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110)화 (110/194)

도시

그들은 집에 갇혔다. 마을 사람 몇이 집을 둘러싸고 그들을 감시했다.

넓은 방에 모인 그들은 손톱을 물어뜯고, 손을 떨고, 침만 꼴깍꼴깍 삼켰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어떤 회원이 피곤한 얼굴로 물었다. 식량은 사라졌다. 식수도 없다. 이 마을의 것을 먹기에는 불안한 점이 있었고.

거기에 살인마가 그들을 노리고 있다.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시간이 조금 지나 침착을 되찾으니, 언제나 회사를 두려워하던 영감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노인네 말이 맞았어. 내가 경험이 없던 거였어.’

우연히 이상異常을 접하고 클럽에 가입했다. 일반회원으로 적당히 살다가 우연히 버려진 이상도시를 발견해 대박을 터트리고, 고위회원으로 올라갔다.

그 후로 탐사를 이어갔지만 대부분 실패했고, 성공해도 안전한 도시만 발견해 큰 문제를 마주한 적이 없었다.

회사와 진짜 죽을 정도로 싸운 적도 없었고.

‘그래서 멍청하게 실수했어.’

겁에 질려 마구잡이로 도망치지 말았어야 했다. 2조를 그렇게 의미 없이 죽게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길을 막은 무당을 어떻게든 설득했어야 했다.

그리고.

‘애초에 상대를 우습게 보지만 않았어도.’

주먹이 꽉 쥐어졌다. 꽈악,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든다.

어수룩하고 어설픈 모습에 속았다. 아니, 새내기로 단정 짓고 보고 싶은 모습만 봤다. 그래서는 안 됐는데.

사내가 눈을 떴다. 사내의 눈이 결의를 품고 반짝였다. 아직 늦지 않았다.

사내는 단순한 목표를 세웠다.

“목표는 생존이다. 새벽에 도주한다. 도주 중 공격받으면 반격해. 총알 아끼지 말고 쏟아부어. 최대한 흩뿌리란 말이야. 눈먼 총알에 한 발이라도 맞으면 돼.”

회원들은 결의가 서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하나둘 바닥에 눕고, 벽에 등을 기댔다. 새벽에 힘을 쓰려면 지금부터 쉬어야 한다.

사내는 사람 둘을 가리켰다.

“너희가 먼저 불침번 서고, 2시간마다 교대한다. 그리고, 1조. 1조 들리나?”

- 여기는 1조.

“복귀 준비해. 경계 확실히 하고.”

- 예.

무전기를 내려놓자 어떤 회원이 묻는다.

“예. 그런데, 저 시체? 노인은 어떻게 합니까?”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미라 같이 마른 노인에게 향했다.

“죽여주시오…. 제발….”

이연우가 몰래 가져다 놓은 그것은, 무덤에서 데리고 온 것으로 추정되었다. 삼도천의 신에게 죽음을 바쳐 자연사조차 잃어버린 자들.

사내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냥 둬.”

저런 거에 신경 쓸 여유는 없다. 그 인간의 의도를 생각할 이유도 없고.

사내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피곤하고 불안한 마음에 잠은 오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잠에 들었다.

지폐 한 묶음과 라이터를 쥔 손이 늘어졌다.

….

“사장님. 일어나 보십쇼. 사장님!”

“어, 어!”

사내가 벌떡 일어섰다. 잠에 취해 흐린 시야. 얼른 고개를 흔들며, 지폐에 라이터를 들이밀었다. 바로 불을 붙일 준비를 마쳤다.

“습격이냐?”

“아뇨. 마을 분위기가 지금 좀 이상합니다.”

회원은 창호지 문을 슬쩍 가리켰다. 또한 다른 회원들도 잠에서 깨, 흔들리는 눈으로 바깥을 보았다.

횃불이 얼마나 모였는지 그들의 집까지도 환한 빛을 드리우는 바깥. 어렴풋이 고함이 들린다.

