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새로 단장한 이상조사반의 사무실.
“지렁이 찾아서 격리했다는구만.”
잔해와 흙더미를 모조리 옮겨서 찾았다는 보고서. 반장은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모니터를 보다가, 슬쩍 유지유를 살펴보았다.
책상에 엎드려 얼굴을 숨기고 있는 유지유는 주먹으로 데스크를 쾅쾅 치기도 하고, 두 다리를 마구잡이로 흔들기도 했다. 흔들리는 머리에서는 부끄러운 신음이 흘렀다.
“으-. 아악!”
시간이 지나 왜곡된 정신이 돌아왔지만, 그때 부렸던 추태는 기억에 고스란히 남았다.
시시때때로 떠오르는 망언과 추태.
“으으….”
“지유 선배. 정신지배 아닙니까. 부끄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말을 안 해주면 안 될까요?”
이연우의 위로에 유지유가 부스스 상체를 일으켰다. 얼마나 쥐어뜯었는지 엉망이 된 머리가 흘러내렸다. 유지유는 눈을 내려 머리 끝단을 보았다.
작게 웅얼거리는 목소리.
“저만 바보 같은 짓 했잖아요. 반장님도, 연우 씨도 어떻게 대처했는데.”
“지유야. 나는 짬이 있는데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냐. 그리고 연우는…. 겪은 사고가 몇 개냐.”
반장이 혼자 손가락을 접어가며 중얼거렸다.
마주친 적대집단만 해도 넷에, 직접 겪은 이상개체의 숫자와 종류만 해도, 평범한 조사원이 몇 년은 일해야 가능한 정도.
“허. 연수받은 곳에서 죽어야 하는 이유도 보고, 노래도 듣고. 나무 인간도 보고. 정신 계통만 벌써 몇 개는 당했었네.”
“하하.”
이연우는 머쓱하게 웃고 보고서를 쓰는 척 키보드를 두들겼지만, 유지유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저보다 훨씬 많죠. 선배 소리 듣기도 민망하네요. 연우 선배라고 불러야겠어요.”
“아닙니다. 회사원으로 저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선배죠.”
이연우가 생존한 기간으로 선후배를 따졌다. 사고를 안 만나는 것도 능력이라고.
유지유는 말문이 턱 막힌 표정으로 가만히 있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마인드니까 그 상황에서도 살길을 찾은 건가 싶기도 하고.
유지유가 고개를 붕붕 저었다.
“그나마 잼민이한테 그 꼴 안 보여줘서 다행이네요. 걔였으면 핸드폰으로 찍어서 맨날 놀렸을 텐데.”
“아. 그거 가슴팍에 매달고 간 카메라에 다 찍혀서 증거자료로 올렸습니다. 재민이도 볼 수 있을 겁니다.”
“…네?”
유지유가 뻣뻣한 목을 꺾었다. 이연우는 모니터를 유지유 쪽으로 돌렸다.
화면에는 그 당시의 영상이 있었다. 붕괴한 건물 앞. 유지유가 바닥에서 꿈틀거리거나, 지렁이가 되겠다고 외치는-
“이걸 올렸어요?!”
유지유는 우당탕 일어나, 이연우의 키보드를 내리치다시피 두들겨 동영상 창을 껐다. 그리고는 흔들리는 눈으로 이연우를 본다.
이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선명하게 찍힌 영상이라. 그 이상개체의 특성을 잘 보여주지 않습니까.”
“기, 기, 기억소거제!”
유지유의 얼굴이 터질 듯이 달아올랐다. 갑자기 서랍을 쾅쾅 열며 자기 몫의 기억소거제를 찾아 뒤지고, 반장과 이연우가 황급히 뜯어말리는 때.
똑똑-!
정중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조사원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들은 문을 보았고, 목소리를 들었다.
“계십니까? 한국지사에서 이쪽으로 가라고 해서 왔는데요.”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목소리. 차갑고 무기질적인 목소리.
반장은 의자에 앉아, 짧게 말했다.
“어, 들어와.”
끼익, 문이 열렸다.
