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105)화 (105/194)

도시

골드버그 클럽은 한국에도 지부가 있었는데, 따로 건물을 두지는 않았고, 여러 호텔의 펜트하우스를 장기 대여해서 회의할 일이 생기면 그때그때 모이는 편이었다.

오늘도 한국의 어느 펜트하우스에 한국지부의 회원 몇이 모였다. 얼마 전 있었던 회사와의 갈등 때문이다.

형식상 갤러리를 구입했던 사내가 소파에 축 늘어져, 와인 잔을 빙글빙글 돌렸다. 붉은 포도주가 소용돌이치며 유리잔을 적시고 내려오기를 반복한다.

“전면전은 일어날 리가 없죠. 회사, 그 겁쟁이들이 전투를 원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글쎄….”

머리가 하얀 노인은 탁 트인 창가에 서서 야경을 내려보았다.

고도로 발달한 도시. 밤에도 꺼지지 않는 불빛과 촘촘하게 깔린 인프라를 누리는 사람들.

사내도 힐긋 창가를 보다가 웃었다.

“영감님도 걱정이 참 많아요. 회사는 지킬 게 너무 많아요. 저 도시, 저 사람들. 저게 파괴될 일을 자기들 손으로 하겠습니까.”

노인은 반응하지 않았고, 사내는 혼잣말 같은 대화를 이어갔다.

“이번에도 보세요. 싸웠다가는 그냥 안 끝날 거 같으니까, 그냥 물러났잖아요. 물론, 이상도시 탐사에 끼워줘야 하는데. 그것도 자존심만 세운 거죠. 사람 하나만 보내서 뭘 하겠다고.”

“회사에서 자존심마저 빼면 시체 아니냐고.”

비슷하게 늘어져 있던 다른 회원들이 회사를 비웃으며 낄낄댄다. 젊은 남녀의 웃음소리가 넓은 펜트하우스를 채웠다.

노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젊은 놈들이….

“회사 무서운 줄을 몰라.”

“회사 무섭죠. 정면으로 싸우면 누가 이깁니까. 그런데 그런 짓은 회사가-”

“못한다고 누가 그러던가?”

노인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한국지부를 담당하는 클럽장인지라, 다른 회원들도 슬며시 입을 다물었다.

속으로는 노인네가 겁이 많다고 욕하면서.

노인은 도심의 야경을 가리켰다.

“도시? 사람 몇십 만? 회사가 진짜 이런 걸 두려워하겠나? 이상기후를 알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노인의 눈에 회원들의 모습이 새삼 잡혔다. 나이가 많아 봐야 40살도 안 되는 젊은 피다. 노인이 되기 전에 다 죽어서 그렇다.

그리고, 머리가 하얗게 셀 정도로 살아남은 노인은 안다. 회사가 눈이 돌아가면 얼마나 무서운지.

당장 이상기후 때만 해도 그렇다.

“이상기후를 못 막겠다고 80억 인구가 죽게 버려둔 인간들이야. 이상기후를 막아보겠다고 60억 인구를 죽이려던 인간들이고.”

보존계획과 학살회사 파벌.

핵심생존계획은 집단들끼리 공유했기에 고위인사인 그들도 보존계획을 알았고, 클럽의 정보력으로 파벌도 알았다.

인류가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 자들.

회원들의 얼굴도 새삼 굳어졌다. 그들도 청와대 테러를 기억했다. 대놓고 청와대로 쳐들어가 푸른 꽃을 피워낸 미친 인간들.

“회사가 지킬 게 많다고? 아니지. 우리는 도시가 필요해.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니까. 그런데 회사는 달라. 세상이 망해도 인간이 살아남기만 하면 돼. 지킬 건 우리가 더 많아.”

사내는 남은 와인을 벌컥 마시고, 붉어진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그래도 이상기후 급으로 몰아붙이지 않으면, 회사도 정신을 놓지는 않지, 않지 않습니까.”

“그건 모르지.”

노인은 다시 몸을 돌려 아름다운 야경을 내려보았다. 하지만 그 눈에 비치는 광경은 그의 기억 속 어디쯤이다.

회사는 주기적으로 발작했다.

자기들끼리 뭘 연구하다가 이상한 걸 발견하고는 돌아버리고, 자기들끼리 이상한 결론을 내고 미친 멧돼지처럼 달려들고, 이게 인류생존의 길이라며 끔찍한 사고를 일으키고….