“죽여! 죽여!”

“그분께서 약속하셨다! 우리를 지옥에서 해방해 주실 것이다!”

사내는 자기 뺨을 찹찹 때려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문을 활짝 열어, 근처에서 그들을 감시하던 마을 사람을 툭 쳤다.

“무슨 일입니까?”

“잘 모르겠는-”

“어이! 김갑돌이! 빨리 나와! 저런 놈들 신경 쓸 때가 아니야!”

갑자기 대문이 활짝 열리며, 다른 마을 사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횃불 아래, 붉게 물든 얼굴은 희망과 열망으로 달아올랐다.

그 마을 사람은 횃불을 휙휙 휘두른다.

“그분께서 약속하셨어!”

“뭘, 뭘 말입니까?”

사내가 묻자, 마을 사람이 웃었다.

“우리를 이 수라도에서, 무간지옥에서 빼내 주겠다고! 우리가 짊어진 굴레를 벗게 해주겠다고! 그 첫걸음으로, 무당부터 벌하겠다고!”

지우개로 보여준 희망찬 미래. 더 이상 죽음을 바치지 않아도 되는 삶.

그와 동시에 와아아아, 외침이 파도가 되어 몰려왔다. 흔들리는 횃불의 무리가 우르르 이쪽으로 몰려온다.

사내의 눈이 커졌다.

담장 위로 고개를 내민 횃불과, 꼿꼿하게 솟아 위태롭게 흔들리는 깃대.

하얀 천과 붉은 천이 휘날리는 무당집의 깃대 끝에, 무당이 걸려 있다. 머리가 지워진 상태로, 사지를 꿈틀거리면서.

“미친.”

사내는 무심코 뒤로 물러섰다. 손발이 벌벌 떨렸다. 이연우가 몸을 감춘 지 하루가 채 안 지났다. 그런데, 마을 사람을 제 편으로 만들고, 무당을 죽였다.

이제 이 마을은 이연우의 손아귀로 들어갔다.

‘이건, 이건.’

사내가 마른침을 삼켰다.

상대는 돌을 쥐고 숨어서, 어둠 속에서 죽지 않는 마을 사람을 부리고 있다. 아니, 처음부터 그들이 공격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숨어서 독을 타고, 물자를 훔치고, 뒤에서 지우개를 휘두르고, 마을을 장악했다.

애초에 교전 자체가 성립하지 않게. 총을 쏠 기회 자체가 없게.

‘이게 새내기라고? 이게 경력이 1년도 안 되는 신입이라고?’

이건 차라리, 정보부의 정예요원이 아닌가? 

심장이 쿵 떨어졌다. 이제야 깨달았다. 상대가 안 된다. 어떻게든 총을 쏘아 맞히겠다는 희망은 시작부터 잘못된 망상에 불과하다.

“아.”

쩌적, 정신에 금이 가고,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세상이 흐려지고, 횃불이 빙글빙글 돈다.

유일한 희망이 사라진 사내는 입을 크게 벌리고 울부짖었다.

“도망쳐! 통로로 도망쳐!”

“안 된다네. 그분께서 자네들을 모조리 죽이라고 했어.”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처음 마을에 접근했을 때 그들을 맞이했던 노인은 뒷짐을 지고 고개를 까딱였다.

“죽여. 그래야 우리도 죽을 수 있어.”

사람들이 한 손에는 횃불을, 한 손에는 농기구를 들고 몰려들었다. 좁은 대문으로, 담장을 넘어, 뒷문으로.

그 섬뜩한 기세. 주기적으로 서로 죽고 죽이며 단련된 살육자들.

“도망쳐!”

탕- 탕-

클럽의 회원들은 메뚜기 떼처럼 흩어지며 총탄을 흩뿌렸지만, 사람들은 뚜벅뚜벅 걸어와 회원의 목에 낫을 박아넣었다.

