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
안경이 변이한 렙틸리언은 끈질기게 이연우를 쫓아왔다. 안경이 부서진 만큼 인식 왜곡을 완전히 꿰뚫어 보지는 못했지만, 위화감과 흔적은 찾을 수 있다.
“키이익.”
파충류의 동공이 바닥을 훑어봤다.
깊게 남은 발자국과 꺾인 잔디. 이연우의 몸에 묻은 고깃덩이 알의 피가 일직선으로 떨어져 있고, 그 냄새가 공기에 남았다.
렙틸리언이 혀를 낼름거렸다. 공기 중의 온도가 변화한 것까지 감지한다.
“키에에엑!”
찾았다. 렙틸리언이 입을 쩍 벌리고 달려들었다. 발톱이 삐져나온 운동화가 땅을 박차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붕, 허공을 가로지르는 포식자의 몸체.
“아니.”
그리고, 이연우는 과할 정도로 몸을 던졌다. 아직 몸에 묻은 피, 전염병이 득실거리는 피도 닦아내지 못했다.
이연우가 힐긋 몸을 내려봤다.
렙틸리언 보스의 피를 뒤집어썼다. 얼굴은 에코백으로 가렸지만, 팔이며 다리가 흠뻑 젖었다.
‘상처라도 입으면 바로 감염인데.’
상황이 안 좋다.
“키에엑!”
렙틸리언은 곧바로 이연우를 쫓아 발톱을 휘둘렀고, 이연우는 다시 한번 몸을 굴렸다.
쐐엑, 공기를 찢는 발톱이 아슬아슬하게 옷깃을 스치고 지나갔다. 날카로운 칼로 자른 듯 너덜거리는 옷 소매.
‘그냥 상처만 입는 거면 맞아도 괜찮은데. 빗물이 감염도 막아줄지 모르겠네. 안 되겠다.’
지폐로 공격해야겠다.
이연우는 바닥을 데구르르 구르며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터보 라이터다. 딸깍, 누르기 무섭게 푸른 불꽃이 솟구쳤다. 라이터에 묶여 있던 지폐가 타올랐다.
그 순간 렙틸리언의 움직임이 멈췄다. 열기와 탄내.
희미하게 남아있던 안경의 정신이 직관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끼엑!”
렙틸리언은 그대로 몸을 돌리고 도망쳤다. 쾅쾅쾅쾅, 잽싸게 발을 놀리며 돌풍처럼 질주했다.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도망치겠다고? 안 되지.”
이연우는 불이 꺼지지 않게 손바닥으로 불타는 지폐를 가리고는, 냅다 렙틸리언을 쫓아 달렸다. 렙틸리언이 대놓고 도주하고 있기에 추적은 쉬웠다.
신체 능력의 차이로 거리가 점점 멀어졌지만, 완전히 놓치기 전에 지폐가 완전히 불타 없어졌다.
다음 순간, 렙틸리언의 몸에 드릴 구멍 수십 개가 뚫렸다.
구멍마다 솟구치는 피. 렙틸리언은 단말마를 내뱉으며 쓰러졌다.
“끼이익.”
피 웅덩이에 누워, 죽었다. 움직임이 없다.
이연우는 한숨 돌렸지만,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돌려 집회 장소를 보았다.
연기가 솟고 섬광이 번쩍거리는 그곳.
펑, 펑,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고, 끼엑, 으아악, 렙틸리언과 인간의 고함과 비명이 계속해서 메아리쳤다.
‘이 상황에 푸른 문이 계속 열려 있을까?’
동료 의식이나 협동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멸망주의자가 남아 있을까?
그때였다.
우웅, 우우웅, 핸드폰이 진동했다. 이연우가 서둘러 확인하니 마크 정의 화상 통화였다. 받기 무섭게 다급한 표정이 보이고 빠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 지금 그쪽 상황 어떻게 됩니까? 지금 렙틸리언들이 미쳤습니다!
“예?”
어리둥절한 말에 마크 정은 핸드폰을 돌려 노트북 화면을 보여줬다.
분할된 화면에서는 세계 각국의 상황이 나왔다.
한창 콘서트 중이던 가수가 고음을 높이던 중 갑자기 렙틸리언으로 변해, 관중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느 나라의 의회에서는 의원이 변신해 주변 의원을 물었고, 어느 기업에서는 CEO가 직원들을 물었다.
