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115)화 (115/194)

오염

1차장, 참모부장, 기획실장이 모인 회의는 그 성격이 변했다. 전쟁을 앞두고 한국지사의 뼈대가 되는 세 부서, 정보부와 특전대와 한국지사의 연계를 위한 접점이 되었다.

온갖 소리가 바쁘게 들려왔다. 사람들이 뛰어다니는 소리, 보고와 명령이 크게 반복되는 소리, 키보드며 종이가 휘날리는 소리.

세 명의 고위 사원은 어두운 안색으로 침묵하였는데, 1차장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왜 전쟁을….”

이렇게 본격적으로 이렇게 싸우기를 원한 적은 없다. 하다못해 참모부장조차 그렇다. 견제를 주고받거나, 작게 몇 번 싸우기를 원했다.

골드버그 클럽과 예술가협회가 손을 잡고, 강하게 반격했음에도 그랬다.

하지만 상황은 그들의 손을 떠나고 말았다. 작은 불씨가 산불로 번졌다. 전초전은 전쟁으로 변화하였고, 그 범위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뒤덮었다.

화재의 중심에 있는 그들은 탄내를 맡았다. 불을 지르는 건 그들이었다. 회사.

“본사가 원합니다.”

기획실장의 말에 그들은 하나의 메일을 보았다.

본사에서 내려온 명령인데, 복잡한 형식을 제외하면 짧은 말 몇 마디로 요약되었다.

- 전쟁하자. 다른 집단 싹 다 쥐어패자.

참모부장은 바짝 마른 입술을 뗐다. 쉬어버린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본사가 미쳤답니까? 아니면 멸망주의자한테 정신 지배라도 당했습니까? 전면전이 말이나 됩니까? 무수한 사람이 죽고, 피가 흐를 텐데.”

“애초에 전쟁도 필요 없습니다.”

1차장이 피곤한 얼굴로 핸드폰을 꺼내 보였다. 화면에는 통화내역이 있었는데, 다른 집단의 한국지부에서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온 기록이 보였다.

집단끼리는 나름대로 대화를 주고받는 선이 있다. 그 선에 불이 붙었다.

“자기들이 잘못했으니까, 인정하고 양보하겠답니다.”

다른 집단도 본사의 거동을 눈치챘다.

신나게 바이러스를 뿌리고 순회공연을 돌던 클럽과 협회는 다급하게 활동을 멈추고 틀어박혔다.

- 어? 어어? 쟤네 눈 돌아간 거 같은데?

- 악, 저놈들 발작한다! 일단 숙여!

- 대응할 준비해!

회사의 동태를 살피고 집단끼리 연합을 맺기는 했지만, 바깥으로 보이는 활동은 전부 멈췄다. 오히려 숙이고 들어오기까지 했다.

“클럽은 이익을, 협회는 작품을 내어놓을 의향도 있다고 합니다.”

그들 또한 전면전을 바라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획실장은 앵무새가 되어 같은 말을 반복했다.

“본사가 전쟁을 원합니다.”

“아니. 이미 충분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멈추는 게 베스트입니다. 괜히 더 몰아붙이면 회사가, 지구가 버티지를 못합니다. 지금 전쟁을 원하는 회사원은 없습니다.”

1차장과 참모부장이 간절한 눈으로 기획실장을 보았다.

지사라고 본사의 꼭두각시는 아니다. 본사의 명령을 거부할 수도 있고, 본사의 결정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하지만 기획실장은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바꿀 수 없습니다. 전쟁은 일어나야 합니다.”

“아니! 어떤 전쟁도 일어나선 안 된다고!”

참모부장이 쾅 책상을 내리친다. 순간 참모부장 주변으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기획실장이 눈을 떴다. 그리고는 충혈된 눈으로 참모부장을, 회사원을 보았다. 그가 힘없이 마우스를 딸깍였다.

“보십시오.”

“뭘-”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외치던 참모부장의 입이, 눈빛으로 말하던 1차장의 눈이 닫혔다. 깊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

전쟁은 피할 수 없다.

그들이 받은 문서에는 짧게 쓰여 있었다.

[지구멸망시나리오 : 이상오염異常汚染]

[오염도측정보고]

[오염정화계획 : 파괴를 위한 전쟁]

***

[지구멸망시나리오 : 이상오염異常汚染]

뭐 어렵고 무겁게 쓸 게 있습니까?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를 비관적으로 쓸 뿐인데요. 제가 멸종의 대변인이라도 어두운 사람은 아닙니다.

