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탐사의 책임자인 사내는 무당을 향해 웃었다. 자연스럽게, 친절하게.
“우선 그분한테 먼저 여쭤봐야겠네요. 아무래도 소속이 달라서.”
“그래? 그러면 내가 직접 여쭤보겠네. 어디 계신가?”
“아직 산에서 안 내려왔죠. 이따가 저녁 먹으면서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무당은 망설이다가 소매를 휙 털었다. 방울이 짤랑짤랑 울리고, 무당이 몸을 돌렸다.
“그러면 그때 보세.”
방울 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무당의 인영이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서 있던 사내는 표정을 싹 바꿨다.
“목표 바꾼다. 이딴 것보다는 지우개가 훨씬 중요해. 2조. 지금부터 은신해서 암습할 준비해. 시간 보니까, 곧 내려올 거야. 빨리!”
“그…. 괜찮겠습니까?”
사내가 힐긋 보니, 회원들은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우개의 힘과 멸망주의자의 악명 탓이다.
사내는 피식 웃었다.
“지우개가 무섭지, 사람이 무섭냐. 인식 밖에서 총 맞으면 죽는 건 똑같아. 거기에, 얼마 전에 회사는 지우개를 털리기까지 했어. 그것도 고작 조각가 하나 때문에.”
지우개를 든 지 고작 며칠밖에 안 지난 인간이다. 잘 쓰면 얼마나 잘 쓰겠나.
사내의 말은 회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그런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힘차게 주먹을 쥔다.
“지우개만 팔면 돈이 얼마냐. 다 나눌 거니까, 힘내자고. 2조! 이 집을 중심으로 숨어! 목표는 무덤 조사 결과 보고하러 돌아올 거야. 돌을 놓는 순간 바로 쏴서 죽이라고.”
“예!”
2조가 사람 보기를 돌 같이 하는 이상개체를 쥐자, 존재감이 사라졌다. 그들은 집을 포위하듯 흩어졌다. 지붕 위로, 나무 위로, 문 옆에, 창문 아래에, 방 안에.
이연우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쏘아 맞히기 위한 위치.
사내는 이어서 말했다.
“3조는 평범하게 행동해. 이상한 짓, 어색한 짓, 의심 살 짓은 하지 말라고.”
“계속 고서적 번역하겠습니다.”
3조는 방으로 들어가, 고서적의 남은 부분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좋아. 자, 그러면 대박 한번 터트려보자고.”
사내는 파리처럼 손을 싹싹 비비며, 황금빛 꿈을 꾸었다. 자그마치 지우개다. 무한사용 가능한 핵폭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회사에 되판다고만 해도 몇십억은 우습지.'
제값 받고 팔려고 하면 회사가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까 많이 할인해서 팔아야겠지만, 회사와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으면....
'다른 놈들한테 팔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뭘 받을 수 있을까?’
이만한 수익은 사내의 인생에서도 처음이다.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다. 사내는 그가 머무는 자그마한 방으로 들어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해가 지며 어두워지는 하늘을 따라 사내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왜 아직도 안 왔지? 설마 뭘 눈치챘나? 빌어먹을. 새내기라도 조사원이라 이건가?’
사내는 망설이다가 무전기를 들었다. 헛기침을 한 후, 송신 버튼을 누른다.
“1조. 통로에 이상은 없나?”
- 여기는 1조. 아무 이상 없습니다.
“그래?”
- 통로는 닫힌 채입니다. 다른 사람도 다가온 적 없습니다. 산짐승뿐입니다.
“…알겠다.”
일단 이 안에 있는 건 확실한데. 아니다. 주사위를 지녔다고 들었다. 듣기로는 주가 조작에 최적화된 이상개체라는데, 도주에 썼을지도 모른다.
‘나갔나? 안 되는데?’
사내가 눈살을 찌푸릴 때였다.
무당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린다.
“계신가?”
“안 계십니다.”
사내는 크게 외치고는 후다닥 밖으로 나가, 무당을 맞이했다.
“뭐 하는 중인지, 아직 안 오셨네요.”
“확실한가?”
무당이 눈을 치켜뜨자, 이마에 주름살이 생겼다. 사내 또한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진짜 없습니다.”
“그 영구적인 죽음을 내리는 것은 꼭 필요한데…. 언제쯤 오시나?”
