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무당집으로 들어가니 세상이 바뀌었다. 산의 중턱, 토리이처럼 생긴 홍살문의 앞으로. 무당집은 이 홍살문과 연결된 듯하다.
그들은 침착하게 주변부터 살폈다. 권총을 꺼내 들고, 사방을 경계했다.
근처에는 오색천이 달린 커다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춤을 추었고, 잡초가 듬성듬성 난 흙길이 산 아래로 구불구불 이어졌다.
언뜻 보이는 산 아래의 마을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폴폴 올라온다.
“바리케이드 설치하고, 드론 꺼내!”
클럽 회원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접이식 바리케이드를 펼쳐 길을 막았다. 누군가는 박스에서 드론을 꺼내 날려 보냈고, 누군가는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3조는 이곳에서 거주하며 통로를 지켜. 드론 관측은?”
“접근 중입니다.”
“너무 가까이 가지는 말고, 멀리서 확대해.”
탐사가 한두 번이 아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회원들. 각자의 역할을 기계장치처럼 수행하고 있다.
한편 이연우는 가만히 서 있다가, 슬며시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지우개가 만져진다.
‘무기 있고. 주사위 있고. 에코백 든든하고. 통로는 계속 열려 있나?’
이연우는 탐사팀의 담당자인 사내에게 다가가, 질문을 던졌다.
“통로는 계속 열려 있는 겁니까?”
“곧 닫히겠죠.”
“그럼 어떻게 돌아갑니까?”
사내는 귀찮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2주 후에 바깥에서 열 예정이고, 긴급상황이라면 이쪽에도 열 방법이 있습니다.”
“무슨 방법-”
그 순간, 높게 외치는 소리. 드론을 조작하던 회원이 화면을 확대하며 보고했다.
“관측했습니다! 옛날 마을입니다!”
사내는 얼른 그 회원에게 다가갔고, 이연우도 사내를 쫓아가, 드론이 보내오는 영상을 보았다.
초가집과 기와집이 늘어선 산골 마을.
낡은 한복을 입은 사람들은 근처의 논이며 밭에서 일하고 있고, 아낙네들이 광주리에 감자를 담아 논으로 향하고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온 듯한, 평화로운 광경.
“눈에 보이는 이상현상은 이 공간뿐인가. 1조는 나와 함께 접근한다. 조사원, 같이 갈 거죠?”
“예.”
이연우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개도 있겠다, 무서울 게 없다.
드론은 하늘을 가로질러 날았고 또 고배율로 확대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상당히 멀리 떨어진 마을이다.
산길을 내려가며, 담당자인 사내는 이연우에게 주의사항을 말했다.
“행동거지, 말, 모두 조심해야 합니다. 고립된 공간이고, 어떤 이상개체가 있을지 모릅니다. 잘못 자극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탐사 경험이 없는 이연우가 무슨 사고를 칠까 주의하는 말.
이연우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이상異常 무서운 줄 압니다. 전부 당신들한테 맡기고 조용히 있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걷기를 몇십 분.
그들은 마을에 도착했다. 근처의 평상에 앉아 있던 노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뉘신가?”
“안녕하십니까. 산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인데. 여기 전화 있습니까. 핸드폰이 안 터져서.”
사내가 천연덕스럽게 굴자, 노인은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무슨 해괴한 소리를 하는 건지. 하여튼 거기 가만히 있으시오. 무당님 모시고 올라니까. …그런데 바깥에 전쟁은 끝났소?”
“전쟁이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대답에, 노인이 인상을 찌푸린다. 주름이 깊게 파였다.
“공산군 말이오! 우리가 그놈들 피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아! 한참 전에 끝났죠. 남한이 이겼어요. 아니, 그런데 그것도 모르세요?”
“산골 마을인데 그걸 어떻게 아나? 어쨌든 여기서 기다리시오.”
노인은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그리고는 지팡이로 땅을 짚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 마을 안쪽으로 걸어갔다.
사내와 이연우는 잠시 침묵했다. 이연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상합니다. 기뻐하지도 않고, 나갈 생각도 없어 보입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저럴 수도 있겠지만, 지나치게 평온하긴 한데. …이곳이 살만해서 그런가?”
보아하니 딱히 배를 곯지도 않고, 평화롭게 잘 사는 모양이다. 만족스러운 삶을 이어가니 바깥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들은 마을 어귀에 서서 찬찬히 마을을 살폈고, 곧 무당이 노인과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무당은 붉은 갓을 쓰고 붉은 두루마기를 입고, 푸르고 노란 띠로 옷을 장식했으며, 부채를 쥔 채 다가왔다.
딸랑, 딸랑, 걸음마다 방울이 울렸다.
“손님이 오셨군.”
날카로운 목소리.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과 피처럼 붉은 입술.
이상異常에 가장 가까울 것으로 추측되는 인물의 등장이다. 사내는 속으로는 긴장하면서도, 겉으로는 어수룩한 미소를 지었다.
“예. 혹시 전화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길을 잃었는데-”
“길을 잃어? 너희가?”
“….”
무당의 번뜩이는 눈과 사내의 의뭉스러운 눈이 마주친다. 무당은 가만히 노려볼 뿐이지만, 회원들은 슬그머니 손을 움직이며 여차하면 권총을 뽑을 준비를 갖췄다.
사내 또한 치열하게 머리를 굴렸다.
‘무당부터 제압할까? 아니지, 이렇게 싸우면 손해만 보잖아. 차라리 협상을-’
무당이 돌연 웃었다. 입꼬리가 귀에 걸릴 정도로.
“귀한 손님이니, 홀대할 수는 없지. 따라들 오시게.”
