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이연우는 조금 이르게 상담소로 갔다. 귀찮은 일이니, 차라리 빨리 해치우자는 마음.
‘상담소가…. 여긴가?’
도시 한가운데 위치한 낡은 건물. 이연우가 올려보니, 창문이며 입구에 이상한 문자가 쓰여 있다.
- 예수 기 치료! 절름발이와 맹인도 기 치료 한 번에 회복 끝! 기적을 당신도 체험하세요!
- 예수님의 내공심법을 익힌 전문가가….
“이건 뭔….”
이연우의 목소리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딱 봐도 사이비 아닌가. 들어가기 싫어지다 못해, 당장 발을 돌리고 싶다.
이연우는 핸드폰으로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한 후, 애써 마음을 다스렸다.
‘회사 건물이잖아. 일반인 못 오게 일부러 저러는 거겠지.’
합리화가 끝나도 의심은 멈출 수 없다. 이연우는 느릿하게 걸음을 옮겨 건물로 들어갔다. 눈을 크게 뜨고 시야를 넓게 둔 채로.
어떻게 상담소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상담소 같은 인테리어가 보인다.
온화한 조명과 편안한 색감. 푹신푹신한 쿠션은 물론이고, 따듯한 냄새까지 전체적으로 마음이 놓이는 느낌이다.
‘상담소 맞네. …외관에는 왜 저런 짓을.’
이연우는 안심하며 에코백을 느슨하게 걸쳤다.
진료 시간인 9시보다 30분이나 일찍 왔기에, 데스크에도 사람이 없다. 앉아서 쉬려고, 구석 자리로 가서 앉는다.
대충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회사원을 대상으로 한 팜플렛 몇 개가 보였다. 이상소유자진신고, 이적행위처벌, 자살 상담, 회사원을 위한 사망 보험 등….
‘보험? 나도 들어둘까?’
의료지원이 기본 혜택이고 빗물이 있어 딱히 병원비 문제는 없긴 한데, 사망 보험은….
이연우는 가만히 보험을 살펴보다가, 기분이 나빠져 휙 팜플렛을 돌려놓았다. 괜히 불길한 느낌이다. 애초에 죽지 않을 건데, 죽음을 염두에 둔다는 점에서 특히.
차라리 핸드폰이나 자동차 쪽으로 들어두는 게 낫지. 펑펑 터져나가니까.
그 순간이었다.
이연우의 움직임이 멈췄다. 시선이 느껴졌다. 바로 옆에서.
‘뭐지? 뭐가 날 보고 있는 거지?’
식은땀이 흐른다. 이연우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에코백에 손을 넣으며, 눈동자만 옆으로 굴렸다.
그곳에는 사람 하나가 있었다. 이상할 건 없었다. 건강검진 시즌에 심리상담 받을 회사원이 있는 건 당연하다.
이연우의 눈이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움직이려다가 멈췄다. 시선의 근원은 그 사람이다. 이렇게 넘어가는 건 이상한 일이다.
이마가 뜨거워질 정도로 머리를 굴리기를 잠시.
“…악! 당신 뭐야!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이연우가 펄쩍 뛰어오르며 권총을 꺼내 겨눴다.
그러자 상대는, 어딘가 유지유를 닮은 느낌의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적의는 없고, 호기심과 반가움이 반짝이는 눈.
“제가 보여요…?”
이연우는 당황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총구가 흔들렸다.
‘이건 또 뭐야.’
***
그들은 잠깐 대화를 나눴고, 이연우는 상황을 파악했다.
권총을 도로 에코백에 넣고 근처에 앉아, 얼굴을 붉혔다. 민망하다.
“정보부의 유령이시고, 지유 선배의 언니시라고요? 죄송합니다. 제가 깜짝 놀라서 총부터 꺼냈습니다. 무슨 진짜 귀신 같은 건 줄 알고.”
“그럴 수도 있죠. 제가 존재감이 없어서….”
상대는 유지유의 언니였다. 또한 자연스러운 형광조끼와 한 몸이 된 정예요원이었고.