“잘 모르겠는데. 저희도 찾고 있습니다. 소식 들으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무당은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고압적인 말을 쏟아내려고 했지만, 머릿속에서 삼도천의 신이 기겁하며 말렸기에, 애써 표정을 다스렸다.
“꼭 좀 알려주시게.”
“예, 예.”
대충 고개를 숙이는 사내와 돌아가는 무당.
그리고, 그곳에는 이연우가 있었다.
챙겨온 형광조끼를 입고, 한 손에는 돌을 쥔 채로. 그들의 바로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모조리 들으면서.
‘그래, 수상하다 싶었지.’
마을 어귀로 들어서자마자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싶었다. 그래서 인식을 왜곡하는 개체를 둘이나 장비한 채로 대기했더니, 이 꼴이다.
‘지우개를 눈치챈 클럽. 지우개를 원하는 무당과 이상개체.’
이연우의 눈동자가 질척하게 가라앉는다.
고립된 세계, 지우개를 탐내는 두 개의 집단, 혼자뿐인 자신. 극도로 위험한 상황.
‘2조가 안 보여. 숨어서 공격할 생각이겠지. …배신할 수도 있어. 그런데 날 죽이려고 하면 안 되지.’
저쪽에서 평화롭게 협박을 했으면 이쪽도 평화롭게 넘겼을 텐데. 선을 넘었다.
심장이 뛰었다. 활기가 전신으로 뻗어나갔다. 감각은 예민하게 곤두섰고, 머리가 고속으로 회전했다.
지루함이 사라진 자리로 생존본능이 돌아온다.
‘…우선순위는 탈출이야. 주사위는 리스크가 무서우니까, 안전하게 탈출할 방법을 알아내야겠어. 저 책임자가 알겠지.’
이연우는 냉정하게 걸음을 옮겼다.
***
무당이 돌아가자, 회원들은 넓은 마루에 모여 저녁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가스버너에 불이 들어오고, 그들이 준비한 식수로 밥을 짓고, 라면을 끓인다.
전부 그들이 챙겨온 물자로 만든 음식이라, 그들은 편안하게 먹었다.
어떤 회원이 물었다.
“도망친 거 아닙니까?”
“몰라. 일단 돌 들었을 테니까, 우리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지.”
“그냥 원래 계획대로 무당과 거래하는 게-”
“조용히 해, 인마. 그건 그것대로 하고, 지우개는 지우개대로 얻으면 돼.”
돈에 눈이 먼 사내가 그리 말하자, 다른 회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골드버그 클럽에서 활동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했다. 연회비로 황금을 바쳐야 하고, 클럽의 이상개체는 돈 주고 사야 하고, 다른 고위회원의 상품을 쓰려면 그것도 돈 내야하고.
한창 맛있게 밥을 먹던 회원이 문득 사내를 보았다. 사내는 한 입도 먹지 않았다.
“안 드십니까?”
“입맛 없다. 아, 대박이 코앞인데.”
그러던 중 사내가 회원 몇을 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거북목이 심각한 사람처럼 머리를 앞으로 내밀고, 그릇에 코를 박아가며 식사하는 회원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번역하다가, 목이 앞으로 나왔나?’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기를 잠시. 사내의 표정이 굳었다.
우드득, 찌직-
목이 앞으로 나온다. 인체 구조상 불가능할 정도로, 피부가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내며, 앞으로 쭈우욱.
단란하게 움직이던 젓가락과 수저가 멈춘다. 그들은 상황을 바로 파악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고.
끝내, 회원 몇의 머리가 빠졌다.
데구르, 쿵.
머리가 상 위를 구른다. 흉한 절단면에서 피가 솟구쳤다. 남은 몸은 허우적거리다가, 그대로 쓰러졌다.
거기에, 그나마 멀쩡하던 사람들의 머리카락 또한 우수수 빠지기 시작했다.
“…독?”
아니, 독처럼 쓸 수 있는 이상개체다.
모두가 벌떡 일어났다. 사내는 황급히 외쳤다.
“그 조사원이다! 경계해! 다들 눈 크게 뜨고 흔적 찾아!”
은신한 2조에게도 내리는 명령이다. 돌이라고 완벽한 건 아니다. 사람을 돌처럼 여겨지게 할 뿐.
돌 하나하나도 주의 깊게 본다면, 인지력을 끌어올린다면 위화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사내의 머리는 터질 것만 같았다.
