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112)화 (112/194)

상담

1차장과 참모부장, 기획실장이 회의하는 방.

반격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기에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편안하게 등을 기대 늘어지고, 입가에 미소가 걸리고,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1차장이 서류를 뒤적이다가 씩 웃었다.

“유령이 갤러리 세 곳의 이상개체를 모두 훔쳐, 아니, 압수했습니다. 또한 공권력을 빌려 클럽의 자산 몇 가지도 법적 조치를 취했고요. 그놈들, 당장 회의할 펜트하우스도 없습니다.”

“그 조사원은 사업체 하나를 그대로 날려버렸고. 난 이게 제일 마음에 들어!”

참모부장이 껄껄 웃자, 1차장은 그를 흘겨봤다.

“특전대는 한 일 없는데? 왜 당신이 좋아합니까?”

“에헤이. 우리는 피 흘릴 일을 하는 사람들이고. 이런 일은 당신네들이 해야지.”

참모부장은 흐뭇하게 웃다가, 문득 기획실장의 눈치를 살폈다.

기획실장은 어떤 서류 하나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문득 고개를 들고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마냥 성공만 한 게 아니다.

“다 좋은데…. 그 조사원, 이제 일 못 시킵니다. 지우개를 포기해서, 뭐 어떻게 일을 시킬 구실이 없어요.”

“현금이든, 이상개체든 보상만 넉넉하게 주면 되지 않습니까?”

“아마 안 될 겁니다.”

이연우의 정보가 나열된 화면이 모니터에 떠오른다. 그중 심리 추측과 본사의 보상 부분으로 옮겨간다.

“위험 자체를 피하는 성격으로 추정되고, 부족한 것도, 원하는 것도 없습니다.”

돈은 본사에서 부족함 없이 챙겨줬고, 이상개체도 주사위로 전부 대체할 수 있다.

그렇다고 강압적으로 뭔가를 해보자니….

“잘못 건드리면 터집니다. 일이 잘못 풀리면 손해 규모가 얼마나 클지 예상이 안 갑니다.”

“조사원도 우리만큼 목숨 내놓고 일하는 친구들인데, 헛짓거리하면 큰일 나지.”

참모부장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목숨이 위험하지 않은 임무가 거의 없다. 당장 내일 살아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 사람들인데, 부조리를 참을 리가. 차라리 보복을 하고 말지.

그들도 아래에서부터 기어 올라온 회사원인 만큼 이런저런 꼴을 많이 보았다.

마음에 안 드는 상사의 머리에 총을 쏘거나, 조끼를 입고 지갑을 훔치거나, 커피에 기억소거제를 타서 준다거나, 컴퓨터나 핸드폰에 테이저 건을 쏘거나.

나쁜 기억이 떠오른 그들은 잠깐 입을 다물고, 이연우의 정보를 훑어보았다.

“아. 그래도 놀리기에는 아쉬운데. 이 정도면 정예요원 아닙니까? 이만큼 유능한 인력이면 일 잔뜩 맡기고 싶은데.”

“본사에서 괜히 데려갔겠습니까.”

“본사 새끼들. 유능해 보인다고 다 침 발라놓으면 우리는 어쩌라는 건지, 원.”

“그래도 움직일 방법이 있을 텐데.”

투덜투덜대며 서류를 뒤적이기를 잠시.

1차장이 문득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정보가 왜 이렇게 부실하지?”

회사원의 정보치고는 너무 얄팍하다. 이연우의 실적과 경력 몇 줄, 지닌 이상개체 몇 줄, 심리 추측 몇 줄이 끝.

단순한 회사원이더라도 이렇게 짧을 수가 없다. 특별관리 대상이라면 프로파일러가 달라붙어 심리분석을 잔뜩 썼어야 한다.

기획실장은 헛웃음을 흘렸다.

“건강검진도 아직 안 받은 신입인데 어쩝니까.”

주기적으로 진행하는 건강검진에는 심리상담도 포함되어 있다. 워낙 험한 꼴을 많이 보는 회사원이니, 멘탈을 관리하기 위함이다.