문 너머에 있는 것은 대리석 조각상처럼 새하얀 사람이었다. 머리끝부터 발끝은 물론, 섬세한 옷자락 역시 대리석이 조각된 듯한 모습.
아니, 진짜 대리석이다. 거리의 행위예술가가 아니라, 움직이는 조각상, 이상개체다.
그것은 긴장한 조사원들을 둘러보다가, 이연우한테 시선을 멈췄다.
“이연우 조사원? 한국지사에서 당신에게 물어보라고 하던데.”
“…뭘 말입니까? 아니,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이연우는 에코백에서 공구를 꺼내려다가, 에코백을 어깨에 걸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것을 응접용 테이블 앞으로 안내했다.
***
쪼르륵, 뜨거운 물을 따라 녹차를 우려내, 그 잔을 그것의 앞에 내려놓았지만, 그것은 잔을 밀어냈다.
“먹고 마실 수 없는 몸인지라.”
“이상개체입니까? 정체가 뭡니까?”
이연우가 그것의 맞은편에 앉았다.
다른 조사원들은 자기 데스크에 앉아, 그것에게 신경을 집중했다. 여차하면 총을 쏘기 위해, 데스크에 올려놓은 권총.
그 경계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것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자유예술가협회 이사인 조각가님께서 직접 창조한 피조물이지요.”
“조각가…. 피그말리온?”
자기가 제작한 조각상에 생명을 부여하는 예술가.
반장이 깨달은 듯 말하자, 그것은 목을 돌려 반장을 보았다.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한 번을 깜빡이지 않는 눈동자.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나왔다.
“제 주인님께서는 그 이름을 싫어하십니다. 조각가님은 전설을 따라 한 분도 아니고, 피그말리온처럼 조각상 하나만 살려내지도 않았으며, 신 따위에 기대 생명을 부여하는 분도 아니십니다.”
예술가의 자존심에 관련된 문제인지, 그것은 반장을 노려보았다.
반장은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회사에서 붙인 이름이 싫다는데.
“어, 그래.”
“…그래서, 나한테 뭘 물어보려고 왔습니까?”
이야기를 되돌리기 위해, 이연우가 책상을 가볍게 쳤다. 그것은 고개를 돌리고는 잠깐 말을 정리했다.
“조각가님께서 지우개를 빌리고자 하십니다. 한국지사에 문의하니, 이연우 조사원께 권한이 있다고, 당신한테 물어보라는군요. 지우개를 빌려주시겠습니까?”
“….”
이연우는 겉으로는 무표정을 유지했지만, 속으로는 온갖 생각을 떠올렸다.
‘이게 왜 나한테 권한이 있어? 이거 그냥 응대하기 귀찮아서 나한테 넘긴 거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귀찮은 문제를 떠넘긴 모양새다. 이연우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있지도 않은 권한은 뭔.
그 침묵에 그것은 깍지 낀 손을 테이블에 올리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정말 빌리기만 할 뿐입니다. 지우개가 위험한 물건이지만, 예술가의 손 안에서는 훌륭한 도구일 뿐입니다. 최고의 조각칼 아닙니까.”
“그….”
이연우는 몸을 뒤로 빼며, 부정적인 기색을 내보였다. 빌려주겠다고 말하기에는 걸리는 문제가 많다.
이연우의 고개가 저어지려는 순간, 그것은 빠르게 말을 뱉었다.
“조각가님께서는 산맥을 조각해, 거인이나 공룡을 만들 생각입니다. 물론 당신은 공감하지 못하겠죠. 그래서 보상도 준비했습니다.”
순간 이연우가 혹한 기색을 보였다. 보상만 괜찮으면 돕지 못할 이유도 없다.
“보상이라면?”
“당신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생존주의자. 당신이 죽는 날, 당신을 부활시켜 드리겠다면 어떻습니까.”
“자세히 말해보시죠.”
허투루 들을 수 없는 말. 이연우가 의자를 바짝 당겨, 그것의 눈을 똑바로 마주 봤다. 주사위의 부활 판정만 믿기에는 확실하지 않으니까.