붉은 횃불 아래, 횃불보다 붉은 피가 튄다. 비명이, 고함이 메아리친다.

‘안 돼, 안 돼. 죽을 수 없어.’

사내는 창백한 안색으로 손을 벌벌 떨며 지폐에 불을 붙였다. 5만 원 지폐 다발이 화르륵 불탄다.

‘빨리! 도망쳐야 해! 통로 앞으로 간다!’

시간을 사는 지폐가 효과를 발휘한다. 사내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런데도 노인은 담담했다.

“되었습니까?”

“예.”

이연우가 돌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자연스러운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연우는 깃대에 매달려 꿈틀거리는 무당을 노려보았다. 쯧, 혀를 찬다.

‘방해만 안 했어도 진작에 끝났는데.’

저놈들이 도망가야 통로를 여는 법을 알아낼 텐데, 무당이 그걸 막았다. 그래서 무당을 처리했다.

형광조끼가 횃불의 빛을 받아 반짝였다.

노인은 그런 이연우를 숭배하는 눈으로 보았다. 돌과 형광조끼의 효과가 이상한 방향으로 해석되었다.

‘이분은 삼도천의 신 따위보다 위대한 분이시다. 자연 만물에 깃들어 계시니, 세상 어디에서 모습을 드러내도 자연스러운 일이지.’

한편 이연우는 품에서 시간을 사는 지폐를 몇 장 꺼냈다. 물자를 훔치고 얻었다. 사내가 쓰는 걸 두 번이나 봤다. 대강 파악했다.

시간을 사는 지폐. 노동의 값만큼 돈을 지불하면, 노동이 딜레이 없이 완료되는 이상개체. 초능력처럼 쓸 수 있다.

“저 인간 쫓아가기.”

화르륵, 지폐가 불탄다. 이연우는 다시 돌을 쥐었고,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자리, 비명이 길게 이어지다가 끊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대충 총탄을 빼내고, 죽음을 바치기 시작했다.

***

헉, 흐억, 허어억!

거친 숨소리가 어두운 산길에 울린다. 사내는 땀을 흘리며,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네 발로 산길을 오르며, 홍살문을 향해 나아갔다.

‘포위망을 뚫는 일이었어. 돈이 부족했어.’

충분한 시간을 살만큼의 돈은 아니었다. 포위망은 뚫었지만, 산자락에 도착했다.

사내는 뒤에서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쉬지 않고 움직였고.

마침내 홍살문 앞에 도착했다.

“…1조? 1조!”

텅 빈 홍살문 앞에.

이곳을 지키던 1조가 없다. 바리케이드도, 텐트도, 물자도, 전부 없다.

사내는 마지막 지폐 몇 장을 꺼내 들며 침을 꿀꺽 삼켰다.

‘마지막으로 1조와 통신한 게, 잠들기 전? 잠깐 잠든 사이에 여기도 공격했다고? 마을을 자기 손에 넣고? 시간 순서는 어떻게 되지?’

아마 1조부터 처리하고, 마을에 내려와 마을 사람들을 움직였을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 이곳은 안전하다.

‘지금이야! 지금 도망쳐야 해!’

사내는 허겁지겁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놀이공원 자유이용권이나 영화관 티켓과 비슷하게 생긴 자그마한 종이.

한 번뿐이지만 문을 열 수 있는 종이를 앞세우며 홍살문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

스윽-

팔뚝이 지워졌다. 손바닥이, 이용권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 위로 핏물이 뿌려졌다. 사내는 멍한 얼굴로 손바닥을 내려보았다.

“아?”

“그게 통로를 여는 이상개체입니까?”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귀 바로 옆에서. 숨결이 목을 스쳤다.

저벅저벅, 이연우가 그의 옆에서 앞으로 나아갔다. 몸을 숙여, 바닥에 떨어진 이용권을 줍는다. 돌을 쥔 손으로 이용권을 붙잡았다.

