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120)화 (120/194)

오염

상륙정이 온다는 목표지점은 섬 귀퉁이의 해변이었다.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고, 푸른 바다가 너울거리며 파도가 몰려오는 해변.

‘시간이, 2시간 남았나?’

이연우는 나무가 우거진 수풀 아래에 엎드려 핸드폰을 보았다. 지폐를 아끼지 않고 불태워가며 달려왔기에, 충분히 일찍 도착했다.

이제 2시간 동안 조용히 숨어 있기만 하면 된다.

이연우가 슬쩍 하늘을 보았다.

반 익룡 반 인간으로 변이한 감염자들이 하늘을 빙빙 돌며 사람들을 찾고, 또 다른 감염자를 쥐고 섬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거기에 마크 정이 보여줬던 것까지 생각하면.

“아….”

사고 진짜 크게 쳤다. 이연우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위험한 세상이어도, 안전한 도시에서 평화롭게 일상을 누리다가도 이면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이상異常에 몰살당하는 세상이더라도, 자기 손으로 방아쇠를 당긴 꼴이지 않나.

‘마음에 좀 걸리는데.’

나름 위기상황에서 생존에만 매몰되어 있던 정신이 여유를 찾았다. 생존에 관계없던 소식들이 천천히 소화되었다.

난장판이 된 세상.

사람들은 적지 않게 죽을 테고, 음모론이 득세할 것이다. 렙틸리언은 진짜였다고. 셀럽 중에 렙틸리언이 있다고.

주사위의 실패가 몇 번이나 겹쳐 만들어진 재앙은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그래도 샘플은 채취했으니까.’

이연우가 슬그머니 에코백을 보았다.

보스의 피를 챙겼으니 회사가 치료제나 백신을 만들지 않을까? 이 정도면 조금이나마 책임을 진 게 아닐까?

‘아, 모르겠다. 회사가 적절한 징계를 내리겠지.’

시말서를 쓰든, 월급을 삭감하든, 사태 수습을 위해 주사위를 이용하든 말이다.

이연우는 복잡한 생각은 뒤로 밀어두고, 돌을 꽉 쥔 채 숨을 죽였다. 어쨌든 아직 탈출하지 못했다.

근처를 지나가는 렙틸리언은 가만히 보내고, 그의 흔적을 찾은 렙틸리언은 지폐를 이용해 죽이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이 되었다.

콰아아아-!

전투기가 소닉붐을 일으키며 날아들었다. 전투기의 기관포가 총탄을 쏟아부었고, 날개 달린 렙틸리언은 낙엽이 되어 떨어졌다.

“끼에에에엑!”

반대쪽 해안가에서는 포격이 시작됐는지, 굉음과 함께 섬 곳곳이 검은 연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또한 이연우를 데려갈 상륙정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해안가로 다가왔다.

보호의와 방독면을 쓴 군인들이 사방을 경계하며 뭐라뭐라 외쳤다.

‘영어 같은데, 모르겠네. 일단 타자.’

배가 멈춘 틈을 타, 이연우는 힘겹게 배에 올랐다. 에코백을 머리 위로 높게 들고.

보호의를 입은 군인들은 이연우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이연우가 쌓아놓은 렙틸리언의 시체를 보며 크게 소리쳤다. 전투기와 익룡 렙틸리언의 전투를 보며 흥분한 듯도 했다.

저게 뭐냐고 펄쩍 뛰고, 방독면을 고쳐 쓰며 눈을 의심하고.

그쯤에서 이연우는 돌을 에코백에 넣고, 조끼를 벗어 존재감을 드러냈다.

철컥, 철컥!

군인들은 순식간에 반응했다. 수상한 이연우를 향해 총을 겨눈다. 이연우는 항복하듯 두 팔을 들어 올렸다.

당장 총성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

“이연우 특수조사원?”

보호의를 입은 사람 하나가 나섰다. 총 대신 주사기나 유리병 따위를 쥔 사람이다.

방독면을 뚫고 나온 어설픈 한국어에 이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원이십니까?”

“예. 샘플은 어디 있습니까?”

“이 가방에 있습니다.”