나름대로 장악 관련해서 정보를 찾을 때 보았던 이름. 정보부의 유령. 과연 그 이름이 아깝지 않다.
이연우는 계속해서 왜곡되려는 인식을 혀를 깨물어가며 되돌렸다. 상대는 조끼를 입고 있지 않은데도, 계속해서 인식에서 벗어났다.
유령 또한 신기한 얼굴로 이연우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지유한테 가끔 이야기 들었어요. 조금 이상한 신입이 들어왔다고. 후배 같지 않다고 투덜거리던데….”
유령이 작게 웃는다. 그 소리조차 바람 소리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집중하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수준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가 되는 수준.
“진짜였네요. 조끼 없어도 저 인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그게, 음. 쉽지 않네요. 일상생활 가능하십니까?”
이연우는 피를 삼켰다. 하도 물어뜯어서 피까지 났다. 조끼 없이도 이 정도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 보인다.
식당이나 편의점은 그렇다 쳐도, 길도 함부로 못 건널 것 같다. 횡단보도를 건너도 신호 위반하는 차가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치고 지나갈지도 모른다.
유령은 체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죠. 살다 보니까 다 방법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나름대로 재미도 있어요.”
몰래 기밀정보 훔쳐보고, 고위직원의 회의 훔쳐 듣고, 즐거운 일도 많다는 말이 이어진다.
이연우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가, 얼른 표정을 바꿨다.
‘형광조끼와 한 몸이 된 사람이야. 조언을 들을 수 있어.’
장악의 정보를 얻어도 명확한 무언가는 없었는데, 바로 앞에 이상개체와 한 몸이 된 사람이 있다.
이연우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한 몸이 되는 것에 대해 상담할 기회다.
“혹시 장악에 대해 알려줄 수 있습니까? 저도 이상개체 몇 개 쓰는데-”
“장악이요? 그거 장악 아닌데.”
“예?”
유령이 몸을 웅크렸다. 안 그래도 흐린 존재감이 진짜 유령처럼 옅어진다. 우울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오염이에요. 감염이고 전염이고요.”
불길한 어감. 이연우의 눈이 크게 떠졌다. 감각이 곤두서며 증발할 듯한 유령을 정확히 붙잡았다.
시야가 좁아져 유령이 크게 확대되고, 귀가 쫑긋 서 유령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울렸다.
“멀쩡한 사람 이상異常으로 만드는 거잖아요. 회사에서 사람들이 오해하고 잘못 이해하게 만들려고 일부러 장악이란 단어를 붙인 거예요.”
순간 어지럽다.
하지만 두뇌는 멀쩡하게 움직이며, 생각을 이어갔다. 논리와 경험이 떠올랐다. 빠르게 증거와 결론을 내렸다.
‘…맞아. 사람이면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만들잖아.’
당장 미래 이연우만 해도, 실타래로 이루어진 그게 사람인가? 사람인 척하는 이상개체지.
또한 머리가 빠지는 비를 예견하던 무당 가문도 그렇다. 비의 형태를 가진 이상현상과 한 몸이 된 인간이면 언제 내릴지 알 수도 있다. 그 이상성은 피를 타고 내려왔을 테고.
이연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건 작지 않은 문제다.
유령은 이연우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과 직접 대화하는 게 오랜만이라, 침울했다가도 대화 자체에 신나서 말을 막 뱉었다.
“회사는 이거 별로 안 좋아해요. 안 그래도 막 튀어나오는 이상異常이 증식하는 거라고. 제가 예시 몇 개를 봤거든요. 회사에서 숨긴 건데.”
이연우는 그 말에 멍하니 귀를 기울였다.
“건물이나 지역 형태의 이상개체가 있거든요. 그거랑 하나 된 인간들은 완전히 이상異常이더라고요.”
사람을 습격해서 잡아먹고, 동료로 만들겠다고 감염시키고, 영역을 넓히기 위해 움직이고.
이연우는 순간 눈을 감았다가, 떴다. 몇 개의 문제점이, 어쩌면 목숨을 위협하는 문제가 순식간에 떠올랐다.
‘이상개체와 한 몸이 되는, 그 비율이 문제야.’