이연우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용권은 한때 그가 열심히 만들려고 노력했던 뽑기 확정권과 비슷하게 생겼다.

‘미래의 나는 이걸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나?’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도, 전부 그가 원하지 않는 것만 나오기에 포기했지만, 이렇게 보니 느낌이 묘하다.

‘아마, 주사위가 확정된 결과를 싫어해서 확정 뽑기권은 무조건 실패하는 느낌인데.’

이연우는 힐끔 사내를 보았다. 사내는 정신 나간 얼굴로, 머리를 쾅쾅 쳤다.

“정신 차려, 정신 차려!”

인식 왜곡이다. 길가의 돌이 말을 할 리가 없다. 이건 돌멩이의 효과다.

물론 자연스럽지만, 이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회사의 형광조끼다. 그들을 괴롭히던 회사의 조사원이 지금 이때 이렇게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퍽, 눈동자의 핏줄이 터지며 피가 줄줄 흘렀다. 이제 와서야 사내는 이연우를 똑바로 보았다.

짐승 같은 울부짖음이 산에 울린다.

“왜!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건데!”

이렇게 소리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적은 지우개까지 들었다. 그렇기에 울분을 전부 쏟아냈다.

이연우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돌과 함께 쥔 이용권이 팔랑인다.

“통로 여는 법을 알아내려고.”

“고작, 고작 그것 때문에 이 지랄을 했다고? 이, 이, 미친 새-”

스윽-

다른 손에 쥔 지우개가 짧은 궤적을 그렸다. 사내의 머리만 깔끔하게 지워졌다.

이연우는 사내를 물끄러미 내려봤다.

“말이 심하네. 이게 제일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인데.”

머리가 날아간 사내의 몸통이 휘청이다가 뒤로 넘어진다. 이연우는 시선을 돌려, 오색 천이 달린 나무를 보았다.

무덤에서 내려온 후로 쉬지 않고 움직였기에, 클럽에서 번역한 내용도 확인했다. 삼도천의 신과 죽지 않는 나무.

이연우는 고민하다가, 돌을 에코백에 넣고, 형광조끼 또한 벗은 후, 나무에 손을 얹었다.

“여기 있습니까? 이게 죽지 않는 나무입니까?”

- 맞소. 이곳에 있소. 영원한 죽음을 휘두르는 악귀, 아니, 도사여. 부디 미천한 몸의 소원을 들어주시오.

마을 사람의 눈을 통해 전부 본 악귀는 공포에 질린 정신파로 말한다. 이연우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내가 왜?”

- …어, 그게.

악귀가 말을 잃었다. 마을 사람은 이미 저 무시무시한 인간의 손에 들어갔고, 위협을 하자니 봉인 채로 지워지게 생겼다.

결국 악귀는 인정에 호소했다.

- 이 나무에 깃들어 고통받은 세월이 몇백 년이오. 어려운 부탁도 아니오. 그저 벽을 죽여, 이곳을 저승으로 돌려보내 주기만 하면-

스윽-

지우개가 나무의 가지를 스친다. 그물 같은 나뭇가지의 중앙에 구멍이 뚫렸고, 악귀의 입이 다물렸다.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뒤처리가 많이 남았다. 물론 회사가 할 일이다. 아마, 악귀는 회사의 쓸만한 이상개체로 사용될 것이다.

이연우는 이용권을 홍살문을 향해 휘둘렀고, 통로가 열렸다. 그는 가벼운 걸음으로 본래 세상으로 돌아갔다.

‘살았다. 어휴. 진짜 다시는 이런 일은 안 해야지. 고립된 공간에 가지 말고, 적대집단이랑 일하지도 말고.’

까딱 잘못했으면 아무 것도 모르고 공격 받아 죽을 뻔했지 않나. 이연우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닭살이 돋았다.

‘세상이 너무 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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