회원들은 사내에게 시선을 던졌고,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탐사 경험이 한두 번도 아니고, 이 정도는 문제랄 것도 아니다.
“좋습니다.”
무당이 코웃음을 치며, 노인에게 손짓했다.
“자네는 그만 쉬게. 관에 들어갈 날도 얼마 안 남았잖은가. 나는 손님들을 대접해야겠어.”
“예, 예.”
노인은 굽실거리며 어딘가로 사라졌고, 무당은 손님들을 무당이 머무는 신당으로 안내했다. 무당이 말했다.
“무슨 속내를 품었든, 마을의 전통은 지켜줘야겠어.”
“어떤 전통을 말하는지?”
“우리가 모시는 신께 인사를 드리라는 말이야.”
“아, 그럼요.”
이연우가 살짝 눈살을 찌푸리는 동안, 신당에 도착했다.
신당은 굉장히 넓었다. 마을 사람 모두가 들어가도 자리가 남을 정도로. 또한 커다란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검게 칠해진 무언가가 어떤 강을 가로막고 있는 그림이었다.
무당이 힐긋 회원들을 보았다.
“우리가 모시는 삼도천의 신이시네. 죽음을 다스리는 분이니, 경거망동하지 말게.”
처음 듣는 신화지만, 그들은 더 말하지 않았다. 이상개체가 전설 따위로 둔갑하는 일은 흔하다. 분석하여 이상개체의 특성을 알아낼 뿐이다. 그리고 수익성 역시.
무당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검은 물이 담긴 양동이를 들었다.
“이곳은 그분의 땅이니, 이곳에 발을 들인 이상 그분의 보살핌을 받아야지. 의례를 치르게.”
“의례라면?”
“그분에게 죽음을 바치는 거지. 오직 죽음을 바친 자만이 이 땅에 머물 수 있어. 이게 싫다면 이대로 돌아가게.”
딱 봐도 수상하다. 알 수 없는 이상개체와 상호작용하는 느낌.
사내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부드럽게 거절할지, 맞서 싸울지 고민했다. 하지만 이연우는 달랐다.
‘괜히 위험한 짓을 할 필요는 없지.’
이연우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그는 대놓고 말했다.
“안 합니다.”
“뭐라?”
“이연우 씨. 잠깐-”
“저런 짓을 왜 합니까. 그쪽들 말 들어줄 생각 없으니까, 설득하지 마세요.”
이연우는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듯,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무당의 눈이 희번득거렸고, 사내는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속으로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나쁘지 않다. 이쯤에서 한 번 떠보자.
“이 친구가 괴력난신을 싫어해서…. 저희도 그렇고요. 꼭 해야 하나요?”
“…불손한 놈들. 좋다. 오랜만의 손님한테 강요할 수도 없지.”
무당이 돌연 진정했다. 무당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집을 내어줄 테니 그곳에서 쉬게. 그리고 내일, 잔치가 열리니 참여하고.”
잔치가 뭐냐, 전화는 어딨냐, 돌아가겠다, 이런 소리는 내뱉지 않았다. 이미 서로 눈치를 챘다. 상대에게 음흉한 속내가 있다는걸.
모두가 마을에 남기를 원하는 이상, 쓸데없는 겉치레는 필요가 없다.
사내 또한 웃음으로 답했다.
“잔치 좋지요.”
“그분의 신령함을 기리고 또 드러내는 자리니, 꼭 참여하게. 그걸 느낀다면 그대들 같이 불손한 자도 그분을 섬기고 싶어질 테니.”
짤랑, 방울이 울었고, 무당이 부채를 휘둘렀다. 신당의 쪽문에서 사람 하나가 나와 손님들을 빈집으로 안내했다.
***
밤이 되었다.
회원들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했고, 통신기기로 홍살문 쪽의 회원과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분석했다.
“전설인지 사이비 무속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이상개체일 뿐이지.”
“그들이 모신다는 신이 이상개체인지, 그 무당이 이상개체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는 모르겠는데….”
경험과 지식에 기대어 이곳의 이상개체를 분석한다.
이연우는 가만히 구석에 쪼그려 앉아, 주머니의 지우개를 데굴데굴 굴렸다.
‘지루해.’
클럽의 회원들은 체계적으로 조사에 나섰지만, 그 조사는 이연우가 겪었던 일들과는 달랐다. 느리다.
이게 안전한 길이었지만, 맨날 뻥뻥 터지는 사고만 겪던 이연우는 답답했다.
‘차라리 시원하게 다 터지면…. 아니, 그건 아니지. 아닌가? 지우개 확 휘둘러봐? 아냐. 아닌가? 위험할까?’
회원들이 알면 기겁할 생각. 회원들은 그들만의 대화에 열중했다.
“죽음을 바친다, 삼도천의 신, 아무래도 죽음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맞습니다. 제가 탐문한 결과, 이 마을은 기이할 정도로 사망률이 낮아요. 전부 노인의 자연사입니다.”
이런 고립된 마을, 의료진도 없는 마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신생아의 사망도 아예 없답니다. 죽음을 바쳐서 그렇다는데.”
“좋은데?”
사내가 손을 싹싹 비볐다. 이건 돈이 된다.
“무병장수는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지.”
사내가 힐끔 이연우를 보았다. 이연우는 심심한지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었다. 의욕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모습.
“무병장수, 관심 없습니까? 조사원은 이런 거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관심 없어요.”
빗물이 있다. 이런 수상한 의식에 기대지 않아도 무병장수한다.
진심으로 지루해진 이연우가 한숨을 푹 쉬었다.
‘잠이나 자자. 불침번은 저쪽이 선다는데.’
그리고, 잔칫날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