물론 노인은 이해했다.

단순하게 예술에 몰두하는 예술가나 잘 살기 위한 클럽과 달리 인류보호라는 쓸데없이 거창한 이념을 지닌 만큼 이런저런 사정이 있겠지.

노인이 걱정하는 건 그 주기였다.

‘시간만 따지면 한 번 발작할 때가 됐는데.’

이상기후도 해결되었겠다, 회사가 돌아버릴 때가 되었다. 이번 견제도 그것을 떠보기 위함이었는데, 순순히 물러나는 꼴을 보니 더 불안하다.

“영감님. 그래도 견제는 필요했습니다.”

어떤 회원이 말하자, 노인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잘 마무리되었으니, 나도 더 말하지 않겠네. 나도 승인한 일이었고. 그래, 탐사에 합류한다는 회사원은 누군가?”

“조사원이라던데요.”

“누구?”

노인은 살짝 긴장하며 고개를 돌렸다.

조사원이면 생존의 달인 아닌가. 지금은 인원이 줄어들었지만, 특히 그 반장은 무시할 사람이 아니다.

와인 잔에 대충 와인을 따르던 사내가 말했다.

“이영우? 이연우? 1년도 안 된 새내기입니다. 이력이 상당하긴 한데, 그래봐야 새내기죠.”

“음. 괜찮군.”

1년도 안 된 새내기가 경험이 많으면 얼마나 많겠나. 10년 경력의 회사원만 아니면 안심해도 된다.

노인은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야경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말했다.

“그 총기제작소를 모조리 털어버린 범인은 찾았나? 우리가 그만큼 일방적으로 손해를 본 적은 없지 않나.”

“아뇨….”

***

조사반의 사무실.

이연우는 한국지사에서 나온 회사원을 마주하고 있었다. 기획실에서 왔다는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뱉었기 때문에, 이연우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졌다.

“그러니까, 저보고 골드버그 클럽의 이상도시 탐사에 참여하라는 말입니까?”

“강제는 아닙니다. 얼마든지 거부하셔도 됩니다.”

회사원은 친절하게 대응했다.

“다만 앞으로 지우개를 계속 지니고 싶다고 요청하셨는데, 지우개를 지닌다면 이런 업무가 부여됩니다. 일종의 실습체험으로 여기시면 됩니다.”

지우개를 지니면 원래 이런 일에 투입된다고, 이런저런 사례를 들어가며 나긋하게 설명하자, 이연우의 얼굴도 조금씩 펴졌다.

대신 이연우는 지우개를 가만히 내려봤다.

‘그냥 포기해? 귀찮은 일이 너무 많은데.’

지우개는 좋지만, 따라오는 일들이 너무 귀찮다. 조사원이나 특수조사원이 아니라, 지우개를 지닌 요원으로서 업무가 추가된다.

물론 그만큼 돈은 더 받지만….

이연우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다가, 한숨을 뱉었다.

“그래요. 참여하겠습니다.”

일단 며칠 체험해보다가, 정 위험하다 싶으면 포기하면 된다.

그리고 지우개. 그때의 감각을 다시 느끼지는 못했지만, 손만 까딱여도 어지간한 위험은 다 지울 수 있다.

“훌륭한 선택이십니다.”

회사원이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 몇 장을 꺼내, 이연우 쪽으로 밀었다.

이연우가 힐끔 내려보니 탐사계획이다. 회사원은 간단하게 설명했다.

“이상도시는 이상異常의 영향을 받는 도시를 말합니다. 대부분은 허황된 민담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또 이차원이 우연히 겹친 결과일 뿐이지만 종종 진짜가 발견되기도 하죠.”

실제로 고대의 전설로 여겨지던 도시가 발굴되듯, 이상도시도 때때로 발견된다.

그런 이상도시는 큰돈이 되었기 때문에, 골드버그 클럽은 가챠 돌리듯 탐사를 멈추지 않았고, 이번에도 하나의 도시를 발견했다고 한다.

“625 전쟁 당시, 산골의 마을 하나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근방의 노인들이 말하길, 북한군이 닥쳐오자 무당 하나가 마을 사람들을 어디론가 끌고 갔다고 하는데.”