곳곳에서 긴급 속보가 흘렀다. 전 세계에 렙틸리언 전염병이 전파되고 있다.
- 렙틸리언 보스가 숨긴 렙틸리언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어어. 그게.”
이연우는 눈을 데굴 굴렸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움직여, 멀리서도 보이는 거대한 고깃덩이 알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게, 이유는 모르겠는데. 보스가 갑자기 폭주했습니다. 여기도 난장판입니다.”
셀카 찍듯 핸드폰을 다시 움직여, 비명과 폭발이 난무하는 집회장소를 멀리서 잡았다.
이런 일이 지금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거 내가 오염시켰다고 말하기는 좀.’
아무래도 솔직히 말하자니 사태가 지나치게 커졌다.
그때 마크 정의 고함이 터졌다. 무언가를 봤다.
- 위! 하늘 위! 조심하세요!
이연우의 위로 흐릿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이건 위험하다. 이연우는 확인도 하지 않고 앞으로 굴렀고.
쾅-!
충격파에 휘말렸다. 익룡의 날개를 단 렙틸리언이 머리부터 추락한 것이다.
“이건 또 뭔.”
이연우는 멍하니 주저앉아 변이한 렙틸리언을 보았다.
팔은 길게 뻗었고, 팔과 몸통 사이에 얇은 피막이 펼쳐졌다. 얼굴도 기괴하게 바뀌어, 입술이 부리처럼 쭉 나왔다.
- 변이…. 전염병이, 감염자가 변이하고 있습니다!
이연우는 무의식적으로 핸드폰 화면을 보았다. 노트북이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현장.
세계적인 가수의 얼굴과 목이 육식공룡처럼 바뀌더니, 포효를 내질렀다. 포효를 들은 관객들은 뱀 앞의 쥐처럼 굳어, 렙틸리언에게 얌전히 몸을 내주었다.
렙틸리언으로 변한 의원들은 서로 잡아먹더니 웬 이상한 키메라 공룡이 되었고, CEO 렙틸리언은 부하를 이끌고 무리 사냥을 시작했다.
“어….”
이연우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멸망주의자가 변한 렙틸리언만 해도 위험한데, 변이까지 한다고?
이연우는 떨리는 눈으로 집회 방향을 보았다.
폭음과 비명이 점점 잦아들고, 공룡의 울음이 점점 많아졌다. 사방으로 도망치는 소수의 인간과 인간을 추적하는 다수의 렙틸리언이 작은 점처럼 보였다.
눈을 가늘게 뜨면, 시체를 머리의 뿔에 건 렙틸리언도 있고, 길게 늘어난 목과 머리를 질질 끌고 걸어가는 놈도 있고, 지느러미를 달고 바다로 뛰어드는 놈도 있다.
딱 봐도 심상치 않다.
‘이러면.’
푸른 문이 열려 있어도 거기까지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까?
돌과 조끼도 렙틸리언의 감각과 야성 앞에서는 썩 잘 통하지 않는 느낌인데?
이연우가 시야를 넓게 둬 주변을 경계하며, 마크 정에게 말했다.
“저는 후퇴하겠습니다. 계획 정보는 얻었습니다. 푸른 문이 아닌 퇴로를 알려주십시오.”
적의 본거지에 잠입했다. 당연히 회사는 다양한 퇴로를 준비해줬다.
마크 정은 마우스를 딸깍거리더니, 이 섬 주변의 해도를 띄웠다. 배 몇 척이 상당한 거리를 두고 섬으로 달려오고 있다.
- 회사 요청으로 근처 국가의 해군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섬을 폭격할 계획이고, 이연우 씨를 모실 상륙정 하나가 이쪽 위치로 갈 예정입니다.
섬의 귀퉁이에 붉은 핀이 꽂힌다.
그곳에 찍힌 시간은 3시간 후.
또한 섬 곳곳이 붉게 물들며 폭격 예상 시간까지 나왔다. 그 또한 3시간 후다.
“3시간.”
이연우는 곧바로 이동할 채비를 갖췄다. 천천히 걸어도 넉넉한 시간이지만, 가는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는 모르지 않나.
그때 마크 정이 망설이다가, 힘들게 말을 꺼냈다.
