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상담은 시간이 걸린다. 유령이 상담받는 동안 이연우는 고민을 끝냈고, 쓸데없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 무덤에서 요람까지, 당신의 사후를 책임지는 보험회사-
“안 사요. 보험 이미 가입했어요. 아니, 내 번호는 어디서 유출된 거야.”
광고 전화를 받고 투덜거리기도 하고.
- 통장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계좌 정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자동으로 문제가 해결됩니다. (출금 중… 25% 완료)
바이러스에 핸드폰이 감염되기도 했다. 푸른 배경에 밉살맞은 이모티콘이 웃고 있는 화면을 가만히 보기를 잠시.
“어? 어? 뭐야? 왜 이래?”
띠링-
정신을 차린 이연우가 핸드폰을 마구 두드릴 때는 이미 출금이 완료된 뒤였다.
바이러스는 사라졌고, 은행 하나에 넣어둔 돈도 사라졌다. 텅 빈 은행 어플 화면을 멍하니 보기를 잠시.
이연우가 손가락을 벌벌 떨며, 핸드폰을 마구 눌렀다. 여러 번 손가락이 미끄러지고, 마침내 거래 내역으로 들어간다.
- (주)골드버그 클럽 -1,000,000,000
“어….”
이상기후를 해결하고 받은 돈. 다른 은행 몇 곳에 예금한 돈은 멀쩡하지만, 평소 쓰는 통장에 넣어둔 10억이 사라졌다. 누군지도 모를 클럽 회원의 손에 들어갔다.
“골드버그 클럽!”
이가 빠득 갈리는 소리가 났다. 이연우의 눈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10억이다. 물론 남은 돈이 훨씬 많지만, 결코 넉넉한 돈은 아니었다.
펑펑 터져나가는 집만 몇 번 바꿔도 사라질 돈인데. 마음 편하게 넘어갈 수 없다.
‘아무리 내가 그쪽 물건 뺏은 적은 있었어도, 10억은 아니지. 두고봐. 안전한 기회만 생기면 네놈들 자산을 훔쳐줄게.’
골드버그 클럽이 본의 아니게 이연우의 목표가 되는 순간.
뒤늦게 회사의 알림이 울렸다.
- 골드버그 클럽이 바이러스 형 이상異常을 회사원 대상으로 유포하고 있습니다. 사우 여러분은 유의해 주십시오. 기초보안절차는 다음 링크를 확인하십시오. (정보부)
- 현재 골드버그 클럽과 자유예술가협회의 동시다발적인 공격이 확인되었습니다. 바깥에 계신 사원 여러분은 바로 부서로 복귀하십시오.
또한 현장에 계신 정예요원 여러분은 그 자리에서 대응 바랍니다. (인류보호회사 한국지사)
- 멸망주의자와 악마숭배자의 추가적인 공격이 예상됨. 전쟁 준비 태세 3단계 발령. (특전대 본부)
연달아 울리는 알림.
전초전이 본격적인 전투로 발전되는 양상이었으나, 이연우의 눈에는 텅 빈 통장만 보였다.
허망함과 분노가 섞인 눈동자.
- 안녕하세요!
그 순간 이연우의 눈이 창문 바깥을 향했다. 언젠가 들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저는 서울의 레오나르도, 레오나르도 다 서울입니다! 굉장히 오랜만에 공연을 하는데요!
이연우는 벌떡 일어나, 쿵쿵, 발망치를 찍어가며 창가로 나아갔다. 커튼을 옆으로 밀어내니, 무슨 선거 홍보 트럭 같은 것에 탄 레오나르도 다 서울이 보였다.
사람의 정신을 황홀경으로 이끄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 연수 당시 보았고, 잡혔던 예술가가 마이크를 잡고 뭐라 말하고 있다.
- 세상에 다시 나온 이후 첫 공연이라 정말 떨리네요. 그러면 바로 첫 곡!
스피커에서 터져 나오는 전주.
순간 이연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연수 막바지에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피가 빠져나간 사람처럼, 감정이 모조리 빠져나가며 머리가 냉정을 되찾았다.
둔하게 잠들었던 머리가, 지능이 깨어났다.
‘잠깐만. 전쟁? 지금 상황이. …아. 돈이 중요한 게 아닌데.’
일단 저 예술가의 노래부터 막아야 한다.
도로의 운전자가 운전을 못 해서 연쇄추돌사고를 일으킬 것이고, 무엇보다 이연우를 방심 상태로 만들 것이다.
드륵-
이연우가 창문을 조금만 열었다. 권총의 부리가 나갈 수 있을 정도로만 좁게.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손등을 스치고, 거무튀튀한 총구가 커튼 틈새로 고개를 내밀었다.