이연우는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은 신입이라 그 심리상담을 받지 않았다.

“아니, 그래도 지금까지 올린 보고서랑 행적만 분석해도….”

“어차피 곧 건강검진 아닙니까. 그때 심리상담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해도 늦지 않습니다.”

1차장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보니까 회사의 업무에는 충실한 편인 직원이니까. 급한 문제는 아니다.

기획실장이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어쨌든 다른 집단 건드리는 건 여기서 마무리합시다. 그쪽에서 공격할지 모르니까 경계 유지하고, 이연우 특수조사원은….”

잠깐 말을 멈춘 기획실장이 달력을 힐끗 본다. 한 달 동안 전 직원을 대상으로 천천히 건강검진이 진행된다.

“기획실에서 맡겠습니다. 심리 분석 끝나면 협상해보죠.”

사람이면 욕망이 있고, 그 욕망을 만족시키는 대가로 일을 맡길 수 있다. 단순한 돈, 안전, 소속감, 인정, 자아실현, 무엇이든 간에.

기획실장은 나름대로 자신감을 가졌다.

***

“반장님, 지유 선배. 선물입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 탐사가 마무리되고, 이연우 또한 보고서를 전부 쓴 날이다.

마을 사람들은 좁은 공간에서 나와 회사와 계약해 새로운 전투부대가 되었고, 회사는 그들이 원하는 때 죽여주기로 약속한 날.

이연우는 에코백에서 지폐 다발 몇 개를 꺼내, 반장과 유지유에게 나눠주었다. 사람마다 5만 원 10장과 1만 원 50장. 두 사람은 일단 돈을 받고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돈을 이렇게 준다고?

유지유가 퍼뜩 무언가를 알아차린 눈으로 이연우를 보았다. 경악으로 입이 벌어진다.

“주사위 썼죠? 복권 당첨에 썼죠! 연우 씨가 그런 일에 쓸 줄은 몰랐는데!”

“예? 아니, 아니.”

“연우야. 이건 좀 아니지 않냐. 뇌물을 이렇게 대놓고 주면 감사과한테 걸린다. 나는 그 뭐야, 코인으로 줘라.”

반장은 장난기 어린 눈으로 맞장구를 쳤다. 이게 뭔지 눈치를 챘지만, 이 막내를 놀릴 기회가 그렇게 자주 오지는 않는다.

“아니, 이게.”

이연우는 손으로 허공을 휘젓다가, 문득 고개를 끄덕였다. 돈다발을 향하는 손.

“조금 그렇죠? 도로 가져가겠습니다.”

“늦었어요!”

유지유가 돈을 훽 뒤로 숨겼고, 반장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지폐를 세었다. 백만 원. 백만 원어치 시간을 살 수 있다.

“이만하면 잘 쓰겠네. 탐사에서 얻은 거냐?”

“예. 꽤 많이 얻었습니다.”

그쯤에서 유지유도 알아챘다.

“이거 이상개체에요?”

“클럽 놈들이 쓰는 건데. 돈 별로 못 버는 놈들이 쓴다. 아니면 돈이 남아도는 인간이 쓰거나.”

대부분은 금괴를 쓰지, 애매한 지폐는 잘 쓰지 않는다.

시간을 산다고는 하지만, 사용자의 몸값에 따라 지불하는 돈이 달라지고, 사용자에게 불가능한 일은 일어나지도 않는다.

간단하게 설명한 이연우는 직접 시범을 보였다.

만 원 한 장을 꺼내, 토치로 불을 붙인다. 지폐는 연기도 없이 타올랐고, 이연우는 쓰레기통을 보았다.

“쓰레기통 비우기.”

지폐가 완전히 타서 사라지기 무섭게 쓰레기 봉지가 사라졌다. 아마 잘 묶여서 밖으로 나갔을 것이다.

