험합니다! 추가적인 사고 위험이 있습니다!”

한편 이연우는 폐허 근처에 앉아 에코백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문득 늘어놓은 공구 앞에 소방화가 와서 멈췄다.

소방복을 갖춰 입은 소방관이 발을 떤다.

“구조작업은 언제부터 시작합니까? 저 안에 깔린 사람들, 한시라도 빨리 구조해야 합니다.”

“대피가 끝나면 시작할 겁니다.”

“너무 늦습니다. 조금씩이라도 시작하면 안 됩니까? 가스도 검출되지 않았는데.”

이연우가 보니 가스 누출 감지기로 이미 검사를 마친 듯하다.

이연우는 고개를 저었다.

“가스보다 위험한 게 있습니다.”

“아니-”

소방관이 건빵 수십 개를 입에 넣은 사람처럼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이쪽이 지휘권을 가진다고 이야기는 들었는데,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지 않나.

“그 위험에 대처하는 게 우리-”

소방관이 다시 입을 여는 순간.

회사의 인력이 도착한다.

푸르스름한 안광을 빛내는 중대 단위 병력이 포크레인과 공간격리 컨테이너를 끌고 몰려오고, 언젠가 보았던 뒷수습 전문인력 이 팀장이 느긋하게 걸어왔다.

이 팀장이 소방관에게 말했다.

“자. 우리 공무원 여러분. 도로 통제해주시고, 사람 출입도 막아주십쇼. 구조작업은 이 사람들이 할 겁니다.”

“통제는 할 겁니다. 그런데 합동하는 편이 더 빠르지 않습니까.”

“어허. 전문인력입니다. 방해되니까 가세요.”

소방관과 경찰관이 찜찜한 표정을 지으며 흩어졌다. 건물에서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대피가 끝나고 한적한 도로에 남은 사람은 회사원뿐.

푸른 안광을 빛내는 사람들이 포크레인을 운전하거나, 곡괭이를 휘둘러 잔해를 파냈다. 메트로놈처럼 일정한 리듬.

그 소음 속에서 이 팀장이 반장을 찾아가, 반갑게 손을 들었다.

“어이, 홍 반장. 얼굴이 왜 그래? 누구한테 맞았나?”

“어어이. 이 팀장. 헛소리 말고 저 친구한테 가. 오늘은 저 친구가 책임자야.”

“쟤?”

이 팀장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이연우와 반장을 번갈아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반장에게 말했다.

“퇴직하려고? 쟤가 다음 반장이야?”

“퇴직은 개뿔. 머리 아프다. 저리 가, 인마. 오라는 의료진은 안 오고, 어휴.”

“성질머리하고는.”

개를 쫓아내듯 훠이 뻗어내는 손. 이 팀장은 투덜거리며, 이연우 앞에 왔다.

흙먼지와 물기를 제거하겠다고 늘어놓은 공구.

이 팀장의 입꼬리가 떨렸다.

“저놈 밑에 있는 놈 아니랄까 봐 이런 것까지 배웠냐.”

“챙겨 두면 다 쓸 일 있지 않겠습니까. 그보다, 처리는 저분들로 끝입니까?”

“어. 노예중대 놈들인데, 정신지배 당한 상태로 출동하는 놈들이라 어지간한 간섭은 안 통한다.”

회사의 정신지배 이상개체를 이용해, 정신이 통제된 상태로 투입되는 병력이다.

정신지배로 정신지배를 막는 방법.

이연우가 문득 이 팀장을 올려봤다.

“이 팀장님은 괜찮습니까?”

“아, 그거야 뭐. 정신지배 당하면 병가 내고 쉬는 거지.”

쉬면서 돈을 버는 거라고 히죽거리는 이 팀장의 모습에 이연우는 할 말을 잃었다.

“그. 이거 위험한 개체인데요.”

“이 바닥에 안 위험한 게 어딨냐.”

“그건 맞긴 합니다.”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기를 잠시.

이 팀장은 작업에 열중인 노예중대를 힐긋 보고는, 무너진 건물을 주시했다.

“깔끔하네. 대충 붕괴 사고로 퉁치면 되겠어.”

적나라하게 드러나거나 현실 같지 않은 사건은 꾸며내기가 쉽지 않지만, 이런 케이스는 도리어 꾸며낼 필요도 없었다.

문득 이연우가 물었다.

“비밀유지 깨지지 않았습니까? 요즘도 뒷수습을 합니까?”

“그거 대충대충 하지 뭐냐. 숨길 건 적당히 숨기고, 자그마한 건 오히려 노출시킨다.”

“노출을 시킨다는 말입니까?”

이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거 관심 갖고 찾아다니는 사람들. 그 사람들한테 일부러 노출시켜서, 그 사람들 조사원처럼 쓴다지 뭐냐.”

알고리즘을 조작해, 회사가 만든 동영상을 추천하거나 인터넷 광고로 위장한 사이트로 연결한다고.

그리고 회사는 비밀유지에 쓰던 장비와 인공지능으로 그런 사람을 감시한다고.

이 팀장은 침까지 튀겨가며 설명했다.

“뭐, 정보화시대에 맞게 방침을 바꿨다는데. 난 모르겠다. 민간인들 쓸 거면 회사가 왜 있어.”

이 팀장이 불만을 내뱉는 동안, 이연우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면 조사원이 업무에 투입될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좋은 거 같은데?’

그때 노예중대의 사람 하나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푸르게 빛나는 안광, 마네킹 같은 표정, 억양 없는 목소리.

“작업 착수했습니다. 추가로 인수인계할 것이 있습니까?”

“아. 그 이상개체에 대해 말해드리겠습니다.”

이연우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자세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유리 상자 안에 지렁이가 있는데, 위대한 존재로 보이게 정신을 조작합니다. 조작당한 사람은 지렁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리 상자면 깨졌을 가능성이 높군요. 작업이 길어지겠습니다.”

길어지는 대화.

깊은 밤, 인적이 드문 거리에 회사원들이 땀을 흘려가며 일하는 소리가 메아리친다. 이어 의료진이 도착하며 폐허에 활기가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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