이상異常은 증식하죠. 사람을, 세상을 오염시킵니다.

도구가 사람을 이상개체로 만들듯, 사람은 사회집단을, 자연물은 지역을, 지역은 공간을 이상개체로 만들죠.

그렇다면 이상개체의 수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날,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아무런 관리 없이 풀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호주의 토끼 역병처럼 개체의 숫자가 폭증하겠죠. 오염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 지구를 이상異常의 별로 만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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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요? 이상異常의 별에 사는 인간이 인간일까요? 명왕성의 외계인처럼 오염당해 변이한 무언가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늦기 전에 적당히 숫자 관리합시다. 아시겠죠?

***

[오염도측정보고]

오염이 실존하는 현상이라는 걸 밝혀낸 지는 100년이 채 안 지났습니다.

[이상탄생가설 : 최초의 이상異常]을 연구한 이상학 교수가 가설을 세웠고, [프로젝트 : 평범한 세상]의 연구팀이 우연히 평범한 총탄과 평범한 방을 만들어 증명하면서 법칙으로서 성립되었습니다.

우리는 연구의 부산물 몇 개를 이용하여 오염도를 측정하는 방법을 찾았고, 다각적으로 오염도를 측정했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당장 정화계획을 실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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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도가 경계 수준을 넘어, 위험 수준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최고점을 찍은 지금 꺾어 몇십 년 전 수준으로 되돌려야 합니다.

현생 인류 유전자의 0.4%가 오염되었습니다. 평균적으로요. 유난히 오염이 높은 인간은 변이하기도 합니다.

지구의 오염도는 이상기후가 일어날 정도로 위험한 징조를 보였습니다.

이상기후, 그 구성 개체 중 적지 않은 숫자가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증식해 지구의 기후에 영향을 끼쳤지 않습니까.

하루라도 빨리 회사가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우주라고 생각했던 이차원. 우주의 법칙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했던 이차원은 이상異常에 완전히 잠식당한 세상이었습니다.

그런 미래를 피하기 위해 이차원과의 상호작용을 억누르고, 오염정화제를 개발하고, 이상개체를 대대적으로 파괴해야 합니다.

***

[오염정화계획 : 파괴를 위한 전쟁]

확실히, 오염을 더 두고 봤다가는 손쓸 수 없는 일이 일어나겠군요.

좋습니다.

전쟁을 일으킵시다. 전쟁이 최선입니다.

오염정화제는 만들 기술이 없습니다. 오염을 정화하는 기술, 이상異常을 없애는 기술.

회사가 심혈을 기울여 연구했는데도, 기껏해야 총탄 13발과 좁은 방 하나만 만들었습니다. 그조차도 재현하지 못하고 있고요.

쉽고 효율적인 방법은 전쟁입니다. 회사, 우호집단, 적대집단을 가리지 않고 부딪쳐 이상개체를 부숩시다.

겸사겸사 사후세계도 이 기회에 치워버리죠. 말이 사후세계지, 그 또한 이상異常 아닙니까. 오염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할 텐데.

전장은 사후세계, 전투 참여 세력은 모두.

지구를 정화합시다.

***

전쟁이 다가왔다.

이연우는 사무실로 돌아가지 않고 어느 호텔 방으로 가, 본사의 마크 정을 만났다.

아무래도 전쟁이니까 특수조사원으로서 업무가 있을까 질문을 던지고, 전쟁 관련한 정보도 얻기 위해서.

“우선 이것들부터 읽어보시죠.”

마크 정이 커피를 홀짝이며 손짓한 끝에는, 세 개의 기밀문서가 올라와 있다. 오염 관련한 멸망 시나리오와 계획.

시간이 멈춘 날 보았던 이상기후 시나리오와 비슷한 느낌이다. 이연우는 빠르게 종이를 넘긴 후, 문득 고개를 들었다. 다 좋다. 이해는 간다. 오염으로 망한 지구는 그도 싫다.

그런데.

“지구가 버티겠습니까?”

방주니 고장 난 시계니 전 지구적 스케일의 장치를 듣기도 했고, 겪기도 했다. 거기에 집단마다 비슷한 게 하나쯤은 있을 텐데.

오염을 정화하기 전에 지구가 터지겠는데? 다 죽게 생겼는데?

“못 버티죠.”