이연우가 에코백을 건넸다. 연구원은 가방 속에 손을 넣고 휘적이는가 싶더니, 묘한 목소리를 내었다.

“공간확장? 이건 회사도 계속 연구하는 기술인데.”

“샘플만 챙기십쇼.”

“예, 뭐. 저는 이상공간학 전공은 아니니까. 우선 소독부터 마치겠습니다.”

연구원이 가방의 피를 채취하면서 외국어로 뭐라 말하자, 군인들이 이연우를 둘러싸고 소독을 하기 시작했다.

핏물이 남은 옷을 회수하고, 무슨 액체를 뿌리고, 비닐 텐트 같은 것을 씌운다.

‘끝났다….’

이연우는 가만히 절차를 거치면서 섬을 바라보았다.

상륙정이 천천히 움직이며 멀어지는 섬. 익룡은 전투기 앞에서 몰살되었고, 공군이 지배한 하늘 위로 폭격기가 날아들었다.

비가 되어 쏟아지는 폭탄. 폭탄은 지상에 닿기 무섭게 폭발과 화염을 일으켰다.

끼에엑, 렙틸리언의 비명만이 섬을 채운다. 섬 하나가 황무지로 돌아가고 있었다. 공룡조차 있기 전의, 암석만이 존재하는 황무지로.

***

그 후의 일은 빠르게 지나갔다.

이연우는 수송기를 몇 번 옮겨탔고, 촬영한 계획 문서를 보내고는 잠만 자다 보니 한국에 돌아왔다.

이연우는 그를 맞이하러 나온 마크 정을 보았다.

마크 정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셨습니까? 이번 일은 아주 훌륭했습니다. 본사는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진심이었다. 여러모로 회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건이 진행되었다.

“아. 그게.”

그 반가움에 이연우는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나 때문에 오염이 일어났다, 그래서 렙틸리언 보스가 폭주했다, 솔직히 말하려고 했지만 막상 고백하려는 때가 오니 망설여졌다.

‘이거 내가 감당 가능한가?’

세상이 뒤집어졌는데?

어쨌거나 마크 정은 이연우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앞서 걸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차에서 하시죠. 잡아둔 호텔로 모시겠습니다.”

마크 정의 차로 걸어가는 길.

이연우는 마음을 먹었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 내 나이가 몇 살인데 거짓말로 책임을 피해. 그리고 주사위가 실패한 일이잖아. 이건 사고지.’

하물며 특수조사원이 임무를 수행하다 일어난 일인데, 회사가 선을 넘지는 않을 것이다.

이연우는 마크 정의 차에 타자마자 말했다.

“오염은 저 때문에 일어난 일 같습니다.”

“압니다.”

“예?”

마크 정은 안전벨트를 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부지런히 손가락을 놀려 내비게이션에 호텔 위치를 찍기 바빴다.

“이연우 님이 가셨지 않습니까. 그 정도 사고는 일어나겠죠.”

“아니, 그게 아니라.”

이연우는 이마를 탁 쳤다가, 마크 정이 액셀을 밟기 전에 얼른 말했다.

“제가 오염시켰다고요. 주사위 굴려서. 물론, 다시 되돌리려고 해봤는데, 다 실패해서 그 지경까지 갔습니다.”

“…주사위로 오염도까지 돌릴 수 있다는 말입니까?”

마크 정은 이상한 부분에서 놀랐다. 사고의 수습이나 피해 규모 같은 것이 아니라.

놀란 눈으로 이연우를 보기를 잠시. 눈살을 찌푸린다.

“아, 이러면 관심 가질 연구소가 많은데. 혹시 실험 몇 번 하실 생각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보다 렙틸리언 전염병이-”

“그건 잘 됐습니다. 딱 타이밍이 좋았습니다.”

마크 정이 액셀을 밟았다. 자동차가 달려 나갔다. 빠르게 스치는 풍경.

“회사가 전쟁에 정신 팔린 사이, 세계 각국의 정부들이 딴짓 못하게 만들 계획이었는데. 이제 렙틸리언 전염병에 대응하느라 딴짓할 여력도 없겠죠.”