반장과 유지유는 황당한 시선을 보냈지만 말을 더하지는 않았고, 이연우와 그것은 이미 그들만의 대화에 푹 빠졌다.
“첫 번째 선택지는 조각가님이 당신의 시체를 조각하는 겁니다. 당신은 인간 조각상으로 되살아날 겁니다.”
“…다른 선택지는요?”
“마지막 선택지는 초상화입니다. 죽은 뒤 당신을 초상화로 살려드리겠습니다.”
그림 안에서만 살아야 하지만, 부활은 부활이라고 말하는 그것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연우는 이미 흥미를 잃었다. 그걸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살아난 자신이 자신일까? 자신을 재료 삼아 만든 이상개체일 뿐이지.
‘물론 최후의 방법으로 나쁘지는 않은데. 나태의 악마랑 다를 게 없어 보이기도 하고.’
잠시 고민하던 이연우는 의자에 몸을 늘어뜨렸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그런 권한 저한테 없습니다. 응대한 쪽에서 일을 던진 모양인데. 그쪽이 담당이니까 그쪽으로 가십시오.”
그것은 표정 변화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역시 그랬습니까. 회사는 지우개를 빌려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요.”
일 처리를 보면 그 의도가 느껴진다. 이곳저곳 돌리면서 시간을 질질 끌다가, 이런저런 이유를 변명 삼아 둘러대며 거부할 것이다.
이곳에 더 있을 이유가 없다. 그것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조사원들을 훑어본 다음, 꾸벅 고개를 숙였다.
“포기해야겠군요. 잘 있으십시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간다. 대리석 조각상의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멀어졌다.
반장이 불쾌한 얼굴로 권총을 툭툭 치며, 이연우에게 말했다.
“너한테 일 던진 놈들, 어디냐? 조사반이 우스운 줄 아는 모양인데.”
“알아보겠습니다.”
이연우 역시 기분 나쁜 표정으로 핸드폰을 두드리기 시작했고, 유지유는 멀뚱한 표정으로 조각상이 나간 문을 보았다.
“저거 인식개변도 없는 거 같은데, 어떻게 돌아다닌데요?”
“방법이 다 있겠지.”
***
살아 움직이는 조각상이 길을 걷는다. 길가의 사람들은 신기한 표정으로 그것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때때로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거리 예술 그거 아냐?”
“나도 인터넷에서 봤는데. 동상인척 하는 그거. 지금 돌아가는 길인가 봐.”
사람들은 그것이 진짜 조각상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행위예술의 하나로 보고, 색다른 경험을 즐길 뿐.
한편 그것은 사람들의 반응은 신경 쓰지도 않았다. 다만 회사의 태도를 떠올리며, 앞으로 어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주인님께서는 지우개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역작을 만들 기회를 놓칠 리가 없으셔.’
그렇다면 조각상이 할 일은 하나뿐이다. 강탈. 어떻게든 손에 넣기.
‘물론 주인님께 먼저 여쭤봐야-’
음험한 생각에 한참 빠질 때였다. 문득 조각상의 걸음이 멈췄다. 앞에서 카메라를 든 여자 하나가 흥분한 낯빛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혹시 사진 찍어도 될까요?”
“아, 그럼요.”
그것은 우뚝 멈춰서 조각상으로 돌아갔고, 찰칵 사진을 찍은 다음, 왁, 큰 소리를 내며 두 손을 번쩍 들어 여자를 놀래켰다.
“악!”
여자는 화들짝 놀라 조각상의 팔을 붙잡았다. 그 온기 하나 없이 차갑고 단단한, 대리석의 감촉.
여자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팔뚝을 매만지는 손길.
“와, 진짜 대리석 같은데.”
“비싼 분장입니다.”
그것이 짧게 말하자, 여자는 방금보다 더 놀라며 몇 걸음 물러섰다. 실수로 망가뜨리기라도 하면 감당할 수 없다.
“사진 찍었으면 가보겠습니다.”
“네, 네. 재밌었어요!”
그렇게 살아 움직이는 조각상은 사람 사이에 섞여 길을 걸었고, 자유예술가협회의 은신처인 갤러리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