마크 정은 대수롭지 않게 커피잔을 두 손으로 잡았다. 이사 직속 직원으로서 나름대로 아는 정보가 많다.

회사가 억제하고 있는 위험레벨 5와 6의 개체들. 무기로서 비축한 그것들.

무기고를 비울 때가 되었다.

“그래서 전쟁은 사후 세계에서 할 겁니다. 어차피 파괴해야 할 곳이니, 딱 맞지 않습니까.”

“다른 집단이 순순히 따라주겠습니까?”

“거절하면 지구가 터지는데요?”

지구 터트리기 싫으면, 우리 뜻대로 사후세계에서 정정당당하게 맞붙자.

단순명료한 협박에 이연우는 머리가 아팠다. 이게 뭔.

“허세잖아요. 회사가 지구를 포기할 리가 없는데, 다른 놈들이 잘도 들어-”

“허세 아닙니다.”

“예?”

이연우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마크 정을 보았다. 어쩐지 머리가 더 아파질 것 같은데, 듣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다.

“허세가 아니라뇨. 보존계획만 믿고 그러십니까?”

“이차원에도, 평행세계에도 인간은 잘만 살고 있습니다. 여기 지구 하나 터져도 인류생존에는 문제없습니다. 굳이 회사가 보호하지 않아도 말입니다.”

마크 정은 속내를 읽을 수 없는 낯빛으로 담담히 말했고, 이연우의 얼굴색은 순식간에 몇 번이나 바뀌었다.

푸르게 질렸다가, 빨갛게 달아올랐다가, 다시 돌아온다.

“장난 그만 치십쇼. 고작 이 정도로 포기할 정도면 진작에 다 포기했겠죠.”

“하하. 들켰네요.”

마크 정이 웃었다.

“사실 본사도 지구를 터트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전쟁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협박으로는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믿을 수밖에 없긴 합니다.”

이상오염은 이상기후와 동급의 위험이다. 이상오염을 예방하지 못한다면 어차피 포기할 지구다.

거기에 회사의 자포자기 또한 그럴듯했다.

이연우는 자기가 적대집단에 속했다고 가정하고, 회사의 이 말을 들었다고 상상해봤다.

‘겁 엄청 먹을 거 같은데.’

식은땀이 흐르고,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일 것이다. 그나마 인류보호라는 이념을 족쇄 삼아 묶여 있던 맹수가 다 때려치우고 난동을 부리는 꼴이다.

농담으로 치부하자니 무섭고, 진담으로 받자니 섬뜩한 소리였다.

마크 정은 탁,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이 정도 협박은 해야 합니다. 이상기후는 모두의 문제였지만, 오염은 회사만의 문제입니다.”

지구가 이상기후로 망하는 꼴은 못 버텨도, 이상異常의 별이 되는 오염은 신경 안 쓰는 집단이 많다.

오히려 자기네들의 별로 만들려고 발악을 하면 했지.

“악마숭배자는 지구를 지옥으로, 예술가는 지구를 예술의 전당으로, 클럽은 황금향으로, 녹색협회는 원시 자연으로, 마법사는…. 마법사는 회사 편에 가깝겠네요.”

차원을 떠도는 여행자에게도 고향 별은 남다른 의미를 가질 테니까.

이연우가 문득 서류를 내려놓았다. 아직 이름이 나오지 않은 집단이 있다.

“멸망주의자는요?”

“그게 이연우 특수조사원 님의 임무입니다.”

마크 정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서류 몇 개를 뒤적이다가, 말했다.

“전투 개시는 한 달 뒤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집단도, 회사도 국가가 아니다. 영토도, 국경도 없다.

집단 간의 전투는 드러난 거점이나 인물을 습격하는 유격전이 기본이었으나, 크게 싸울 일이 있으면 흩어진 전력을 끌어모아 남의 땅에서 전면전을 펼친다.

그 과정에서 이상개체를 숨기고, 전력을 감추고, 그걸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정보전이 일어나니.

“한 달 동안 다른 집단이 비밀리에 옮기는 이상개체를 조사하는 것. 그들의 동태를 살피는 것. 처음은 멸망주의자입니다.”

“어….”

이연우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데? 적대집단에 접근하는 것도 그렇고, 전쟁에 쓰일 이상개체를 조사하는 것도 그렇다.

회사로 비유하면 방주나 고장 난 시계를 조사하는 일이지 않나.

“저 휴가 못 씁니까? 갑자기 몸이 아픈 기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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