레오나르도의 입이 벌어지는 순간, 이연우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긴다.
탕!
도심에 울리는 총성.
총탄이 아스팔트 도로를 긁었다. 삐이익, 스피커가 비명을 내지르고, 우악, 가다듬은 목에서 거친 외침이 터졌다.
- 뭐야!
레오나르도가 기겁을 하며 웅크려 머리를 훽훽 돌렸다. 하지만 어디서 누가 쐈는지 찾을 수 없다. 그는 트럭 바닥에 그려진 그림을 향해 냅다 몸을 던졌다.
- 회사가 벌써 쫓아왔다고? 어떻게 나왔는데 또 잡힐 수는 없지.
일회용 문을 통해 갤러리로 탈출한다. 길거리에는 트럭과 영문 모르는 트럭 기사만 남았다.
이연우는 그 탈출을 가만히 보았다. 여기서 굳이 죽일 생각은 없다. 그럴 사격 실력이 없다.
그보다는 지금 상황이 문제다.
‘갑자기 전쟁이라고? 이렇게까지 상황이 안 좋아진다고?’
뒤에서 벌컥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유령과 상담 선생님이다. 총성을 듣고 놀라서 나왔다.
“상황이 왜 이렇게 됐지….”
유령이 가방에서 꼭꼭 접은 형광조끼를 꺼내며 중얼거렸다.
“왜 회사에 반항하지…. 본사는 전쟁 일으킬까 고민하는 거 같은데. 눈치가 없나.”
“저, 선배님. 혹시 지금 상황이-”
“전쟁 준비하세요. 조사원이면 딱히 할 일 없는데, 당신은 그냥 조사원이 아니잖아요. 아마 이런저런 작전에 투입될걸요?”
그걸로 끝이다. 휘릭, 유령이 형광조끼를 입었다. 그리고 인식에서 사라졌다.
이연우가 눈을 크게 떴다. 으직, 혀를 씹어가며 감각을 일깨워도 보이지 않는다. 들리지 않는다. 뒤늦게 문이 닫히고서야 문에 달린 방울이 짤랑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예 눈치를 챌 수가 없다고?’
투명인간 수준이 아니다. 문이 열리는 것도 몰랐다. 유령이 나간 뒤에야 깨달았지. 단어 그대로 유령이다.
이연우는 식은땀을 흘렸다. 권총을 쥔 손바닥이 끈적하다.
‘만약에 저런 게 나를 공격하면. 나는 어떻게 대응하지?’
위험 앞에서 발버둥 칠 자신은 있지만, 위험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모른 채로 총을 맞는다면.
이연우의 눈이 가라앉았다.
‘감각 강화가 필요해. 인지 강화나.’
그때였다.
온화한 인상의 상담사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이연우를 보았다.
“상담받으시나요?”
“…일단 반장님께 연락해보겠습니다.”
이연우는 핸드폰을 툭툭 두드렸다. 통화는 바로 연결됐다.
- 어. 왜.
“반장님. 바로 복귀하면 되겠습니까?”
- 상담은 받았냐?
“아뇨.”
반장이 머리를 벅벅 긁는 소리가 들린다.
- 그럼 상담받고 와. 진짜 전투 크게 일어나면 조사원은 할 일 없다. 차라리 네 정신 관리부터 마치자.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 서울이 공연하려고 하길래 쫓아냈습니다.”
- 어? 방금? 어, 어, 그래. 잘했다. 아무튼 이따가 보자.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반장은 통화를 끊었다. 이연우가 상담사를 보았다.
“상담 바로 받겠습니다.”
“그럼 안으로 들어오세요.”
***
상담실은 전체적으로 녹빛이라 마음이 편하게 놓이는 분위기였다. 향기도 자연의 냄새고, 은은한 노랫소리도 좋다. 이연우가 푹신한 의자에 앉아, 에코백을 무릎 위에 놓았다.
상담사는 진료 차트 같은 종이와 볼펜을 들고는 몇 장 들춰보더니 이연우를 슬쩍 살폈다.
이연우는 바쁘게 눈을 굴리며 상담실을 뜯어보고 있었다. 꼭 폭탄을 찾듯이. 실제로 비슷한 심정이었다.
‘회사의 상담이야. 단순한 상담일까?’
무슨 이상개체를 쓰지 않을까? 자백제나, 최면이나, 진실 판별이나, 정신 조작이나.
코를 찡긋거리며 냄새를 의심하고, 인테리어를 뚫어져라 노려보며 이상개체일까 의심하고, 은은한 노랫소리가 정신에 영향을 미치나 의심한다.