유지유는 입을 헤 벌렸다가, 지폐 몇 장을 뽑아 신중하게 지갑에 넣고, 옷 주머니에 넣고, 휴대폰 케이스에 넣고, 신발 바닥에 끼워 넣었다. 비상시를 위해 비축한다.

그리고는 이연우의 토치를 가만히 보았다.

“이거 꼭 불붙여야 해요?”

“아마도요? 저도 정확히는 몰라서….”

“어. 불로 태워야 한다.”

반장이 답하자, 유지유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라이터 사야겠네요. 그래도 잘 쓸게요!”

“좋은 물건은 아닙니다. 진짜 위급할 때 쓰기는 조금 애매합니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쓰기는 단점이 보인다. 지폐를 꺼내고, 불을 붙이고, 또 다 탈 때까지 기다리고. 뭐랄까, 손이 많이 간다.

유지유는 대수롭지 않게 지폐 다발을 쓰다듬다가, 문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없는 것보다는 낫죠. …잠깐만요. 클럽이라고요? 걔네는 연우 씨한테 무슨 죄를 저질렀길래 맨날 털려요?”

“저 죽이려고 하던데요. 그래서 탈출하는 김에 겸사겸사 이것저것 챙겼습니다. 아, 쌀이랑 생수도 있습니다.”

이연우는 에코백을 활짝 펼쳐, 물자를 하나둘 꺼내기 시작했다.

생수, 쌀, 라면, 김치, 과일, 술, 조미료, 발전기, 컴퓨터, 접이식 바리케이드, 텐트, 담요, 가스버너, 드론, 권총, 총알….

손이 바쁘게 움직이는데도 끝도 없이 쏟아지는 물자 앞에서, 반장과 유지유는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이연우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목숨 걸고 싸워서 얻은 전리품 아닌가.

반장이 손을 내저었다.

“그만, 그만. 연우야, 그만 꺼내라. 네 집에다가 풀어. 그걸 다 여기에 어떻게 두냐.”

“아, 그게.”

이연우는 볼을 긁적였다. 민망한 기색이 얼굴에 드러난다.

“저 쉘터 날아갔지 않습니까. 그래서 집 구할 때까지 여기서 머물려고 합니다. 그, 문제가 될까요?”

“문제는 없는데….”

반장이 슬그머니 눈을 피했다.

이연우가 머무는 건물이 멀쩡할까? 원룸 건물 지워졌고, 쉘터도 지워졌다. 기껏 새로 단장한 사무실에 문제가 생기면….

반장은 푹 한숨을 내쉬었다. 건물이 중요한가. 사람이 중요하지. 그리고 시간을 사는 지폐까지 받았는데.

“그래. 저쪽에 빈방 있으니까 쓰던가.”

이연우가 활짝 웃으며 다시 에코백에 전부 집어넣고는, 작은 방에 들어가 침낭이며 가스버너를 꺼냈다.

그렇게 대강 사람 사는 방으로 바꿔놓고 돌아가니, 반장과 유지유는 모니터를 보며 뭐라 뭐라 대화하고 있었다.

“염병. 건강검진은 뭔. 귀찮기만 한데.”

“그래도 받는 게 낫죠. 무료잖아요.”

“귀찮다.”

이연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정 생겼습니까?”

“어. 건강검진 시즌 왔어.”

이연우의 표정이 굳는다. 회사의 검사? 솔직히 좋은 기억도 없고,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지도 않다.

검사를 피하려다가 거인의 세계로 날아갔고, 지금은 빗물을 소화해 체질이 바뀌었다. 혈액검사에서 이걸 들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 봐도 눈에 선하다.

‘연구원들이 내 피를 탐낼 텐데.’

이연우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필수입니까?”

“심리상담은 필수야. 신체검사는 빼도 된다.”

“아. 다행입니다.”

이연우는 한결 안심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회사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받고 싶은 검사를 체크하라길래 필수 선택인 심리상담만 체크하고, 날짜와 장소를 확인한다.

‘날짜는 내일모레고. 심리상담소는 여기서 가까운 곳에 배정됐고.’

그리고, 시간이 지나 상담받는 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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