- 이연우 님. 혹시…. 렙틸리언 보스의 샘플을 채취할 수 있습니까? 필수는 아닙니다. 지금 사태는 회사가 움직이지 않고 각 국가를 움직이는 것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샘플이 있으면-
마크 정의 입이 다물렸다. 이연우가 기다렸다는 듯 바로 옷자락을 카메라에 들이민 탓이었다.
본의는 아니지만 샘플은 이미 챙겼다. 이연우는 피가 묻은 옷자락과 피를 잔뜩 담은 에코백을 흔들었다.
“피면 충분합니까?”
- 아, 예! 충분합니다!
치료제를 만들든, 연구에 사용하든 충분하다.
“그러면 나중에 봅시다.”
마크 정은 조금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이연우는 심호흡을 반복하며 아수라장을 가로지를 준비를 마쳤다.
나름대로 몸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가자.’
발자국을 깊게 남기며 떠난다.
***
멸망주의자 몇이 나무 뒤에 숨어 몸을 웅크렸다. 손 선풍기와 테이저 건, 밥솥 따위를 끌어안은 그들은 주변에 쓰러진 렙틸리언을 보았다.
“이놈들은 왜 갑자기 돌아버려서.”
“다 렙틸리언 됐다. 멀쩡한 놈 얼마 없을 텐데. 어쩌냐.”
한탄하기도 하고, 불평을 토로하기도 한다.
“탈취자는 뭐합니까? 이놈들 대도시에 떨어뜨리기만 해도 장난 아닐 텐데.”
“걔? 가장 먼저 튀었어.”
나름대로 지식을 지닌 멸망주의자는 렙틸리언 보스의 폭주를 보고 전부 도망갔다.
갑자기 극한까지 오염된 이유, 알 수 없는 위험을 피해 자기 살길을 찾은 것이다.
그때 밥솥을 안은 멸망주의자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일어나 렙틸리언의 시체를 향해 다가갔다.
다른 사람들은 미심쩍은 눈으로 보았다.
“뭐하냐.”
“별건 아니고. 나도 렙틸리언 되려고.”
“뭐? 미쳤어?”
철컥, 척, 온갖 무기가 상대를 겨눈다. 하지만 상대는 침착했다. 밥솥을 열어 주먹밥을 꺼낸다.
“솔직히 우리가 테러해봤자 뭘 얼마나 죽이겠냐고. 차라리 렙틸리언 돼서 전염병 뿌리는 게 낫지.”
“아니, 돌았어? 애초에 이 섬은 어떻게 빠져나갈 건데!”
푸른 문도 없고, 배도 없어 고립된 섬.
상대는 느긋하게 주먹밥 여러 개를 두 손 가득 쥐었다.
“저기 봐. 렙틸리언이 되면 나갈 수 있어.”
멸망주의자들은 눈을 돌리지 않았다. 당장 눈앞에 미친놈이 있는데, 그걸 경계해야지.
결국 주먹밥을 쥔 멸망주의자는 말로 설명했다.
“날개 달린 렙틸리언이 다른 렙틸리언 쥐고 날아가고 있다고. 그러니까, 다 같이 렙틸리언이 되자.”
진득한 미소와 함께 주먹밥이 흩뿌려진다. 멸망주의자들이 총을 쏘고, 테이저 건을 쏘고, 손 선풍기를 켜지만, 늦었다.
주먹밥이 렙틸리언의 시체 위로 떨어졌다.
쾅!
폭발. 밥알 하나하나가 단단한 파편이 되어 흩뿌려지고, 시체가 폭죽처럼 터졌다. 그 살점과 피. 피할 수 없다.
“아악! 이, 이, 정신 나간 놈이!”
“흐흐.”
밥솥을 안은 멸망주의자는 웃음을 흘렸다. 온다. 전염병이 온다. 변이한다. 더 뛰어난 몸으로, 더 위험한 몸으로.
다른 멸망주의자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밥알이 박힌 상처 위로 살점이며 피가 묻었다. 당장 피부가 가죽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크으으, 키이익!”
그리고, 마침 주변을 지나던 이연우는 멍하니 주변을 보았다.
“끼에에엑!”
“끼아악!”
폭발음을 듣고 렙틸리언들이 몰려오고 있다. 하늘에서, 땅에서, 바람을 가르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왔다. 인식을 피하더라도, 질주에 휘말려 밟혀 죽게 생겼다.
‘아, 지폐 아까운데.’
이연우는 피에 젖은 지폐 다발을 꺼내 토치로 지졌다.
‘목표지점까지 달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