상담사는 지금껏 수많은 회사원을 보아왔기에 이연우의 경계를 이해했다.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이상개체 없어요. 그런 거 쓰면 싫어하는 회사원이 많아서요.”
“그렇습니까?”
“그렇죠. 음, 상담하기에는 상황이 조금 그렇네요. 다른 집단 때문에….”
현재 상황을 주제로 입을 열고.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간다.
대화는 곧 깊어졌고, 어느 순간 이연우의 고민과 아픔으로 이어졌다. 이연우는 이상異常의 영향 없이, 상담사의 말에 이끌려 속내를 털어놓았다.
“아무래도 일이 일이지 않습니까. 스트레스가 상당합니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무사히 퇴사할 날이 올까. 임무를 거듭하는데 죽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살아남았지만, 매번 생사를 오갔다. 그 순간의 압박감과 스트레스.
상담사는 진지한 눈으로 이연우와 눈을 맞췄다.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연우는 말을 계속했다.
“설령 무사히 살아남아서 퇴사하더라도, 문제가 끝날까요. 이상異常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마음을 놓을 수 있을까요.”
“많은 회사원들과 같은 고민이시네요.”
그즈음에서 상담사가 입을 열었다.
“PTSD를 겪는 분도 많아요. 전쟁을 겪은 군인처럼요. 평범한 물건이나 평화로운 일상에도 충격을 받아 플래시백이 일어나고 공황이 오곤 하죠. 악몽을 꾸기도 하고요. 이연우 씨도 그런가요?”
“저는….”
이연우는 곰곰이 기억을 떠올렸다.
인간자격시험을 겪은 직후에는 조금 문제가 있긴 했다. 노이즈 낀 소리나 시험 문제 자체를 정신이 감당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뇨. 꿈은 원래 잘 안 꾸고, 공황도 없습니다. 아. 지우개. 지우개를 보면 두렵긴 합니다.”
지우개를 제외하면 딱히?
죽는 집도 그 순간에는 가장 스트레스가 심했지만, 지우개를 직접 휘둘러 지우면서 감정을 전부 분출했다.
지우개야말로 트라우마처럼 남았다. 이연우가 구석 탁자 위에 놓인 필기구를 보았다. 지우개가 있다.
‘어우. 끔찍해.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이상개체가 있을 수 있지?’
상담사는 그런 이연우를 면밀하게 관찰하다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표정은 빠르게 변했다. 온화한 상담사의 얼굴로.
“음. 상담을 위해 미리 이력을 확인하거든요. 불쾌하게 여기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예, 뭐.”
이연우는 담담하게 들었다. 조사원으로서 수행했던 임무는 실적과 경력으로서 기록되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몇몇 부분은 보안 조치로 숨겨졌겠지만.
“이연우 씨는 죽음을 굉장히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여요. 혹시 입사하기 전에 트라우마나 안 좋은 기억이 있을까요?”
누군가의 죽음을 보았거나. 죽을 뻔한 경험이 있거나. 그런 기억은 깊은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이연우는 이상하다는 듯 상담사를 보았다.
“아뇨. 사람이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죽고 싶은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상담사는 가만히 이야기를 들었고, 이연우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딱히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생존에 목숨을 걸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 뭐야. 그런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들이요?”
“건강 생각해서 입에 들어가는 거, 피부에 닿는 거 성분 하나하나 따지고 걱정하는 사람들이요. 저는 그 정도는 아닙니다.”
굉장히 대충대충 살고 있다.
애초에 죽음을 두려워했으면 건강 관리부터 엄청 힘들게 했을 것이다.
카페인, 알콜, 탄산, 설탕, 밀가루 같은 것을 피했을 것이고, 화장품, 퐁퐁, 섬유유연제, 샴푸, 비누 따위를 전부 신경 썼을 것이다.
그저, 죽을 위기가 코앞에 닥치면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칠 뿐.
상담사는 펜으로 종이 위에 글자를 써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종이를 옆으로 치웠다. 탁자 위로 올라갔다.
“이제 슬슬 마무리하죠.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할게요.”
“하십쇼.”
“이연우 씨는 꿈이 뭔가요?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지금 바로 얻고 싶은 뭔가요.”
“꿈…. 딱히 없는데….”
이연우가 턱을 매만졌다. 그냥 하루하루 살아남으면 족하다. 굳이 뭔가 거창한 걸 바라자면.
“안전. 세상이 안전해졌으면 좋겠네요. 이상異常 같은 거 없이.”
이상개체만 많이 줄어도, 마음 놓고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주사위나 지우개나 빗물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 정도만 되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