“그곳이 이상도시입니까?”

이연우의 질문에 회사원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땅으로 갔다고 말하더군요.”

전란을 피해 도망친 땅.

“어쨌든 그렇게 위험한 도시는 아니라고 예상된다니, 이연우 씨는 고생 조금만 하시고 발굴로 얻는 이익만 얻으시면 됩니다.”

“글쎄요. 그렇게 쉬울지….”

이연우는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눈동자에는 의심이 빛이 서렸다.

대놓고 이상도시 같은 곳을 가는데, 문제가 안 터질까? 이제 그도 자신의 운을 믿지 않았다. 분명 사고가 터질 것이다.

“지우개가 있지 않습니까. 이연우 씨는 무사히 돌아올 겁니다.”

“당연히 무사히 돌아와야죠. 그런 곳에서 죽을 수는 없으니까.”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 눈을 흘기기를 잠시. 이연우는 에코백을 움켜쥐었다.

‘챙길 게 많아.’

혹시 모르니, 에코백을 다시 꾸려야겠다.

단순한 공구와 총기만이 아니라, 식수와 식량, 구급약품과 위생용품, 의류와 텐트, 방독면 등을 꾸려 넣어, 생존배낭으로 만들 것이다.

***

탐사예정일은 빠르게 찾아왔다.

이연우는 에코백 하나만 덜렁 어깨에 걸치고, 산길을 올랐다. 이미 앞서 골드버그 클럽에서 돌아다닌 길이라, 갓 만들어진 길을 따라가면 되었다.

비탈진 길을 한참 동안 걸어가니, 폐허가 나타났다.

초가집이나 기와집 따위가 비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 마치 조선시대의 산골 마을이 그대로 폐허가 된 듯한 마을.

“아, 오셨나요? 조금 늦었군요. 하마터면 두고 갈 뻔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 분위기와 맞지 않게 양복을 입은 클럽 회원들이 무거운 짐을 들고는 이연우를 맞이했다.

그중 이연우를 맞이했던 사내는 빙글빙글 웃었고, 이연우는 한숨을 쉬었다.

“먼저 가지 그랬습니까.”

그러면 자연스럽게 탐사에 빠지면서도, 그 책임을 골드버그 클럽에 넘길 수 있었을 텐데.

사내는 언뜻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미소를 입에 걸었다. 역시 조사원이고 새내기다 싶은 마음.

“아무리 그래도 계약을 무시할 수는 없죠. 그런데, 탐사는 처음이십니까? 짐이 굉장히 가벼우신데.”

“그쪽에서 다 제공하는 거 아닙니까? 저는 그냥 참여만 하면 된다고 들었는데요.”

이연우는 짐을 한가득 꾸렸지만 겉보기에는 가벼운 에코백을 흔들며,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다 돈 주고 산 물건들인데, 이왕이면 골드버그 클럽의 것을 쓰면 좋다.

순간 사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새내기라서 편안했던 마음이 새내기라서 짜증 나는 마음으로 변했다.

자그마치 이상도시 탐사다. 그런데 저렇게 가볍게 온다고?

“예비 물자는 준비했는데….”

“아, 내 몫은 준비를 안 했습니까? 그러면 탐사는 조금 미뤄주시죠. 내려가서 준비해오겠습니다.”

“아닙니다. 보급해드리겠습니다. 미룰 수는 없으니까. 하….”

골드버그 클럽의 자산을 이렇게 빼앗기는 건 또 처음이다. 이상도시 탐사가 코앞인데, 어째 시작부터 기분이 좋지 않다.

사내가 신경질적으로 손을 휘둘렀다. 손에 들린 계약서가 팔랑이며 빛을 머금었다.

“이 땅의 주인으로서 말하니, 숨겨진 것은 모습을 드러내라.”

그 순간 변화가 생겼다.

마을 구석에 위치한 무당집이 멀쩡하게 돌아왔다. 꼿꼿이 선 깃대에는 하얀 천과 붉은 천이 매달려 있었는데, 바람이 불지도 않는데 펄럭이며 기묘한 문양을 드러냈다.

“저쪽이 통로인가 봅니다. 갑시다.”

클럽 회원들이 우르르 움직인다. 이연우는 제일 뒤에서 느릿느릿 따라갔다. 적당히 긴장을 유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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