이연우는 잠깐 말을 잃었다. 물론 징계나 질책 없이 넘어가는 건 좋은데, 이게 맞나?

“그래도 피해가 적지 않을 텐데.”

“저도 처음에는 되게 위험한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렙틸리언 전염병은 대처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잠복기간도 없고, 감염되는 즉시 눈에 확연히 보이는 증상.

전파력이 상당하긴 하지만, 진짜 전염병 유행에 비하면 정부의 힘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혼란을 수습하는 데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어딘가 사람 보는 감각이 무뎌진 본사의 판단에 이연우는 입을 벌렸다.

‘이게 맞아? …아, 본사구나.’

이연우가 문득 깨달았다.

지역경찰 느낌인 지사와 달리 세계적인 위험에 집중하는 본사라 그런가. 멸망 시나리오 급이 아니면, 몇십억 죽는 게 아니면 신경도 안 쓰는 느낌이다.

과연 마크 정은 씩 웃고 있었다.

“차라리 잘된 일이지 뭡니까. 멸망주의자 중 보스가 가장 지능적이었거든요.”

감염자를 부하로 부리는 보스.

어디 군벌을 감염시켜 군수물자를 공급받고, 각계각층의 중요인물을 감염시켜 정보를 수집하고 사회에 영향을 끼치던 인물.

“그게 전부 드러났으니, 멸망주의자의 팔 하나둘쯤은 부러진 겁니다. 거기에.”

마크 정은 살짝 눈을 굴려 이연우를 엿봤다.

수송기를 타고 오는 동안 잘 먹고 잘 잤는지, 아주 상태가 좋다. 전염병 사태를 신경 쓰는 점이 특히 좋다. 인간적이라서.

마크 정은 가볍게 말했다.

“사후세계 강하 계획도 이번 일로 망했고요. 이제 진행 못합니다.”

다 잘됐다. 그야말로 일석삼조다. 이연우 하나 던졌더니, 골칫거리 세 개가 사라졌다.

멸망주의자에게 괴멸적인 피해 입히기, 사후세계 강하 계획 저지하기, 집단 간의 전쟁을 틈타 이상異常에 눈독 들이던 세계 정부 견제하기.

이연우도 대강 상황을 파악하고는 몸을 느슨하게 조수석에 기댔다.

“예. 그렇다면 제가 더 할 말은 없네요.”

회사원으로서 회사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그렇지 않나.

일개 회사원인 이연우는 생각을 멈췄고,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았다.

***

호텔은 이상조사반의 사무실 근처에 있었다. 주차장에서 마크 정이 손을 흔들었다.

“푹 쉬십시오. 며칠 뒤에 새로운 업무를 드리겠습니다.”

“또요? 이번 일 같은 걸로요?”

이연우는 빠르게 걸어가다가, 걸음을 멈췄다. 얼굴에는 질색하는 표정이 지어졌다.

이번 업무만 해도 원래라면 하지 않을 일이었는데. 아무리 특수조사원이어도, 조사원이 할 일도 아닌 느낌이다.

이연우가 문득 주먹을 쥐며 비장하게 몸을 돌렸다.

‘이건 아니지. 이번 일도 위험했는데.’

이건 항의해야겠다.

그런데, 막상 본사에 항의하자니 뭔가 쪼그라드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냉혹한 인상의 본사 아닌가.

결국 이연우는 우물쭈물하며 물었다.

“그, 이런 일은 되도록 피했으면 좋겠는데요.”

“단순한 일입니다. 몇몇 집단은 우리 뜻대로 움직일 수 있어 보이는데, 그 공작을 조금만 도와주시면 됩니다.”

마크 정은 하하 웃으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전쟁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그때까지만 열심히 일하면 장기휴가를 드리겠습니다.”

“그 정도면, 알겠습니다.”

“그럼 쉬십시오.”

마크 정의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그 뒷모습을 우두커니 서서 보던 이연우가 결의가 서린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내가 어쨌든 좋은 결과를 내서 일을 계속 맡기는 것 같아. 몇 번 망치면 이런 일은 안 시키지 않을까?’

회사도 매운맛을 보면 중대한 일은 안 맡길 것이라고, 이연우는 생각하며 호텔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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