‘뭐지? 뭐가 목적이지?’
그 조사원 말고는 그들 식사에 이런 독을 탈 사람이 없다. 하지만 죽이려면, 지우개로 쉽게 지울 수 있는데 굳이 이런 짓을 왜?
‘미친 새끼인가? 싸이코패스인가? 잔치 때 그 지랄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래도, 냉혹한 킬러가 아닌 이상 기회는 있다.
사내는 버럭 소리쳤다.
“당황하지 마! 경계해! 상대도 똑같은 사람이야!”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그쪽에서 먼저 움직일 거야. 우리를 죽이려고. 그때 반격하면 된다. 지우개는 걱정하지 마. 지우개 쓸 거면 벌써 썼어.”
회원들은 천천히 진정하며, 권총을 쥐었다. 그래, 사람이다. 총 맞으면 죽는 사람. 충분히 죽일 수 있다.
사내는 빠르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지폐 전부 꺼내올 테니까, 거기서 대기….”
문지방에서 걸음이 멈춘다. 사내는 잔뜩 확장된 동공으로 방 안을, 텅 빈 방 안을, 그리고 방 중앙에 놓인 시체 같은 인간을 보았다.
“죽, 죽여, 죽여줘….”
“어, 언제.”
방 안에 둔 모든 물자가 사라졌다. 식량은 물론이고, 책상 같은 것까지. 대신 놓인 것은 무덤에서 기어 나온 듯한 미라 같은 인간뿐.
사내가 뒷걸음질을 친다.
“뭔데. 왜 이러는 건데.”
공포에 질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어둡고 끔찍한 악의. 돈도, 살인도 목적이 아니다. 그냥, 그냥, 가지고 노는 거다.
고양이가 쥐를 괴롭히듯이 말이다.
회원들도 방 안을 보고는 창백한 표정을 지었다. 떨리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장님. 저희 도망가야 합니다.”
“도망…. 이러면 투자금이…. 아니야. 도망가는 게 맞아.”
돈도 살아 있어야 벌지. 말이 조사원이지 미친 살인귀한테 죽으면 의미가 없다.
“돌아간다!”
사내와 회원들은 서둘러 움직였다. 은신한 2조 또한 그들을 뒤따랐다. 우르르 기겁한 얼굴로 달려가는 사람들. 빗물을 복용하여 숭숭 빠지는 머리카락이 길에 흩날렸다.
그들은 마을 어귀에서 걸음을 멈췄다.
“어딜 그리 바쁘게 가시나?”
무당이 마을 사람들을 모아 마을 어귀를 막았다. 날카로운 눈빛과, 눈빛보다 더 날카로운 낫과 쇠스랑.
사내가 억지로 웃었다.
“그분이 안 보여서, 찾으려고-”
“어이하여 거짓을 말하는가? 사람 찾으러 가는 얼굴이 아니건만.”
“그건….”
무당이 훽, 부채를 펼쳤다. 부채에 그려진 삼도천의 신이 그들을 본다.
“약속을 이행할 때까지는 한 걸음도 못 나가니, 그리 알게.”
무당과 이연우가 만날 때까지, 그들은 마을에 갇혔다. 뚫을 수도 없다. 저들은 죽지 않으니까. 권총을 쏟아부어도 의미가 없다.
사내가 식은땀을 흘렸다.
‘갇혔다! 막혔어!’
결국 사내는 이를 악물고 몸을 돌렸다.
‘그래, 어디 해보자. 못 죽일 것도 없지.’
총 맞으면 똑같다. 숨어 있다고? 총알 한 발만 어떻게 맞추면 된다. 2조가 흔적을 찾아 쏠 것이다.
하지만 사내의 의욕은, 바로 사그라졌다.
머무는 집을 향해 돌아가는 길.
무언가 발에 차였고, 돌이 데구르르 굴렀다. 그제야 보이는 것은, 2조의 회원.
몸이 비뚜름하게 지워져, 반쪽만 남은 얼굴이 보인다. 차마 눈도 감지 못한 시체. 하나 남은 눈동자에 사내의 얼굴이 비쳤다.
충격과 공포로 얼룩진 얼굴과 목소리다.
“2조? 2조! 대답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공포에 질려 대놓고 모여서 후퇴하는 위험 요소들의 흔적을, 이연우는 놓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