어떻게 균형을 유지해 반씩 섞이는 정도는 괜찮다. 미래 이연우가 그 느낌이었으니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한 몸이 되었는데, 이상개체가 90퍼센트고 사람이 10퍼센트면? 그보다 더 극단적이라면? 사람은 향만 나는 수준이라면?
“오염…. 이상개체로 변이된 거군요.”
조금 오염되면 감각이 변이한다. 더 많이 오염되면 능력의 한계를 넘는다. 지우개를 든 멸망주의자나 미래의 이연우처럼.
그리고, 거기서 더 오염된다면. 유령이 말한 경우처럼 이상異常의 일부로 변할 것이다.
“회사에서 두 개를 권장하는 이유가 그거였습니까.”
완전히 한 몸이 되지 못하게. 이이제이처럼, 오염끼리 충돌시키기 위해.
‘아니, 잠깐.’
이연우는 문득 의문을 떠올렸다. 말이 안 된다.
“그러면 차라리 이상장비로 도배하면 되지 않습니까? 세 개부터는 감각의 과부하가 일어난다고 들었-”
“아니에요. 오염이 그런 거 가리겠어요? 물감 섞이듯 까맣게 섞이지. 청산가리 먹고, 그라목손 마시고, 복어 독 삼키면 몇 개를 먹든 똑같이 시체 되잖아요. 2개나 3개나 차이 없어요.”
유령이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2개까지는 오염돼도 어떻게든 인간 언저리로 판단해서 그래요. 3개부터는 완전히 인간이 아니고요.”
이연우는 어렴풋이 감을 잡았다.
‘2개의 오염까지는 환자로 판단하는 거야. 감염을 치료하고 고칠 수 있는 환자로.’
하지만 3개의 오염부터는 가차 없이 이상개체로 보는 것이다. 그러니 은근히 막는 것이다.
“특전대 보면 이 악물고 과학기술만 쓰는 부대 많잖아요. 써도 한두 개만 쓰고요. 다 증식을 막으려고 그러는 거예요.”
유령이 우다다 말을 뱉을 때였다.
안쪽 상담실에서 온화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담 시작할게요. 순서대로 들어오세요.”
“아….”
유령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의 대화라 그런지 매년 받던 상담보다 즐거웠다. 상담도 태블릿으로 대화하니까.
잠시 손발을 꼼지락거리던 유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품에서 태블릿을 꺼내고는, 손을 휘젓는다.
“저 먼저 상담 받을 게요.”
“아, 예.”
이연우는 갑작스러운 정보 때문에 혼란에 빠져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민할 뿐.
***
유령의 상담이 진행되는 동안, 이연우는 정보를 차근차근 정리했다.
‘탐사 끝내고 본 직원은 몇몇 이상개체는 오래 쓰다 보면 한 몸이 된다고 했어.’
그 몇몇 이상개체는 아마 사람을 오염시키는 이상개체일 것이다. 형광조끼, 지우개, 주사위처럼.
이연우는 무거운 눈으로 주사위를 보다가, 눈을 감았다.
‘내가 이상개체로 변하는 것 자체는 괜찮아.’
물론 회사는 사람이 아니라 이상異常으로 보겠지만, 회사라고 무조건 이상개체를 파괴하지는 않는다.
적대수준을 따져, 손을 잡기도 하고 회사 소속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이상개체로 변하는 거지, 이상개체에 잠식당하는 건 아니야.’
이상異常의 0.0001퍼센트가 나라면, 그건 죽음이랑 다를 게 없지 않나. 자의식도, 자유의지도 없는 삶이다.
이연우는 어두운 안색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신경써야 해.’
주사위는 떼어 놓을 수도 없으니 계속 오염되는 중이다. 방사능에 계속 피폭되는-
'아냐. 이거 문제없는데?'
어느 지점에 생각이 닿았다. 이연우의 표정이 밝아졌다. 적어도 주사위는 오염 문제에서 자유롭다.
'심각할 정도로 오염되기 전에 결과 조작이 먼저 되는데? 자가 치료가 되는데?'
이연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쿠션에 몸을 기댔다. 상담만 대충 마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